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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부는 유럽에선 장애인으로 등록됩니다. 애를 낳고 나면 더 이상 장애인이 아니죠. 장애인을 분류할 때 Transient disability(일시적 장애)란 것이 있어요. 영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분도 있지만 무난하게 사회생활을 잘 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누구나 정신 건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어요. 정신과 의사인 저조차도 말이죠.

 

고영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는 "자생적인 조건만 만들어지면 식물이 성장하듯이 정신질환자들도 최대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례관리를 하면 지역사회 안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영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 그는 "자생적인 조건만 만들어지면 식물이 성장하듯이 정신질환자들도 최대한 스스로 할 수 있도록 옆에서 지켜보면서 사례관리를 하면 지역사회 안에서 충분히 살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다. 

고영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이사장은 30년 경력의 정신과 의사이다. 그는 성남에서 '함께하는의원'을 운영하며 정신질환자를 수용이나 격리시설에 넣는 대신 지역사회 안에서 함께 살아가도록 돕는 시스템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가 6년 전 선택한 방식은 사회적협동조합이다.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은 조현병이나 우울증, 불안장애 등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당사자(생산자 조합원)들 뿐 아니라 조합이 운영하는 서비스와 상품을 구매하는 소비자, 직원, 자원봉사자 그리고 후원 조합원 등 다중 이해관계자들이 모인 협동조합이다. 조합원 수는 265명(2020년12월말기준)이다.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의 활동은 매우 폭넓다. 정신 질환자들의 재활치료와 함께  그들이 지역 안에서 먹고, 자고 , 놀고, 배울 수 있도록 주거복지와 먹거리 사업, 직업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의 활동은 매우 폭넓다. 정신 질환자들의 재활치료와 함께  그들이 지역 안에서 먹고, 자고 , 놀고, 배울 수 있도록 주거복지와 먹거리 사업, 직업 훈련 등을 진행하고 있다.

 

공유 모델로 주거 안정 해결

정신건강에서는 주거의 안정성이 매우 중요하다.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은 다양한 형태의 주거복지사업을 펼치고 있다.

“성남은 태생이 서울의 위성도시(bed town) 기능을 하기 때문에 전국에서 기초생활수급자가 가장 많았던 곳이지만 현재는 서울과 가까워 집값이 비쌉니다. 대부분 당사자들은 경제적 여건이 좋지 않기 때문에 단독으로 살려면 지하 단칸방 밖에 살 수 없어요. 겨울엔 축축하고 여름엔 곰팡이 스는 곳이죠. 하지만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같이 살면 2층이나 3층으로 올라갈 수 있어요. 살면서 부딪히게 되는 사소한 문제들은 직원들이 중재해서 사례관리를 하는 방식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여성 공동생활 가정의 거실 모습. 고 이사장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겐 규칙적인 생활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면서 "주거 안정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출처=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여성 공동생활 가정의 거실 모습. 고 이사장은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겐 규칙적인 생활 유지가 매우 중요하다" 면서 "주거 안정은 꼭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 출처=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주거지는 외딴곳이 아니라 동네 안에 있다. 국가 시스템 안에서 운영되는 공동생활 가정은 남녀가 분리된 2곳으로 정원이 총 11명이다. 공동주거는 1인 1실을 원칙으로 현재 3명이 셰어하우스 형태로 산다. 협동조합과 계약을 맺고 개인 맞춤형 사례관리를 받으며 혼자 지내는 독립 주거 인원도 현재 4명에 이른다.

 

직장 생활 문제없다

고 이사장은 “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어도 조기에 발견해 계속 치료와 재활교육을 받으면 정상생활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제 환자들 가운데는 공무원 하는 친구도 있어요. 규칙적으로 잘 먹고, 자고, 사회활동도 하면서 주거의 안정성이 동반되는 시스템만 갖추면 재발하지 않습니다. 이런 부분을 지역에서 만들어가야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가족에게만 맡기는 시스템이라 한계가 있어요.

그가 사회적협동조합을 꾸린 이유다. 그는 “ 국가 시스템 안으로 들어오면 경직되고 융통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면서 “제3섹터인 사회적경제조직 안에서 열정과 경험을 갖춘 협동조합과 같은 조직이 대안이 될 수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사회적경제조직이 시장논리에 휘둘리지 않고 주체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조합원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는 '함께신나는카페'. 10년 넘게 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사자 조합원들이다. 고 이사장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면서 "이같은 낙인부터 없애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조합원들의 아지트 역할을 하는 '함께신나는카페'. 10년 넘게 조합이 운영하고 있는 이 카페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당사자 조합원들이다. 고 이사장은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다면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렇지 않다" 면서 "이같은 낙인부터 없애는 운동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30여 년을 지켜봐온 한 대상자분은 현재 바리스타로 자신의 능력을 발휘하고 있어요. 지금도 환청이나 환시 증상이 지속적으로 나타나 너무 힘들다고 하지만 ‘이젠 휘둘리지 않아요. 내가 할 일을 하면 된다’고 합니다. 이런 변화는 제가 훌륭한 의사라서 혹은 능력이 출중하거나 노하우가 많은 전문가라서가 아닙니다. 건강한 지역사회 공동체와 접촉할 수 있는 시스템만 구축되면 가능한 일이죠.

함께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식당. 조합원들은 이 식당을 드나들며 건강한 지역공동체와 접촉의 기회를 늘리고 일반인들은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함께하는 사회적협동조합이 운영하는 식당. 조합원들은 이 식당을 드나들며 건강한 지역공동체와 접촉의 기회를 늘리고 일반인들은 저렴한 가격에 건강한 한끼를 해결할 수 있다.

 

사회적 농업이 좋은 약이더라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은 경기도 화성에서 제초제나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되도록이면 트랙터 같은 장비도 활용하지 않는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짓는 사회적 농장을 운영하고 있다. 당사자 조합원들이 텃밭을 가꾸고 농산물을 수확해 판매한다.

경기도 화성 농장에서 조합원들이 손모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출처=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경기도 화성 농장에서 조합원들이 손모내기 체험을 하고 있다. / 출처=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농업이란 육체를 담보로 하는 활동입니다. 그저 머리로만 할 수 있는 게 아니죠. 활동이 늘어나면서 전반적으로 다 좋아집니다. 다만 그냥 농사만 짓는 것이 아니라 전문가가 개입해 재활치료가 들어가야 진정한 효과를 누릴 수 있습니다.”

고 이사장은 지난해 농림축산식품부 의뢰로 ‘사회적농업 프로그램의 정신건강 효과 실증 연구’를 수행했다. 그 결과 참여한 당사자 17명은 대조군에 비해 우울감과 불안감이 눈에 띄게 해소되고 사회적 안정성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는 사회적 농업은 당사자뿐 아니라 지역사회와 국가에 도움을 준다고 설명한다.

당사자들의 활동 시간이 늘어나면 가족들도 얽매이지 않고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 때문에 좋아요. 더 나아가 사회라는 큰 틀에서 보면 정신건강장애인들을 국가가 먹여 살려야 한다는 개념으로 인식하기 쉬운데 본인이 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삶을 살게 되니 서로에게 좋은 거죠.

 

인간은 사회적 동물.. 협동은 본능

고 이사장은 “정신질환을 앓는 사람은 별세계에서 온 것이 아니다”라면서 “인간은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나를 포함해 이웃이나 가족이 정신질환을 앓을 수도 있다는 포용적인 사고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적농업 이외에도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평생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양봉, 목공예, 도예, 재봉, 제과제빵, 바리스타, 가족 교육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출처=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은 사회적농업 이외에도 삶에 도움을 줄 수 있는 평생교육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양봉, 목공예, 도예, 재봉, 제과제빵, 바리스타, 가족 교육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 출처=함께하는사회적협동조합

정신건강에 문제가 있더라도 입원이나 수용 당하지 않고 내가 살던 곳에서 치료를 받고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누구나 정신질환을 앓을 수 있다는 이해와 공감이 지역사회 안에서 퍼져있다면 수월한 일이죠.

그의 꿈은 당사자(정신건강질환자)와 비당사자간에 경계를 허무는 것이다.

“누구도 단지 기능이 떨어진다고 해서 혹은 좀 실수를 하거나 잘못한다고 해서 배제하거나 무시하지 않고 서로 받아들이고 도울 수 있는 마을 공동체 수립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정신장애인들끼리만 어울려 지내는 공동체를 만들 생각이 없어요. 지역 안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만들어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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