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적 위치에서 3년 동안 일했습니다. 퇴임하면 다시 현장으로 돌아가서 자유롭게 지내고 싶어요. 특히 지역을 좀 살펴보고 싶네요. 일단 좀 쉬려고요.(웃음)”

제4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임기가 8일 끝났다. 김인선 전 원장은 ‘현장 출신 공공기관장’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지난 3년간 문재인 정부의 사회적경제 활성화 길을 함께 걸었다. 퇴임 전날인 7일, 서울 중구에서 그를 만나 퇴임 소회를 들었다. 취임 후 첫 인터뷰 때처럼 그의 곁에는 별도 답지가 없었다. 이번에는 사전 질의서도 없었다.

김 전 원장은 취임 때부터 ‘현장, 지역, 거버넌스’라는 핵심 키워드를 꾸준히 강조해왔다. 사회적경제는 민간이 주도하고, 지역이 중심이고, 중앙이 뒷받침한다는 의미다. 김 전 원장은 “현장이 중요하다는 이야기를 계속 듣다 보니 머릿속에 입력될 뿐만 아니라 몸도 그렇게 행동하도록 바뀌는 것 같다”는 직원의 이야기를 들었을 때 뿌듯했다고도 전했다.

3가지 키워드는 퇴임 후에도 안고 갈 예정이다. 기관장 지위를 벗으면 무엇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그는 “지역에 깊이 뿌리내린 사회적경제 공동체 사례를 들여다보고 싶다”고 답했다. 현장에 직접 방문해 공동체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거버넌스는 어떻게 이뤄져 있는지 확인하고 싶다고.

현장과 정부를 잇는 다리 역할을 자처했던 그. 실제로도 “진흥원이 현장 의견을 많이 듣는 방향으로 바뀌었다”는 외부 피드백을 많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래도 공공기관인데, 너무 현장 편을 드는 것 같아 조직 내부에서 섭섭한 기색은 없었을까. 김 전 원장은 고개를 저었다.

“지원조직이잖아요. 현장의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만든 조직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어요. 행정처리 때문에 신경을 덜 쓸 수는 있지만, 그 자체를 틀렸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죠.”

직원들의 사회적 가치 지향성이 크기 때문에 일반 공공기관의 종사자와는 분명히 다르다는 점도 짚었다. 그는 “특히 지금 조직 내 허리 역할을 하는 과장, 차장급은 창업가 정신을 갖고 출범과 함께한 사람들”이라며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위해 공적 소명을 다해야 한다는 미션에 충실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정책당국과 현장을 연결하는 입장에서 새로운 사업 개발이 필요했는데, 각 부처가 내려주는 사업을 중심으로 실행해야 했던 구조적 한계가 있었다고 인정했다.

7월 8일 임기 만료로 제4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자리를 내려놓은 김인선 전 원장. 그는 과거 사회적기업 (주)우리가 만드는 미래 대표이사와 (사)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를 거쳐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대표와 일자리위원회 사회적경제전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제공=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7월 8일 임기 만료로 제4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장 자리를 내려놓은 김인선 전 원장. 그는 과거 사회적기업 (주)우리가 만드는 미래 대표이사와 (사)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상임대표를 거쳐 서울시 동부여성발전센터 대표와 일자리위원회 사회적경제전문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 제공=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임기 중 성과로 뽑을만한 시도로는 ‘규모화 지원사업’을 언급했다. 개별기업을 넘은 ‘업종’에 힘을 실어 확장성 있는 모델을 만드는 사업이다. 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예비창업팀’ 트랙을 신설한 것을 꼽았다. 기존 육성사업에서는 ‘창업’ 혹은 ‘예비사회적기업 인증’이 성과 지표다. 그래서 대부분 연내 창업할만한 역량을 지닌 팀을 선발했다. 예비창업팀 제도는 그보다 더 전 단계에 있는 팀을 키워주자는 취지로 나왔다. 김 전 원장은 “특히 지역에 필요한 방식이라 판단했다”며 “창업 자체가 아니라, 창업기초 역량을 지원하기 위한 별도 트랙”이라고 설명했다.

김 전 원장은 바이소셜 캠페인을 국내에 들여온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2018년 열린 사회적기업 월드포럼(SEWF)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국내 도입을 추진했고, 정부가 아닌 시민이 주도하는 캠페인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끊임없이 강조했다. 가치소비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확산한 것 같냐는 질문에 그는 “대국민 캠페인이라 정확히 알기는 어렵다”면서도 “바이소셜 캠페인에 동참하려는 기관이 점점 많아졌던 게 간접 지표”라고 답했다.

임기 내 사회적경제기본법 제정과 사회적기업 등록제 변경을 달성하지 못한 건 아쉬운 점으로 꼽았다. 고용노동부와 함께 만든 사회적가치지표(SVI)가 정책이나 제도 개선으로 연결되지 못했던 점도. "사회적기업이 인증 이후에도 사회적가치를 중심으로 기업활동을 하고 있는지 전반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하는데, 아직 그 시스템이 없다"고 부연했다.

지난해 진흥원에는 국정감사 이슈도 있었다. 당시 임이자 국민의힘 의원이 일감 몰아주기로 진흥원에 문제를 제기했다. 김 전 원장은 “노동운동가이자 정치인으로서 임 의원의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사회적경제 생태계에 대한 이해가 필요한 부분이라, 설명을 위해 여러 번 연락했지만 만날 수 없었다”고 아쉬워했다.

퇴임 후 김 전 원장은 사회적경제 지역 현장으로 돌아간다. 그는 “사회적경제의 효과는 더 이상 논리와 정당성, 당위성 만으로는 설득할 수 없다”며 “논의가 중앙이 아닌 지역을 향하려면 실질 모델로 입증해야 하고, 나는 당분간 그런 공동체와 거버넌스가 존재하는 곳들을 찾아다닐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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