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운드키친7이요? 아, 그 반찬 카페? 우리 노인네들은 그렇게 부른 다우.”

삼선교 달동네에 사는 박연자(77.가명)할머니는 매주 목요일마다 ‘라운드키친7’에 들른다. 갈 때마다 그곳에선 5-6가지의 반찬을 챙겨준다. 오늘은 무슨 반찬일까 궁금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살갑게 맞아주는 청년들을 보면 마음까지 밝아진다. 어느덧 1년째. 박 할머니의 목요일은 그래서 특별나다.

‘라운드키친 7’은 성북구 삼선교로 24길 22에 위치해있다.

 

 

“반찬이 얼마나 고급 진지 몰라요. 재고를 주는 게 아니라 거기서 파는 것과 똑같은 걸 챙겨준다니까. 나야 공짜로 받지만 뭔가 대접받는 느낌이랄까... 정말이지 눈물 나도록 고맙답니다.”

혼자 지내는 박 할머니는 20년 전 수술 후유증으로 몸이 성치 못해 그간 장을 본다는 건 엄두도 못 냈다.

“ 예전엔 그냥 대충 먹고살았지... 이런 가게가 있다는 게 혼자 사는 노인들에겐 얼마나 고마운 존재인지 몰라.”

라운드키친 7은 사회적기업 ‘트리플제이앤파트너스’가 운영하는 가정식 반찬 플랫폼이다. 엄마의 손맛으로 만들어진 가정식 반찬을 온·오프라인으로 판매한다.

라운드키친 7은 엄마의 손맛을 느낄 수 있는 가정식 반찬 200여 가지가 구비돼있다.

사회적기업답게 지역 자치단체와 굿네이버스, 서울공동모금회 등과 함께 독거어르신들이나 학대 피해 아동들에게 정이 담긴 먹거리를 무상으로 제공하고 있다. 창업 3년 차. 경쟁이 치열한 반찬 업계에서 날로 성장해 가는 라운드키친7에는 남다른 점 3가지가 있다.

라운드키친7의 반찬 중에는 이름을 내건 제품이 많다. 변성강 할머니 김치, 이옥자 할머니 멸치볶음, 김영옥 어머니가 만든 향 깊은 마늘절임 같은 식이다. ‘열린 부엌’이란 모토 아래 집안에 숨어있는 고수들의 레시피를 공모한 결과이다.

라운드키친7 매장은 플래그숍 형태로 제품에 대한 고객들의 반응을 점검하는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유명 셰프의 세련된 맛을 추구하기보다는 투박할지라도 집밥의 건강함과 푸근함이 담긴 반찬들을 선호한다. 총 200여 종의 반찬 중 그렇게 모은 메뉴가 40여 개가 넘는다.

응모 방법은 쉽다. 홈페이지에 올리면 되는데 쑥스러움이 많은 동네 할머니들은 ‘이것 한 번 먹어봐. 기막히게 맛있는데 만들기도 쉬워’라며 슬쩍 들이밀기도 한다.

박준형 트리플제이앤파트너스 대표

 

 

“ 응모작 중 저희 반찬 라인에 빠져 있거나 특이하다고 생각되면 ‘가져오세요’라고 합니다. 저희가 맛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시연을 부탁드립니다. 이분이 직접 하신 건지 혹은 저희가 금기시하는 식재료를 쓰는 건 아닌지 확인하는 거죠. 이를 계량화해 재현이 가능하면 제품화하고 계약을 합니다. 안착될 때까지 모니터링을 해주시는데 제품화하기까지 약 한 달이 소요됩니다.” - 박준형 트리플제이앤파트너스 대표

이들 반찬이 판매되면 수익의 일정액을 레시피를 제공한 사람에게 러닝로열티(Running Royalty: 일정한 비율과 산정기준에 의해 기술에 대한 이용료를 주기적으로 지급)를 지급한다.

로열티 등급을 결정짓는 요소는 여럿이지만 특히 사회적 임팩트를 중요하게 여긴다. 레시피 제공자가 취약계층이거나 특정단체에 기부를 하고자 하는 경우 등으로 최고 등급에 오르면 최대 5년까지 월 150만 원을 가져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어져있다.

매일 아침 7시. 박 대표는 밤사이 접수된 주문량을 점검한다. 많을 때는 하루 200건이 넘는다. 오전 7시 반부터 조리를 시작해 오후 4시쯤 끝나면 포장과 배송이 이뤄진다. 전국을 대상으로 배송이 가능하며 서울과 수도권 지역은 새벽 배송도 가능하다.

 

신선함과 풍미가 살아있는 가정식 반찬들

 

 

“주문 후 조리에 들어가기 때문에 신선하고 소량 생산이 원칙이라 풍미가 살아있습니다. 국내산 최고급 재료에 MSG를 안 쓰고 천연조미료로 맛을 내지요. 건강한 맛을 지키기 위해 화학적인 것은 넣지 않습니다. ”

이 같은 남다른 점으로 입점이 까다롭기로 소문난 백화점과 유명 플랫폼에 독점 입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지난 설에는 롯데백화점과 설 한상차림 특별전으로 인기를 모았고, 카카오톡 선물하기에 입점한 특별 반찬세트는 홀로 계신 부모님들과 자취하는 친구들을 위한 선물로 인기가 높다.

라운드키친7은 2주 전부터 맞춤형 정기배송 서비스를 시작했다. 회원제로 운영되는데 고객의 취향에 딱 맞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점이 남다르다.

 

서울과 수도권에 거주하는 1인 가구와 맞벌이 가구 사이에는 새벽 배송이 인기다.

 

 

“ 맞춤형 컨시어지서비스는 수요자 중심의 서비스입니다. 먼저 상담을 통해 싫어하는 식재료가 있는지 혹은 어떤 식재료를 더 선호하는지 등을 조사합니다. 만일 해산물을 싫어한다면 이를 뺀 식단을 짜드리는 거죠. 이 밖에 국과 반찬의 구성비·배송 금액·회수·원하는 요일 등 고객의 요구 사항을 세심하게 반영합니다.”

이에 근거해 식단을 구성하고 배송 후에는 고객의 의견을 청취해 반영한다. 아직 2주차에 불과하지만 만족도가 매우 높아 매일 새로운 회원 고객이 늘어나는 추세이다.

라운드키친7은 2016년부터 독거노인 생활 안정화를 위해 ‘함께살이성북사회적협동조합’이 수행하고 있는 지역에 기반을 둔 통합 돌봄 시스템에서 먹거리 분야를 담당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에 눈을 떴다. 취약계층일수록 지병이 많아 개인별 건강 상태를 고려한 맞춤형 식사가 필요하다는 점이다. 끼니를 때우는 차원이 아니라 생존을 위해 꼭 필요한 것들이다.

박 대표는 이들에게 건강한 밥상을 제공하기 위해 카카오 같이가치팀과 협업해 모금 페이지를 개설했다. 오는 8월 말까지 진행된다.

같이가치 모금함 사진 캡처

 

 

“화마의 흔적이 남은 얼굴과 얽어진 손. 가스폭발로 큰 화상을 입은 정인숙 씨는 안면 지체 장애 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화상으로 약해진 인숙 씨의 손은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지기 쉬워요. 경제 활동은 물론 식재료를 썰거나 다듬는 ‘요리'조차 버거운 일이에요.”- 카카오 같이가치 모금 페이지 중에서

이 프로젝트는 먼저 대한의료사회복지사협회가 질병의 심각성, 가정 형편을 고려해 10가구를 선정한다. 라운드키친7은 전문가들의 자문을 받아 질병에 맞는 식단을 짜서 6개월 동안 매주 8-9가지의 반찬을 만들어 보내주는 형식이다. 박 대표는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반찬 지원 사업을 하고 있지만 한계가 많다고 지적한다.

“ 지자체에서는 저소득층 어르신들을 위해 1인당 3000~4000원 정도의 급식을 지원하고 있지만 낮은 단가로 인해 중증 환자들에게 맞지 않는 음식이 전달되기도 합니다. 위암 환자에게 맵고 짠 반찬이, 혈당 조절이 필요한 당뇨 환자에게 당이 높은 반찬이 전해지는 거죠.”

 

박준형 대표는 사회적기업가 육성과정 5기를 거쳐 사회적 경제에 뛰어들었다. 화학공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서 10년 동안 회사원으로 지냈다.

반찬의 보관상태를 점검하고 있는 박 대표.

“내가 주도하는 삶을 살고 싶었어요. 늘 회사에서 정해주는 프로젝트를 디자인하고 실험하는 삶은 내 색깔을 그리고 있지 않으니까요. 저는 기업가로 성공하고 싶었고 그 후엔 사회 공헌을 하는 것이 꿈이었는데 사회적기업은 그 두 가지를 동시에 이룰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MBA 과정을 거치며 외부 역량을 활용하는 방안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삼았고 ‘반찬이 딱’이라고 생각했다. 취약계층도 경험만 있다면 할 수 있고 시장도 점점 성장하는 추세이기 때문이다.

집밥 그대로 어머니들의 가정식 레시피로 만들다 보니 직원 12명 가운데 조리하는 직원 9명의 평균 연령대는 60대이다. 그에 비해 상담과 포장, 배송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들의 나이는 30대. 무려 30년의 세대차가 나지만 가족 같은 분위기 덕에 훈훈한 바람이 분다.

어머니뻘 되는 60대 직원들과 함께 일하는 청년들

 

 

“ 동료이기에 앞서 어머니 같은 분들입니다.”

“ 그 분들 빼고 나면 모두 남자들이라 삭막한데 훈훈한 분위기를 연출해주시죠.” - 30대 직원

“ 가족이라 생각해요. 가족이라면 불화가 있어도 금방 풀리고 품어줄 수 있지요. 이렇게 사회에서 매일 젊은이들을 만나니 뭔가 앞서가고 세련되진 느낌이 들어요.” - 이숙희(60)

박 대표는 라운드키친 7이 저마다의 꿈을 이뤄가는 플랫폼으로 성장했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전했다.

“저희 회사는 65세 정년 이런 것 없습니다. 무덤까지 가는 거죠. 늦게 하면 늦게 하시는 데로 체력이 부치면 연구개발직으로 돌려드릴 계획입니다. 저도 꿈을 이루기 위해 창업을 했듯이 함께하는 직원들도 자신의 색깔에 맞는 꿈을 이뤄갈 수 있도록 돕고 싶어요. 한번 밖에 없는 인생이잖아요.“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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