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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물건들 대체로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쓰시던 물건들이 주로 많이 들어왔어요. 요새 나오는 것들이 좋을지 몰라도 추억이 담긴 것들은 버리기 어렵거든. 아버지가 월남 갔다가, 사우디 중동 갔다가 사온 것들도 있어요. 아버지나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서 기억하려고 고치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요.”

누군가의 소중한 추억이 담긴 물건을 마법처럼 고쳐준다. 세운상가의 베테랑 장인들이 뜻을 모아 설립한 전자제품 수리전문 수리수리협동조합이 그 주인공이다.

작년 수리워크숍에 40년 된 전축의 수리를 의뢰한 조원배씨는 어릴 적 아버지와 함께 들었던 전축을 이제는 아내와 함께 들을 수 있게 되었다며, 추억이 깃든 귀한 물건을 정성껏 수리해준 데 대해 만족스러워 했다.

수리수리협동조합은 아무 거나 고쳐주지 않는다. 고쳐야 하는 이유가 있는 추억이 담긴 물품을 다룬다.

“조합을 만들기 전 서울시에서 진행한 수리수리얍을 했었는데, 그땐 사연 있는 물건들만 신청을 받았었어요, 협동조합을 만들고 나니까 다양해지더라고. 사연이 없다고 해서 안 받을 수는 없는 거고. 알고 면 기계들이 사연이 없는 게 없죠. 오래 되었으니까 대부분 사연이 있죠. 오래되다보니까 수리할 데가 없는 거예요.”

이 이사장은 예전에는 전파사나 AS센터가 있었지만, 지금은 수리하고 싶어도 수리를 맡길 곳이 없다고 말한다. 추억만큼이나 오래된 연식을 자랑하는 전자제품들의 수리를 맡길 수 있는 곳은 흔치않은 게 현실이다.
 

수리수리협동조합 이승근 이사장

이 이사장은 수리수리협동조합의 최 연장자다. 올해로 55년차 빈티지 진공관 오디오등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수리 장인이다.

“세운상가 짓기 전부터 있었어요. 그땐 상인들이 개천가 옆에다가 좌판 놓고 길거리에서 팔았어요. 세운상가 지어지고서 이리로 들어왔지.”

장인들이 30년 이상 자리를 지켜올 수 있었던 만큼 흘러간 세월을 그대로 보여주던 낡은 세운상가는 다시 새로운 옷을 입었다. 서울시의 도시재생을 위한 거버넌스 사업 ‘다시, 세운’ 덕이다.
 

세운상가의 전경

1960년대에 건축가 김수근씨의 제안으로 서울의 랜드마크를 건설하는 계획이 수립되고 세운상가는 도심 한복판에 세워졌다. 세운상가는 1980년대까지 전기, 전자의 메카로 승승장구 했지만, 점차 그 명성을 잃어가던 세운상가에 철거계획이 수립되고 현대상가가 철거됐다.

이후 철거계획은 백지화 되었으나, 잦은 정책변경과 시대상의 변화로 세운상가의 쇠락을 막을 순 없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2014년 “세운상가를 제조업을 기반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 거점으로 다시 살리겠다”고 하면서 회생의 기운이 돌았다.

“큐브를 지원해줬어요. 서울시에서 세운상가에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시더라고.”

이 이사장은 세운상가를 살리려는 서울시의 노력은 세운상가를 가장 잘 아는 베테랑 상인들을 지원하는 일부터 시작했다고 설명했다.

세운상가의 거버넌스운영팀 ‘세운공공’은 2015년 하반기부터 추억과 사연이 있는 전자제품을 고쳐주는 프로젝트인 ‘수리수리얍’워크숍을 3차례 진행했다. 이 과정을 지나며 취지에 공감하는 수리 장인들이 뜻을 모았다. 2017년 3월, 드디어 수리수리협동조합이 출범했다.
 

서울시에서 지원받은 수리수리협동조합 큐브사무실의 내부 모습

수리수리협동조합은 세운공공과 함께 청음회와 나만의 스피커를 만들어 볼 수 있는 워크숍, 세운상가 기술장인과 팹랩서울이 함께하는 청소년메이커 양성 교육 ’손끝기술학교‘를 진행하고 있다.

“주로 중년들이죠. 진공관에 관심 있는 사람들 대부분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거든. 젊은 친구들은 진공관을 잘 몰라요. 한 땜 한 땜 손으로 직접 배선줄로 연결하고, 전기 꽂아 소리나는 과정을 겪는 건 신기한 일인데. 이런 제품들은 1950년대 제품입니다. 다 진공관이에요. 소리 오디오의 원조죠.”

50년이 넘게 한 공간에서 진공관만 다루면 지루할 법도한데 기계들을 들고 설명하는 그의 눈은 여전히 빛났다.

수리수리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은 모두 30년 이상 세운상가에서 지낸 장인들이다. 그 시작은 '우리에게 소중했던 것들을 잊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여기서만 50여년입니다. 조합원들은 다 후배들인데...떠날 때 보람 있고 싶죠. 제대로 뭔가 해놓고 나가고 싶은 마음이라고 해야 하나. 워낙 세운상가를 좋아하기도 하고. 처음에는 조금 우리가 망설엿는데. 과연 제대로 될까하고. 그런데 지금은 좀 안정이 되었어요. 자리가 바뀌었다해서 크게 불편하거나 그런 것은 없어요.”
 

수리수리협동조합에서 진행하는 워크샵 안내 포스터

협동조합은 이미 ‘다시세운’의 미래를 생각하고 있다. 이 이사장은 “최초로 여자 기술자를 양성하고 싶은 마음에 조금만 더 하면 창업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을 가진 사람을 지원해 달라고 했는데 쉽지는 않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들이 보여주는 새로운 시도와 끝맺음을 준비하는 준비가 바로 장인정신인 듯하다. 또한, 조합이 속한 지역사회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해 노력해야한다는 협동조합의 원칙도 실현하려는 모습이 읽혔다.

“잘 될겁니다. 기술자들은 단순해서 하나를 꾸준히 외골수처럼 하는 사람들이예요. 바람은 서울시에서 세운상가에 관심을 많이 가지고 지원 해주면 좋겠고, 수리조합에도 관심을 많이 가져주면 좋겠어요. 관심이 제일 중요하니까.”

“하는 일이 더 많아 질 것”이라는 자신감을 나타내는 이 이사장은 수리수리협동조합이 추구하는 목표는 단순하다고 말한다.

“앞으로도 수리를 잘 하는 것입니다. 오랜 기간 한 길을 걸어온 장인들의 꾸준함을 놓치지 않는 것, 소중한 추억들을 다시 고치고 살리는 장인의 모습을 잃지 않는 것이죠.”

 

글. 김소예 서울시협동조합지원센터 청년기자
rlathdp1215@naver.com

라현윤 이로운넷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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