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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가구 시장은 일명 ‘패스트 퍼니처(fast furniture)’가 장악하고 있다. 패스트 퍼니처는 DIY(소비자가 원하는 물건을 직접 만들 수 있도록 한 상품) 방식으로, 간편하고 저렴하게 이용할 수 있는 가구를 통칭한다. 이러한 특징 덕에 많은 사람이 찾고 있지만 아쉬운 점도 있다. 바로 쓰레기 배출 문제다. 보통 2~3년이며 길어야 4~5년인 수명 때문에 패스트 퍼니처는 결국 집 앞에 버려진다. 가구 회사 입장에서는 이러한 쓰레기 배출이 나쁘지만은 않다. 소비자들이 다시 가구를 사러 매장에 들어오고, 매출과 수익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서울 강동구에 있는 백길창작소는 이러한 트렌드의 정반대 편에 서 있다. ‘반려가구’라는 고유의 정체성을 내세운다. ‘반려가구’라는 단어의 저작권자로 자신을 소개한 우선택 백길창작소 대표는 가구도 반려 문화의 하나로 인식됐으면 하는 바람을 전했다.

반려가구 치료하는 '가구병원' 숙명

“반려견, 반려묘 모두가 나와 함께 늙어가는 생명체잖아요. 저는 가구도 그렇게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손만 뻗으면 닿을 수 있는 거리에서 평생을 나와 함께 할 수 있는 존재. 긁히면 긁히는 대로, 찢기면 찢기는 대로 그것을 내 추억으로 간직할 수 있는 존재. 그게 바로 백길창작소가 소개하는 반려가구입니다.”

백길창작소는 다양한 가구를 다룬다. 물리적 또는 공간적 한계로 인해 작업실로 가지고 올 수 없는 큰 가구는 제외하고, 가구 대부분은 고칠 수 있다. 심지어 명목상 수리지만, 해체 후 다시 제작해야 하는 가구들도 있다. 버릴 수 없어서 찾아온 반려가구를 치료하는 가구병원, 백길창작소의 숙명이다.

“어느 날, 한 분이 지금 당장 버려도 이상하지 않을 낡은 의자를 가지고 오셨어요. 친정어머니가 쓰시던 거라서 버릴 수가 없었대요. 어떡해요. 일주일 동안 다 분리해서 다시 만들어드렸죠.”

백길 공구세트./사진=백길창작소
백길 공구세트./사진=백길창작소

직접 만들어야 오래 쓴다

백길창작소는 작년에 이어 올해도 주민기술학교를 준비 중이다. 서울시에서 지원하는 사업으로 시민 5명에게 목공교육을 한다. 교육은 무료다. 우 대표는 강동구 주민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하고자 했다.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는 만큼 지역에 환원하고 싶었고, 반려가구 문화는 결국 지역에 뿌리내려야 꽃피울 수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반려가구 문화의 시작은 결국 필요한 것을 스스로 만드는 데서 시작합니다. 오래 쓸 수 있는 가구는 좋은 가구인데, 좋은 가구들은 비싸죠. 그러니 사서 쓰기 비싸면 직접 만들자는 겁니다. 그리고 직접 만들면 쉽게 못 버려요.”

그렇게 백길창작소는 ‘로컬 퍼니처(local furniture)’라는 씨앗을 심고 있다. 로컬 퍼니처란 가까운 지역에서 지역주민들이 직접 그리고 함께 만드는 가구를 말한다. 그래서 로컬 퍼니처는 가구 제작 및 수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거리가 가까워 AS도 간편하다. 우 대표가 로컬 퍼니처를 가리켜 ‘반려가구의 인적·물적 기반’이라고 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백길창작소의 여러 가지 작품들./사진=백길창작소
백길창작소의 여러 가지 작품들./사진=백길창작소

가구를 직접 만들어서 오래 쓰면 소비자는 추억도 간직하고 돈도 절약한다. 가구를 만들어 팔아야 하는 우 대표에게는 마냥 웃을 수 있는 일은 아닐 터. 우리 환경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하다가 정작 백길창작소의 지속가능성이 위협받는 것 아니냐는 질문에 우 대표가 웃으며 답했다.

“코로나19 때문에 잠시 주춤하지만, 사실 백길창작소의 주요 비즈니스 모델은 반려가구 문화 확산과 교육 사업입니다. 지금은 단체로 모이기가 쉽지 않아서 가구 제작과 판매로 운영 수입을 충당하지만, 코로나19가 잠잠해지면 다시 시작하려고요.”

백길창작소의 LED 전등./사진=백길창작소
백길창작소의 LED 전등./사진=백길창작소

백길창작소는 원데이 클래스와 기초 목공교육, 전문가 과정의 3가지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원데이 클래스는 3~5시간짜리 교육으로 도마나 LED 전등, 블루투스 스피커 같은 비교적 간단한 가구를 만들 수 있다. 기초 목공교육은 6회 수업이다.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원데이 클래스와 달리 일대일 방식으로 이루어지며 전동드릴과 공구, 3D 프로그램 사용법을 배울 수 있다. 전문가 교육과정은 30회 수업으로 백길창작소의 모든 기계를 다룰 수 있다. 1회에 4~5시간이 소요되며 일대일 방식으로 진행된다. 전문가 과정을 마치면 백길창작소에서 만드는 대부분의 목공 작품들을 다 만들 수 있다.

백길창작소의 캠핑체어./사진=백길창작소
백길창작소의 캠핑체어./사진=백길창작소

백길창작소의 조합원들은 20% 할인된 가격으로 교육을 받을 수 있다. 교육 수료 후 이용료 1만원만 내면 백길창작소의 공간과 공구도 자유롭게 쓸 수 있다. 조합원이 되는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백길창작소는 서울시 소재지만, 경기도민도 조합원으로 가입해 목공교육을 받고 백길창작소를 이용할 수 있다.

십시일반해 마을 관리하는 기업 꿈꿔

백길창작소는 교육 사업 외에 다른 계획도 준비 중이다. 일명 ‘마을 관리 기업’이다. 우 대표가 강북구 삼양동에 있는 마을 관리소 이야기를 꺼낸다.

“아파트에는 관리사무소가 있지만, 일반주택에는 없잖아요. 근데 강북구 삼양동에는 일반주택을 관리해주는 관리사무소가 있어요. 노후주택이 많으니까 워낙 자잘한 게 많이 필요해요. 가령 문고리 교체, 형광등 교체, 방충망 교체 같은 거요. 저희처럼 지역 기반 목공소에서 다 해결할 수 있는 일이죠.”

백길창작소도 그렇게 강동구 암사동 일대의 마을 관리소로 거듭나고 싶다는 계획을 밝혔다. 현재 강동구와 함께 돌봄 SOS 센터 사업을 진행 중이다. 저소득가구나 장애인 가정에 방문해 화장실 턱이 높은 곳에 발판을 설치했다. 지금이야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사업하고 있지만, 우 대표는 지역주민이 주인이 돼 마을을 관리하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제 생각은 이래요. 노후주택에 살고 계신 분들이 조합을 만들어서 한 달에 일정 회비를 내고 운영하는 겁니다. 필요하면 가까운 곳에 있는 저희가 바로 달려가서 전등이나 수도꼭지를 교체하고, 다른 인테리어 업체들과 협업해 방수작업도 하는 거죠. 수익이 발생하면 그 일부를 조합에 가입하기 어려운 분들을 위해 사용하는, 그런 지역 관리 기업이 되고 싶어요.”

기술자와 주민이 함께 하는 협동조합...비빌 언덕 돼주는 조합원

우 대표가 꿈꾸는 마을 관리 기업은 협동조합에 기반을 둔다. 백길창작소 같은 다양한 기술자들이 함께 참여하는 것은 물론이고, 지역주민이 조합원으로서 주인의 권리를 행사하는, 능동적 형태를 지향한다. 보통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의사결정이 복잡해지는 걸 원하지 않는다. 하지만 우 대표는 정반대다. 오히려 개인사업을 운영하면서 ‘이게 맞나’ 싶었던 고민이 협동조합을 운영하면서 많이 해소됐다고 말한다. 토론하고 논의하는 과정을 거쳐 비교적 안정적인 의사결정이 가능해졌다.

조합원들은 비빌 언덕이 돼 주기도 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면 어떻게 알았는지 먼저 전화해서 걱정해주고 선주문도 넣어줘요. 또 어디 인테리어 공사가 있으면 ‘우리도 참여해보자’며 격려해주죠. 조합원 모두 한마음 한뜻입니다. 그래서 ‘나 백길 영업사원이지 뭐’라고 말씀하시는 분들도 계세요.”

그래서 우 대표는 협동조합의 문턱이 높아지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는다. 물론 조합의 설립 취지를 훼손하는 사람들이 들어오면 어쩌나 하고 걱정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조합을 폐쇄적으로 운영할 생각은 없다. 우 대표는 오히려 새로운 사람들이 참여를 주저해 조합의 역동성이 떨어지는 게 더 두렵다. 그래서 조합원 가입 문턱을 낮추고 조합 활동도 투명하게 공유하고 있다.

낮은 문턱이 가져다주는 개방성과 활발한 참여는 백길창작소로 하여금 목공소 이상의 무한한 가능성을 꿈꾸게 한다. 다양한 전공과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어우러지면 백길창작소가 할 수 있는 일은 그만큼 많아진다. 플리마켓을 열 수 있고, 조합원이 모여 자원봉사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연대와 협력이 자연스럽게 태동하는 순간이다. 우 대표는 연대와 협력이 가능하려면 일단 재밌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렇다. 단순하고 단조로운 포맷은 재미있기 어렵다. 그런 측면에서 우 대표와 백길창작소가 지향하는 문턱 없는 공방과 협동조합은 너무나도 매력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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