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 사회주택 ‘안암생활’은 ‘호텔전세’가 아니다. 국토부가 지난 11월 19일 발표한 ‘서민·중산층 주거안정 지원방안’에 제시된 전세형 주택 물량 11만4천호와 관계가 없다. 호텔을 개조한 건 맞지만, 보증금과 월세를 내는 주택이다.

안암생활은 입주 시작일에 열린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국토교통부 김현미 장관과 송석준 국민의힘 의원 사이 대화에서 언급됐다. 국토부에서 전세형 주택을 늘리겠다는 방안을 발표한 지 2주도 안 된 시점이라 호텔전세로 몰리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안암생활 최장 거주 가능 기간은 6년. 근처에 대학교 3개가 있어 대부분 그 지역 청년과 대학생을 위한 1인용 공유주택이다. 현재 2.3:1의 경쟁률을 뚫고 모집 완료한 입주자의 반이 대학생이다. 임대료는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27만원~35만원. 장애인용 세대는 월세가 50만원이다.

정확히 말하면 ‘LH 민간 매입약정형 사회주택’이다. LH가 이미 보유중인 주택을 사회주택으로 운영할 기관을 공모하던 기존 방식과는 달리 사회적경제 주체가 사회주택의 설계‧시공부터 운영까지 맡는다. 준공 후 다양한 주거서비스 프로그램 제공 등의 임대운영, 관리를 직접 수행한다. 사회주택은 일반적으로 ①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 ②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 혹은 운영 ③공공재정의 지원 ④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 지향 ⑤안정적으로 보장된 거주기간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사회적기업 아이부키가 운영하는 안암생활은 입주자 122명을 수용할 수 있다. 서울에 있는 사회주택 중 가장 크다. 입주자 100명이 넘는 대규모 사회주택은 어떤 모습일까? 기자는 2일 직접 안암생활을 찾았다.

안암생활 건물 입구.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안암생활 건물 입구.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주방·세탁실 작아도 전반적으로 쾌적...3D 프린터 등 독특 공유 시설 多

안암역에서 걸어서 12분 거리. 신설동역에서는 걸어서 7분, 보문역에서는 12분 거리다. 건물은 대로변에 있고, 도로 하나만 건너면 성북천이 흐른다. 건물 입구 공동현관에는 로비폰이 있어 비밀번호를 눌러야 들어갈 수 있다. 1층에 들어서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왼쪽에, 오른쪽에는 아직 공사 중인 카페가 있다. 카페에는 창업실험가게 ‘샵인샵’이 마련돼있다. 지금은 특별공급 입주민 이한솔 씨의 비건 브랜드 상품이 전시돼있다. 앞으로 창작자 입주민들이 원하는 공간, 요일, 시간을 정해 창작·창업 활동의 결과물을 판매·전시할 수 있도록 운영할 예정이다.

창업실험가게 ‘샵인샵.’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창업실험가게 ‘샵인샵.’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거주공간으로 들어가려면 1층에서 로비폰을 한 번 더 만나야 한다. 지하 공유공간이나 1층 카페에는 입주자 외 인근 지역 주민도 들어올 수 있어 안전을 위해 장벽을 하나 더 둔 것. 2층부터 10층까지가 주거공간이다. 3층부터 6층까지는 복층형 세대(56호)가, 2층과 7층부터 10층까지는 단층형 세대(64호)가 있다. 장애인용 세대(2호)는 접근성을 위해 2층에 뒀다.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거주공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카페를 볼 수 있다. 사진=LH
건물 입구에 들어서면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 거주공간으로 올라갈 수 있는 엘리베이터, 카페를 볼 수 있다. 사진=LH

전 세대에 책상·의자·침대·붙박이장·벽걸이 에어컨·잠금장치가 기본으로 설치돼있다. 인터넷망도 제공된다. 직접 들어가 보니 새로 지은 오피스텔 같은 분위기다. 전용면적은 13㎡(약 4평)~17㎡(약 5평). 복층에는 2층에 침대가 있어 1층에서 작업할 면적을 확보했다. 복층 거주자로는 문화예술가·크리에이터·브랜딩 등 활동 경험자들이 우선으로 선발됐다. 장애인 전용면적은 26㎡(약 8평)~30㎡(약 9평)로, 현관에 문턱이 없고 방 곳곳에 비상 버튼이 마련돼있었다.

장애인용 세대에는 화장실이 장애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져있다. 중간 사진은 복층 호, 맨 오른쪽 아래 사진은 단층 호.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LH
장애인용 세대에는 화장실이 장애인 맞춤형으로 만들어져있다. 중간 사진은 복층 호, 맨 오른쪽 아래 사진은 단층 호.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LH

개인 취사 공간이나 세탁기를 들일 곳은 없다. 대신 공용시설이 있다는 지하로 향했다.

지하 1층은 ‘창작생활’이라는 주제로 꾸몄다. 회의실 3개와 라운지, 콘센트가 딸린 책상 등 노트북으로 작업하거나, 공부하거나,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공간이다. 회의실은 입주자 전용 애플리케이션에서 예약할 수 있다. 일반 종이 프린터와 더불어 창작자들을 위한 3D 프린터도 소형과 대형 2대가 있다. 안쪽에는 우편·택배함이 있는데, 배달 기사가 들어오는 통로는 따로 마련해뒀다.

지하 1층에서 지하 2층으로 내려가는 길 벽면은 ‘휴먼라이브러리’라는 공용서가가 차지한다. 계단은 계단식 라운지로 구성되고, 계단마다 콘센트가 있어 앉아서 쉴 수 있다.

공용서가 ‘휴먼라이브러리.’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공용서가 ‘휴먼라이브러리.’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지하 2층 공용공간의 이름은 ‘사생활’이다. 공유세탁실에서 키오스크로 결제 후 세탁과 건조를 할 수 있다. 현장에서 만난 특별공급 입주자 A씨(23)는 “세탁기와 건조기가 각각 5대라 122가구가 사용하기에는 부족할 것”이라며 “외부에서 코인세탁소를 사용하려고 해도 너무 멀어서 더 만들어져야 할 것 같다”고 우려했다. 세탁실 옆에는 소파와 빈백, 대형 TV가 있는 ‘공유거실’이 있어 세탁이 끝날 때까지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지하2층 공유세탁실 옆에 마련된 공유거실.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지하2층 공유세탁실 옆에 마련된 공유거실.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공유주방에는 2구 인덕션 8대가 있다. 이 외에도 밥솥, 조리도구, 식기, 기본양념 등이 제공된다. 벽면에는 투명 냉장실이 있어 입주자들이 공간을 나눠 음식을 보관할 수 있다. 통조림이나 집기 등을 보관할 수 있는 팬트리 룸(Pantry Room)도 있다. 활용도는 입주자 선호에 달렸다. A씨는 “과거 셰어하우스에 살 때도 주방을 잘 사용하지 않았다”며 “위생이 걱정되므로, 만약 주방을 쓴다면 개인 식기와 조리도구를 들고 올 것”이라고 말했다.

관건은 앞으로의 생활...청년 122인이 만들 공동체 가치 기대

관광호텔을 새 주택으로 개조하는데 든 리모델링비는 220억원. 시설이 쾌적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 A씨는 “이 지역 원룸, 셰어하우스에서 모두 살아봤는데, 민간이 하는 임대주택에서 이 정도 임대료를 내고 살려면 반지하 수준을 기대해야 한다”며 “거주 가능 최대 기간을 채울 때까지 여기에 살고싶다”고 말했다.

안암생활은 앞으로 만들어 갈 공동체적 가치가 관건인 사회주택이다. 사회주택의 핵심은 시세 대비 저렴한 임대료, 보장된 거주기간과 더불어 ‘공동체 활성화’다. 사회적경제 주체가 맡아 운영하는 것도 그 이유가 크다. 연대와 협력의 가치를 중요시하는 사회적경제 기업이 전문성을 갖고 운영하면 입주자들이 자연스럽게 ‘이웃’으로 거듭날 수 있다. 단순한 주거공간이 아니라,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플랫폼이 될 수 있다는 것. 창작가·창업가·활동가들을 특별공급 대상자로 우선 선발한 이유도 여기 있다. 특별공급 전형으로 들어오려는 입주 희망자에게는 입주계획서(자기소개, 과거활동/작업내용, 안암생활에서의 활동/작업 계획)를 받았다. LH측은 보도자료를 통해 “공유회의실, 창업실험가게 등 공용공간의 일부는 입주 청년 외 인근 지역 주민과 함께 공유해 문화예술, 소통·교류의 장으로 활용되며, 이를 통해 입주민의 커뮤니티 활동 및 지역사회의 건강한 공동체 형성에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입주자 전용 애플리케이션도 공동체 활성화의 중요 열쇠가 될 예정이다. 이광서 아이부키 대표는 “기존 공동주택에서는 공동체를 운영한다고 운영위원회를 구성하거나 반상회를 하는 게 일반적인데, 커뮤니티에 왜곡을 불러일으킬 때가 많다”며 “안암생활에서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보려 한다”고 말했다. 현재 공용서가 휴먼라이브러리에는 입주자들이 자기소개와 함께 추천하는 책을 올려둘 수 있다. 애플리케이션에 책을 등록하면, 궁금한 입주자들이 ‘송이’라는 전자화폐를 내고 빌려 볼 수 있다. 또, 공용주방에는 작은 공유마켓이 마련돼있다. 한꺼번에 여러개 구매한 물품을 다 쓰기 어렵다면, 공유마켓에 두고 애플리케이션에 등록해 ‘송이’를 받고 판매할 수 있다. 당근마켓처럼 말이다.

공유주방 옆에 마련된 공유마켓. 왼쪽에는 안암생활 애플리케이션 사용 방법이 적혀있다.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공유주방 옆에 마련된 공유마켓. 왼쪽에는 안암생활 애플리케이션 사용 방법이 적혀있다. 사진=서은수 인턴기자

A씨는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공유생활이 새롭고 설렌다고 말했다. “예전에도 원룸에 살 때보다 셰어하우스에 살 때 더 삶의 질이 높았다”며 커뮤니티 생활에 대한 기대감을 보였다. 이어 “국가에서 직접 운영하는 것보다, 그런 비전이 있는 사회적기업이 운영하는 게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가성비 좋은 주택을 넘어, 입주자들이 만나 시너지를 창출하고 지역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까지가 목표다.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공공 입장에서는 특정 테마를 강요하지 말고 '느슨한 공동체'를 기대하며 인내심을 가져야하고, 운영사는 '첫 구성' 이후 입주자가 이사가고 새로 들어올 때 적응을 원활히 할 수 있도록 기존 입주자 네트워크와 긴밀히 협의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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