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20일이 '세계인의 날'인 거 아시나요?
지구촌이라는 한 우산 아래 살아가는 다양한 민족들이 서로의 문화와 전통을 존중하며 더불어 살아가는 사회를 만들자는 취지로 생겨난 날이죠. 통계청에 따르면 국내 다문화 인구는 2016년 기준 96만3174명으로 100만 명에 육박합니다. 여전히 한국에서 살아가는 결혼이주여성, 외국인 노동자 등 이주민들은 어려움을 호소합니다. 언어 소통의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 문화의 차이 등으로 말이죠. 그래서 이러한 이주민들의 한국 정착을 돕고 다양한 문화를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다문화 사회적경제들이 있다는 사실은 정말 반가운 일입니다.

짧게는 5년 길게는 10년 이상 한국의 이주민들과 한솥밥을 먹으며 그들이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사회 구성원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돕는 사회적경제 3곳을 세계인의 날을 만나 소개할까 합니다.

모국어로 결혼이주여성들이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아시안허브’의 최진희 대표, 은평구에서 다문화 여성들과 함께 다문화 교육과 다문화 음식 전문점, 케이터링 사업을 하는 ‘마을무지개’의 전명순 대표, 국내 첫 다문화극단을 운영하며 문화예술로 이주민 문제를 알려나가는 ‘샐러드’ 박경주 대표 3인이 지난 11일 서울혁신파크에서 작은 이야기 자리를 열었습니다. 때로는 공감을, 때로는 서로 자극을 주며 진행된 사회적경제 대표 3인의 다문화 비정상회담을 지금부터 소개합니다.
 

 

- 다문화 문제에 관심을 가진 계기와 현재 어떤 사업을 하는지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아시안허브: 기업에서 사회공헌 및 홍보 일을 하다 2004년 코이카 해외봉사로 캄보디아를 다녀왔어요. 그곳에서 만난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재능도 많은데, 막상 한국에서는 ‘결혼이주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취약계층으로 분류되어 여러 편견과 싸우며 힘들게 사는 모습이 안타까웠죠. 그들이 전문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이 창업의 계기가 되었어요.

2013년에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에 선정되며 설립한 ㈜아시안허브의 주요 사업은 한마디로 ‘결혼이주여성 전문가 만들기’예요. 결혼이주여성들에게 전문 교육을 제공해 통번역, 언어교육, 컨설팅, 출판 등의 전문가로 양성하고, 그들이 다문화 서비스 제공자가 될 수 있도록 돕는 거죠. 이주여성들은 자국 언어에 강점을 가지고 있기에 전문가로 성장하기에 적합한 인재라 생각했어요.

최진희 아시안허브 대표는 결혼이주여성들이 전문성 있는 일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싶다는 마음으로 창업을 결심했다.

구체적으로는 ‘아시안 랭귀지(asianlanguage.kr)’와 ‘아시안 타임즈(asiantimes.kr)’라는 매체를 운영하고, 아시아 언어교육을 위한 교재 제작, 각국의 전래동화 시리즈 출간 등에 결혼이주여성들이 참여하면서 전문가로 거듭날 수 있도록 도와요. 4월에는 글로벌 소셜 큐레이터·영상번역가·민주시민 강사를 양성하는 '글로벌 취·창업 사관학교'를 개설하기도 했어요.

샐러드: 영화 공부를 위해 독일에서 8년 동안 유학생활을 했어요. 그때 네오나치들의 인종 차별로 많은 죽음을 보면서, 다문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 2005년도에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8개 국어를 다루는 인터넷 다국어 대안언론을 운영했어요. 당시에는 이주민 뉴스를 다루는 언론이 거의 없었고, 밀착취재로 이주민 문제를 심도 있게 다뤄서 이슈가 되었죠. 하지만 이주민을 다루는 뉴스가 점차 많아지고 들어오는 광고수익에 비해 운영비가 더 커지면서 2009년에 국내 첫 다문화 극단 ‘샐러드’로 사업 방향을 전환하게 되었어요. 이주민들이 직접 참여하는 문화예술 활동이 별로 없던 시기라, 이주민들이 직접 배우로 참여하며 이주민 문제를 알리는 것도 좋을 방법이라 생각했어요.

다문화 방송에서 시작해 2009년 국내 첫 다문화극단을 창단한 박경주 샐러드 대표.

처음에는 이주민들의 인권문제라든지, 교육청 추천으로 공공기관 등에서 다문화 교육연극을 주로 했다면, 2011년부터는 어린이 관객을 대상으로 아시아 문화를 소개하는 창작뮤지컬 등도 선보이고 있어요.

마을무지개: 앞에 두 분과 달리, 저는 평범한 가정 주부였어요. 중국어 공부를 더 잘하고 싶은 욕심에 주민센터에서 하는 한국어 교실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자원봉사를 했어요. 거기서 8개국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났죠. 중국에서 온 아기 엄마는 남편이 중국으로 가라는 말을 자주 내뱉어서 마음의 상처가 컸어요. 또 다른 이주여성 분은 아이 친구 엄마들에게 자신을 비하하는 말을 듣어 힘들다고 했죠. 다들 타지에서 마음고생이 컸어요. 그렇게 서로 속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나라 다문화 정책이 문제가 있구나’ 직감했죠. 그때부터 제 인생이 180도 바뀌었어요. 저는 물론 주변 지인들의 도움까지 받으며 결혼이주여성들을 돕는 일에 나섰어요.

전명순 마을무지개 대표는 평범한 가정주부로 살다 지역의 결혼이주여성들을 만나면서 다문화 문제에 눈을 떴다.

결혼이주여성들의 가장 큰 소망이 경제활동이에요제일 먼저 한 게 학교에서 모국의 문화를 가르치는 다문화 강사로 활동할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어요. ‘오감만족 아시아 여행’은 결혼이주여성이 전통 의상을 입고 자신이 태어난 나라의 문화, 음식, 역사, 지리 등의 생생한 정보를 전달하는 수업인데 아이들의 수업 만족도도 높았어요. 
그런데 방학에는 수업이 없어 매출이 제로였죠.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일을 찾다가 모국 음식을 만드는걸 좋아하는 모습에서 힌트를 얻어 다문화 음식점 ‘타파스’, 케이터링을 시작했어요. 근래 시작한 아시아 의상 임대 사업은 생각보다 반응이 좋아 기업의 효자사업으로 자리 잡았어요. 

 

- 다문화 기업을 운영하다 보면 선주민들의 다문화에 대한 인식들을 엿볼 수 있을 것같아요.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아시안허브: 결혼이주여성들 중 고향을 떠나 홀로 낯선 타국에 와서 살다 보니 남편에 대한 의존도가 높거나, 남편들이 아내를 무시하거나 상식의 선을 넘는 경우들이 있어요. 하루는 저희 직원이었던 한 이주여성의 남편분이 회사로 전화를 하셔서는 "아내 휴가를 내달라"고 하시는 거에요. 그런 경우는 처음이라 당황했던 기억이 나요. 남편분이 직접 저희 같은 사업을 해보겠다고 찾아오는 경우도 있었어요. 이런 경우 결혼이주여성들이 한국 사회에서 주체성을 가진 여성으로 성장했으면 하는 마음에서 솔직하게 저희 의견을 이야기 해주곤 해요.

아시안허브는 결혼이주여성들이 모국어를 기반으로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다.

마을무지개: 일을 하면서 만나는 분들 중에 대표인 저를 대하는 태도와 우리 다문화 직원들을 대할 때 태도가 많이 다른 분들이 있어요. 다문화 여성들을 자신도 모르게 무시하는 한국인이 은근 많은 거죠. 직원들로부터 그런 말을 들을 때는 너무 화가 나고 제가 직원들 보기에 민망할 정도일 때도 있어요. 

샐러드:  10년 넘게 기업을 운영하다 보니 너무 많아서 셀 수가 없을 정도에요. 이주민이라는 이유로 근거도 없이 의심하기도 하고...지방 공연을 갈 때 차를 빌리는데, 운전사 분이 이주민이라고 무시하거나 함부로 대하는 경우들도 있어요. 그럴 때는 다음에 예약을 하지 않는 걸로 소심한 복수를 하죠.

 

- 세 분 모두 여러 사회적 편견들을 극복해가며 사업을 해오셨는데, 그럼에도 보람을느끼고 변화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을 듯합니다.

마을무지개:  결혼이주여성들이 경제활동을 원하지만, 막상 조직에서 어떤 역할이 주어지면 비주체적인 모습일 때가 많아 처음에는 힘들었어요. 지금은 많이 변했어요. 스스로 할 일을 찾고, 내 회사라는 자부심도 커졌어요. 얼마 전에는 우리 직원들끼리 계를 부어서 각자 고향으로 함께 놀러가자는 얘기를 할 정도로 서로 간에 유대감도 생겼고요. 저희는 처음부터 일로 만난 게 아니라 같은 지역에 사는 이웃으로 만났기에 오랫동안 다양한 일들을 할 수 있고 성취감도 더 컸던 것 같아요. 
올해로 기업을 운영한 지 만 7년이 되는데. 전업 주부에서 시작해 법인 대표가 되면서 괴리감도 컸지만 지금은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기를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결혼이주여성들이 마을무지개와 함께하면서 주체적으로 변했다.

아시안허브: 아시안허브에서 일하는 직원들은 좋은 곳에서 스카우트 제의를 많이 받아요. 언젠가 한 공공기관에서 전화가 와서는 우리 기업에서 일하는 분을 왜 놓아주지 않느냐는 거에요. "아시안허브가 원래 그런 곳(이주여성들 성장시켜서 다른 곳으로 내보내는) 아니냐"고 하시는데, 그 순간 사실 좀 속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결혼이주여성들을 전문가로 성장시키는 게 저희의 역할이 맞다는 생각이 들면서 마음을 내려놓게 되더라고요. 지금은 같이 일했던 직원들이 다른 곳으로 가면 박수 쳐주고, 잘 적응한다는 소식을 들으면 기뻐요. 최근에는 우리가 가르쳤던 교육생들이 함께 이주민 협동조합을 만들었어요. 그게 우리의 미션이자 역할이라 생각하고, 앞으로도 그분들이 전문가로 성장하는 데 힘을 보탤 생각이에요.

샐러드: 2005년 처음 이주민 언론사를 운영할 당시만 해도 사회적으로 이주민,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상당히 낮았어요. 다문화하면 이주노동자들 인권문제가 주였고 임금체불이나 산재 사건도 많았죠. 지금은 고용허가제가 도입되면서 장기고용도 가능하고 중간에 체류비자로 바꿀 수도 있게 되었어요. 반인권적인 조항도 많이 사라지고 가족 초청도 가능해졌어요. 다문화 구성원들도 자발적인 커뮤니티들이 많이 생겨나고한국 사회도 다문화 구성원을 받아들이는 정책으로 가고 있어서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해요

샐러드의 연극은 이주민들이 직접 배우로 나서 다문화 문제를 알리고 있어 더 현실감이 있다는 평가다.

이러한 변화에 조금이나마 샐러드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해요. 물론 그럼에도 우리 같은 기업이 이주민들의 국내 적응에 발판을 마련한다는 점에서 아직은 필요한 존재라고 봐요. 이민사회가 정착하고 어느 정도 편견을 없애려면 3세대는 지나야 하니까요. 무엇보다 우리와 함께 일하는 직원들이 이 활동을 좋아해요. 주요 구성원들은 모두 4년 이상 근무한 분들이에요. 여기서 일 하다가 힘들다고 나가셨던 분들도 다른 일터갔다가 금세 다시 돌아오세요. 도저히 못하겠다면서요. 지금은 일이 없을 때는 나오지 말라고 얘기해도 나오고 싶어해요. 자기 일을 좋아하는 것, 그게 바로 샐러드의 동력이 되는 것 같아요.

 

- 다문화 기업에서 일하며 이런 부분은 우리 사회가 가진 편견이라고 얘기해주고 싶은 부분이 있다면요.

아시안허브: ‘이주여성은 이럴 거다’고 단정 짓는 경우가 많아요. "이주여성은 본국에서 잘 못 살아서 이곳에 왔다"든지 "못 배웠을거다"라든지 그런 편견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기업이 전문 인력 양성을 하다 보니 본국에서 유학을 왔거나 전문직 출신이 많은데도 한국에서는 그런 시선들을 받아요. 다른 측면에서는 본국에서 전문직 출신이니 한국에서 잘 정착하겠지 하시만 막상 보면 모두 그렇지는 않거든요. 한국 사람들이 다양하듯이, 이주민들도 다양하다는 걸 인정해야 해요.

마을무지개:  맞아요. '결혼이주여성들은 모두 불행하다'는 인식이 있는데, 한국 사회의 당당한 구성원으로 결혼생활도 행복하게 잘 꾸려가는 분들이 제 주변에도 많아요. 이주여성들 남편들도 좋은 분들이 많고요.

 

-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계획과 사회에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마을무지개: 전에는 내가 뭐해줄 수 있을까를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들이 직접 그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든든해요. 마을무지개가 잘 성장해서 더 많은 결혼이주여성들이 일할 수 있는 곳이 되면 좋겠어요. 이들이 사회변화를 이끌어내는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 기대해요. 마을무지개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은 이주여성을 같은 마을에 사는 이웃으로 바라보고 함께 공동체를 일군다는 거예요. 그에 맞게 이주여성들을 같은 사회 구성원으로 생각하며 정서적으로 잘 지원하는 역할을 해나갈 생각입니다. 

아시안허브: 우리 교육이나 컨설팅을 받고 다양한 단체들이 생겨나고 조직의 리더가 되는걸 보면 뿌듯해요.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이주여성들을 위한 취·창업 사관학교가 되어 우리 경험을 전수해 꿈을 향해 차근차근 나아갈 수 있는 발판이 되고 싶어요.

아시안허브 내부적으로는 제2의 시작을 준비하려고 해요. 2013년 창업 후 너무 앞만 보고 달려온 것 같아요. 지원과 제도에 많이 기대어 온 부분도 있고요. ‘왜 우리가 이 일을 시작했나’ 본연의 마음으로 돌아가 주체적으로 고민하며 한발 한발 다시 출발해보려고 합니다. 

다문화 사회적경제 대표 3인은 선주민들이 이주민에 대한 사회적 편견을 버리고 사회구성원으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샐러드: 이 분야에서 13년째 활동하며 힘든 고비도 많이 넘겼지만, 그때마다 우리가 사회적기업이라는 걸 잊지 않으려 해요. 사회적 가치 추구 없이 수익만을 생각한다면 문을 닫는다는 각오로 ‘사회적 가치’와‘경제적 가치’ 간의 균형을 맞춰가려고 노력해요.

또 하나 얘기하고 싶은 부분은 얼마 전 남북정상회담이 있었죠. 그걸 보며 반가우면서도 한편으로는 이주민들 생각이 났어요. 베를린에 머물 때 동독, 서독이 통일되면서 이주민들이 대거 일자리를 잃고 힘들어하는 모습을 옆에서 지켜봤기에 더 현실적인 고민이 든거 같아요. 이러한 시기 다문화 문제를 다루는 우리의 역할은 무엇인지그날이 오면 어떤 사업이 필요한지를 이제는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아시안허브  http://asianhub.kr

마을무지개  https://vrainbow.modoo.at

샐러드  http://salad.or.kr

 

사진제공. 이우기 사진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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