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로운 BOOK촌] “아픔, 치열한 삶 뒤의 그림자...제거 아닌 영혼의 반려”

 

잘 알려진 문법은 결말을 쉽게 예상할 수 있고, 안정감이 있지만 지루하다. 반대로 문법을 파괴하는 것은 알 수 없는 설렘과 더불어 속 시원한 감정의 보상을 받는다. 대신 예측할 수 없는 결말 때문에 불안하고 의심스럽다. 획기적인 기획이 많은 의심을 살 수밖에 없는 이유다.

한 사람의 작가가 매월 한 권씩의 책을 써서 일 년에 열 두 권의 책을 출간하겠다는 기획. 그만한 분량의 글을 미리 써놓고 매월 나누어서 책을 내면 되지 않을까? 쉽지 않은 일, 본적 없는 기획이다. 그래서 불안하고 의심스럽다.

텍스트를 만지며, 콘텍스트를 생각한다.

‘월간 정여울의 두 번째 콜록콜록’(콜록콜록)을 넘기며 먼저 든 생각, 문자만으로는 소통의 도구에 부족함을 느끼는 작가의 ‘텍스트’ 그 자체였다. ‘콜록콜록’에서 제공하는 사은품을 작가가 쿠바 여행에서 찍은 사진과 짧은 사연들로 구성한 것도, 꼭지마다 들어간 회화 작품들이 차지하는 비중도 적지 않아서다.

작가는 아픔이라는 감각에 천착한다. 그것은 그저 신체적 고통만을 의미하진 않는다. 삶의 마디마다 고인 외로움이고 단내 나는 치열함 뒤에 놓인 그림자다. 작가는 아픔에 대한 치유의 답으로 사려 깊은 공감을 전한다. 꼬이고 얽힌 내면의 매듭을 섣부른 처방보다는 심리학이라는 도구를 빌어 가만히 지켜봐 주는 지혜를 권한다.

“내가 상처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상처가 나를 소유하고 있음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우리는 상처가 단순한 ‘제거’의 대상이 아니라 오히려 ‘평생 함께 살아가야 할 영혼의 반려’임을 깨달을 수 있다.” (127p.)

작가는 상처를 받는 피해자는 물론이고 상처를 주는 가해자 또한 트라우마의 주체일 수 있다고 말한다. 실수이든 의도치 않은 가해이든 의도와 관계없이 발생한 결과의 경우 가해자도 트라우마의 대상일 수 있다는 것이다.

피해자이든 위의 가해자이든 이 상처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처방이 재미있다. 슬픔이다. 의무감으로서 치유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슬퍼할 수 있는 자유가 오히려 자연스러운 극복의 시작이라는 것이다.

◇ 월간 정여울 두 번째 ‘콜록콜록’-누군가 조금은 혹은 아주 많이 아파하는 소리 = 정여울 지음, 천년의상상 펴냄, 175쪽/9,900원.

 

글. 모성훈 이로운넷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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