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협동조합(생협)은 지구와 사회, 개인의 유기적인 순환을 위해 친환경 유기농 제품 유통, 쓰레기 저감, 자원의 재활용 등 다양한 활동을 진행하고 있다. 최근 환경문제에 대한 심각성이 강조되면서 불필요한 쓰레기 배출을 막기 위한 실질적인 방법을 실행하는 중이다. <이로운넷>이 생활에서 환경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생협의 고민을 들어본다.

집 냉장고에 항상 구비돼있는 우유. 다 마시면 수돗물을 채워 마구 흔든 후, 물은 하수구에 흘려보낸다. 우유갑은 납작하게 접어 종이 분리수거함에 버린다.

이 우유갑을 한살림에 주면 매장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살림포인트'로 바꿔준다. 한살림이 아닌 타사 우유여도 된다. 한살림이 자원순환 확산을 위해 다 쓴 우유갑과 멸균팩을 모으는 ‘우유갑되살림’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난 8월 31일부터 전국 매장에서 상시 시행한다. 한살림은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와 업무협약을 체결하고 우유갑/멸균팩 수거함 제작비를 지원받았다. 수거함 수령을 희망하는 매장에 2개씩 배포했고, 현재 전국 173개 매장에 설치돼있다. 그렇게 지난해 넉 달 모은 양이 12.5t(톤)이다. 한살림의 올해 목표는 36t이다.

한살림연합 서울사무소 1층에 비치된 우유갑되살림함.
한살림연합 서울사무소 1층에 비치된 우유갑되살림함.

이렇게 모인 우유갑은 화장지로 다시 태어난다. 1985년부터 재생 화장지를 만들어 온 ‘부림제지㈜’가 맡은 일이다. 부림제지는 1992년부터 재생 화장지를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빳빳한 우유갑이 어떻게 화장지가 되는 걸까? 지난 3월 26일, 설명을 듣고 완제품 생산과정을 보러 부림제지 이천 본사로 향했다.

우유갑 속 고급 펄프가 화장지로

고속도로 위 화물차들이 달린다. 도로 밖을 보니 물류업체가 하나둘 눈에 띈다. 중간중간 자리 잡은 논밭을 지나 도착한 공장. 공장이라고 하길래 시멘트 빛 창고를 상상했는데, 눈앞에 보이는 건 가로로 긴 붉은 벽돌 건물이다. 현장에서 만난 윤우석 부림제지 상무는 “2017년에 왔고, 옛 섬유 공장을 고쳤다”며 “다른 지역에 있을 때 공장에 불이 난 적이 있어 화재 위험이 적은 건물로 왔다”고 설명했다. 윤 상무는 부림제지 설립자 윤명식 회장의 아들이다.

윤우석 부림제지 상무.
윤우석 부림제지 상무.

“우유갑은 3겹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비닐-펄프-비닐. 이렇게요. 우유갑 속 질 좋은 펄프가 그대로 버려지는 게 아까워서 시작한 사업입니다.”

우유갑에서 분리한 비닐(왼쪽)과 펄프.
우유갑에서 분리한 비닐(왼쪽)과 펄프.

우유갑은 식품을 담는 용기라 까다로운 기준을 통과해야 한다. 그 안에 쓰이는 펄프는 고급일 수밖에 없다. 공장 옆 사무동에서 윤 상무는 우유갑에서 분리한 비닐과 펄프를 보여줬다. 부들부들한 펄프가 바로 재생휴지의 원료다. 1970년부터 제지업계에서 일한 윤명식 회장은 우유갑의 비닐코팅을 쉽게 벗기는 방법을 연구해 여러 번의 시도 끝에 ‘펄퍼(pulper)기계’를 개발했다. 기계 안에 우유갑을 넣으면, 비닐과 펄프가 원심력에 의해 분리된다. 이물질을 떼어내기 위해 펄프만 거르는 과정을 여러 번 거친다. 분리된 펄프를 분쇄해 물에 녹이고, 소열 소독을 거쳐 화장지 원단을 만든다.

펄퍼기계 안에서 비닐과 펄프가 분리되는 모습(왼쪽)과 그렇게 분리된 펄프./사진=부림제지
펄퍼기계 안에서 비닐과 펄프가 분리되는 모습(왼쪽)과 그렇게 분리된 펄프./사진=부림제지

“원단을 만드는 작업은 지금 남양주에 있는 공장에 외주를 주고 있어요. 거기서 만들어진 화장지 원단은 이천에 있는 본사공장에 도착해 완제품으로 태어납니다.”

남양주 공장에서 만들어진 화장지 원단이 이천 본사공장으로 실려 오면, 완성품을 생산하는 작업이 시작된다. 공장에 들어서니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귀를 찌른다. 기계 소리를 뚫고 들리는 윤 상무의 설명.

 화장지 원단이 각종 공정을 거쳐 휴지로 탄생하는 과정.(왼쪽부터)
화장지 원단이 각종 공정을 거쳐 휴지로 탄생하는 과정.(왼쪽부터)

“돌돌 말려 있는 원단을 기계에 펴 넣으면 ‘권치기(절지선을 만드는 작업),’ ‘엠보싱,’ ‘건조,’ ‘포장’ 등의 과정을 거쳐 화장지로 변신해요. 보시는 것처럼 두루마리 화장지, 미용티슈(각티슈), 키친타월을 만드는 기계는 다 다릅니다.”

"재생 화장지 소비 늘면 우유갑 회수율·재활용률도 증가할 것"

윤 상무를 따라 공장을 나왔다. 완제품을 모아둔 창고 뒤에는 수거된 우유갑이 한가득 쌓여있었다. 남양주 공장으로 가기 전 잠시 머무르고 있단다. 쌓인 우유갑 사이에서 한살림 우유 제품이 눈에 띄었다. 부림제지는 한살림 등 생협 외에도 각종 분리수거 업체에서 우유갑을 수집하고 있다. 우유팩 1kg(1ℓ 우유팩 36개 내외)을 재활용하면 50m 길이 두루마리 화장지 3개를 만들 수 있다.

창고 뒤편 잠시 쌓아둔 우유갑 사이에 보이는 한살림 유기농 우유 제품. 한살림에서 오는 우유갑은 깔끔히 씻고 말려 펼치는 작업까지 마쳐 있다.
창고 뒤편 잠시 쌓아둔 우유갑 사이에 보이는 한살림 유기농 우유 제품. 한살림에서 오는 우유갑은 깔끔히 씻고 말려 펼치는 작업까지 마쳐 있다.

요즘, 이 수거 작업이 어렵다고 한다. 윤 상무는 “우유갑이 그냥 폐지와 섞이거나 일반쓰레기로 버려지는 일이 많아 수급하는 양이 적다”고 설명했다. 외국에서 수입해야 할 정도다. 각종 미디어가 환경보호의 중요성을 부각하고, 시민의식도 점점 발전하는 것 같은데 왜 어려울까?

한국순환자원유통지원센터에 의하면 종이팩은 2000년대 초까지 화장지 교환 등 다양한 방법으로 회수돼 재활용됐다. 다만 2010년 이후부터는 종이팩 분리배출에 대한 인식 저하로 정부에서 정한 재활용 목표(25%∼30%)를 최근 5년 연속으로 달성하지 못했다. 한살림에 따르면 매년 우리나라에서 종이팩은 약 7만t 배출된다. 우유갑은 종이팩의 약 70%를 차지한다.

또, ‘당장 나부터 재생 화장지를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소비자가 많아져야 한다. 재생 화장지 수요자가 늘면 재활용률도 덩달아 오른다. ‘내가 쓸 화장지가 된다’는 마음으로 시민이 열심히 분리배출하고, 재활용업체도 좀 더 신경 써서 우유갑을 수거하지 않을까. 환경 보호 필요성에 공감하는 사람이 늘어난 만큼, 이렇게 눈에 띄는 실천도 중요하다.

부림제지는 1992년부터 재생 화장지를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사진은 한살림에서 판매되고 있는 재생 화장지 제품들./출처=한살림장보기
부림제지는 1992년부터 재생 화장지를 한살림에 납품하고 있다. 사진은 한살림에서 판매되고 있는 재생 화장지 제품들./출처=한살림장보기

“환경에 덜 해로운 생활을 실천하겠다는 마음가짐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어요. 재생 화장지를 주변에서 더 쉽게 찾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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