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가 좋은데 허름하지 않고, 월세 부담은 적은 집이 있을까? 그런 집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오래 살 수는 없을까? 최근 집을 사지 않고도 입지 좋은 곳에서 장기간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은 국내 사회주택 현황과 정책을 들여다보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사회주택 비율 상위 3개국인 네덜란드·오스트리아·덴마크의 사회주택 전문가를 취재해 소개한다. 

사회주택은 기존 공공주택과 민간주택의 사각지대를 담당하며 ‘민관협력형 임대주택’으로도 불린다. 국내에서 공식적으로는 5년 전 서울시 조례를 통해 처음 등장했다. 역사가 길지 않은 탓에, (좁은 의미에서) 준공된 사회주택은 전국에 2000호를 넘지 않는다. 

주거안정을 도모한다는 점에서 공공임대주택과 비슷해보이지만, 운영과 공급과정에서 ‘민(民)’ 부분을 차지하는 사회적경제 주체의 역할이 크다. 임대주택에 ‘사회적경제’가 녹아들면 뭐가 달라질까?

'영끌' 생각 없어도...집값에 비례한 임대료에 고통

지난 11월 20일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10월 밀레니얼 세대로 불리는 30대의 서울 아파트 거래량은 1663건. 전체 거래량(4320건)의 38.5%로 비율로는 역대 최고치다.

밀레니얼 세대의 아파트 구매율 상승 현상에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 최대한의 대출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 의미)’ ‘패닉바잉(공황 구매, 집값 상승에 대한 공포로 가격에 상관없이 집을 산다는 의미)’ 같은 수식어가 붙는다. 부동산 가격이 계속 오르면서 ‘지금이라도 사야 한다’는 불안 심리가 움직였다.

지난 10월 5일 구직사이트인 알바몬이 본인 명의의 집이 없는 20대 청년층 2,889명을 대상으로 ‘내 집 마련 인식’에 대한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94.8%가 ‘필요하다’고 답했다. 그 이유로는 ‘편한 노후 생활을 위해서,’ ‘부동산 가치가 점점 상승할 것 같아서 재테크 수단으로’ 등이 있었다. 향후 집값의 변동추이로는 78.3%가 ‘오를 것’이라고 예측했다. 금리는 낮은 현실에서 부동산 가격은 앞으로도 오를 것 같은데, 지금 자산으로는 부족하니 대출이라도 해서 집을 사야겠다는 거다.

통계청 자료에 의하면 주택 소유 가구는 2015년부터 매년 증가하는데, 무주택 가구도 함께 증가했다. 또 작년 기준 주택을 소유한 가구 중 상위 10%의 평균 집값은 11억300만원, 하위 10%의 평균 집값은 2700만원으로 약 40배 차이가 난다. 집값을 잡기 위해 정부가 규제지역 추가 지정, 금융권 대출 규제 확대, 임대차 3법 등을 도입했지만 역부족이다.

높은 집값은 높은 임대료로 이어진다. 그 탓에 지금 당장 매수 계획이 없는 세입자들도 고통받는다. 서울이 특히 심하다. 수도권 외 지역에서 살다가 3년 전 서울로 온 20대 사회초년생 송슬기씨는 “서울에서 처음 구한 집이 햇빛 한 줌 들지 않는 좁은 원룸이었는데, 임대료가 너무 비싸서 놀랐다”고 회상했다. 전세를 살려니 기초자본이 없고, 월세는 ‘버리는 돈’인데 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상당한 현실이다.

수치로도 보인다. 서울시가 이달 11일 '청년월세지원' 사업 대상 청년 5000여명을 상대로 벌인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소득의 40%에 가까운 금액을 주거비로 쓰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적으로 청년 임차 가구의 RIR(일반 월세 가구의 소득 대비 임차료 비율)은 약 20%다.

올해 처음 선정된 '서울 청년월세지원' 대상 청년은 총 5000명. 서울시의 조사 결과 이들의 평균소득은 123만6천원인데 주거비는 평균 46만5천원으로 37.6%의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서울시
올해 처음 선정된 '서울 청년월세지원' 대상 청년은 총 5000명. 서울시의 조사 결과 이들의 평균소득은 123만6천원인데 주거비는 평균 46만5천원으로 37.6%의 높은 주거비를 부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서울시

민간임대보다 싸고, 공공임대보다 맞춤형인 ‘사회주택’

사회주택은 이렇게 임대료에 부담을 느끼는 무주택자들을 위해 저렴한 임대료를 받는다. 유형별로 다르지만 대부분 시세의 80% 이하이며, 기본 6년 이상의 거주기간이 보장되고 언제든 나갈 수 있다. 자가용이 없으면 출퇴근이 어려운 외딴 지역에 있는 것도 아니다. 서울에는 마포구 성산동, 서대문구 창천동, 전주에는 완산구 중화산동 등 대학가에도 마련돼있다.

#대학생 A씨는 대학진학을 위해 지방에서 올라와 높은 임대료를 감당할 수 없어 고시원 등 주거환경이 취약한 곳을 전전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현재는 주변 원룸보다 저렴한 임대료로 사회주택에 거주하고 있다. 사회주택 운영을 담당하는 사회적경제 주체가 제공하는 입주민 취미활동 및 정기 간담회 등의 커뮤니티 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A씨는 이제 생소한 남이 아닌 친근한 이웃과 함께하는 공동체의 일원이 되었음을 느낀다. 또한, 대학 졸업 후 취업‧창업 등 진로에 대해서도 입주자 간 정보공유를 하며 사회주택이 단순 주거공간이 아닌 삶의 터전이 되리라 생각하며 살고 있다.

국토교통부가 지난해 2월 ‘사회주택 활성화 방안’을 통해 제시한 사회주택 입주자 사례다. 낮은 임대료, 좋은 주거환경, 커뮤니티 활동 등 사회주택의 특징이 담겨있다.

사회주택의 정의는 다양하다. 국내에 법적 정의는 없다. 국토부는 “기존의 공공 및 민간임대와 달리 사회적기업, 비영리 법인 등 사회적경제 주체에 의해 공급되며, 저렴한 임대료, 안정적 거주기간의 보장, 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 추구를 특징으로 하는 임대주택”으로 사회주택을 정의한다.

공공주택과 사회주택의 체제 모델 비교. 자료=2017 한국사회주택협회 백서

광의의 의미와 협의의 의미로도 나뉘는데, 한국사회주택협회에 의하면 세계적으로 사회주택은 국가나 비영리단체가 소유하거나 관리하는 임대주택이며 저렴한 주택을 제공하기 위한 목적이나 다양한 사회적 가치를 담은 주택으로 포괄적으로 사용된다. 좁은 의미로는 사회적경제 주체가 사회적 가치 실현을 위해 공공의 지원을 받아 시세보다 저렴하게 장기적으로 공급하는 임대주택이다. 공공임대주택을 제외한다는 게 특징이다.

정리하자면 ①시세보다 저렴한 임대료 ②사회적경제 주체가 공급·운영 ③공공재정의 지원 ④공동체 활성화 등 사회적 가치 지향 ⑤안정적으로 보장된 거주기간 등을 충족할 때 한국형 사회주택이라 할 수 있다.

사회주택의 공식적인 지위는 2015년 최초로 제정된 서울시 조례가 시작이다. 이후 2017년 국토부 주거복지로드맵에서 언급됐고, 지난해 2월에는 국토부가 2022년까지 매년 사회주택 2,000호 이상을 공급하겠다며 활성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금까지 약 8개 지자체가 조례를 도입한 상황이다. 서울시 광진구는 작년 입법예고를 마쳤고, 용인시는 지난 10월 조례 제정을 위한 간담회를 열었다.

2020년 기준 국내 지방자치단체 조례에서 내리는 '사회주택'의 정의. 자료=자치법규정보시스템
2020년 기준 국내 지방자치단체 조례에서 내리는 '사회주택'의 정의. 자료=자치법규정보시스템

최경호 한국사회주택협회 정책위원장은 최근 활성화된 사회주택 정책을 두고 “주거복지의 사각지대를 해소하려는 공공의 개입 의도와 주거 문제 해결에 나서기 시작한 사회적경제 주체 등의 ‘손뼉이 마주치며’ 시작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공임대주택과의 차이점 중 수요자가 크게 느낄 수 있는 건 입주 소득 자격과 공동체 활동이다. 한국사회주택협회는 사회주택 공급대상을 “공공임대주택의 입주 자격보다는 소득(자산) 기준이 높지만, 민간임대시장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다”고 설명한다. 지난 2016년 서울시는 ‘사회주택 7大 사업성 개선대책'을 내놓으며 공공임대주택 공급대상을 4분위 이하 계층으로, 사회주택 공급대상은 5분위~6분위 계층으로 분류했다. 공동체 활동은 주택 분위기마다 다른데, 주택 관리를 위한 최소한의 자치회만 할 수도, 자율적으로 친목 프로그램을 열 수도 있다.

※이 기획기사는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키워드
#사회주택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