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제는 국내에서 특별법 상 설립근거가 있는 공제와 민법 32조에 근거한 공제로 구분해 운영되고 있다. 하지만 대상이 한정적이거나, 소비자(시민)가 주도하는 공제사업은 많지 않다. 국내 대표적인 협동조합인 소비자생활협동조합(생협)은 법안이 통과됐음에도 후속 조치가 나오지 않아 아직 공제사업이 시행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생협 공제 사업이 도입돼야 하는 이유와 해외에서 생협 공제 사업이 어떤 역할을 해왔는지 소개한다.

소비자생활협동조합(이하 생협)의 공제조합 설립이 난항을 겪고 있다. 지난 6월 생협의 주무부처인 공정거래 위원회는 현재의 생협법으로 소비자 피해예방이 곤란하다는 이유로 생협이 신청한 정관상 공제사업 추가를 불허했다.

이로 인해 2010년의 생협법 개정에도 불구하고, 생협의 공제조합 추진은 10년 넘게 한걸음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공제조합은 주식회사 형태의 보험회사와 달리 주주의 이익을 최대화해야 한다는 상호배반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지 않아, 조합원, 또는 보험서비스 이용자에게 가장 바람직한 형태의 보험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

제도 법령의 개선 방향을 고민함에 있어 해외 공제조합의 제도 발전 관련사례를 살펴보는 것은, 정부와 생협 등 논의의 참가자들이 건전한 토론을 주고받는 바탕이 될 수 있기에 캐나다의 사례를 살펴보고자 한다. 캐나다에서 협동조합 및 공제조합이 제공하는 공제보험 업계의 자산규모는 천억 캐나다 달러에 달하며, 가입자 수만 약 2천만명에 달한다. 이들이 캐나다 보험업계에서 차지하는 시장 점유율 합계는 약 20%에 달한다. 캐나다의 경우, 사회적경제 형태의 공제 서비스는 농업 협동조합 연합회가 소유한 코오퍼레이터즈 유한회사와 데자르뎅 신협이 제공하는 회원 공제 서비스를 제외하고는 공제조합의 형태를 띠고 있다. 가장 중요한 공제조합들에는 의료서비스 협동조합에서 시작한 에스에스퀴SSQ, 농민들이 주축이 되어 설립한 프로뮈띠엘, 그리고 공무원노조가 주축이 되어 설립한 라 카피탈이 있다.

공제조합이라는 제도가 처음 도입된 것은 19세기 캐나다 여러 주의 농민 공제회로부터 시작했는데, 당시 농민들은 일반 보험회사에 가입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상기후나 흉작 등 위험에 대비하기 위한 공제조합은 농민들에게 절실한 문제고, 각 주는 군 단위로 농민들이 공제회를 설립할 수 있는 입법으로 공제조합의 발전을 지원했다. 프로뮈띠엘이 이 시기 설립된 공제조합의 후신으로, 각 지역 단위 공제조합의 연합회 성격으로 운영되고 있다. 사회운동 성격으로서 공제회가 발전한 것은 20세기 중반부터의 일인데, 당시 의료 서비스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을 위해 의료서비스 협동조합을 만들면서 조합의 목적사업으로 추가된 에스에스퀴의 경우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의료 활동을 하던 의사가 시민사회와 협동조합계를 설득하여 시작되었고, 공무원 노조가 설립한 라 카피탈도 공무원들 자신들만을 위한 공제조합이 아닌, 당시 보험혜택에서 소외된 노동자들이 가입할 수 있는 공제조합으로 설립되었다.

이처럼 상호부조나 사회운동의 설립 취지를 바탕으로 설립된 캐나다의 공제조합들은 1990년대 들어 큰 전환점을 맞게 되는데, 그 배경은 전 세계적으로 일어났던 탈 상호화, 즉 공제조합 법인을 주식회사로 전환하여 인수 합병 및 보험 서비스 시장에서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는 흐름이었다. 공제조합들은 인수합병을 통한 규모화에 주식회사보다 불리한 입장에 놓여 있었는데, 공제조합들은 조합원이 아닌 외부로부터 자본조달을 하는 것도, 인수합병을 할 때 주식 상호 교환등의 기법을 사용하는 것도 불가능했으며, 경영자들이 받을 수 있는 보수에도 한계가 있었기 때문에, 캐나다의 많은 공제조합들도 탈상호화의 흐름에 동참하게 되었다.

그러나 농민들의 상호부조나 사회운동이라는 사회적 가치를 바탕으로 설립된 캐나다의 공제조합들은 사회적 가치를 우선하는 내, 외부의 이해당사자들이 공제조합 법인 유지를 원했기 때문에, 공제조합 형태를 유지하면서도 재정, 금융적 기법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를 적용하게 되었다. 공제조합이 금융그룹의 금융지주 역할을 하게 하면서 금융지주에 외부 자본이 참여할 수 있는 길을 연 것인데, 이런 방법을 사용해서 에스에스퀴는 퀘벡 노동조합 총연맹이 설립한 퐁드 드 솔리다리떼라는 연기금 펀드의 출자를 받아 공제조합 형태를 유지하면서 자본조달을 할 수 있었다. 라 카피탈 공제조합도 이와 같은 금융지주 법인화 과정을 거치면서 탈 상호화의 흐름에 저항하면서 자본조달 및 조합원들에게 필요한 보험 서비스 법인들을 인수해 나갈 수 있었다.

사회적 가치를 중시하며 탈상호화 흐름에 저항한 공제조합들은 일반 주식회사 형태의 보험회사들에 대비되는 뚜렷한 장점들을 가지고 있다. 이들은 각 지역사회와 긴밀하게 협력하며 도시와 농촌을 막론하고 각 지역의 사회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각 지역의 사회적경제 기업들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가 하면, 공제조합의 철학에 맞는 사회공헌 사업들, 즉 건강, 교육, 질병, 소외계층 지원 등에도 적극적이다. 캐나다의 주민들은 공제조합들을 단순한 보험 서비스의 제공자가 아닌, 생활공동체의 중요한 일부로 생각하고 있다.

한국의 생협은 소비자와 생산자간의 거래 활동이라는 경제활동을 수행하는 사업체일 뿐 아니라, 사회운동을 이끄는 시민들의 결사체이기도 하다. 캐나다의 공제조합이 발전하는 과정에서 사업체로서의 성격과 사회운동의 중심으로 역할을 하면서 발전해 왔던 과정을 보면, 생협이야말로 한국에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안전망을 제공하는, 사회운동으로서의 공제조합을 육성하는 데 있어 가장 걸맞은 못자리라고 본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는 다양한 고려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한국에 그동안 없었던 조합원이 소유하고 사회적 가치를 발생시키는 사회적경제 형태의 공제조합을 도입함에 있어, 소관 부서 입장에서는 여러 가지 가능성을 검토할 수밖에 없는데, 그동안 공정위에서 제기해왔던 여러 우려에 대한 해답을 제시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차일피일 생협법 취지의 구현을 위한 조치를 미루고 있는 공정위의 모습은 책임있는 자세라 할 수 없다. 공정위가 하루빨리 생협법 개정에 따른 공제사업 인가 기준을 제시하기를 바란다.

김진환 몬트리올 HEC 대학교 박사과정
김진환 몬트리올 HEC 대학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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