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 활동은 기존 법과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일 때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경제 분야에 특화된 법률 전문가가 있다는 건 큰 힘이 된다. 현행 법체계 안에서 사회적경제기업이 겪는 어려움을 함께 고민하고, 바람직한 법제도 개선 방향을 자문하는 법무법인 '더함'의 변호사들. <이로운넷>은 이들 개개인을 조명하는 연속 인터뷰를 기획했다.

“사회적경제 영역의 매력은 예전부터도 느끼고 있었어요. 아름다운가게나 열린옷장 같은 사례로 어렴풋하게 말이죠. 다만 변호사라는 직업으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몰랐는데, 더함에서 일하며 하고 있죠.”

법무법인 더함의 정구연 변호사는 더함 소속 변호사가 지금의 절반 수준이었던 2018년부터 일했다. 더함에 합류한 후 노동, 사회주택, 스타트업 분야를 주로 다루고 있다. 또, 서울지방노동위원회 권리구제 업무 대리인, 노동법이론실무학회 회원,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회 위원 등을 맡고 있다.

요즘 그의 관심을 끄는 건 올 7월부터 5인 이상 사업장에 모두 적용된 '주52시간제'다. 사회적경제기업들이 특히 잘 들여다봐야 하는 제도라고 강조했다. 왜일까. 지난 6월 29일, 그를 중구 명동 사무실에서 만났다.

정구연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를 6월 29일 중구 명동 사무실에서 만났다./사진=김주연 인턴기자
정구연 법무법인 더함 변호사를 6월 29일 중구 명동 사무실에서 만났다./사진=김주연 인턴기자

기업 자문하면서 사회적 가치 창출할 수 있는 게 '사회적경제 변호사'의 매력

정구연 변호사는 사법고시 세대지만, 로스쿨에 진학했다. 변호사가 되기까지 길을 돌아왔다. 하고 싶은 게 많아서였다.

“학부 시절, 학교에 법대생은 한 학년에 200명 정도였고, 100명 이상이 학교를 졸업하기 전에 사법시험을 붙었어요. 그런데 저는 번아웃이 와서 시험을 안 보고 졸업했어요. 대신 그동안 전공과는 관련 없는 사회학, 여성학, 천문학, 영화 관련 수업을 찾아 들으면서 다른 활동을 했죠. 졸업하고도 한동안 시험을 안 봤어요.”

"이제는 전공을 살려 일해야겠다"고 마음먹으니 사법고시는 없어지고 로스쿨에 가야 했다. 진학 후 변호사 시험에 합격하고, 2016년 법무법인에 입사했다. 안정적이고, 일과 삶의 균형을 잘 지켜주는 곳이었다. 1년 반 정도 다녔을 시점, 정 변호사는 “사는 세계가 좁아지는 것 같다”고 느꼈다.

2018년부터 이직 준비를 했다. 면접 단계, 협상 단계까지 간 곳도 있었지만, 마음이 명확하게 향하는 곳은 없었다. 그러다 알게 된 게 더함이다. 그는 “학교 선배가 단체채팅방에 채용 공고를 올려 알게 됐다”며 “사회적경제에 대한 인식이 지금보다 더 없을 때라 조직도 작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다”고 회상했다.

어떤 곳인지 잘 몰랐지만 끌렸던 이유는 일반 비영리 섹터와는 다르게 변호사로서 하던 일을 계속할 수 있을 것 같아서였다. 정 변호사는 “이전에도 기업 자문을 했는데, 나쁘다고 생각하지 않았다”며 “면접을 보며 이곳에서는 ‘부품’보다는 ‘사람’으로서 일할 수 있겠다고 직감했다”고 말했다.

일하면서 만나는 클라이언트도 예전 회사와는 다르다고 느꼈다.

“더함에서 만나는 클라이언트는 이전 회사에서 만나던 기업들과는 확실히 다르다는 걸 실감해요. 예를 들어 저는 근로계약서나 취업규칙에 관해 기업에 자문할 때 가급적 회사에 유리한 쪽으로 조언을 드려요. 기업이 클라이언트니까요. 그런데 대표님들이 나서서 그 유리함을 덜어내요. ‘저희는 법만 지키고 싶은 게 아닙니다’라면서요. 처음에는 놀랐어요. 클라이언트의 요구가 제 신념과도 맞아떨어지는 환경이라는 게요.”

정 변호사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했다. 그는 "주 40시간 일하는 게 맞는 거고, 주 52시간제는 정말 '법적인 마지노선'"이라며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이 일 밖의 삶을 챙길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김주연 인턴기자
정 변호사는 일과 삶의 균형을 강조했다. 그는 "주 40시간 일하는 게 맞는 거고, 주 52시간제는 정말 '법적인 마지노선'"이라며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이 일 밖의 삶을 챙길 여유가 생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사진=김주연 인턴기자

바뀐 법 대응하는 사회적경제기업들...안팎으로 노력해야

요즘 그의 관심분야의 법률 이슈는 뭘까. 정 변호사는 “사회주택은 보증보험과 종부세가, 노동과 스타트업은 주 52시간제가 이슈”라고 답했다.

법이 바뀌면서 모든 민간임대주택사업자는 보증보험을 들어야 한다. 들지 못하면 종부세 대상이다. 문제는 보험 가입 기준에 사회주택 사업자가 미달한다는 거다. 보증보험은 사업자가 세입자에게 보증금을 갚지 못할 경우 보험사가 대신 갚아주는 상품이다. 보험사는 주택 가격, 부채 비율 등을 고려해 가입 조건을 보수적으로 정한다. 사회주택이 기준에 미달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정 변호사는 “임대사업자 측에서 가입하게 하는 대의는 동의한다”면서도 “사회주택은 사업자의 가용자금이 적다는 걸 전제하고, 외부 자금을 최대로 끌어올 수 있게 만든 제도인데, 사각지대에 놓인 것”이라고 말했다.

정 변호사는 사회주택이 지속가능해지려면 법령상 근거가 생겨야 한다고 언급했다. 그는 “사회주택처럼 큰 프로젝트가 진행되려면 공적기관이 움직여야 하는데, 이때 가장 힘이 돼줄 수 있는 건 법적 근거”라며 “상위법의 위상도 있지만, 사회적 합의의 증명이기도 하다”고 설명했다. 다만 법령 개정에는 시간이 걸리니 단기적으로는 보증보험 가입조건 완화나 사회주택 전용 보증상품 개설 등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

주52시간제는 노동시간을 주 최대 68시간에서 52시간으로 단축하는 제도다. 2018년 7월 규모가 큰 기업부터 차례대로 도입됐다. 올해 7월부터는 5인 이상 49인 이하 기업에도 적용되기 시작했다. 어길 시 사업주는 징역 2년 이하 또는 2000만 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사회적경제 영역에서 잘 들여다봐야 할 이유다. 큰 기업은 근무 시간을 정확히 관리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있지만, 대부분의 영세한 사회적경제기업들은 꼼꼼히 기록하기 어려운 여건이다. 정 변호사는 “특히 소규모 스타트업의 경우 구성원이 과도하게 많은 일을 하지만 제대로 기록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이제는 촘촘한 관리가 필요하다”며 “근태관리를 하는 인사담당자나 체계를 따로 두기 어렵다면, 여건에 따란 탄력근로제나 선택근로제 같은 유연근무제를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조언했다.

현장에서 만나는 사회적경제 종사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뭐가 있을까. 정 변호사는 주관심분야인 노동에 관해 짚었다. 그는 “사회적경제 가치에 큰 애정을 가진 종사자들이 일 외의 것은 잘 신경 쓰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며 "근로 시간 이외의 삶도 챙겼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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