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노동기구(ILO)가 2023년까지 ‘한-ILO 협력사업’ 일환으로 한국 협동조합의 통계를 낸다. 협동조합 수부터 자산 및 부채, 노동자 소득 등 전반 수치를 다루는 대대적인 작업이다. 이미 기획재정부가 국내 기본법 협동조합 실태조사를 하고 있지만, 이번 시범사업은 특별법에 근거한 협동조합까지 ‘모두’가 대상이라는 게 시사점이다. 특히, ILO가 이번 사업 결과물 등을 토대로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협동조합 통계조사 표준을 만들고 각국에 확산시켜나갈 계획이어서 주목된다.

지난달 3일 열린 ‘2021 대한민국 사회적경제 박람회’에서 최동일 ILO 협동조합분과 스페셜리스트(기재부 과장)는 ILO 차원에서 한국의 협동조합 현황을 통계화한다는 소식을 전했다. 전례가 없는 시범사업이며, 한국 외에도 4개국이 참여한다.

왜 한국이 시범사업 국가로 선정됐을까? 사업 결과물은 국제적으로 어떤 의미가 있는지, 한국에 미칠 영향은 뭔지 듣기 위해 최동일 과장에게 인터뷰 요청을 했다. 지난달 21일, 스위스 제네바로 출국을 나흘 앞둔 최동일 과장을 경복궁역 인근에서 만났다.

최동일 과장은 본래 기획재정부 소속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당시, 정책조정국에서 일하며 법 제정과 시행 준비 과정에 함께 했다. 이후 국토교통예산과, 혁신성장추진기획단 등을 거쳐 지난 4월 ILO 협동조합분과(Cooperatives Unit)로 파견됐다. 2024년 4월까지 있을 예정이다.
최동일 과장은 본래 기획재정부 소속이다. 2012년 협동조합기본법 제정 당시, 정책조정국에서 일하며 법 제정과 시행 준비 과정에 함께 했다. 이후 국토교통예산과, 혁신성장추진기획단 등을 거쳐 지난 4월 ILO 협동조합분과(Cooperatives Unit)로 파견됐다. 2024년 4월까지 있을 예정이다.

협동조합의 긍정적 가치 정량화할 기회

ILO는 노동 문제를 다루는 유엔(UN)의 전문기구다. 설립 이듬해인 1920년부터 협동조합분과를 따로 두고 있다. ILO는 1인 1표 제도를 가진 ‘협동조합’이라는 조직형태의 중요성을 전 세계에 인식시키기 위해 조직 내 분과를 따로 설치하고 협동조합 발전을 지원해왔다.

이번 시범사업이 계획된 건 협동조합 관련 통계를 세계적 수준에서 모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돼서다. 최 과장은 “협동조합이 노동시장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모니터링하고, 국제표준에 맞는 통계 생산에 기여한다는 게 이번 시범사업의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동안 협동조합이 창출하는 사회적 가치를 이야기해왔지만 눈에 보이는 수치로 증명하지는 못했던 게 현실이다.

ILO는 기업부서(Enterprises Department) 내 협동조합분과(Cooperatives Unit)를 설치해 운영한다. / 출처=ILO 홈페이지
ILO는 기업부서(Enterprises Department) 내 협동조합분과(Cooperatives Unit)를 설치해 운영한다. / 출처=ILO 홈페이지

유엔이 2012년을 협동조합의 해로 지정하면서, 협동조합 통계를 생산할 필요성이 본격적으로 논의됐다. 국가별로 협동조합 통계를 내고 있지만, 수집하는 내용도, 기준도 다르다. 모아서 통일된 자료로 만들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이듬해 열린 ILO의 제19차 국제노동통계회의에서 ‘협동조합 통계에 대한 추가적 작업 관련 결의안’이, 2018년에는 제20차 국제노동통계회의에서 ‘협동조합 통계 가이드라인’이 채택됐다. 이 가이드라인을 바탕으로 5개 국가가 시범사업을 한다.

가이드라인은 총 42개 항으로 이뤄져 있다. 각 항에서 가이드라인의 목적과 역할, 협동조합의 유형별 정의, 통계 단위, 수집해야 할 정보 등을 명시한다. 최 과장은 “곧 ILO 차원에서 42개 항을 하나씩 풀어 설명하는 ‘인포 가이드’ 작성 작업을 실시할 것”이라고 전했다.

부처 아우르는 협동조합 통계 수집, 국내 정착할 수 있을까

5개국은 한국(아시아)을 포함해 이탈리아(유럽), 터키(중동), 탄자니아(아프리카), 코스타리카(남아메리카)다. 대륙별 안배를 고려해 ILO가 선정했다. 최 과장은 “협동조합 정책에 대한 정부 의지나 통계 기반이 어느 정도 갖춰진 국가를 중심으로 선정한 거로 알고 있다”고 전했다.

시범사업은 지난 5월 고용노동부와 ILO가 체결한 ‘한-ILO 협력사업’의 한 부분으로 진행된다. 한-ILO 협력사업은 우리나라가 연간 130만 달러를 ILO에 지원해 추진하는 개발협력사업이다. 주로 동남아시아(ASEAN) 국가의 고용노동 제도개선 및 근로여건 개선 등을 목적으로 한다. 협동조합 통계 조사는 협력사업 중에서도 ‘사회연대경제 지식기반 강화(Strengthening the SSE Knowledge Base)’ 사업의 일환으로 진행된다.

3개년 단위로 추진 중인 한-ILO 협력사업 세부 내역. 한국 협동조합 통계 조사는 '사회연대경제 지식기반 강화' 사업의 한 부분이다./출처=고용노동부 보도자료
3개년 단위로 추진 중인 한-ILO 협력사업 세부 내역. 한국 협동조합 통계 조사는 '사회연대경제 지식기반 강화' 사업의 한 부분이다./출처=고용노동부 보도자료

기본법 협동조합만 해도 2만개가 넘는다. 방대한 자료를 어떻게 모은다는 걸까. 최 과장은 기존 행정 통계를 최대한 활용한다고 답했다. 그는 “외부에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기재부와 통계청이 2016~2017년을 기준으로 기본법과 개별법 협동조합 전체에 관한 통계를 낸 적이 있다”며 해당 통계를 8~9월 중 공유받을 예정이라고 전했다. 국내에서는 안주엽 한국노동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을 포함해 통계청·기재부·ILO 관계자 등이 실무그룹을 결성해 자료 취합 작업을 할 예정이다. 어떤 틀로 작업했는지 보고, ILO의 가이드라인과 부합하는지 검토한다. 최 과장은 “기재부 등 협동조합 소관 부처 및 관련 기관, 통계청 등과의 유기적인 협업이 시범사업 성공의 필수 조건”이라고 덧붙였다.

이번 조사는 2023년에 끝난다. 그 해 열릴 제21차 국제노동통계회의에서 5개국의 시범사업 결과를 갖고 논의할 예정이다. 2018년에 채택한 협동조합 통계 가이드라인에서 수정해야 할 사항은 없는지, 조사 과정에 어떤 인프라가 필요한지 등을 정리한다. 궁극적으로는 제22차 국제노동통계회의가 열릴 2028년까지 이 가이드라인을 매뉴얼로 만들어 각국에 제공하는 게 목표다. 각국에서 ILO가 만든 기준을 따라 통계를 수집하면 좀 더 정확하게 현황을 파악할 수 있다.

한국에 주는 의미는 뭘까. 최 과장은 “이번 시범사업의 결과물을 근거로 해서, 우리나라 자체적으로 협동조합 통합 조사를 해보자는 논의를 유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국에서는 기본법 협동조합과 개별법 협동조합의 소관 부처가 모두 달라 자체적인 통합 조사는 어렵다. 따라서 ILO의 시범사업이 ‘넛지’ 효과를 낼 거라는 기대다. 최 과장은 “주기적인 통합 조사가 가능해진다면, 협동조합에 관한 바람직한 정책 방향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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