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현자연학습장 봄봄 마을정원사 공간 모습.

"자연과 함께 정원을 공동 창조하는 첫 번째 단계에는 땅을 치유하는 작업이 포함된다. 사람과 땅은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다. 따라서 땅을 치유하는 작업은 사람들이 진정한 자기 자신으로 되돌아가는 재생의 길로 이어진다."

세계적인 정원디자이너 메리 레이놀즈가 지은 『생명의 정원』의 한 구절이다.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 단지에서 진행하는 2기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의 교재 안에서 발견한 문구다. 레이놀즈는 “인위적인 간섭보다 생태계 본연의 에너지를 발휘하게 하는 것이 더 건강한 정원을 만들어준다”고 설명한다. 사회적 경제의 개념과 매우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의 생명체에게 정원이 가장 많은 열매를 맺는 땅이 되는 것은 주요 관심사가 아니다. 화학 비료를 쓰고 큰 장비를 들여오는 건 인간의 욕심이다. 흙, 씨앗, 벌레 등 정원 전체가 각자의 에너지를 자연스럽게 발산하여 균형 잡힌 생태계를 오래도록 보존하는 게 장기적으로 훨씬 효율적이고, 또 바람직하다. 사회적 경제도 마찬가지다. 얼핏 효율적으로 보이는 외부의 영향에 놓이는 것보다, 공동체 안에서 신뢰하고 협력하며 스스로 활로를 찾는 길이 더 건강하고 지속 가능할 수 있다.

사회적 경제를 추구하며 ‘2020 같이 살림 프로젝트’의 참여 단지로서 3년째 성장 중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아파트를 지난 10월 15일 찾았다. 인간 대 인간의 공존, 환경과 인간의 공존을 지향하는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은 같은 아파트 주민끼리 식물을 공부하고 정원을 가꾸며 이웃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프로그램이다. 나아가 정원 전문 사회적 기업과 연대하여 선순환의 사회적 경제를 구축하는 데에 기여하고자 한다. 8~11월 매주 목요일에 진행되며 단지 내의 주민이라면 누구나 신청할 수 있다.

코로나로 일부 수업을 온라인으로 대체한 가운데 수강생들은 8월부터 11월까지 매주 목요일에 김민주 숲 정원사의 지도하에 정원에 관한 철학과 기술을 담은 책들을 읽고 가드닝에 관한 이해의 폭을 넓힌다. 수강생들은 땅속 미생물과 식물 등 자연 생태계와 사람들의 협력을 고려한 가드닝 디자인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아파트 조경 전문가, 공동체 정원 전문가 등을 만나 전문적인 견해를 들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제공된다. 매번 이론 과정이 끝나면 공동체 지역 내 자연학습장과 다양한 장소에 생기를 불어넣는 실습이 이어진다.

이러한 협동 과정을 통해 신뢰를 다진 수강생들은, 향후 마을 공동체의 일원이자 사회적 경제 살림을 일구어나가는 이웃으로 성장하게 된다. 주민들이 스스로 마을정원사 모임을 조직하여 정원 전문 사회적 기업들과 연계를 통해 마을의 환경문제를 해결하고 경제적 자생력을 기른다는 구상이다.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하는 사각지대의 문제를 주민이 스스로 해결하겠다는 발상이다.

봄봄 마을정원사 과정 수업 모습. 

코로나 사회적 거리 두기가 1 단계로 완화한 15일 서울 마포구 마포래미안푸르지오 1단지 세미나실은 오랜만에 수강생들로 붐볐다. 거리 두기에 따라 넓게 앉은 수강생들은 매우 열정적이고 수업에 참여했다. 원래 훨씬 더 많은 주민이 신청하였으나 코로나로 온라인 수업을 하면서 올해는 수강생 수가 예년과 비교해 조금 줄었다고 한다. 김민주 숲 정원사가 나긋나긋하지만, 확신을 가진 목소리로 생태적인 농사방식을 설명했다.

“인간의 고정된 생각을 따라가는 것이 자연이 아니에요. 진흙처럼 압착되고 물도 공기도 못 통하면, 그 땅을 책임지고 있는 인간이 적절하게 개입을 해줘야 합니다. 물론 기계로도 경운(흙을 섞거나 뒤집고 부수어 부드럽고 평탄하게 하는 작업)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러나 그보다 쉬운 방법으로 지렁이를 넣는 것을 추천해 드려요. 압착이 되지 않고 흙과 흙 사이에 길이 나 있는 포슬포슬한 흙이 가장 좋은 상태라고 할 수 있는데, 사람은 그렇게까지 섬세하게 할 수 없어요. 미생물과 곤충 같은 것들이 더 잘 만드는데, 특히 지렁이가 매우 잘하고, 퇴비까지 만들어내죠. 지렁이를 땅에 넣어주세요. 그게 사람보다 더 효과적이에요.”

이어 수강생들끼리 의견을 주고받았다. 한 사람의 경험은 다른 사람의 해답이 된다. 토론을 거치며 강의실에 앉은 모두의 지식이 함께 발전하였다.

“저는 지렁이가 너무 무서운데 어쩌죠?”

“직접 만질 필요 없어. 한 삽 푸고 넣어줘도 되고 어디에 담아서 넣어줘도 되는 거야.”

“냄새는 안 날까요?”

“내가 해보니까 오히려 탈취 효과가 있어요”

“빨간 지렁이로 해야겠네, 그게 좋더라고”

“난 조금 무서워, 밖으로 나오면 어떡해?”

“나는 쭉 해오고 있는데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어.”

자연 존중을 바탕으로 한 창의적이고 생태적인 방식의 경작에 관한 다양한 경험과 의견을 나누는 뜨거운 분위기 속에 수업은 마무리되었다.

오후 활동이 시작되기 전 잠깐의 휴식 시간에 마포래미안푸르지오의 ‘2020 같이 살림 프로젝트’를 이끄는 박신연숙 대표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그는 이 아파트의 프로젝트와 함께 ‘마을 정원사회’를 인큐베이팅하고 있다.

“‘같이 살림 프로젝트’는 아파트의 사회적 경제 시스템을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이에요. 처음부터 아예 사회적 경제 조직을 만들어서 시작해도 좋지만, 오늘 같은 수업을 통해 자연스럽게 만나면서 협동을 경험하고, 여기로부터 공동체로서 협동경제를 모색해보며 시작할 수도 있어요.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죠.”

1단계였던 작년에는, 아파트 근처 자연학습장이나 피아노 정원 같은 활동공간을 확보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주민들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 속에 평가가 좋게 나와서 올해 2단계 사업이 가능했다. 상금은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에게 나눔 하는 것으로 선순환되었다.

“아파트 주민은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서 기업화하는 속도가 조금 늦는 편이에요. 우리 아파트만 해도 이 사업은 3년째인데, 다른 아파트에 비해 우수사례라고는 하지만 3년 된 것으로 치면 주민 모임이 좀 더 활발해질 필요는 있죠. 전문가가 아닌 주거지를 기반으로 모인 사람이다 보니, 그나마 ‘마을 공동체’ 활동에는 부담 없이 참여하지만, ‘사회적 공동체’라고 하면 어려워하고 부담스러워해요. 이를테면 돈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고, 일이 커져서 일 자체가 부담인 사람이 있고. 시간 투자도 필요하고…. 그래도 (신뢰가 쌓인) 사람들이 함께하는 거니까 너무 겁먹지 않고 협동했으면 좋겠어요.”

그는 지금 강의 수강을 통한 주민참여 활동이 분명 마을에 이익을 가져다주고 있지만, 협동조합을 만들어 좀 더 본격적으로 활동한다면 훨씬 보람이 있고 구성원들이 자립할 수 있는 선순환 경제가 가능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잠깐의 휴식 시간이 끝나고, 박신연숙 대표의 핸드폰이 바쁘게 울렸다. “아 오셨어요? 저희도 여기 정리하고 금방 갈게요” 꽃차가 왔단다. “여러분, 창고에서 물조리개, 삽, 호미, 앉은뱅이 의자, 모두 챙겨서 올라갑시다.”

오후에는 아현 자연 학습장에서 나무를 심는 활동이 이어졌다. 수업 시간에 배운 내용의 실습을 겸해 마을의 환경 개선에 직접 참여하고 환원하는 과정이다.

마을 정원 가꾸기 활동을 위한 장비. 

정원 가꾸기는 쉽지 않다. 아파트 공용 공간 한 편을 빌려 높게 쌓아 올린 흙 포대와 화분, 장비의 부피와 무게만 해도 엄청나다. 흙먼지를 마시는 힘든 노동이다. 매주 몇 시간씩 땀 흘리지만, 크게 알아주는 사람도,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과 인내를 가지고 기쁘게 일한다.

실습 활동 모습, 아현 자연 학습장에 수백 개의 꽃을 심는다. 
실습 활동 모습, 아현 자연 학습장에 수백 개의 꽃을 심는다. 

정원 가꾸기는 쉽지 않다. 아파트 공용 공간 한 편을 빌려 높게 쌓아 올린 흙 포대와 화분, 장비의 부피와 무게만 해도 엄청나다. 흙먼지를 마시는 힘든 노동이다. 매주 몇 시간씩 땀 흘리지만, 크게 알아주는 사람도, 대가가 있는 것도 아니다. 모두 공동체를 위한 책임감과 인내를 가지고 기쁘게 일한다.

아현 자연 학습장은, 치유가 필요한 상태였다. 지난여름 무더위와 긴 장마로 땅이 패고 곳곳에 꽃과 나무가 시들어있었다.

“여기는 마포구 공원녹지과에서 공유하는 곳이에요. 저희가 직접 전화해서 이곳에 식재하기로 하고, 식물을 받아서 봉사하는 거예요”

“이쪽에 심어야 하니, 길을 피해서 꽃을 내려서 저 옆으로 놔주세요.”

“양도 많고 무거우니까 릴레이로 옮깁시다.”

트럭으로 한 차 가득 들어온 모종들을 반가운 마음으로 한 줄로 서서 옮겼다. 덥고 힘든 상황에서도 사람들은, 꽃잎이 다 떨어진 꽃대마저 귀엽다며 애정을 가지고 바라봤다.

실습이 끝난 뒤 모습.
실습이 끝난 뒤 모습.

더운 오후가 지나갔다. 좋은 환경을 가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해 사람들은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덕분에 이렇게 아름다운 정원이 완성될 수 있었다. 자연을 존중하고, 공생하라는 배움과 공동체에 대한 애정이 없었다면 이루어질 수 없었을 것이다. 이러한 수고가 더 큰 열매를 맺기를 바란다는 박신연숙 대표의 말이 마음에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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