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세를 내고 살 집을 고를 때, 선택지는 집주인이 시세에 맞춰 임대료를 받는 ‘민간임대주택’과 정부가 저소득층에 공급하는 ‘공공임대주택’밖에 없을까. 23일 국회의사당 본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는 민과 관이 함께 소유하며 임대료를 조절하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늘리자는 의견이 제시됐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성과와 과제’ 토론회는 함께주택협동조합,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의당 심상정 의원실이 주최하고, LH 토지주택연구원이 후원했다. 박종숙 함께주택협동조합 상임이사가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필요성과 현황을 짚고,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이 관련 법과 제도를 검토했다. 이어 이한솔 한국사회주택협회 이사장, 임재만 세종대 부동산학과 교수, 이강훈 변호사(참여연대 실행위원), 백두진 SH서울주택도시공사 부장이 확대 방안에 관해 토론했다.

아직 법적 정의는 없지만, 통용되는 사회주택의 의미는 저렴한 임대료(시세 약 80% 이하)와 긴 거주기간이 보장되며 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운영하는 집이다. 타겟 입주자는 공공임대주택 입주 기준보다는 소득·자산 수준이 높지만, 민간임대주택의 높은 임대료는 부담스러운 무주택자다. 전국에 마련된 건 약 5000호 남짓. 민간임대주택과 공공임대주택의 사각지대를 해결하는 역할이지만, 아직 그 수가 부족하고 사회적 공감대를 얻지 못하고 있다.

23일 정의당 당대표/원내대표실에서 열린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성과와 과제' 토론회 현장.
23일 정의당 당대표/원내대표실에서 열린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성과와 과제' 토론회 현장.

땅은 정부가, 건물은 사회적경제 주체가 갖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회주택은 정부와 사회적경제 주체가 어떻게 역할을 나눠 갖냐에 따라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회적 주택 ▲매입약정형 사회주택 ▲리모델링 사회주택으로 분류할 수 있다. 그중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정부가 소유한 토지에 사회적경제 주체가 건물을 지어 올리고 운영하는 방식이다. 민관이 비용을 함께 부담해 부동산 자산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거다. 사회적 주택과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은 토지와 건물 모두 정부 소유고, 리모델링 사회주택은 정부가 리모델링비만 대준다.

박종숙 상임이사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민관 협력 주택’이라는 개념으로 소개했다. 예를 들어 함께주택협동조합은 현재 서울에서 ‘함께주택’이라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을 4채 운영 중이다. 입주자는 주택이 지어지기 전에 조합원으로 가입해 주택 설계·시공·운영에 참여한다. 조합원이 부담하는 임대보증금은 건축 비용에 쓰이고, 월 사용료(월세)는 토지임대료와 관리·운영비로 쓰인다.

민간임대주택 월세가 부담스럽지만, 공공임대주택 입주기준에는 안 맞는 사람에게 사회주택이 답일 수 있다. 게다가 사회주택 시스템상 입주자는 수동적인 세입자가 아니라 주택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주체로 거듭난다. 위의 협동조합 사례가 그런 예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의 경우 사회적경제 주체가 주택 건축과 시설 관리 비용을 부담하므로 정부도 얻을 게 많다.

서울시에서 처음 사회주택 조례가 제정된 2015년을 기준으로, 연도별로 공급된 사회주택 현황. 출처=한국사회주택협회
서울시에서 처음 사회주택 조례가 제정된 2015년을 기준으로, 연도별로 공급된 사회주택 현황. 출처=한국사회주택협회

한국사회주택협회에 의하면, 이런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2015년부터 지난해까지 전국에 약 1234호가 공급됐다. 사회적 주택은 2016년부터 지어져 1631호다. 두 주택 차이의 핵심은 건물 소유권이 누구에게 있느냐다.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은 사회적경제 주체 소유의 건물이다. 사회적 주택은 정부 소유 건물에서 사회적경제 주체가 임대사업만 한다. 박 상임이사는 “최근 몇 년간 사회주택의 형태 가운데 사회적 주택의 숫자가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행정이 사회적경제 주체의 역할을 바라볼 때 양적 확대를 위한 사회주택 ‘건설’보다 질적 성장을 위한 사회적 주택 ‘운영’에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는 듯하다”고 전했다.

“민관협력인데 갑을관계 같다” 제도 개선 시급

참석자들은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주거 안정을 위해 일하지만, 실제 사업 과정에서 부딪히는 벽이 많다고 입을 모았다.

일단 거버넌스에 문제가 있다. 박 상임이사는 “민관이 함께 자원 조달을 해야 하므로 거버넌스가 중요한데, 관계를 들여다보면 관은 협력자보다 관리감독자로서의 위치라 안타깝다”고 말했다. 실제로 서울토지지원리츠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자 선정 공모지침서에 의하면 사업자는 운영과 임대사업 제반 업무를, 서울시는 선정과 평가를 맡고 있다. 사업자가 정부에 맞출 수밖에 없는 데는 이유가 있다. 토지 가격은 계속 오르고, 주택 가격은 시간이 지날수록 떨어지니 토지 보유자의 조건에 맞추게 되는 거다.

서울토지지원리츠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자 선정(2020년1차) 공모지침서에 적힌 사업시행 방식. 정부 측에서 평가, 선정 등을 맡는다.
서울토지지원리츠 토지임대부 사회주택 사업자 선정(2020년1차) 공모지침서에 적힌 사업시행 방식. 정부 측에서 평가, 선정 등을 맡는다.

또, 기존과는 다른 새로운 형태이다 보니 불리한 점이 많다. 이한솔 이사장은 “입주자는 사회주택에 살겠다고 보증금을 대출받으려는데 제약에 부딪히고, 사업자는 건물이 (토지가 아니라서) 가진 담보력이 저평가돼 금융 조달이 어려울 때가 있다”며 “혜택을 달라는 게 아니라, 불리한 지점을 해소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강세진 연구위원은 서울의 사회주택 공급조건을 유럽 대도시와 비교해본 결과 표면적으로는 사업 진행에 지장을 초래할 정도의 큰 차이는 없다고 분석했다. 다만 실제로 사업자의 의견을 들어보면 HUG(주택도시보증공사)나 HF(한국주택금융공사) 보증을 활용하는 게 어려운 현실이라고 말했다. 사회주택에 대한 오해나 편견, 낯섦에서 기인한 소통 문제 때문이다.

법·제도적으로 명확히 자리 잡지도 못했다. 강세진 연구위원은 “토지임대부 분양주택에 대한 법적 규정은 있는데, 그동안 사회적인 요구가 적었는지 토지임대부 임대주택에 대한 규정은 미흡하다”고 말했다. 주택을 안전하게 ‘소유’할 수 있는 법과 제도에 관심이 더 쏠려 안전하게 ‘임차’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비교적 발달하지 못했다는 것.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
강세진 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연구위원.

이한솔 이사장은 “얼마 전 청년 20명을 인터뷰한 결과, '자가를 소유하고 싶냐'는 질문에 모두 그렇다고 답했다”며 “다만 그 이유로 1위를 차지한 건 ‘자산증식의 욕구’가 아니라 ‘불안하기 때문’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집을 꼭 사지 않아도 안정적인 생활을 할 수 있는 사회였다면 달랐을 거라 해석하며, 그런 사회를 만들기 위해 사회주택 같은 대안 모델이 더 탄력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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