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굉장히 불쾌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합니다.”

논란이 되고 있는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이하 한기협) 내홍 사태에 대해 변형석 한기협 전 상임대표가 이 같은 심경을 전했다. 그는 “이런 일이 사회적경제 내에서 벌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해가 안된다”고 말했다.

사건은 박진범 현 상임대표가 변 전대표를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고소하면서 불거졌다. 법인 재산 관련 일체 행위는 총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데, 변 전 상임대표 재임 시절 이 절차를 거치지 않고 공제사업단을 분리독립시켰다는 것이 고소의 내용이다. 한기협 집행부는 분리된 공제사업단에 대해서도 부당이득금 청구 민사소송을 제기했다.

지난 16일 현 집행부에 반대하는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정상회를 위한 비상대책위원회(공동위원장 권운혁, 민동세, 하덕천)’가 발족했다. 비대위는 “2020년 총회 및 상임대표 취임 이후 심각한 파행을 맞고 있다”며 “박진범 상임대표는 사퇴하라”고 주장하면서, 갈등이 표면으로 부상했다.

<이로운넷>은 2016년 초부터 올해 초까지 상임대표를 지냈으며 이번에 고소를 당한 변형석 전 대표와 인터뷰를 했다. 

다음은 변형석 한기협 전 상임대표와의 일문일답.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전 상임대표.  /사진=이로운넷 자료사진
변형석 한국사회적기업중앙협의회 전 상임대표.  /사진=이로운넷 자료사진

Q. 현재 심경은.

▶이 모든 상황이 도저히 수긍, 납득, 이해되지 않는다. 굉장히 불쾌하고, 한편으로는 서글프기도 하다.

한기협 상임대표라는 자리는 대단한 이권이 있는 자리가 아니다. 상임대표는 무급봉사직인데다가, 나의 경우 판공비로도 법인카드조차 쓴 일이 없다. 내가 처음 상임대표로 취임하던 시기에는 조직의 부채만 1억원 가까이 있을 정도였다. 이런 상황을 이사들 및 사무국과 애써 회복했다. 또한 당시만 해도 활성화되지 않았던 자조기금(현 공제기금)를 만들었고, 민관 거버넌스도 회복시켜 상호 협력적인 정책 아젠다 생산이나 관련 발언을 하는 단계로 끌어올렸다.

그동안의 고생을 알고 있고, 그 과정을 같이 해온 사람들이 어느 순간 갑자기 돌아서 시비거리를 찾더니 문제를 제기했다. 조직 내부에서도 아니고, 법적인 문제로 만들어 고소했다. 이런 상황이 납득되지 않는다.

나를 고소해서 형사처벌을 받으면 상대방은 무슨 실익이 있는지 모르겠다. 그렇다면 대체 대체 누가, 왜 이 일을 하는 것인지, 이런 방법으로 이권을 가져가면 무엇이 생기는지도 이해되지 않는다.

Q. 현장 사회적기업들에게 ‘한기협’은 어떤 의미인가.

▶한기협은 2007년 사회적기업 육성법이 제정되고, 1차 인증받은 사회적기업이 등장하면서 2008년 만들어졌다.

한기협은 ‘당사자 조직’이라고 표현하는데, 현장 사회적기업이 모인 네트워크 조직으로는 최초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이전에 생협이 있긴 했지만, 전국 현장 기업들 간 연대를 위한 조직은 한기협이 처음이다. 회원사 수도 현재까지 가장 많고, 전국에 지역 단위로 지부, 지회를 포함해 매우 광범위하게 결성돼있다.

사회적기업은 정부 지원 이후, 그다음 단계로 기업 간 연대와 협력을 통해 시장에서 승부를 봐야 한다. 이런 차원에서 연대조직은 중요한 의미다. 한국뿐만 아니라 유럽이나 미국도 기업 간 연대를 통해 규모화한다. 또한 새로운 돌파전략을 만들거나, 상호 거래를 통해 각 부문(섹터)을 키운다. 이를 위해 기업간 연대와 협력은 매우 중요한 단초를 만드는 작업이다.

지금은 사회적경제를 정부가 주도하다 보니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 등 공공에서 주요 역할을 수행하지만, 이런 분위기는 점차 민간의 연대조직으로 이전, 이관될 것이라고 본다.

Q. 공제사업단은 사회적기업에 어떤 역할을 했나.

▶사회적기업들은 자금조달이 어렵다. 은행권 등 기존 금융권에서는 풀어낼 수 없었다. 회원사끼리 돈을 모아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평가해 대출하자는 의견이 있었지만 시작하지 못하고 있었다. 누군가는 돈을 내야 하는데, 기금을 출연할 여력이 있는 기업도 많지 않았고, 있더라도 결정하기 쉽지 않았다.

공제 방식은 기업이 모여야 가능하다. 이때 ‘협의회’는 중요한 배경이 될 수 있다. 협의회 입장에서도 회원사들을 돕는 차원에서 공제 기능이 필요하다. 논의 끝에 한기협이 주도하는 공제, 자조기금을 만들자는 의견이 모여 시작한 것이다.

공제사업단은 실제 현장 기업에도 도움이 됐다. 현장 기업들이 낸 기금만 50억원 정도였고, 추가로 연계된 정책 자금을 합치면 2019년에는 90억원이 넘었다. 지금은 120억원 정도의 기금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은 사회적금융에 대해 많이 언급되고 있어서 작아 보일 수 있다. 하지만 4~5년 전만 해도 사회적기업에 사회적금융으로 공급되는 돈이 일년에 몇억원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공제기금은 중요한 자금 공급원 역할을 했다. 앞으로 더 규모화햐야 한다고 생각한다.

Q. 공제사업단을 왜 분리독립 했나.

▶만약 100억원 정도의 돈이 있다고 가정해 보자. 이것이 우리(한기협) 자산이면 통장에 넣어두면 된다. 하지만 이 돈은 다른 사람에게서 빌린 돈이며, 다른 곳(기업)에 빌려줘야 하는 돈이다. 빌려주는 대상은 사회적기업이다. 다시한번 정리하면 사회적기업에 빌려주는 용도로만 사용할 수 있는 100억원이라는 돈이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돈을 기업에 빌려 줬는데, 만약 상환되지 않을 경우다. 상환되지 못한 돈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법적으로 따라가 보면 법인(한기협)이 책임져야 하는데, 조직 내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지에 대해 고민이 있었다. 그래서 처음부터 공제사업단은 일정 기간 인큐베이팅 하다 독립을 시키는게 맞다고 봤다.

보통 해외에서도 공제기금은 처음에는 당사자 조직들이 만들고, 보통 금융기관에 운영을 위탁한다. 앞서 말한 책임성에 대한 문제도 있지만, 전문성도 문제다. 당사자 조직(한기협)이 금융 전문 조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현 정부에 들어와서는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에 대한 담론도 많아졌다. 때문에 공제 자조기금 역할을 하는 사회적금융 중개기관으로 독립 시키는 것이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Q. 공제사업단이 분리되고 난 뒤 현장 사회적기업에 달라진 점은.

▶법인이 새롭게 됐으니 계좌가 바뀌었다. 정책상의 변화는 거의 없다. 처음의 취지 그대로 운영 해야하기 때문에 바뀐 것은 없다. 오히려 독립된 조직이 자체적으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책임이 강해졌다.

전문성 측면에서는 자유로워 졌다. 금융기관으로서의 정책 결정, 금융 자금을 끌어오는 것에 있어서 자율성이 확대되면서 전문성이 높아졌다. 과거 독립하기 전에는 의사결정을 하기 위해서는 이사회 의결을 거쳐야 하는 과정 때문에 의사결정 속도가 느렸다면, 분리독립 되면서 이 과정이 간단해 졌다. 책임성, 전문성, 효율성이 늘어났다고 생각한다.

Q. 고소 이후 공제사업단도 영향을 받을 거 같다.

▶우리는 잘못한게 전혀 없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주로 정책자금이 오는 곳이 공공이나, 공공과 연관된 곳이다 보니, 기금을 추가로 받거나 협력관계로 사업을 해오던 금융과 관련된 파트너들이 조심스러워졌다. 잘잘못은 어찌됐건,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코로나19 등으로 자금이 필요한 기업은 많아졌는데, 기대에 부응하는 만큼의 자금 공급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기금 자체가 위태로운 것은 아니지만, 더 확대할 기회를 놓친 것은 매우 아쉬운 상황이다.

Q. 이번 고소로 이름이 거론된 조직이나 기업에서는 오해를 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사실 그 부분이 가장 죄송한 부분이다. 이 사건으로 굉장히 다양한 조직과 기업이 마치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 처럼 소문이 퍼졌다. 이번 사태에 언급된 조직은 나 역시 잘 알고 있는 조직, 기업이다. 얼마나 고생하고 있는지 다 알고 있다. 그런 분들에게 갑자기 이런 일이 벌어지게 돼서 정말 죄송한 마음밖에 없다.

Q. 앞으로 한기협이 어떻게 가야 한다고 보는가

▶큰 틀에서 보면 이런 경쟁도 있을 수 있다. 사회적기업은 사회적가치를 중심으로 사회문제를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시작됐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니 제도상의 요건만 맞춘 사회적기업도 많이 늘어났다.

그러다보니 사회적기업을 바라보는 시선이나 사회적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태도도 두 그룹으로 확연히 구분되는 것 같다. △이익창출에 방점을 두는 그룹 △사회적기업의 역할이나 사회적가치를 강조하는 그룹 등 두 개의 그룹으로 나뉘기 시작했다고 본다.

두 그룹의 경쟁은 지역단위로 가면 훨씬 첨예하게 나타난다. 중앙에서 나타난 것이 이번 사건이다. 어떤 의미로 보면 고소하는 등의 사태만 빼면 건강한 경쟁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룹들의 경쟁이 건강하고 치열했으면 한다. 이런 경쟁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하는 협의회(한기협)가 되는 것이 이번 사건 전체를 바라보는 교훈이 아닐까 한다.

‘협의회’는 어떤 이유로 사회적기업분야에 들어왔건 들어온 다음에는 사회적가치를 창출하는 노력을 할 수 있도록 북돋고, 이끄는 역할을 해야 한다. 자정이건, 연대건 그런 역할을 해내야 하는 조직은 한기협일 수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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