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련의 꽃눈은 어떻게 그렇게 보송보송 따뜻하게 생겼는지, 왜 노란 분꽃과 빨간 분꽃을 같이 심으면 주황색이 아니라 알록달록한 분꽃이 피는지 궁금했다.

어린 시절 식물에 꽂혀 생물학과에 입학해 식물학을 공부했고, 지금도 식물학 연구소에서 일하는 안희경 박사. 식물학 외길 인생을 걷다가, 지난 3월 책 '식물이라는 우주'를 출간했다. 552쪽에 달하는 두께 속에 식물의 생로병사를 담았다. 다른 식물들도 있지만, 주인공은 '애기장대'다. 길 가다 지나칠 잡초처럼 생긴 식물이 왜? 지난 4월 28일, 영국 노리치시에서 지내는 그와 출간 기념 화상 인터뷰를 진행하며 궁금증을 풀었다.

안희경 박사. 영국 세인즈버리 연구소에서 2018년부터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안희경 박사. 영국 세인즈버리 연구소에서 2018년부터 박사후연구원으로 일하는 중이다.

Q. 본인 소개를 부탁한다.

어릴 때부터 식물을 여럿 키웠고, 관심도 많았다. 2008년 연세대 생명시스템대학 생물학과에 입학했다. 2학년 때 학부연구생으로 식물 실험실에서 유급으로 일했다. 씨 심기, 식물에 물 주기, 실험에 필요한 재료 만들기 등. 그리고 같은 대학교에서 석박사 통합과정을 거쳐 2018년 졸업했다. 마침 영국 세인즈버리 연구소(The Sainsbury Laboratory; TSL)에서 박사후연구원을 뽑는다는 걸 알고 지원해서 바로 왔다. 식물과 식물 병을 연구하는 곳이다. 한국인 남편, 딸과 함께 지낸다.

Q. 세인즈버리 연구소에서 어떤 일을 하나?

나는 식물병리학을 연구한다. 식물도 면역 체계가 있다. 병원균이 침입했을 때 대항하는 방법이 여러가지다. 그걸 공부한다. 식물은 좀 특이하다. 예를 들어 병원균이 이파리 한 개에 침입하면, 그 잎 혹은 그 세포만 죽는다. 퍼지지 않는다. 한쪽 잎에 병원균이 침입하면 재빨리 다른 잎에 호르몬을 전달해 잎들이 자신을 보호할 수 있게 한다. 나는 처음에 병원균이 들어왔을 때 그 사실을 식물이 어떻게 인식하는지 연구한다.

Q. 이 연구가 사람 살아가는 것과도 연관이 있나?

식물 중에는 음식이 되는 작물이 있다. 작물을 수확하는 과정에서 큰 손실이 생기는데, 상당 부분이 병원균에 의한 거다. 그런 손실을 막기 위해 연구를 한다고 봐도 된다. 바나나를 예로 들어보겠다. 바나나는 단일 품종(캐번디시)이다. 균류에 의해 생기는 ‘무름병’에 취약하다. 이 병원균이 발견되면 그 바나나 농장은 초토화된다. 그러다 보니 그 병에 저항성을 높이는 방법이 필요하고, 이는 연구를 거쳐야 한다. 바나나가 주요 작물인 필리핀이나 아프리카 등지에서 특히 필요한 연구다. 그래서 사람에게도 중요한 거다.

Q. 책 출간을 결심한 계기는?

블로그에서 이미 글을 쓰고 있었다. 최신 논문을 설명하는 카테고리와 ‘식물의 세계’라는 카테고리가 있다. 다만 블로그 글은 단발성이다. 연속성 있게 글을 쓰고 싶었다. 또, 대학원생 시절 식물을 본격적으로 공부할 때 한국어책이 별로 없어 아쉬웠던 기억이 있다. 출판사 측에서 제안을 해왔고, 그렇게 출간을 결심했다.

'식물이라는 우주' 표지./출처=시공사
'식물이라는 우주' 표지./출처=시공사

Q. '애기장대'라는 이름의 식물을 책을 통해 처음 알았다. '식물계의 초파리'라고 불린다던데.

애기장대는 작은 잡초다. 지나가다 흔히 보이는, 삐죽 솟은 잡초다. 우리나라보다는 북반구, 주로 유럽의 길가에서 많이 난다. 잘 자라고 씨가 많다는 특징이 있다. 염색체가 5개 밖에 없다. 참고로 사람염색체는 23쌍으로 46개다.

식물계의 초파리라고 불리는 건 식물연구를 위한 ‘모델식물’이라서다. 1980년대부터 과학자들의 관심을 받았다. 염색체 수가 적고 크기가 작기 때문에 게놈 프로젝트의 첫 대상이 됐다. ‘게놈 프로젝트(Genome Project)란 어떤 종에 있는 유전자 정보를 통째로 읽는 프로젝트다. 2000년, 식물 중에 처음으로 유전체 분석이 완료됐다. 분석 결과는 과학자들 사이에서 공유됐다. 돌연변이체를 만들기도 쉽다. 오늘날 알려진 식물에 관한 연구 결과 대부분이 애기장대를 통해 얻은 거다.

Q. 2쇄를 찍는다고 들었다. 축하한다.

책이 너무 두꺼워서 인기가 없을 줄 알았는데 놀랐다. 블로그 글을 보고 책을 쓰자고 제안해준 김예지 편집자, 중간중간에 식물 삽화를 세밀히 그려준 이수연 작가, 책 디자인을 맡아준 양혜민 디자이너 등 관심 두고 공들여준 사람들에게 감사하다.

Q. 책에서 강조하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

이 책에 등장하는 모든 연구 결과는 여러 사람이 함께 얻은 거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한 팀의 연구 결과만 좇은 게 아니다. 같은 현상을 연구한 여러 팀의 자료를 고루 살펴보려 했다. 과학과 기술의 발전은 한 사람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연구와 발견이 쌓여야 다음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책에 션 커틀러(Sean R. Cutler) 연구팀 이야기가 나오는데, 바람직한 예다. 크게 주목받을 논문을 재빨리 내는 일과 다른 연구팀과 협업해 질 좋은 공동 논문을 내는 일 중 후자를 택한 사례다.

안희경 박사와 지난 4월 28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안희경 박사와 지난 4월 28일 화상 인터뷰를 진행했다.

Q. 이로운넷에 기고로 한국과 영국의 학계 분위기 차이, 여성 과학자로 살아가는 이야기 등을 담고 있다. 영국 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이것만큼은 한국에도 도입됐으면 좋겠다' 싶은 게 있다면.

아이를 키우면서 커리어를 이어나갈 수 있는 제도가 영국에 확실히 더 많다. 가장 중요한 건 연차다. 영국은 공휴일이 적은 대신 연차가 많다. 30일이 있다. 그러니까 6주를 쓸 수 있는 거다. 한국에서는 보통 연차를 쓰려면 여러 결재를 거쳐야 한다는데, 여기는 그 정도는 아니다. 그리고 가족을 긴급하게 돌봐야 하는 상황에서는 '긴급 휴가(Emergency Leave)'를 쓸 수 있다. 긴급한 경우를 위한 거라 미리 이야기하지 않고 바로 쓸 수 있다.

Q. 책을 또 출간한다면 어떤 주제로 써보고 싶나.

사람이 어떻게 식물을 바꿔왔는지 다뤄보고 싶다. 우리가 먹고 있는 작물이 어떻게 지금의 형태를 갖췄는지 등이다. 토마토를 예로 들어보겠다. 토마토가 정말 야생에서만 자란다면 방울토마토보다 작다. 그런데 사람들이 계속 큰 토마토를 골라낸 거다. 수천년의 세월을 거쳐서 우리가 아는 토마토의 크기가 됐다. 이런 식으로 ‘선택 받거나 탈락하는 유전자에 대한 이야기’를 써보고 싶다.

Q. 향후 개인적인 계획이 궁금하다.

일단은 연구를 계속할 거다. 요즘 한창 애기장대를 키우며 실험하고 있다. 이전 질문에서 답한 것처럼 나중에는 새로운 모델식물을 연구하고 싶다. 그러려면 독립적인 위치에 있는 연구자가 돼야 한다. 그래서 하반기에 박사후연구원 자리를 벗어난 다른 일을 찾아보려 한다. 좋은 결과가 나와서 내 연구실을 꾸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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