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에는 ‘아카데미’라는 단관극장이 있다. 1963년 8월 영화관으로 등록된 이후 2006년 3월까지 40년 넘게 주민과 희로애락을 함께 한 공간이다. 원주에 있던 4개 단관극장 중 유일하게 철거되지 않고 남아 있다.

원주에 멀티플렉스 영화관이 들어서면서 1956년에 영화관으로 등록된 ‘원주극장’, 1962년에 생긴 ‘시공관’, 1967년 문을 연 ‘문화극장’ 등이 모두 문을 닫았다. 단관극장 마지막 영화 상영은 2006년 4월 30일 ‘시공관’에서 이뤄졌다. 이후 하나씩 철거됐고 이제 아카데미만 원형을 그대로 보존한채 남아있다. 

시공관은 건축학적·문화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이다. 영화관이 문을 닫고 2009년 철거되기 전까지 보존해야 한다는 지역사회 여론이 학계와 문화계, 언론계뿐 아니라 정치권에서도 높았지만 결국 지켜내지 못했다. 가치 있는 건축물을 보존하지 못했다는 자책, 영화관과 함께 존재했던 많은 사람들의 소중한 기억이 사라진 것에 대한 아쉬움, 문화적으로 세대를 잇지 못한 안타까움이 함께 존재했다.

강원도 원주에 있는 아카데미 극장. 1963년 8월에 문을 연 극장으로 국내에서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다. 제공=원주영상미디어센터
강원도 원주에 있는 아카데미 극장. 1963년 8월에 문을 연 극장으로 국내에서 원형이 보존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다. 제공=원주영상미디어센터

"원주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을 지키자!"

이러한 아픈 기억 때문일까?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을 지키려는 시민들의 노력이 마지막 힘을 내고 있다. 공공재원으로 아카데미를 매입하려는 계획이 불투명해지자 시민이 힘을 모아 시민의 자산으로 바꾸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

이러한 노력은 몇 년에 걸쳐 이어져 온 운동의 산물이기도 하다. 2015년 11월 문화극장이 철거돼 아카데미만 남게 되자 2016년 1월 원주시의회 차원에서 아카데미 극장을 보존하고 활용 방안을 연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같은 해 2월부터는 원주도시재생연구회와 원주영상미디어센터가 ‘아카데미 살리기’ 논의를 시작, 7월에는 ‘아카데미 극장 보존을 위한 원주시민포럼’을 진행하기도 했다.

2017년에는 ‘아카데미 극장의 시민자산화를 위한 연구프로젝트’가 시작했다. 2019년에는 아카데미 극장 활용을 포함한 문화재청 ‘근대역사 문화 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을 신청했으나 탈락했다. 당시 소유주는 아카데미를 철거하려했으나 다행히도 원주 시와 협약을 맺고 철거를 1년 간 유예했다. 이후 지난해 4월 원주시는 소유주와 ‘아카데미 극장 및 주변 토지 매매 협약식’을 체결했다.

이에 힘입어 8월과 11월에는 ‘안녕 아카데미’를 행사를 진행해, 닫혀있던 영화관을 14년 만에 시민에게 개방했다. 아카데미 보존을 원하는 문화예술계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사회적 경제 조직 등이 함께 영화 상영과 극장 투어, 연극공연, 콘서트, 체험 등 다채로운 행사를 진행해 큰 호응을 얻었다.

그럼에도 올해 또 다시 아카데미 극장 매입을 포함된 문화재청 근대역사 문화 공간 재생 활성화 사업 선정이 무위로 돌아가면서 난관에 봉착했다. 원주시와 소유주가 맺은 매매 협약은 활성화 사업 선정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강원도 원주 아카데미 극장에 남아 있는 영사기. 제공=원주영상미디어센터
강원도 원주 아카데미 극장에 남아 있는 영사기. 제공=원주영상미디어센터

'아카데미 극장 보존추진위원회 결성, 시민모금 시작'

아카데미 살리기에 적극적으로 활동해왔던 ‘원주영상미디어센터’와 ‘원주시창의문화도시지원센터’, ‘사회적협동조합 모두’ 등은 ‘아카데미 극장 보존추진위원회’를 결성하기로 하고 이달 22일 오후 4시 발족식을 가졌다.

원주시의회와 원주시도시재생지원센터, 사회적 경제 연합 조직인 원주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원주도시재생연구회, 중앙동도시재생주민협의체, 사회적협동조합 그림책도시, 강원아카이브사회적협동조합 등이 함께 한다.

원주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기 위해 지난 8월과 11월 '안녕 아카데미'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행사 기간 극장 안에서 이뤄진 공연모습.  제공=원주영상미디어센터
원주에 마지막 남은 단관극장인 아카데미 극장을 지키기 위해 지난 8월과 11월 '안녕 아카데미' 행사를 진행했다. 사진은 행사 기간 극장 안에서 이뤄진 공연모습.  제공=원주영상미디어센터

위원회는 첫 사업으로 ‘아카데미 극장 구하기 100인 100석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아카데미 극장 살리기에 가장 먼저 참여하는 시민 100명을 모아 1억 원을 모금하고 기부자를 극장 좌석에 새기기로 했다. 매입을 위해서는 한참 모자란 돈이지만 시민의 간절한 바람을 보여주기 위한 시작이다. 이달 말까지 진행하며 3월부터는 두 번째 기부 프로젝트를 진행할 계획이다.

가장 먼저 기부에 동참한 곳은 원주에서 지역을 소재로 다양한 콘텐츠를 만드는 사회적기업 ㈜낭만사다. 박승환·김지홍 대표는 “아카데미 극장 보존 가치에 뜻을 모으기 위해 기부를 결정하게 됐다”며 “잘 보존돼 문화단체 활용은 물론 원주시민에게 많은 볼거리와 추억을 제공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고 밝혔다.

변해원 사회적협동조합 모두 이사장은 “아카데미는 우리나라에서 원형을 보존한 가장 오래된 단관극장”이라며 “개인소유지만 6·25 이후 원주 재건과 발전의 상징이자, 많은 주민의 삶이 남아 있는 공간”이라며 보존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이어 “최근 관광 추세가 대규모 집단 관광에서, 소도시의 이야기가 담긴 곳을 소규모로 찾아가는 것으로 변하는 상황에서 아카데미 보존과 활용은 매우 의미가 있다”고 덧붙였다.

시민의 오랜 노력이 ‘사적소유’의 벽을 넘어, 자책과 아쉬움, 안타까움을 치유하고 미래세대에 물려줄 유산을 만들어낼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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