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기업을 5년 넘게 해왔는데 자금 조달이 너무 힘들어요. 우리끼리라도 기금을 마련해 서로 어려울 때 자금을 빌려주면 어떨까요”

2015년 소셜벤처·사회적기업·협동조합 등 다양한 사회적 경제 주체들이 십시일반 돈을 출자해 ‘사회혁신기금’을 조성했습니다. 자조기금의 성격으로 급전이 필요할 때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는 ㈜한국사회혁신금융의 시작입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은 종로구 장사동 아세아전자상가 3층 H-창의허브 SE:CLOUD에 입주해있다.

3년 차를 맞은 한국사회혁신금융은 그동안 비영리법인에서 주식회사로 전환해 출자와 투자 규모를 계속 늘려가며 속칭 ‘아름다운 금융’을 꿈꾸고 있어요. 아름다운 금융이란 무엇일까요?

한국사회혁신금융의 회원사들은 담보가 없거나 신용이 낮아도 사회적가치만 입증된다면 사회혁신기금을 융자 받을 수 있습니다.

인라이튼은 한국사회혁신금융으로부터 사업개발비를 대출받아 성장의 발판으로 삼았다. (사진 출처: 인라이튼 홈페이지)

소셜벤처 인라이튼은 무선 전자제품의 배터리를 ‘배터리 리필’이라는 경제적이고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재생하는 기술력을 지닌 기업입니다. 2016년 초, 배터리뉴(BETTER REnew)라는 새로운 서비스 사업을 진행하면서 초기단계에 사업개발비 3000만 원을 한국사회혁신금융으로부터 대출 받았습니다.

 

“ 대출심사기간이 짧아 신속하게 처리되어 좋아요. 평소 서로 잘 알고 지내고 있기 때문에 신뢰가 형성돼 절차에 어려움이나 부담이 없고요.”      (신기용 인라이튼 대표)

?인라이튼은 이렇듯 사업개발비를 마중물 삼아 중고배터리 재활용 사업뿐 아니라 고장 난 전자제품을 적정가격으로 수리해주는 업체로 성장해 서울새활용센터에 당당히 입주했습니다. 신 대표 역시 자신처럼 자금이 필요한 사회혁신 기업 2개사를 추천해 성장을 도와주었지요.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대표와의 인터뷰

 

 

“기업이 성장하려면 사업 개발이나 시설 투자가 선행적으로 이뤄져야합니다. 사회적 기업은 사회적 가치를 우선적으로 추구하다 보니 단기간에 재무적인 안정성을 갖추기가 어렵습니다. 이들의 성장을 기다려주고 인내해줄 수 있는 특화된 금융 서비스가 필요합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이 사회혁신기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더니 기업들 90% 이상이 연 1회 이상 긴급 자금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납품 물품 구매 자금과 공공 입찰 참여를 위한 보증금 마련 등 회수가 가능하지만 당장 현금이 필요한 경우들입니다.

하지만 규모가 작거나 막 출발한 기업들에게 담보나 높은 신용이 있을 리 없습니다. 응답자의 70% 이상은 대표자 개인이 신용 대출이나 특수 관계자로부터 자금을 조달하는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법인으로 금융기관에서 빌릴 경우 담보와 보증을 요구하는데다 대출 심사 절차가 까다로워 내 손안에 자금을 쥐기까지 평균 한 달 이상이 걸리기 때문입니다. 사회혁신기업들에게 특화된 금융이 절실한 이유입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의 회원사는 현재 127개사로 꾸준히 늘고 있고, (예비)사회적기업과 소셜벤처·협동조합·비영리단체와 중간지원기관 등 다양합니다. 운용 기금의 규모는 회원사 출자금 약 4억 원을 비롯해 서울시 매칭 기금 약 13억 원, 자체 유치 투자금 약 5억 원 등, 2018년 1월 말 기준으로 22억 원에 이릅니다.
 

?대출심사 현장(사진제공=한국사회혁신금융)

?회원사들은 담보나 보증 없이 최대 1억 원 한도 내에서 2년 동안 본인 출자금의 10배까지 대출을 받을 수 있습니다. 대출 신청에서 집행까지 영업일 기준 최대 열흘이 걸리고 이자율은 현재 3% 수준입니다.

서울시 광진구의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이하 광사넷) 소속 회원사 3곳은 지난해 총 6000만 원의 융자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광사넷 자체 기금은 2000만원이지만 한국사회혁신금융이 2배수로 매칭 기금 조성에 함께 역할을 했기 때문입니다.

“현금 흐름 상 목돈이 필요한데 자금을 구하기가 아주 어렵습니다. 일반 은행 대출을 받으려면 담보를 제공하거나 기업 신용 평가가 필요하지만 사회적 기업들은 한계가 있거든요. 저희는 빠르면 신청 다음날 대출이 이뤄지기도 합니다. 올해는 회원사들의 요청에 따라 규모를 9000만원에서 1 억까지 늘릴 계획입니다.”      (박용수 광진협동사회경제네트워크 집행위원장)

한국사회혁신금융은 광사넷을 비롯해 대구사회적경제혁신기금, 카톨릭사회경제연합발전기금 등을 공동·위탁 운영하며 사회적경제 활성화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의 누적 대출 실적은 125건에 총 32억 4400만원에 이릅니다. 이 가운데 3개월 이상 이자 및 원금을 연체한 비율을 나타내는 부실율은 0%입니다. 비결은 철저한 위험 관리 체계와 역량 강화를 위한 교육 및 컨설팅에서 비롯됩니다.

?사회적경제기업 재무역량 강화 워크숍(사진출처=한국사회혁신금융 페이스북)

?가입할 때 회원 1인 추천을 통해 평판을 조회하고 대출신청 시 회원 2인의 추천을 받는 동료 평가가 이뤄집니다. 이후 재무전문가를 통한 재무역량 평가와 선배 사회적기업가들과 대면 인터뷰, 그리고 사후 비정기적인 만남으로 채권을 관리합니다.

이 대표는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잘 쓸 수 있도록 하는 것 또한 중요함을 강조합니다.

“동료 또는 선배 기업가들과의 인터뷰 과정과 컨설팅 등을 통해 기업의 사업 역량을 키우고 기금이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도록 다양한 지원을 합니다.”

지난 12일, 한국사회혁신금융은 사회적경제기업들이 자금을 조달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2018년도 중소기업 정부지원사업 요점 정리 교육을 진행하는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사회적경제기업을 위한 2018 중소기업 정부지원사업 요점 정리 교육(사진제공=한국사회혁신금융)

 

 

“사회적기업에 특화된 경영지도사가 꼼꼼히 설명해줘서 큰 도움을 얻었습니다. 구상 중인 신 사업을 어떻게 준비할까 막막했는데 올해의 키워드와 노하우 등을 많이 전수 받았습니다.”   (송윤일 아트임팩트 대표)

한국사회혁신금융은 사회적 금융이 제도권으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합리적인 의사 결정 시스템 개발이 시급하다고 보고 이를 위한 평가 시스템 개발에 힘을 쏟고 있습니다. 경제적 가치 뿐 아니라 사회적 가치나 평판 가치를 어떻게 객관화시킬 것인지가 관건입니다.

“제도권 금융이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다 해도 현재는 기업을 평가할 객관적인 데이터가 없습니다. 평가 시스템을 만들어 이를 기반으로 대출이나 심사 체계를 고도화하는 게 중요합니다. 보다 많은 데이터를 끌어 모아 어떤 지표들이 금융거래에 유의미한 것인지 혹은 가중치를 둘 것 인지를 분석하는 일로 이를 위해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가고 있습니다.”   (이상진 한국사회혁신금융 대표)

이에 앞서 한국사회혁신금융은 사회적 경제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제도권 금융과 협업해 신뢰할만한 금융 파트너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동작신용협동조합은 지난해 한국사회혁신금융과 MOU를 맺고 약식심사를 통해 총 7개 기업에 4억5000만 원의 상생협력대출을 시행했습니다. 한국사회혁신금융이 작성한 대출심사정보를 참고해 신속하게 대출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한 것이죠.

재무·금융 전문가들로 구성된 한국사회혁신금융 직원들

정부는 지난 8일 대대적인 사회적금융 활성화 방안을 내놓았습니다. 앞으로 5년간 단계적으로 3000억 원 수준의 사회적가치기금을 조성한다는 계획입니다. 그리고 사회적금융시장의 3대 플레이어로서 ▲사회가치기금 조성 ▲사회적금융중개기관 육성 ▲ 민간투자자·금융기관 참여를 확대 할 방침입니다.

억 소리만 들어도 그 크기가 잘 가늠 안 되는 보통사람들에겐 이런 청사진이 발표될 때 마다 의구심이 슬쩍 고개를 듭니다. 과연 얼마나 제대로 집행되고 효과를 낼 수 있을 까.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는 아닐까

규모만큼 중요한 것이 효과적인 운용입니다. 어렵사리 모아진 자금들이 허투루 쓰이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그 자리에 한국사회혁신금융이 꿋꿋이 자리매김하고 제 역할을 해내주길 기대해봅니다.

한국사회혁신금융: ksifinance.com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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