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바는 1961년 사회주의 선언 이후 약 60년간 사회주의 체제를 이어오고 있다. 쿠바는 국가를 중심으로 사회연대경제 조직을 형성하고 지원하는 형태로, 사회주의 체제에 사회연대경제를 접목했다. 또 다른 사회주의 국가인 북한도 국가 주도적 방식으로 사회연대경제를 이어왔다.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적경제는 어떻게 발전하고 있을까. 대표적인 사회주의 국가 중 하나인 쿠바의 사회연대경제 움직임을 통해 사회주의 국가에서 사회적경제 발전에 대한 시사점을 논의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하나누리 동북아연구원은 지난 16일 제8회 라선포럼 '쿠바의 사회연대경제로부터 배운다'를 개최했다. 이번 포럼에서는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장이 '쿠바의 사회연대경제, 북한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를 주제로 강연했다.

지난 16일 열린 제8회 라선포럼 강연에 나선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장 모습. 
지난 16일 열린 제8회 라선포럼 강연에 나선 김창진 성공회대 사회적경제대학원장 모습. 

닮은 듯 다른 ‘쿠바’와 ‘북한’... 농업 위기로 한계 나타나

쿠바와 북한은 같은 사회주의 국가지만 ‘사회개방도’면에서 차이가 크다. 쿠바는 수도 아바나를 비롯해 많은 관광 도시가 있으며 외부 여행자에게 개방적이다.

사회연대경제 발전 측면으로는 공통점이 있다. 두 곳 모두 협동조합이나 마을 공동체가 주민들의 일상을 구성하는 익숙한 단위로 존재해왔다는 것. 미국 등 국제사회가 쿠바와 북한을 봉쇄하면서 주민들의 공동체성이 강하게 유지됐다.

사회연대경제가 국가 주도로 운영되면서 경직성이 높고 비효율적이라는 점은 두 국가가 공통으로 가진 한계다. 김창진 교수는 이런 한계는 쿠바와 북한의 농업과 식량 문제와도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식량 문제는 주민들의 불만을 키워 정치적 위기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문제다. 두 국가는 농업의 특수성에 대한 이해 없이 대규모 공업화 정책을 농업에 그대로 적용해 위기를 맞았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대규모 영농은 특별한 작물 한 두 개를 수백만 평에 재배하는 방식을 이용하는데, 이 과정에서 소농의 협동성과 자율성이 죽는다”며 “이는 결국 식량 위기에 대응하는 역량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쿠바, 협동조합·민간 자영농에 농지 경작권 부여... 이후 다양한 협동조합 등장해

1993년 쿠바 정부는 대규모 농장경영의 실패를 인정하고 소규모 영농 방식을 도입했다. 2008년 2012년 두 번에 걸쳐 토지개혁을 했고, 20개 이상 법령과 결의안을 통과시켰다. 핵심은 국가가 독점해 온 국유지 이용권을 협동조합, 개인농장, 국영기업 등에 배분하는 것이다. 협동조합과 민간 자영농에 농지 경작권을 부여하고 자율적으로 소형 농업 협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게 허가했다.

김 교수가 2017년 쿠바 방문 때 만난 소형 농업 협동조합 '루카네 농장'. 조합원 5명으로 구성된 루카네 농장은 아바나에서 작은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출처=김창진 교수(사진 김성보)
김 교수가 2017년 쿠바 방문 때 만난 소형 농업 협동조합 '루카네 농장'. 조합원 5명으로 구성된 루카네 농장은 아바나에서 작은 식당도 운영하고 있다. /출처=김창진 교수(사진 김성보)

쿠바의 정책적 변화 이후 새로운 소농 협동조합이 등장했다. ▲협동생산기초단위(UBPCs, Basic Unit of Co-op. Production)는 대규모 국영농장을 분할 배분해 조합원이 소유 및 운영할 수 있게 만들어진 농업협동조합이다. 조합원은 농기계 및 장비를 소유할 수 있고 정부로부터 장기저리로 자금 대출이 가능하다. 조합 단위의 소규모 농작으로 종 다양성을 유지한다.

▲신용·서비스협동조합(CCS, Credit & Service Co-op.)은 쿠바 농업 분야에서 가장 높은 생산성을 내는 조합이다. 자영농들이 국가로부터 신용대출 및 농업 서비스를 받기 위해 결성한 소농연합체로 농기계 등 장비를 공동 구입해 이용한다. 국가 계약 초과 생산물은 시장가격으로 자유롭게 판매할 수 있다.

쿠바 사회연대경제는 농업 분야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2012년 비농업 부문에서도 협동조합 설립이 허가됐다. ▲스테인드글라스 복원 협동조합은 도시에서 나타난 새로운 형태의 제조업 협동조합이다. 청년 여성 노동자 3인이 설립했다. 조합은 아바나 내 역사 문화 유적지의 손상된 스테인드글라스를 보수한다. 문화유적 유지·보수 작업을 담당하는 '아바나역사협회'와 계약을 맺어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한 상태다. 이 외에도 제조·서비스 분야에서 5명 이하가 모여 식당을 운영하거나 수공업 제품을 만드는 협동조합 등 다양한 종류의 협동조합이 확산하고 있다.

김 교수는 2017년 쿠바를 방문해 소형 협동조합 사례들을 관찰한 경험을 전했다. 그는 “쿠바의 수도 아바나에서 농촌으로 가는 길에 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이 있는데 한국 마트와 다를 바 없다”면서 “시장경제에 적응하기 위해 많이 준비했다는 인상을 받았다”고 했다.

아바나 근교에 위치한 소형 농업협동조합 '라파엘 형제'가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의 모습. /출처=김창진 교수(사진 김성보)
아바나 근교에 위치한 소형 농업협동조합 '라파엘 형제'가 운영하는 농산물 직판장의 모습. /출처=김창진 교수(사진 김성보)

자주적 협동조합 발전 가능성 보여준 성과

쿠바는 2010년부터 본격적으로 협동조합이 민간의 자주적 경제 활동으로 허용됐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국가의 직접적 통제를 벗어나 자주적 협동조합의 발전 가능성을 보여준 큰 성과”라고 평가했다.

물론 한계도 있다. 아직은 자율적인 소농 협동조합 등이 국가가 주도적으로 경영하는 사회연대경제를 보완하는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주민들의 자주적 협동조합이 국영 조합을 보완하는 정도가 아니라 국영 조합과 경쟁하고 상생할 수 있는 수준으로 격상돼야 한다”고 조언했다. 과거 국가 주도 영농 사업으로 소농과 협동조합을 경시해 나타난 비효율성, 경직성 등의 문제를 반복하지 않아야 한다는 뜻이다.

김 교수는 사회주의 국가에 널리 받아들여지고 있는 농업협동조합을 농업 생산뿐만 아니라 복합경제·문화기업으로 발전시키는 방안도 제안했다. 그는 "과거 동독 지역에서는 농업협동조합이 승마장, 호텔 등을 운영하며 도시에서 농촌으로 휴가 온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비스를 제공했다"며 "쿠바와 북한도 이런 형태의 농업 겸 문화 복합기관으로서의 협동조합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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