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6일 황세원작가를 혜화동에서 만났다. 황세원 작가는 "이제는 다른 방식의 지역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난달 6일 황세원작가를 혜화동에서 만났다. 황세원 작가는 "이제는 다른 방식의 지역 정책을 고민해야 할 때"라고 말했다.

“지역에 정착하고 싶어하는 이들은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입니다. 예를 들면 지역 브랜드의 수제맥주를 만드는 사람, 지역 특산물을 활용한 상품 개발에 힘쓰는 사람, 여행자를 위해 숙소를 운영하는 사람, 외국인 여행자들을 위한 스토리텔링 관광상품을 만드는 사람들이 대표적입니다.”
  
황세원 작가는 지역에 머무르고 싶어하는 청년의 노동은 ‘이런 식’이라고 말했다. 기존 일자리의 시각으로 보면 이들은 소규모 제조업, 소매업, 1인 사업자·프리랜서 등으로 분류된다. 흔히 좋은 일자리로 취급되는 ‘정규직’ 일자리가 아니다. 곧 성장해서 고용을 늘리거나 주식시장으로 진출할 가능성도 적다. 때문에 정책입안자도 별로 주목하지 않는다. 

황세원 작가는 ‘로컬 크리에이터’라고 호명되는 이들이야 말로 지역을 살리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주축이라고 말한다. 이들은 자기가 사는 지역에서 삶의 매력을 발견한 청년이다. 황 작가는 “지방지치단체와 정부는 수도권 일자리를 복제하는 형태가 아니라 이렇게 지역의 고유성에 주목한 사람을 지원해야 한다. 그래야 지역이 살아난다”고 덧붙인다.   

지역 일자리, 수도권 복제해서는 성공 어려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추진하는 일자리 정책의 방향은 반대다. 정규직 일자리 개설이 목표다. 즉, 황 작가가 언급한 ‘수도권 일자리를 지역에 복제하는 형태’가 다수다. 이 같은 정책은 대기업과 연계해 정규직 일자리를 만들고 제조업 공장을 유치하는 것을 주요 내용으로 삼았다.

황 작가는 “전국 지자체에서 제출된 사업 추진 계획을 보면 백이면 백 모두 제조업 대공장 설립을 지향한다”라며 “혁신도시·기업도시·광주형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좋은일자리=대기업·제조업’이란 공식이 정부와 지자체에게 얼마나 강력하게 작동하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라고 설명한다.   

그는 이어 “그 같은 일자리는 이미 수도권에 널려 있다”며 “서울이라는 원본이 있는데 굳이 복사판을 원할 이유가 없다”고 설명한다. 실패가 자명하다는 말이다. 복제 전략이 성공한 경우를 본 적 있느냐고도 반문한다.

광주형 일자리 정책은 여타 정책과 결이 달랐다. 지역 주체가 모여 ‘좋은 일자리’를 정의하고 창출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에서다. 그러나 정책이 현실화되는 과정에서 ‘대기업 계열의 제조업 대공장이 좋은 일자리’ 라는 기존 관념을 깨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공공기관 이전 정책도 실패할 것...일자리 생성과 인구 증가는 무관

공공기관 이전 정책도 비슷한 차원에서 실패할 거라 진단했다. 이 정책 또한 수도권의 일자리를 지방으로 옮기는 방식이다. 일자리가 생기면 지역경제가 살아난다는 가설에 입각해서 설계한 정책이다. 황 작가는 “이 가설은 전혀 검증되지 않았다. 실제로 그 일대를 가보면 알 수 있다. 이관된 기관 주변으로 주거단지가 설립됐지만 대부분 비어 있다”고 비판했다.

황세원 작가는 노동의 최저선이 보장된다면 인구 유출 현상도 감소할 것 이라고 말했다.
황세원 작가는 노동의 최저선이 보장된다면 인구 유출 현상도 감소할 것 이라고 말했다.

한국노동연구원 고영우 박사는 통계청 데이터를 활용해 지역의 인구유입과 일자리 창출의 상관관계를 분석했다. 연구는 일자리가 생기면 인구가 유입된다는 ‘수요 이론’과 인구가 유입되면 일자리가 생긴다는 ‘공급 이론’ 중 후자가 작동한다는 것을 증명했다. 즉 지방도시로 공기업을 이전하고 대기업 제조업을 유치하는 게 지역 인구 유입에 별 영향이 없다는 것이다.

지역에 정착하고 싶은 청년이 이런 일자리를 원할까. 상부의 명령을 그대로 따르는 관료제 조직이 청년이 원하는 ‘좋은 일자리’일까. 지역에 필요한, 좋은 일자리를 만들 힘이 기업에게만 있을까. 

황 작가는 “공공기관을 이전해도 해당 지역으로 오지 않는 정규직 일자리 직원과 이미 지역의 가치를 발견하고 작게나마 스스로 일자리를 만드는 사람 중에 누가 더 지역에 필요한 사람인가”라고 묻는다. 

“이제 시각을 달리해야 합니다. 그 생각을 버려야 해요. 모든 청년이 장기근속 보장 및 고임금 일자리만을 좋아할 거라는 전제도 바뀔 때가 됐습니다. 다른 일자리 정책이 필요합니다.”

지금의 일자리 정책은 기업 지원 정책

지금의 일자리 정책은 ‘내일채움공제’ 같은, 돈 혹은 정년을 보장하면 청년들이 영세한 기업에서도 머무를 거란 예상에서 기획된 정책이 대부분이다. 앞서 언급한 ‘좋은 일자리=대기업·제조업’이란 공식과 비슷한 맥락이다. 황 작가는 “그 같은 정책은 일자리 정책이 아니라 기업지원 정책”이라며 “어떤 이들은 돈이나 안정적인 고용형태에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한다. 지역에서 자기 것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로컬 크리에이터가 이에 해당한다. 

‘다른 일자리 정책’은 탐색과정을 돕는 내용이어야 한다. 정부든 지자체든 사람들이 어떤 걸 원하고 뭘 하고 싶은지 소통부터 해야 한다. “정책을 집행하는 집단이 이미 틀을 정하면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고 황 작가는 강조한다. 

정규직에 안 목매는 사회 만들어야

그럼에도 청년들은 수도권으로 간다. 지역의 인구 유출 현상은 점점 심화된다. 안정적인 정규직 형태의 일자리가 수도권에 몰려 있어서다. 모든 지역 청년이 ‘로컬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건 아니다. 안정성에 관심없는 이들이 있다고 해도 결국 수도권으로 모든 자원이 집중되는 현상의 근원은 ‘안정’에 있다. 거기 있어야 그나마 안정적인 삶의 형태를 모색할 것이라는 염려가 인구 유출의 원인이다. 

황세원 작가도 이에 동의한다. 때문에 노동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이가 너무 크다. 사회안전망의 밀도 자체가 다르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일종의 신분으로 자리 잡았다.”고 말한다.

그래서 추진되는 정책이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다. 정부는 공공기관 내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전환하겠다고 발표하고 실제로 이행 중이다. 그러나 이 같은 정책이 답이 될 수 없다. 이미 비정규직 일자리가 태반이라서다. 황 작가는 “어떤 노동 전문가는 우리나라 노동시장에서의 정규직 비율이 10%미만이라거나 10~20% 사이일 것으로 본다”며 “이런 현실에서 ‘비정규직 제로’가 목표가 돼야 할까. 신규 고용은 줄어들고 그나마 뽑아도 무기계약직이 다수인 상황에서 오히려 ‘정규직 제로’시대를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다”라고 말한다. 

황 작가는 “노동의 최저선을 확고하게 보장하는 노력이 훨씬 중요하다. 구태여 정규직에 목매지 않아도 될 정도의 최저선이 지켜진다면 청년의 인구 유출 및 지역경제 침체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즉, 사회 안전망을 다시 짜는 게 더 시급하다는 말이다. "비정규직의 임금과 처우 문제 개선을 목표로 정규직만 누렸던 복지를 다른 고용형태의 사람에게 확대한다면 구태여 수도권으로 가지 않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지난 7월 출간된 황세원 작가의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출처=산지니.
지난 7월 출간된 황세원 작가의 '말랑말랑한 노동을 위하여'. 지역경제를 살리고 지역에 필요한 일자리는 무엇인지, 일자리 정책 전반의 문제, 좋은 일이란 무엇인지 등을 다뤘다. /출처=산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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