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셔터스톡
출처=셔터스톡

“우리에게 빵과 장미를 달라!”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은 1908년 미국에서 열악한 작업환경에서 근무하다가 화재로 숨진 여성 노동자들을 기리며 미국 여성노동자들이 궐기한 사건에서 비롯됐다. 이들은 불합리한 차별에 저항하며 지극히 당연한 권리를 요구했다. 구호 속 빵은 여성의 정당한 임금과 노동환경 즉 생존권을, 장미는 여성 참정권을 의미한다. 

우리나라는 2018년에야 비로소 여성의 날을 법정기념일로 공식 지정했다. 우리나라 여성들은 ‘빵’을 넉넉하게 확보하고 있을까? 성별임금격차 등은 물론이고, 창업 영역에서도 여전히 갈 길이 멀다. 지난해 12월, 중소벤처기업부에서 발표한 ‘2020년 벤처기업정밀실태조사’에 따르면 벤처기업 중 여성 창업자의 비율은 7.2%에 그쳤다. 

창업 환경이 여전히 여성에게 유리하지 않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113번째 세계 여성의 날을 맞아 젠더관점의 창업 생태계를 조성해 성평등 경제를 선도하겠다는 공간, '스페이스 살림'을 찾았다.

스페이스 살림 전경./출처=서울시
스페이스 살림 전경./출처=서울시

스페이스 살림은 서울시가 짓고 서울여성가족재단이 운영하는 여성창업허브다. 과거 50여 년간 미군기지 ‘캠프 그레이’가 있던 동작구 대방동 부지에 들어섰다. 이 곳에는 1963년부터 36년간 갈 곳없는 여성을 임시보호하는 서울시립부녀보호소가 있기도 했다. 분단과 가난으로 고통받던 여성의 역사가 깃들어 있는 곳이 여성 창업가가 희망찬 출발을 하는 공간으로 탈바꿈한 것이다. 

지난해 10월 완공됐지만 코로나19 때문에 정식개관은 연기되고 임시개관 상태다. 현재 90여개의 기업이 입주 및 입점했다. 이로운넷은 지난 4일, 스페이스 살림의 비전을 듣기위해 강현숙 스페이스 살림 운영단장을 만났다. 

다양한 분야 여성기업 입주... 시민에 다양한 라이프스타일 제안

강현숙 스페이스 살림 운영단장이 커뮤니티 공간인 마을서재에 앉아 있다.
강현숙 스페이스 살림 운영단장이 커뮤니티 공간인 마을서재에 앉아 있다.

스페이스 살림은 여성이 메인이라는 점에서 다른 창업공간과 차별화된다. 동시에 기업구성도 다양한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다. 강 단장은 “대표적인 여성기업들을 볼 수 있는 쇼윈도 같은 공간”이라며 “창업자가 단순히 공간을 이용하는 것 뿐만 아니라, 일과 생활의 혁신을 함께 이룩할 수 있도록 조성했다”고 밝혔다.

여성기업은 돌봄·식품 영역에 치중돼있을 것이라는 편견도 때로는 존재한다. 하지만 스페이스 살림에는 IT·법률지원·기술·유통 등 다양한 업종의 기업들이 입점했다. 성편견을 부수는 산 증인인 셈이다. 

스페이스 살림은 대표가 여성이거나, 성평등 관점에서 제품 및 서비스를 다루거나, 성평등 관점에서 조직을 운영하는 등 크게 3가지 요건을 기준으로 심사를 통해 입주기업을 선정한다. 업종을 가리지 않는다.  

입주기업은 사무실만 이용하는 것을 넘어 홍보관이나 상품판매 공간도 함께 열 수 있다. 대방역과 연결돼 있고, 누구나 손쉽게 오갈 수 있는 개방된 구조인 덕에 시민들에게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소개하고 새로운 창업 모델을 제시하는데 용이하다. 

가령 1층에 입점한 비건샵은 비건 라이프스타일을 시민에게 소개한다. 이미 소셜미디어에서 입소문이 나고 멀리서도 비건식품을 구매하기 위해 방문하곤 한다. 절대적으로 부족한 비건용품 수요를 채워주고 있다. 

강 단장은 “여성기업들이 비즈니스를 실현하면서 동시에 콘텐츠를 시민과 동료 창업가와 나누고 선순환 구조를 마련하는 공간”이라며 “시민들도 여성기업들이 추구하는 라이프스타일을 손쉽게 만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가 종식되면 더욱 많은 홍보관과 가게를 열어 시민들에게 선보일 계획이다. 

마을서재 전경./출처=서울시
마을서재 전경./출처=서울시

여성창업허브면서 복합문화공간을 표방하기도 한다. 스페이스 살림 한 가운데 크게 자리잡은 '마을서재'. 이곳은 시민과의 적극적인 소통을 상징한다. 입주기업은 물론이고 시민들도 자유롭게 방문해 독서·업무·간단한 대화 등을 할 수 있다. 세미나·워크샵 공간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강 단장은 마을서재를 소개하며 “이 곳은 시민의 즐거운 놀이터를 표방하는 스페이스 살림의 상징적인 공간”이라며 “개방된 구조라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외에도 음식 기반 모임이 가능한 ‘마을부엌’, 다양한 교육과 대규모 행사가 가능한 ‘다목적홀’, 야외공연을 즐길 수 있는 '옥상무대' 등도 마련했다. 여성 창업자와 종사자들이 지역 및 시민과 소통하는 공간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젠더관점 기반한 여성기업 맞춤형 지원

지난 2월 18일, 스페이스 살림 입점기업인 '월경상점;을 둘러보고 있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출처=서울시
지난 2월 18일, 스페이스 살림 입점기업인 '월경상점;을 둘러보고 있는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출처=서울시

스페이스 살림은 창업공간 운영 및 투자, 엑셀러레이팅 등에 있어서 ‘젠더관점’을 특별히 강조한다. 여성기업 맞춤형 지원을 위해서다. 강 단장은 “젠더관점이란 ‘여성은 테크에 약할거야’ 처럼 성차별적 렌즈를 쓰고 바라보는 시선을 걷어내기 위한 노력”이라고 밝혔다. 

그는 “가령 생리대 등 여성용품이나 육아·화장품 관련 제품의 경우 익숙치 않은 심사역이나 투자자가 저평가할 가능성이 있다”며 “이를 방지하기 위해 최대한 여성 심사역이나 젠더관점이 확립된 심사역과 투자자를 적극적으로 연결시켜주려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투자유치 지원 등에만 치중하지 않는다. 그는 “입주기업의 스펙트럼이 다양하다보니 획일화된 지원 프로그램으로 다 만족시킬 수 없는 현실”이라며 “기업들에게 수요조사를 먼저 받았다. 이를 바탕으로 각자 수요에 맞는 지원을 해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아이와 함께 일하는 공간 조성도... 일·생활 균형 실험
스페이스 살림은 일과 생활의 혁신이 가능한 공간을 표방한다. 단순히 창업하는 공간이 아니라, 여성기업 창업자와 종사자 개인의 삶도 ‘살리기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대표적으로 아이를 맡길 수 있는 시간제 돌봄시설 ‘영유아 돌봄교실’을 스페이스 살림 1층에 조성했다. 가까운 곳에 위치한 초등돌봄시설 우리동네 키움센터도 돌봄공백을 해소하는데 기여한다.

아동 동반 공유사무실을 조성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일과 돌봄의 균형을 추구하려는 양육자를 위한 공간이다. 상황에 따라 탄력적인 이용이 가능하도록 공유사무실, 집중업무공간 및 라운지 3개소로 나눠 조성했다. 아동을 돌보면서 업무가 가능하다. 

아동동반 공유사무실./출처=서울시
아동동반 공유사무실./출처=서울시

다만 강 단장은 “현실적으로 여성 종사자들이 아동돌봄을 많이 담당하고 있어 조성했지만, 여성만을 위해 제공된 공간으로 비춰지지 않았으면 한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여성만 돌봄을 전담해야하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아동공유사무실에 남성 회원을 모집하기 위해 적극 노력하고 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아동동반공유사무실은 일하는 공간과 노는 공간이 함께할 수 있을지 가능성을 실험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일하는 방식이 다변화하는 시대에 새로운 업무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강 단장은 “아동동반공유사무실을 운영하면서 장단점과 이용자 피드백 등을 기록으로 남겨 실증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작업을 할 것”이라며 “효과적인 모델을 확립해 널리 확산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스페이스 살림, 편견 뒤집을 수 있는 공간”
강 단장은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잡는 시작점이 경제에 있다고 주장했다. 경제 영역에서 성평등이 확립되면 다른 영역에서 성평등을 실현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는 특히 여성 창업을 익숙하게 받아들이는 사회적 분위기를 마련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라고 봤다. 그래야 다양한 여성기업을 발굴하고 지원하는 생태계도 쉽게 조성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스페이스 살림이 ‘가랑비에 옷젖듯 성평등을 학습하는 공간’이 되기위해 노력할 계획이다. 그는 “스페이스 살림에서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없는 여성이 기업 대표를 맡고, 그들이 드릴 등 공구를 다루는 모습을 쉽게 목격할 수 있다”며 “처음 방문했을 때는 생소하게 느낄 수도 있지만 자연스럽게 성평등을 배워가며 기존에 있던 성편견을 뒤집을 수 있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는 포부를 밝혔다. 

대방역에서 스페이스 살림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스페이스 살림과 입주기업을 소개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대방역에서 스페이스 살림으로 향하는 입구에는 스페이스 살림과 입주기업을 소개하는 문구가 적혀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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