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책 표지 이미지./출처=창비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책 표지 이미지./출처=창비

코로나19 확산 초기, 나이·성별·국적을 막론하고 누구나 감염된다는 사실은 공포를 일으켰다. 하지만 모두가 바이러스 앞에 평등하지 않다는 사실이 곧 드러난다. 마치 재난영화의 한 장면처럼, 위기에서 반드시 살아남는 ‘주인공’과 아무렇지 않게 희생당하는 ‘나머지’가 명확히 나뉘었다. 주인공과 나머지가 분리되는 세상은 과연 정의로운가.

신간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은 인권·환경·노동·젠더·인종·장애 등 서로 다른 자리에서 코로나19를 바라본 이들의 생각을 묶어냈다. 10명의 저자는 각자 바이러스가 드러낸 한국사회의 사각지대를 짚어내고, 팬데믹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의견을 제시한다. 이들의 공통적인 의견은 “우리는 코로나19 이전처럼 살 수도 없고, 살아서도 안 된다”는 사실이다.

인권운동가 미류는 ‘우리는 서로를 책임질 수 있을까’에서 자가격리를 하면서 느낀 두려움을 털어놓는다. 그는 “재난과 함께 재난 이후가 시작된다. 재난을 겪는 중인 동시에 재난 이후의 시간을 만들어가는 지금, 미뤄도 될 질문은 없다”며 “결국은 단절이 아닌 연결이 감염병을 막을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플라스틱 프리샵 알맹상점의 운영자인 고금숙은 ‘마스크는 썩지 않는다’에서 2020년 총선 당시 국가에서 제공한 비닐장갑 대신, 고무장갑을 끼고 투표에 나섰던 경험을 돌아본다. 그는 “팬데믹은 끝나도 플라스틱은 영원히 남는다. 일회용품이라는 손쉬운 대안의 문제점을 인식하면, 더 나은 대안을 생각할 공간이 생긴다”며 방치되는 환경 이슈를 끌어올린다.

라이더유니온 위원장 박정훈은 ‘코로나 시대의 배달노동’에서 팬데믹 시대 필수 산업으로 떠오른 배달노동의 그림자를 짚는다. 해고된 비정규직 노동자와 사업을 접은 자영업자가 청년 산재 사망 1위를 기록한 배달업계로 모여들고 있다. 박 위원장은 “배달은 필수적인 산업이 됐지만, 배달하는 노동자들은 여전히 필수적인 존재가 아니다” 라며 현실을 꼬집는다.

구술생애사 작가 최현숙이 쓴 ‘거리 홈리스들이 살아낸 팬데믹 첫해’와 노들장애학궁리소 연구활동가 김도현이 쓴 ‘시설사회와 코로나19, 그리고 장애인’은 우리 사회가 국민으로 여긴 이들이 누구인지 묻는다. 집이 없는 노숙인들은 무료 급식소마저 문을 닫으면서 하루 한 끼도 해결하지 못하는 현실에 처하고, 자가격리 통보를 받은 장애인들 역시 활동지원 서비스가 끊기면서 생존의 위기를 겪는다. 

정치학자 채효정은 ‘누가 이 세계를 돌보는가’에서 여성에게 더욱 가혹한 팬데믹의 위기를 다각도로 살핀다. “집에 머물라”는 국가 방역 지침에 따라 돌봄 공백이 생기면서 여성들은 가정에 발이 묶이게 된다. 그는 “이 세계를 구할 것은 마스크와 백신이 아니라 돌봄”이라며 돌봄이 가능한 사회로의 전환이 무엇보다 절실하다”고 주장한다.

서로 다른 자리에서 출발한 10인의 글은 하나의 결론으로 수렴된다. “코로나19 이후 만들어야 할 새로운 일상은 분명 지금과 달라야 한다”는 것이다. 책은 팬데믹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지금이 우리가 삶을 재구성할 수 있는 토대가 될 수 있다고 이야기한다. 독자들에게도 ‘팬데믹 이후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실존적 질문을 곱씹어볼 기회가 될 것이다.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미류 , 서보경 , 고금숙 , 박정훈 , 최현숙 , 김산하 , 이길보라 , 이향규 , 채효정 , 김도현 지음. 창비 펴냄. 212쪽/ 1만5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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