사회적경제는 이념을 가리지 않고, 꽃을 피워냈던 영역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마찬가지다.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때는 자활기업이, 2008 글로벌 금융위기 전후로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이 주목받았다. 정치권에서 이러한 흐름을 주도해 관련법을 제정하고, 활성화 정책을 내놓기도 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사회적경제가 정파적 의제로 치부되기 시작했다. 사회적경제의 ‘사회적(Social)’은 공동체 정신을 강조하는 의미에서 붙었지만, 사회주의(Socialism)와 혼동하는 등 정파적 의제라는 인상을 주곤 한다. 사회적경제를 두고 생산적인 논의를 하기위해 경제학자와 더불어민주당, 국민의힘 젊은 정치인이 모였다. 

10일 개최된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창사 13주년 기념 사회가치 컨퍼런스 ‘2030 세이가담 : 전환기 사회적경제가 나아갈 길’의 제3세션은 ‘정치의 벽을 허물다’를 주제로 진행됐다. 정진영 이로운넷 편집부국장이 사회를 보고, 패널로는 김재섭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 우석훈 성결대 교수,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출연했다.

사회적경제 “불평등 보완역할 유의미” “보수주의·자유주의와 연결고리 있어”

우석훈 교수는 먼저 사회적경제를 “공익을 추구하는 경제”라고 정의했다. 그는 “시장경제가 작동하게 되면 ‘공유지의 비극’이 생길 수 있다”면서 “정부는 너무 멀고 투박해 조정이 쉽지 않다. 공유지를 관리하기 위해 새로운 민간경제가 바로 사회적경제”라고 설명했다. 

이동학 민주당 최고위원과 김재섭 국민의힘 전 비대위원은 각각 진보·보수의 관점에서 사회적경제가 어떤 의미가 있는지에 대해 논했다. 

먼저 이 최고위원은 진보의 가치 중 하나인 평등의 관점에서 사회적경제를 바라봤다. 이 최고는 “기존에는 낙수경제 이론이 유효하다고 받아들여졌다. 하지만 2008년 금융위기를 기점으로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낙수경제 이론이 틀렸다는 걸 인식하기 시작했다”며 “정부가 시장에 어떻게 개입할 것이냐는 논의가 있었다. 그 중 하부 단위에서 사람들에게 경제적 조치를 취해주는 사회적경제가 빈부격차 등을 일정 부분 보완하는 유의미한 역할을 하고 있다”고 봤다.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왼쪽)과 김재섭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
이동학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왼쪽)과 김재섭 국민의힘 전 비상대책위원.

김 전 비대위원은 보수주의에 대해 “인간의 이성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기존에 있던 시스템, 관행 등 문화를 존중하며 차근차근 정책을 설계해나가자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 사회적경제와 보수주의가 관계없다는 일각의 주장을 일축했다. 그는 “현대 정당에서 뿌리잡고 있는 이념은 크게 사회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다. 이것들이 교집합을 형성하면서 나름의 정반합을 통해 각각 현대정당 체계 이념으로 자리잡고 있는 것”이라며 “보수주의 역시 사회적경제 관련 정책을 꾸준하게 이야기해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보수주의가 무조건 시장을 중시하고, 절대시해야 되는 개념은 아니”라면서 “예를 들어 영국 보수당이나 독일 비스마르크 등이 사회적경제 정책 등을 펼치고, 사회보장제도를 적극 도입해왔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자유주의 내에서도 사회적경제와 연결되는 영역이 있다고 생각한다"며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고 유권자들에게 호소력있게 전달하느냐가 보수당의 과제”라고 덧붙였다. 

국내외·좌우 불문 사회적경제 육성해와... “정파적으로 바라볼 문제 아냐”

우석훈 교수는 이념을 뛰어넘었던 국내외 사회적경제 육성 사례를 소개했다. 우선 협동조합을 가장 큰 이념으로 세웠던 이 중 하나는 이탈리아 무솔리니였다. 우 교수는 “정치적으로는 파시즘적으로 흘렀지만, 당시 노동자도 싫고, 자본가도 싫다며 제3의길을 선택한 것이 협동조합”이라고 밝혔다. 

그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에 유럽을 중심으로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해야 한다는 흐름이 확대됐다. 대표적으로 영국 노동당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2010년 집권 직후 협동조합·사회적기업 등을 적극적으로 육성하겠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우 교수는 “자본주의가 후기로 들어오면서 고용이 불안해지니까 고용을 유지하는데 효과적인 사회적경제가 주목받았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한국의 사회적경제 육성사례는 농협·축협을 만든 박정희 정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박정희가 집권 이후 전력 거래를 하나로 묶고나서 바로 농협을 만들었다. 농민의 지위향상을 위해 중요하다 여겼다”면서 “이런 식으로 흘러가다 약 6~7년 전부터 갑자기 이념논쟁에 들어갔다. 이상하게 한국에서만 사회적경제를 좌파정책이라고 말한다”고 안타까워했다. 이후 노무현·이명박 정부도 각각 사회적기업 육성법과 협동조합 기본법을 제정하기도 했다.

한국의 경우, 지방정부가 진보, 보수를 가리지않고 사회적경제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
한국의 경우, 지방정부가 진보, 보수를 가리지않고 사회적경제를 적극 육성하고 있다.

특히 우 교수는 한국에서는 사회적경제가 지역과 더 가까운 개념이라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는 사회적경제를 전국 이슈로 보는데, 사실 한국의 사회적경제는 좀 더 로컬과 가깝다. 보수세가 강한 지역 중에도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열심인 지역이 많다”며 “하나도 이념적이지 않은데 정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고 꼬집었다.

김 전 위원은 “사회적경제는 이념적 절충이라는 느낌이 든다”면서 “국가의 역할, 시장의 기능이 있는데, 최적화된 조합을 사회적경제 정도로 이해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동학 “상호 관점 합의 이뤄내야”... 김재섭 “괜한 반대 안돼”

다음으로는 여야간 사회적경제 관련 논의가 진척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분석했다. 

이동학 최고위원은 관점의 차이를 합의하지 못해 갈등이 발생하고 있다고 봤다. 그는 “사회적경제도 자유시장 경제 시스템 안에서 돌아가도록 할 것인지 아니면 약간의 개입과 규제를 통해 할 것이냐를 두고 여야간 시각이 달라서 문제가 발생한 것이라 생각한다”면서 “이러한 관점의 차이에서 적정선에서 합의가 이뤄져야 하는데, 단순히 이념적으로만 소비됐던 것 같아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어 “사회적경제는 단순히 상품을 구매하고 말고의 문제가 아니라, 제품 판매를 통해 수익이 발생하면 이를 통해 고용 창출, 취약계층 지원하는 방식으로 국가나 시장이 하지 못하는 영역을 채우는데 의미가 있다”면서 “이러한 의미가 덜 조명되고 있었고, 시행착오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김재섭 전 비대위원은 “국가 발전에 도움되는 정책이냐를 따지기보다는 보수의 본류에 맞는지를 먼저 고민하다보니 큰 성찰없이 반대를 했던 게 아닌가 싶다”면서 “2018년을 기점으로 보수당 정체성을 확립한다는 차원에서 경제민주화, 사회적경제 등 국가의 개입을 강조하는 흐름보단 시장의 기능을 되살리는 흐름이 당내에서 강화돼왔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괜한 반대를 하는 부분도 있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우석훈 “경제보수 입장에서도 사회적경제 꺼릴 이유없어"

우석훈 교수는 "경제보수 입장에서 사회적경제를 늘리자는 주장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경제 주체가 다양해 지면 기존 기업도 나빠질 게 없기 떄문"이라고 밝혔다. 
우석훈 교수는 "경제보수 입장에서 사회적경제를 늘리자는 주장에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경제 주체가 다양해 지면 기존 기업도 나빠질 게 없기 떄문"이라고 밝혔다. 

우 교수는 사회적경제가 이념과 상관없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강조했다. 2010년대들어 미국 MBA과정 수업 커리큘럼 속에 사회적기업 수업이 주축으로 들어가 있다는 것. 그는 “사회적경제는 사회주의하고 아무 상관이 없는데 이름만 보고 오해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면서 “미국 MBA 수업 커리큘럼에 사회적기업 수업이 포함돼 있는 건 자본주의가 위기 국면으로 들어서면서 미국의 비즈니스 흐름 자체가 바뀌었음을 의미한다”고 밝혔다. 

한국 보수 입장에서도 사회적경제를 꺼려할 이유가 없다는 이야기도 덧붙였다. 우 교수는 “최근 반공보수가 아닌 경제보수로 대표되는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가 등장했는데, 경제보수 입장에서 사회적경제를 늘리자는 것에 대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경제주체가 다양해지면 기존 기업도 나빠질 게 없기 때문”이라며 “요새 ESG 흐름도 강해졌기 때문에 기존 기업들이 사회적 기여를 좀 더 고민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라고 말했다. 

“기본법 반대할 이유없어”... 공공우선 구매비율·윤리적 소비 두고 이견
다음으로 양당 정치인은 사회적경제 관련법안 논의과정에서 자당 전략의 아쉬운 점과 상대당에 바라는 점을 논하며, 법안 세부조문에 대해서도 입장을 밝혔다.

김재섭 전 비대위원은 "국민의힘이 기본법 정도는 유연하게 검토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재섭 전 비대위원은 "국민의힘이 기본법 정도는 유연하게 검토해도 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먼저 김재섭 전 위원은 민주당에 대해 “민주당이 21대 국회에서 다수 의석을 차지하면서 쟁점법안 등을 강행처리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힘 입장에서는 반대의사를 강하게 표출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라며 “충분히 토의하고, 문제점을 검토하면서 법안을 처리했으면 좋았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반면 국민의힘의 사회적경제 기본법(이하 기본법) 반대 논의에 대해서는 “기본법은 국회 내에서 큰 틀의 합의를 하고 향후 구체화시켜 나가겠다는 약속 같은 개념인데, 이 단계에서 반대할 이유가 있나 의문”이라며 “자유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미국에서도 협동조합 체제가 어느정도 뿌리가 내려져 있다. 기본법을 통과시켜놓고 협동조합을 차차 발전시켜 나가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다만 기본법내 ‘윤리적 소비’ 규정 및 공공구매 의무비율 지정에 대해서는 반대의견을 내비쳤다. 그는 “자생적으로 생겨나는 협동조합의 역할은 필요하지만, 국가가 소비 메커니즘에 개입하는 건 잘못됐다. 이는 소비자 후생에 맡겨야 한다”면서 “소비의 한 형태를 ‘윤리적’이라는 이름으로 강제하는 것은 반대한다”고 말했다. 

이동학 최고위원은 윤리적 소비라는 표현에 대한 재검토는 가능하지만, 공공구매 우선구매 비율은 성장 마중물로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그는 “윤리적 소비라는 단어에서 오는 지적에서는 받아들일 부분이 있다”면서도 “이미 우리 사회에서 공정무역, 착한소비 등으로 윤리적 소비를 다양하게 일컬어 왔다”고 덧붙였다.

이동학 민주당 최고위원은 "공공구매 우선비율 조항이 사회적경제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동학 민주당 최고위원은 "공공구매 우선비율 조항이 사회적경제기업에 마중물 역할을 해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아울러 공공구매 우선구매 비율도 초기에는 보장책으로서 존재해야 한다는 입장을 내비쳤다. 개별 사회적경제기업이 시장경제 혹은 사회적경제 안에서의 경쟁력을 갖추기 전까지 마중물로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러면서 이 최고는 “공공구매 우선비율을 정해놓더라도 사회적경제 섹터 내에서는 결국 혁신경쟁이 일어난다”며 “이를 통해 민간기업과 붙어도 밀리지 않을 정도로까지 성장하는 사례도 충분히 나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우 교수는 “기본법은 지역에서 사회적경제 조례를 통해 사회적경제를 활성화하고 있는데 법률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나왔다”며 “지원만으로 사회적경제가 커지는 것에는 반대한다. 다만 제도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사례도 필요하고, 사례를 뒷받침하기 위한 새로운 입법도 필요하다. 정치권에서 기본법 이후 후속작업에 대해서도 애정을 갖고 봐줬으면 좋겠다”고 주문했다. 

“자부심가져야”, “발돋움 희망” 등 종사자에 덕담 전해

마지막으로 이들은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에게 덕담을 전하기도 했다. 

먼저 이동학 최고위원은 “양극화문제 해결은 글로벌사회 핵심 어젠다가 됐다. 소득과 자산이 많은 사람들만 계속 돈을 버는 사회에서는 양극화를 막을 길이 없다”면서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 사회적경제를 확장시키려고 하는 노력이 좌우를 떠나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기업 종사자들도 양극화를 줄이는데 큰 역할을 한다는 자부심을 갖고 일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사회적기업이라는 타이틀이 없어도 기본적으로 기업으로서 사회적경제의 지향점을 좀 가지고 있는 시대가 온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든다”며 “앞으로 모두가 사회적기업이 될 수 있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듯하다”고 짚었다.

김재섭 전 비대위원은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에서 ‘사회적’이 수식하는 것은 경제이고 기업”이라며 “경제의 질서, 기업의 논리에서 완전히 벗어날 수 없는 것이 사회적경제와 사회적기업이다. 혁신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사회적경제, 사회적기업으로 발돋움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

우 교수는 “사회적경제가 서울 중심이란 인식이 강해 잘 뿌리를 못 내리고 있는 지점도 있다. 사회적기업 등은 비수도권 베드타운 등에 문화나 필요한 인프라를 공급하기에 적합한 영역”이라며 “수도권 중심주의를 완화하기 위해 베드타운도 살만한 지역으로 만들기위해 사회적경제가 꼭 필요하고 그렇게 가리라고 기대한다”고 말했다.

※편집자주

사회적기업육성법 제정 후 14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후 9년. 사회적경제는 중요한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이로운넷>이 창사 13주년 기념 사회가치 컨퍼런스 '2030세이가담'에서 사회적경제가 한 단계 성장하기 위해 허물어야 할 '벽'을 공론화하고 나아갈 방향을 모색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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