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길에 시달리지 않고 시간을 자유롭게 활용할 수 있어 좋아요.”
“업무에 집중하기 어렵고, 동료들과 소통이 원활하지 않아 불편해요.”
코로나19로 재택근무가 급속하게 확산하면서 이를 경험한 사람들의 생각도 교차하고 있다. 꼭 코로나 때문이 아니더라도 직장문화의 변화, 디지털기술의 발전, 업무 형태의 다양화 등 여러 이유로 우리 사회에서 재택근무의 비율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은 1일 개최한 ‘인간과 문화 포럼’에서 재택근무가 조직 문화, 일과 삶의 공간 등 우리 삶을 어떻게 바꾸고 있는지를 논의했다. 행사는 사회적 거리두기 실천에 따라 인문360 유튜브 채널에서 온라인 개최했으며 전문가, 시청자 등이 비대면으로 대화를 나눴다.
먼저 우석훈 성결대학교 교수가 ‘재택근무 확산과 일하는 방식의 변화’를 주제로 발표했다. 코로나19 이후 국내 많은 기업에서 재택근무를 발 빠르게 도입했다.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의 순으로 재택근무의 비율이 높았고, 공공 부문에서도 1/3 정도가 참여했다. 대체적으로 규모가 큰 곳에서는 재택근무에 동참했지만, 작은 곳에서는 참여하지 못했다.
미국의 경제학자 로버트 라이시는 팬데믹에 따른 계급을 4개로 나눴는데 △재택근무 가능한 계급 △경찰‧의료진 등 고용은 안정됐지만 노출 위험이 큰 인력 △무급 휴직 혹은 실직자들 △노인요양시설 등 사회적으로 잊혀진 자 등이다. 우 교수는 “재택근무가 가능한 산업 및 규모가 제한적이기 때문에 1계급을 경제적 엘리트 직급으로 이해할 가능성이 높다”라고 말했다.
향후 상당 수가 재택근무를 하게 되고, 워라밸(일과 삶의 균형)을 중시하는 밀레니얼 세대가 나서면서 ‘직장 내 민주주의’는 가속화할 전망이다. 우 교수는 “일하는 방식이 변화하고 혁신‧창조력이 중요해지면서 재택근무가 가능한 이들이 사회 특권층으로 주목받을 것”이라면서 “한편으로는 육체‧돌봄 노동 등 원격근무가 어려운 계층과의 양극화가 더욱 벌어질 수 있다”라고 말했다.
전영민 롯데엑셀러레이터 대표는 ‘재택근무는 조직 문화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를 주제로 이야기했다. 그는 “재택근무를 논의하면서 일괄적 전환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유연근무제(시간의 유연화)나 원격근무제(공간의 유연화) 등 선택의 기회를 확대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했다.
전 대표는 “기존에 시간과 장소의 자율성이 없던 학교‧교회 등에서 통용되던 조직 리더십 모형이 점차 깨지고 있다”며 “재택근무는 사회적 힘의 기반을 바꿀 텐데, 향후 리더의 능력과 기술에서 오는 ‘전문성의 힘’과 조직의 가치‧철학‧윤리를 신뢰하는 ‘일체감의 힘’에서 리더십이 발휘될 것”이라는 생각을 밝혔다.
김정임 서로아키텍츠 대표는 ‘재택근무는 일과 삶의 공간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공유했다. 건축가인 김 대표는 오피스의 역사를 되짚으며 “코로나와 디지털 기술로 한 공간에서 다같이 일하는 풍경이 사라지는 3차 오피스 혁명이 올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거점‧공유 오피스를 사용하고, 원격근무를 위한 협업 툴을 활용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재택근무가 늘면 기업뿐만 아니라 개인의 삶에도 변화가 예상된다. 멀리 출퇴근할 일이 없어지면 내가 사는 생활권에서 먹고사는 일이 가능해지고, 기존에 휴식 공간이던 집이 일과 문화를 즐기는 공간으로 바뀌게 된다. 김 대표는 “나의 필요에 따라 점유 가능한 공간이 많아지면 도시‧동네와 개인의 관계가 달라진다”며 “생활SOC 확충 등 지역‧소득 격차를 해소하는 공공의 역할이 더 중요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한편, 발표자와 사회자는 ‘재택근무와 삶의 변화’에 대해 함께 생각해보고 읽어볼 만한 책으로 △‘민주주의는 회사 문 앞에서 멈춘다(우석훈 지음)’ △‘메트로폴리스(벤 윌슨 지음)’ △‘일의 기쁨과 슬픔(알랭 드 보통 지음)’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황세원 지음)’ 등을 추천했다.
이날 강연은 문체부가 운영하는 온라인 플랫폼 ‘인문360’을 통해 다시보기 서비스를 제공한다. 우리의 일상과 사회‧문화적 변화에 대한 인문적 담론을 확산하기 위해 기획된 ‘인간과 문화 포럼’은 매월 첫 번째 목요일 온라인으로 생중계된다. 오는 5월 행사는 ‘여가시간에 무언가를 꼭 해야 하나: 진정한 휴식이란’을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