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4월, 소셜섹터에서는 작은 사건이 있었다. 사회혁신 영역에서 디자인과 디지털로 사회변화를 추구하던 디자인 전문회사 ‘슬로워크’와 IT전문회사 ‘유에프오팩토리(UFOfactory)’가 합병했다. 2005년에 문을 연 슬로워크와 2013년 창업한 유에프오팩토리는 소셜섹터 내 유사한 분야에서 활동하면서 경쟁보다는 ‘협력’을 선택했다. 소셜섹터에서는 흔치 않은 일이라 두 조직의 합병 소식에 분야 관계자들의 관심이 쏠렸다. 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조직이 합쳤을 때 나서는 어려움과 체계를 잡아가는 과정, 그리고 어떤 시너지를 낼 수 있느냐가 주 관심사였다. 합병 후 1년 2개월. ‘슬로워크’라는 이름으로 출발한 합병 조직은 출발 당시의 공동대표제에서 최근 권오현 단독 대표 체제로 바꾸고 성수동 헤이그라우드에서 시즌2를 준비 중이다. 권 대표를 만나 슬로워크의 지난 1년과 이후 과제에 대해 들어봤다.
 

권오현 슬로워크 대표. 슬로워크는 공동대표제에서 최근 1인 대표 체제로 전환했다.
- 합병 1년이 지났다. 당시 합병 계기를 복기해본다면.

▶슬로워크와 유에프오팩토리가 업무, 조직문화, 지향점 등이 유사하다고 생각했다. 합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면 업무 효과를 높이고, 좋은 인재 영입 등 더 많은 일이 가능하고 긍정적인 시너지가 일어날 거라 기대했다. 규모가 커지면 소셜섹터뿐 아니라 영리에서도 더 다양한 일을 할 수 있다는 기대도 있었다. 회사도 소셜섹터도 함께 강화될 거라는 기대를 갖고 합병을 결심했다.

- 합병 선언을 한 게 20165월이다. 20174월 합병하기까지 1여년에 걸쳐 사무실을 합치고, 화학적 결합을 추진해왔다고 들었다. 어떤 노력들이 있었나? 또한 그런 사전 과정이 실제 합병 후에 도움이 되었나.

▶ 각 기업별로 3~4개월 정도 시간을 갖고 준비한 후 10개월 정도 함께 사무실을 이용했다. 일단 물리적인 결합이 이뤄져야 화학적 결합도 자연스럽게 될 거라 생각했다. 합병에 대한 실질적인 준비는 합병TF팀에서 했다. 두 기업의 대표와 이사들이 참여해 합병 후 미션 정립 및 운영에 대한 구체적인 방향을 고민했다. 합병TF팀과 별개로 한쪽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개발 등 공동사업을 진행했다. 합병 발표 이전부터 유사한 일을 하다 보니 업무 의뢰가 동시에 들어오기도 한터라 공동사업은 생각보다 수월했다.

그나마 합병 전부터 이 같은 화학적 결합을 위한 노력을 했던 게 합병 후 구성원들 간의 이질감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 것 같다.

- 결론부터 물어보자. 처음 기대했던 규모화를 통한 시너지는 어느 정도 나고 있나.

▶ 눈에 보이는 시너지가 당장 나진 않았다. 조직을 성장시키기 전에 내부를 탄탄히 하는 작업이 중요하고, 아직 그 일에 집중하고 있다. 내년쯤 이 작업이 잘 마무리되면 성장 속도는 훨씬 빨라질 거라고 본다.
 

- 최근 합병 1년에 대한 소회를 담은 글을 웹사이트에 올리기도 했는데, 많은 변화가 있었을 것 같다.

▶ 처음부터 장밋빛 미래만 꿈꿨던 것은 아니지만, 솔직히 쉽지는 않은 시간이었다.(웃음) 작년 4월 공식 합병하고, 6월에 헤이그라운드로 사무실을 이전했다. 합병 당시 30명(슬로워크), 20명(유에프오팩토리)이던 인원이 합치면서 58명이 됐다. 제도의 통합, 팀제 도입, 새로운 미션과 비전 설정 등 필요한 단계를 하나씩 밟고 있다.

- 준비 과정이 있었고, 유사한 업무와 조직문화여서 상대적으로 수월한 부분도 있었겠지만, 서로 다른 성격의 조직이 합쳐지는 과정에 고비도 있었을 것 같다. 합병 후 가장 어려웠던 점은.

▶ 구성원의 변화 속도에 비해 조직의 변화 속도가 더뎠다. 아무래도 두 조직이 합쳐지다 보니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가 나오는데, 이러한 넓은 스팩트럼을 포용하기에 의사결정도 느리고 한계가 있었던 것 같다. 또한 기존 슬로워크가 가졌던 디자인 역량은 합병 후에도 잘 드러났지만, 유에프오팩토리가 만들어왔던 디지털 역량은 그에 비해 축소되었다는 문제의식도 있었다. 소셜섹터에서 독보적인 고객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합병 취지가 무색하게 고객들은 ‘슬로워크가 변했다’는 이야기를 자주 전했다. 회사를 떠나는 분들도 생기고, 온라인 채용 사이트에 뼈아픈 질책도 있었다. 지적 대부분이 경영진의 무능이었다. 공동대표 체제가 구성원들에게는 의사 결정의 비효율, 분산된 리더십으로 받아들여진 듯하다.

- 그래서 1인 대표 체제로 전환한 것인가.

▶ 두 조직이 많은 점에서 유사하다고 생각했지만, 막상 합병하고 보니 조직문화의 차이가 있었다. 물론 그럼에도 다른 곳보다는 결합에 어려움이 크지 않았다고 본다. 어느 한 조직이 다른 조직을 흡수하는 형태가 아니라 대등하게 결합하려다 보니 섞이는 과정이 오래 걸리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직을 좀 더 효율화해야겠다는 고민에 1인 대표 체제를 택했다. 슬로워크 창업자인 임의균 대표는 CCO(Chief Creative Officer)라는 새로운 역할을 맡고, 내가 대표를 맡았다. 하지만 대표가 절대적인 권한을 갖고 있지 않다는 점이 중요하다. 누가 대표가 되도 큰 영향을 끼칠 거라 생각하지 않는다.

- 어떤 점에서 그렇다고 보나.

▶ 주요 의사결정에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틀을 만들고, 그 과정을 공정하게 운영하고 있다. 슬로워크 내에서 중요한 사업 결정이나 이슈, 운영 등은 모두 ‘제로’(18여명의 팀장급 이상이 참여)라는 회의에서 결정한다. 대표나 몇몇 이사들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집단 논의 체계다. 회의 주기도 주 2회로 잡아 자주 소통한다. 합병을 준비했던 합병TF팀을 합병 후 ‘넥스트’(대표, 이사 등 6명 참여)라는 주요 의사결정기구로 전환해 운영했지만 직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폭넓게 담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판단에 내린 결정이다. 즉, ‘넥스트’의 역할은 줄이고 ‘제로’의 역할을 더 넓히되 서로 밀접한 관계로 운영된다고 보면 된다.
 

슬로워크는 합병 후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빠르게 의견수렴을 하고 주요한 의사결정에 반영한다.
- 합병 후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부분은 무엇인가.

▶ 갑자기 조직 규모가 커지면서 직원들의 불안감이 커졌다. 구성원들의 혼란을 최소화할 필요가 있었다. 조직을 신뢰할 수 있도록 안정감을 주는 일이 중요했다. 조직 성장에 맞는 체계를 만들고 투명한 운영에 집중한 이유다. 그 기반 위에서 구성원들이 잘 협력할 수 있도록 커뮤니티를 회복하는 작업에 힘썼다. 이제 1년이 지났고 아직도 극복해가는 중이다.

- 구체적으로 체계를 만드는 과정을 어떻게 밟아가고 있는지 궁금하다.

▶ 진행 중인 ‘운영 가이드 정리’가 그 중심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 회사가 어떤 곳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미션과 미래를 지도 형태로 그려보는 거다. 일명 ‘슬로워크 지도’다. 슬로워크의 미션, 비전뿐 아니라 업무, 조직 운영 등을 시각적으로 한 눈에 보고도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고 있다. 또한 구성원들이 업무 도구로 쓸 수 있는 ‘슬로워크 라이프 핸드북’도 제작 중이다. 신입 직원이 조직에 대해 가장 빨리, 가장 포괄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도구이자 구성원 전체가 회사 생활에 관한 팁을 직접 참여해 정리하고 공유하는 확장성 있는 가이드 문서라 보면 된다.

내부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노력으로는 앞서 얘기한 팀장급 이상이 참여하는 ‘제로’의 활성화를 위해 온라인 폴랫폼인 빠띠(https://parti.xyz)를 통해 내부 의견들을 지속적으로 수렴하고 빠르게 운영에 반영하려고 한다. 운영에서의 고민과 방향 등을 대표가 직접 ‘항해일지’라는 이름으로 작성해 빠띠를 통해 구성원들과 공유하기도 한다.

- 합병 경험을 한 기업 대표로서 소셜 섹터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 앞서도 얘기했지만 두 조직이 합치면서 생기는 혼란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럼에도 제일 중요한 건 당장의 성장, 이익보다는 구성원들이 합의하는 규칙들을 탄탄하게 세워나가는 일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고 힘들더라도 빨리 가는 것보다 구성원들과 발을 맞춰 차근차근 가는 게 중요하다.

- 앞으로 더 많은 과제가 있을 듯하다. 이후 계획은.

▶ 우리가 합병을 선택한 이유는 소셜 섹터를 뛰어넘는 영향력을 갖기 위해서다. 우리의 미션인 '조직과 사회를 변화시키는 창의적인 솔루션과 이를 지향하는 사람들의 네트워크 확대’는 여전히 중요하다. 이를 실현하기 위해 디지털·디자인·소셜이라는 세 가지 조직의 정체성은 앞으로 더 강화될 것이다.

합병 이후 잘 드러나지 않는다고 지적받은 디지털 역량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막 걸음을 뗀 소셜벤처 및 비영리단체의 디지털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을 넘어 전반적인 디지털 전략을 강화하는 솔루션을 제시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사회를 직접 혁신하거나 사회혁신에 기여하는 기술도 포함된다. 팀과 커뮤니티를 위한 민주주의 플랫폼 ‘빠띠’ 운영을 비롯해, 최근 시작한 ‘오렌지 레터’가 대표적이다. 소셜섹터의 소식을 모아서 전하는 이메일레터에 벌써 1,300여명 이상이 신청했다. 최근에 예비사회적기업으로 지정받았다. 소셜 섹터를 넘어 다양한 영역에서 우리만의 방식으로 임팩트 있는 작업들을 해나갈 계획이다. 앞으로도 많은 관심을 가지고 지켜봐 달라.
 

슬로워크는 최근 소셜섹터의 소식을 모아서 전하는 이메일레터인 '오렌지레터'를 시작했다.
인터뷰 말미 슬로워크 한 직원에게 ‘합병 후 어떤 점이 가장 좋으냐’고 물었다. 그는 ‘자율성’과 ‘모두가 참여하는 의사 결정 구조’를 꼽았다. 그는 “팀 운영에서도 자율적이다. 팀 이름도 우리가 마음대로 짓고, 팀 운영의 원칙도 우리 스스로 세워나갈 수 있다. 출퇴근이나 휴가 사용에 있어서도 자유롭다. 따로 상한선이 없고 스스로 결정하는 구조다. 누가 시켜서 일하는 조직이 아니고, 모두가 참여하는 의사 결정 구조가 있다는 게 마음에 든다.”고 말했다.

 

사진제공. 슬로워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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