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경제는 21세기의 중요한 시대적 패러다임으로서 전 세계에서 주목받고 있다. 특히 유엔에서는 지구 차원의 공동노력을 목표로 2013년에 사회연대경제 유엔테스크포스(UNTFSSE)를 설립했고, 지속가능발전, 성평등, 좋은 일자리(decent work), 적극적 시민력(active citizenship) 등을 촉진하기 위한 전략으로 인식한다.

이 기구에는 국제노동기구(ILO)를 비롯해 유네스코나 세계보건기구, 세계은행 등 유엔 산하 기구들과 사회적경제 연구자 네트워크(EMES), 국제사회적경제협의체(GSEF), 연대경제촉진 대륙간 네트워크(RIPESS) 등 국제기구가 참여하고 있으며, 명실상부 지구사회의 공동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국제사회에서 관심받는 아시아의 사회적경제

이러한 국제적 흐름에서 최근 증가하고 있는 관심사 중 하나가 아시아다. 사회적경제가 보편적으로 유익한 모델이면, 인구가 가장 많은 아시아 지역에서 그 효과가 증명돼야 하는데, 이에 관한 지식이나 정보가 지구사회에서 아직 부족한 것이다. 또한 사회적기업을 제도화했고, 지자체 수준의 혁신도 활발한 한국의 경험은 긍정적과 부정적 측면 모두를 포함해 지구사회에 대해 더 많은 지적 기여가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모으고 있다.

​이러한 관심과 기대를 바탕으로 2019년과 2020년에 걸쳐서 ILO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서울대학교 그리고 아시아연대경제 협의회(ASEC) 멤버가 협력해 아시아 각국의 제도 현황과 과제를 정리하는 국제비교연구를 추진했다.

특히 이 연구는 기초적이고 포괄적인 이해 촉진을 목표로 각국의 민법, 상법, 개별법 등에 의해 제도화되는 기본적인 법인 유형부터 정책을 통해 수립, 등록, 지정되는 다양한 형태의 조직들을 파악했다. 이 속에서 각 조직의 ‘사회적경제 관련성’ 수준에 따라 국가별 조직지형(organizational landscape)을 그려보았다. 이하 이 연구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아시아 각국의 다양하고 흥미로운 조직 제도

구체적으로 아시아 6개국을 대상으로 총 180개의 법제도·정책을 조사했고, 각국의 조직지형 패턴을 도출했다.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 각국에서도 사회적경제와 깊이 관련된 흥미로운 조직제도가 많이 존재하고, 제도의 발전이나 제도 간 시너지에 관해서도 다양한 가능성이나 과제를 찾아볼 수 있다. 우선 각국의 기본적 특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일본: 법인체계와 민관협력 정책에 관한 광범위한 개혁을 배경으로, 비영리섹터, 영리섹터, 마을만들기 조직 등의 각 영역·섹터의 균형과 협업을 추구하는 구조.

· 중국: 농촌(협동조합과 신용조합)과 도시(재단, 비기업민간단위, 공공서비스센터 등)에서 성격이 상이한 이중적 구조. 양자 모두 급속하게 성장하고 있음.

·필리핀: 영리와 비영리를 포함한 통합적 법인법에 의한 조직제도의 유연성 있는 관리와 조직 설립이나 수익 사업에 대한 높은 자율성의 보장. 노동조합, 소규모기업, 풀뿌리 민중조직(PO), NGO 등 다양한 조직체에서 사회적기업 운동이 전개됨.

· 말레이시아: 사회적경제의 기본 형태(협동조합과 재단법인)가 시민사회나 영리섹터 등과 구별되면서 사회적기업이 대안·혁신적 조직으로서 등장하고 있음. 정부기구와 공사 등 공적 섹터의 개입과 민·관 연계도 활발함.

· 인도네시아: 주민 사이의 연대를 추구하는 문화적 토양을 바탕으로, 마을·지역사회 기반조직을 지원하는 각종 민주적 금융조직(각종 재단, 마이크로 파이낸스, 샤리아(이슬람) 은행 등)의 발전. 경제조직의 98%가 비공식조직(마이크로조직)으로 구성됨.

· 한국: 강력한 주류 조직군의 존재(인증·예비 사회적기업, 일반/사회/개별 협동조합, 마을기업, 자활기업 등)와 이들이 종합적/개별적으로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구조.

​다음으로, 유익한 시사점을 가진 몇 가지 제도 유형이나 섹터를 소개한다.

첫째, 일본의 비영리 법인제도다. 일반 사단법인은 2인 이상으로 자유롭게 설립할 수 있고, 영리·비영리의 모든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보편화했다. 이 중 인가를 받으면 세제 우대를 받는 공익사단법인으로 승격된다. 또한 이들과 별도로 NPO법인제도(10명 이상으로 설립, 민주적 운영)를 유지하면서 시민참여와 지역사회에서의 민관 협업의 촉진을 장려하고 있다.

둘째, 필리핀의 법인법(Corporate Code)이다. 영리와 비영리를 포함해서 법인의 등기를 전체적으로 간소화(등록제도)하면서 민주적 운영 또한 대부분의 조직에서 기본원칙으로 적용된다. 비영리 섹터에 관해서는 규모에 따라 중소규모의 NGO법인과 풀뿌리 규모의 민중조직(People’s Organization)으로 구분되며, 수익 사업의 실행 여부는 조직의 정체성이 아니라 자율적 결정과 회계상의 문제로서 유연성 있게 제도화되고 있다.

셋째, 필리핀,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의 통합적인 협동조합법인 제도다. 단일 법률 아래 8~20개 정도의 사업 분야가 규정되고 있으며, 중소규모의 사업 수행이나 지역·업계의 연대촉진 방법으로서 통합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최소 설립 인원수에 관해서는 차이가 있다(필리핀 15명, 인도네시아 20명, 말레이시아 100명).

넷째, 인도네시아의 마을소유기업(BUM Desa)이다. 행정의 기층단위(마을)에서 설립되며, 마을·주민의 경제적 자립이나 사회발전, 주민참여 등을 목적으로 도입된 제도이다. 조직의 목적, 정체성, 지원정책 등이 수립되고 있으나 구체적 조직운영방법이나 회계, 법적 지위 등에 관해서는 아직 제도화가 미흡한 상태이다. 다만, 이를 효과적, 혁신적으로 활용하기 위한 전략이 재단법인 등에서 등장하고 있다.

이밖에도 필리핀의 빈곤계층 기반 사회적기업(SEPPS), 말레이시아의 연방토지발전기구(FELDA)와 연계된 개척민 협동조합, 저소득층에 대한 금융서비스를 목적으로 운영되는 이슬람 전당포(Ar Rahnu), 중국의 커뮤니티 서비스센터(社區服務機構) 등도 아시아의 흥미로운 조직 제도들이다.

인도네시아 마을소유기업(BUM Desa)이 운영하는 커뮤니티 식당(왼쪽)과 폐식용유를 원료로 하는 관광버스(오른쪽). 100명 이상의 마을주민을 고용하고 있다.

​아시아 사회적경제의 공통적인 발전 방향

다각적인 제도 비교를 통해서 이번 연구에서는 4가지 제도 발전 방향을 제시했다.

· 주류화 전략: 소규모이지만 파급력 있는 중심적 조직(군)을 제도화하는 전략. 사업체 규모의 고용의 확대는 물론, 파급 효과를 통해 대중적 인식·관심을 향상시킨다.

· 전환 전략: 사회적경제 관련·연계 조직군의 혁신적 운영이나 제도·정책 간의 상호 보완적 발전을 장려하여, 사회적경제의 다양화, 다원화, 제도지형의 공진화를 지향한다.

· 지역사회 전략: 기층 차원의 조직제도 정비와 연대 촉진을 통해 인간적 존엄성의 보장이나 공동체의 회복 등 사회적경제의 본질적 가치를 로컬 차원에서 구현·확산한다.

· 시민사회 전략: 시민사회조직의 제도 정비와 직·간접적 지원에 의한 각종 서비스 사업·활동 혁신을 통해 사회적경제의 장기적 성장 동력을 강화한다.

위 전략은 아시아 각국의 공통적인 성장 배경이나(산업성장 우선의 권위적 국가모델에서 민주적, 시민적 모델로의 변화) 사회문화적 전통(지역사회 차원에서 상부상조적 삶을 지향하는 가치관 등)도 고려하면서 사회적경제의 발전을 거시적으로 전망한 것이다. 또한 모든 전략을 동시에 추진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을 지향하면서 각 국가마다의 효과적 기회를 찾거나 약점을 보완하는 것을 의도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보면 한국 사회적경제의 경험은 특히 주류화 전략과 전환전략에 관해서 의의 있는 시사점을 아시아 각국에게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동시에 지금까지의 주류화 전략과 그 파급 효과(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 제정과 그 이후의 정부, 지자체, 민간 차원의 제도, 정책, 지원수단의 발전과 의식·논쟁 확산 등), 산발적으로 나타나는 전환 전략(대기업의 사회적가치 프로그램 확산, 민관협업이나 협치의 발전 등)의 심층적 동태에 대한 성찰과 창의적 연계가 현재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과제다.

아시아 각국은 한국의 모델을 배우면서, 이러한 발전적 제도 논의에 향후 보다 주목할 것으로 보인다. 한편, 지역사회 전략과 시민사회 전략에 관해서 한국은 아시아 각국으로부터 배우거나 공동으로 개선 방향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 이는 반대로 보면 지역사회의 제도 디자인이나 시민사회·비영리섹터 관련 법제도의 개선을 통해 사회적경제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기회가 한국에 충분히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우라 히로키 서울대학교 사회혁신 교육연구센터 수석연구원.​
미우라 히로키 서울대학교 사회혁신 교육연구센터 수석연구원.​

 

 

 

 

 

 

 

 

 

 

※이 글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시민경제연구유닛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릿지(Issue Bridge)'에도 게재됐습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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