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기술 혁신을 통해 지역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역자원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지역 공동체와 함께 네트워킹·협업 모델을 발굴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기술로 발돋움하며 전국으로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도 꿈꾸고 있다.

정부는 경제정책의 3대 축 중 하나로 혁신성장을 꼽았다. 혁신성장은 기업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정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사회적경제기업의 혁신성장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2020 사회적경제 혁신성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자원과 연계한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지원한다. 최종 우수사례로 선정된 사업은 11개(작년 3개, 올해 8개)다. 이 사업은 약 21개월간 진행된다. <이로운넷>은 우수사례 중 9곳을 찾아 기사로 소개한다.

울산에 소재한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은 고장난 장난감을 고쳐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사업을 한다./사진제공=㈜코끼리공장
울산에 소재한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은 고장난 장난감을 고쳐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전달하는 사업을 한다./사진제공=㈜코끼리공장

아이들의 고장 난 장난감을 수거해 고쳐주거나, 기관이나 취약계층의 아동들에게 수리한 장난감을 제공하는 기업이 있다. 울산에 소재한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대표 이채진, 이하 코끼리공장)이다.

코끼리공장의 존재감은 국내에 매년 버려지는 플라스틱 장난감에서 찾을 수 있다. 그 규모가 무려 1조 1000억 원어치(12만kg)로 추정된다. 순환·재사용되는 장난감은 40% 미만인 것. 

고장난 장난감 수리와 제공으로 유명한 사회적기업

코끼리공장은 지난 2014년 장난감 수리 봉사단체에서 법인으로 전환했고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2016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코끼리공장은 2015년에 현대자동차가 유망 기업을 발굴 육성하는 ‘H-온드림’ 프로젝트에서 7개 팀 중 하나로 선정된 이후 2016년 경실련과 고용노동부가 공동 주관한 ‘우수사회적경제기업’ 시상에서 대상을 차지했고, 2017년 메니페스토협회에서 ‘최우수기업상을 받으며 부각됐다.

코끼리공장은 지역 아동기관 내 장난감 수리·소독·방역 서비스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보건복지부 주관의 ‘드림스타트 사업'에도 참여하고 있다. 연간 1만 개 이상의 국내외 장난감을 기부받아 수리·소독 후 나이와 발달 수준에 맞춰 취약계층 아이들에게 나눠준다. (*드림스타트 사업은 취약계층 아동에게 맞춤형 통합서비스를 제공하는 복지서비스다.)

코끼리공장은 2020년 12월 기준, 700여 기관과 계약해 연 매출이 8억 원을 넘었다. 정규직 14명, 퇴직자들로 구성된 유급봉사자(장난감 수리) 30명이 일하고 있다. 직원의 50%를 취약계층으로 고용하며 사회적기업의 책임을 다하고 있다.

단순 순환을 넘어 업사이클 위한 R&D 개발 나서

지난 8월 문을연 '장난감 순환공간' 앞에서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
지난 8월 문을연 '장난감 순환공간' 앞에서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

코끼리공장은 올해 그린무브공작소(비영리법인)를 현대자동차와 공동 설립해 전국적인 규모의 ‘장난감 순환 사업’을 추진하는 등 꾸준히 성장하고 있지만, 새로운 고민에 빠졌다.

“하루평균 500~1000개 이상의 장난감이 들어오는데, 솔직히 수리하기에 손이 부족한 장난감이 너무 많습니다. 재무 상황도 안정하다고 자신할 수 없어요. 아동기관을 관리하는 서비스(정기계약을 통한 장난감 수리 및 소독서비스)를 기본으로 다양한 봉사활동을 병행하다 보니. 가치와 경영의 균형을 맞추는 일이 생각만큼 쉽지는 않습니다.” 

처리방법을 찾지 못한 장난감들을 기초로 새로운 사업을 구상한 이유에 대한 이채진 대표의 설명이다. 

새 사업은 단순한 플라스틱 재활용이 아니다. 버려진 장난감을 경쟁력 있는 산업 소재로 바꾸면 어떨까 생각했다. 그런 고민에서 탄생한 물건이 ‘방열판’이다. 방열판은 조명기구의 부품 중 하나로 장난감 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들 수 있다.

“조명기구의 방열판은 절연, 방열 기능을 갖춘 알루미늄이 주로 쓰여요. 이를 장난감에서 나온 플라스틱을 활용해 만든 소재(PCR ABS소재)로 대체하는 개념입니다.” 

첫 단계로 장난감에서 나온 플라스틱을 ‘팰릿’ 형태로 규격화하는 연구를 시작했다. 사출, 압출을 거쳐 금형으로 형태를 가공하는 작업이다.

코끼리공장의 신사업은 산업자원부의 ‘사회적경제 혁신성장사업’에 선정됐다. 올해 1차 년도 사업을 마무리하고 내년까지 이어간다. 올해는 방열판을 만드는 소재의 레시피 정립과 인증에 초점을 맞췄다. 2021년도에는 인증을 받고,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개발과정의 주요한 난관은 넘어섰고 이제 적용단계다. 방열판에 적용되는 PP/PS/ABS 등 소재개발은 울산 지역의 화학업체와 협력했다.

협력의 동반자에서 사회적경제의 새 가족으로

사회적경제 분야 동반자로 손을 맞잡은 이채진 ㈜코끼리공장(오른쪽) 대표와 방은호 네모엘텍 이사.
사회적경제 분야 동반자로 손을 맞잡은 이채진 ㈜코끼리공장(오른쪽) 대표와 방은호 네모엘텍 이사.

방열판을 실제 조명기구에 적용하는 단계에서 ㈜네모엘텍과 협력했다. 네모엘텍은 실내 LED조명 제조 기업으로 ‘청색광 필터링을 통해 파장 조절로 빛의 세기를 줄이지 않고 자연광 형태의 파장으로 조절하는 기술’을 보유한 업체다.

코끼리공장과 네모엘텍은 인연이 남다르다. 김덕수 네모엘텍 대표가 2017년 5월에 창업,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을 통해 코끼리공장 이 대표와 연을 맺었다. 이 대표는 강사로 육성사업에 참여했다.

방은호 네모엘텍 이사는 “처음엔 신나게 깨졌다”고 당시를 회고한다. 네모엘텍은 예비사회적기업에 도전 첫해에 실패하고, 올해 드디어 울산형 예비사회적기업이 됐다. 네모엘텍은 학습과목에 따라 색상을 조절할 수 있는 앱을 개발(IoT 기술 적용)해 취약가정의 조명개선 사업을 중심으로 사회 가치 영역에서 사업을 확장할 예정이다. 

“이제야 감이 좀 왔습니다. 사회적가치를 전면에 걸고 사업을 해 볼 생각입니다.” 

코끼리공장과 동행하고 있는 네모엘텍의 다짐이다.

새로운 출발점에서 선 코끼리공장

코끼리공장은 나라장터나 조달청 쇼핑몰 등을 통해 우선 정부 기관 시장 진출을 목표로 세웠다. 울산에서는 교육청을 통해 보육진흥원과 3개년 협력사업을 합의했다. 아동복지기관 등에 제품 공급 기회를 획득했다. 

이 대표는 “완제품으로 만들어지는 조명기기는 청색광을 차단할 뿐 아니라 플라스틱을 재활용해 만들게 된 셈”이라며 “수명을 다한 후에 또 재활용하는 데도 이바지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조명기구는 금속 부분의 방열판을 별도로 분리하지 않으면 재활용이 안 됐는데, 이 문제까지 해결한 것이다.

코끼리공장은 LED조명 시장에 대기업 진출을 제한(중소기업 한정제품)한 제도를 최대한 활용하고, 제품이 품고 있는 이야기를 활용해 조명시장에 가치 소비를 확산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시장조사를 통해 고급시장 진출을 모색하는가 하면 자동차나 비데 등 일반제품의 방열, 절연 소재로 공급처를 확대할 계획도 세웠다.

이 대표는 “조명시장에서 방열판의 시장규모만 대략 연간 1조 원대”라며 “알루미늄 소재와 비교해 가격과 성능 면에서 대체 가능한 범위에 있어 사회적 비용면에서는 경쟁력이 있다”고 자신감을 나타냈다.


[미니인터뷰]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는 "‘진정성 있게 하면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이채진 ㈜코끼리공장 대표는 "‘진정성 있게 하면 길이 열린다’고 믿는다"라고 말했다.

Q. 어떤 계기에서 장난감 사업을 시작하게 됐나요? 더군다나 고장 난 장난감을 수리하는 사업이라니.

▶대학에서 경영학과 아동복지학을 공부했어요. 처음에는 공기업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는데 아동복지 분야로 마음이 더 가더라고요. 진로를 변경해 어린이집으로 이직했어요. 그러다 어린이집 관리를 맡은 ‘육아종합지원센터’로 직장을 다시 옮겼는데 거기서 장난감 문제를 인식하게 됐죠. 간단한 수리임에도 예산문제 등으로 교구로 사용되지 못했어요. 그냥 버려지는 거죠. 취약계층 가정에서는 교구가 절대 부족한 상황이고요. 수급 불균형을 생각하다 보니, 개선 방법을 궁리하게 됐고, 봉사단체까지 만들게 됐습니다.

Q. 사회적경제기업은 어떻게 시작하게 됐습니까?

▶기업을 만들고 나니 고민이 더 많아졌어요. 우연히 지나가는 버스광고를 봤습니다.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의 ‘사회적기업가 육성사업’ 광고였어요. 2000만 원도 지원받을 수 있고(웃음), 그래서 참여했죠. 육성사업과정을 거치면서 멘토링을 받고 사회 가치 사업에 대한 각성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고, 코끼리공장도 더 기업다운 모습으로 만들려고 노력했습니다. 

Q. 해 보니 어떤가요. 어려운 점이 적지 않을텐데요?

▶ 한계도 많이 느끼고 보람도 많이 느낍니다. ‘진정성 있게 하면 길이 열린다’고 믿습니다. 울주군 사회적기업협의회 회장직을 맡고 있는데 생각보다 진정성 있는 기업이 적어요. 50% 미만 정도? 결국에는 결과로 드러나는 것 같아요. 사회적기업은 가치실현을 살피기 때문에 검증의 과정이 반드시 옵니다. 사회적기업을 생존시키는 핵심은 ‘가치가 진짜인가’라고 생각해요. 돈을 잘 버는가가 핵심이 아니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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