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사회적경제 주체들이 기술 혁신을 통해 지역문제 해결에 나섰다. 지역자원을 활용해 기술을 개발하고, 지역 공동체와 함께 네트워킹·협업 모델을 발굴한다. 지역을 대표하는 기술로 발돋움하며 전국으로 사업으로 확장하는 것도 꿈꾸고 있다.

정부는 경제정책의 3대 축 중 하나로 혁신성장을 꼽았다. 혁신성장은 기업의 혁신을 통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마련하는 정책이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사회적경제기업의 혁신성장과 생태계 조성을 위해 ‘2020 사회적경제 혁신성장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역자원과 연계한 기술개발 및 사업화를 지원한다. 최종 우수사례로 선정된 사업은 11개(작년 3개, 올해 8개)다. 이 사업은 약 21개월간 진행된다. <이로운넷>은 우수사례 중 9곳을 찾아 기사로 소개한다.

고래를 품은 이야기의 도시, 울산

고래하면 생각나는 도시는? 울산은 국내 대표적 산업도시에서 고래로 상징되는 또 다른 아이콘으로 변화하고 있다. 선사시대부터 고대에 이르기까지 고래와 관련한 섬세한 기록을 남긴 ‘반구대 암각화’, 일제 강점기를 시작으로 1970년대까지 국내 포경업의 중심지였던 장생포 등 우리의 일상에서는 멀리 떨어진 듯한 먼 대양의 신비로운 거대 생명체 고래가 실은 울산이 품은 또 다른 이야기였다는 것이 널리 알려지면서다.

울산에서 고래를 소재로 한 사업들이 나오고 있는 것도 자연스럽다. 특히 문화예술, 관광 분야에서 다양한 시도들이 두드러진다. 사회적기업 인아트(대표 이순영)도 고래 등에 올라 꿈을 펼치고 있는 기업 중 하나다.

인아트는 울산의 특색을 살린 도자기로 특별한 ‘고래’를 기획했다. ‘고래 주병 세트’다.

“이 제품은 울산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았어요. 수면 위로 힘차게 비상하는 울산 고래의 기상과 떨어지는 별똥별의 감성을 담은 주병. 고래 꼬리를 형상화한 귀여운 잔은 바닥에 깜찍한 고래의 모습을 넣었죠. 술 먹을 때만이 아니라 그냥 두어도 인테리어로 손색이 없어요”

반구대 암각화를 담은 머그잔과 귀여운 등대 모양의 캔들 워머도 있다. 반구대 암각화 머그잔은, 빅사이즈로 시리얼 그릇이나 스프 용기 등으로 활용하는 것도 가능하다. 특별히 제작한 손잡이는 사용자의 편의를 더해준다. 울산의 명소라고 할 수 있는 간절곶 등대를 소재로 활용한 캔들 워머도 인아트의 특별한 제품이다.

허공을 떠도는 ‘플라이 애쉬’, 아름다운 도자기가 되다

고래의 꿈을 키우는 인아트엔 특별한 점이 더 있다. 그것은 환경 오염물질인 폐자원을 활용해, 도시의 환경문제를 해결한다는 점이다. 거대 산업도시 울산은 화력 발전소, 대규모 공장이 많다. 아직도 석탄을 많이 사용한다. 석탄을 태워 연료로 사용하면 다양한 ‘석탄 비산재’가 발생한다. 화력 발전소에서는 비산재를 레미콘이나 시멘트 업계로 보내거나 매립한다. 지금까지 국내 관련 업계는 경제성 문제로 대부분 매립을 선택해 왔다.

매립은 한계가 분명하다. 환경에도 치명적이고 석탄재 매립층과 폐기물 등이 섞여 있던 매립지대가 침하하는 일까지 발생했다. 2016년 ‘자원순환개정법’이 나온 뒤로 여러 방법이 시도되고 있지만, 문제의 근원은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

마땅한 해결책이 없는 비산재를 다르게 사용할 아이디어가 필요했다. 도자기 수공예를 가르치고 생산하는 ㈜인아트가 비산재를 이용해 도자기용 흙을 개발하게 된 이유다.

석탄 비산재를 활용한 공예품들. 
석탄 비산재를 활용한 공예품들. 

“올해 강도, 안전도 검사를 통해 샘플 제작을 시작했어요. 성적서를 기반으로 제품화를 시작했는데, 대량화한다면 소성 비용을 절감해 제품의 가격 경쟁력도 가질 수 있어요. 애초에 기술은 존재했지만, 상업화의 활로를 찾지 못한 부분이 아쉬웠던 거죠.”

인아트는 석탄 비산재 중 환경에 치명적인 매립 직전의 플라이애쉬(fly ash, 가장 가벼운 미세분말)를 활용했다. 석탄 비산재와 도자기용 소지(찰흙)의 성분을 분석하고 인체 유해성, 안전성, 강도등을 고려해 다양한 샘플링을 거쳐 10~40%의 혼합비율을 가진 도자기 흙을 개발했다. 관련 기술은 울산테크노파크에서 지원했다.

 

울산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은 '고래 주병 세트'. 
울산관광기념품 공모전에서 동상을 받은 '고래 주병 세트'. 

이순영 대표는 “한국동서발전과 삼표그룹이 협약을 통해 석탄비산재 소지를 제공받기로 했다”며 “안정적인 원재료 수급처를 확보했다”고 밝혔다. 한국세라믹연구소와 협력도 한몫했다. 석탄 비산재를 재활용해 혼합소지를 활용한 제품 제작 가능성을 타진했으며, 기술개발을 위해 협업하고 있다.

농아인들의 새로운 꿈과 도자기

인아트의 비산재 도자기는 한 가지 더 특별함을 담고 있다. 도자기를 만드는 사람들이다. 인아트는 울산농아인협회 청각 장애인들에게 도자기 제조 교육을 진행해 그들의 자립을 돕고 있다. 인아트 정규직 직원 7명 중 2명이 취약계층이다. 

“처음부터 일자리를 제공하기 위해 시작한 것은 아니에요. 세상과 소통하는 방법으로 미술교육을 시작했던 거죠. 근데 손재주가 월등히 뛰어나고 집중력이 높았어요. 내년에는 수공예 도자기 생산을 맡길 예정입니다.”

청각장애와 언어장애는 비장애인이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세상과 소통에서 심각한 장벽이 된다. 2016년 2월, 한국수화언어법이 제정돼 수어와 국어가 동등한 지위를 얻게 됐지만, 비장애인들이 수어를 독립된 언어로 인식하는 정도는 아직 낮다.

농아인들이 세상과 소통하는 어려움에 대해 깊이 공감했다는 이 대표는 농아인들의 도자기 교육을 맡게 된 계기를 설명하면서 그들의 재능과 가능성에 자부심과 놀라움을 표현했다.

농아인들이 수업을 통해 제작한 화분, 그릇, 시계 등 작품들이 나오고 있다. 작년에 이어, 오는 12월 14일부터 1주일간 한국동서발전의 도움으로 작품전시회를 개최한다. 이 전시회는 석탄재를 활용한 다양한 작품과 인아트의 제품 다수를 공기업과 일반인들에게 선보일 예정이다.

6년차 사회적기업 ㈜인아트

인아트가 처음부터 비산재 도자기 사업을 시작한 건 아니다. 2013년 미술교육 관련 사업으로 창업, 2015년에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사회적기업을 시작하게 된 건 자연스러웠다. 미술교육사업을 통해 마음이 아픈 아이들이 치유되는 것을 경험한 이 대표는 미술교육을 통한 치유사업을 본격화했다. 일반 가정에서도 폭넓게 필요한 미술교육 치유가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절실하다고 느낀 후 주저하지 않고 사업에 뛰어들었다.

“시작하고 2년간은 수익구조를 안정적으로 만드는 데 집중했죠. 아이들 대상으로 찾아가는 미술교육을 했는데 한계가 있더라고요. 지역 취약계층을 보면서 사회서비스 필요성도 크게 느꼈고요. 3년 차부터 수공예 도자기 사업 분야를 추가했습니다. 공장 공예품과 경쟁할 수 있는 관광 공예품을 만드는 궁리를 하면서 비산재를 이용한 도자기 사업을 시작하게 됐습니다.”

제품의 고도화와 시장에서의 경쟁력이 남은 숙제

아직 제품을 고도화해야 하는 숙제는 남아 있다. 시장경쟁력을 묻자 이 대표는 “그다지”라고 솔직하게 말한다. 유해 물질을 사용했다는 이미지는 안전한 제품으로 개발했다는 설득의 벽을 만나기 마련이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는다. 사회적 가치와 진정성이 가장 큰 밑천이다. 이제 완성도 있는 도자기를 만드는 일만 남았다.

인아트는 자원의 선순환 모델을 사회적기업이 제시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제품기술력이 부족한 사회적경제 기업이 기술개발 과제에 참여하고, 그 결과를 활용함으로써 타 동종 영세기업에 기술개발에 대한 필요성 인식을 높이는 이중 효과다. 기술연구소가 없는 대부분의 사회적경제 기업에 인아트 사례는 제품 고급화 및 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 방식(OEM) 방식의 기술제휴로 매출 상승을 꾀하는 모범 답안이 될 수 있다.

인아트는 지역기관과 협력을 통한 홍보 진행 및 판매처 개척에도 적극 나설 계획이다. 광역시, 기초단체의 관광문화과와 협력해 지속해서 납품할 수 있도록 신제품을 홍보하고, 관광에도 그린환경, 착한 소비의 인식을 통해 새로운 소비 흐름을 조성해보겠다는 의지다. 현재 울산경제진흥원이 입점한 네이버 스토어팜 ‘울산상회’ 등 온라인 판매처 확보를 추진중이며, 홈쇼핑 등 다양한 유통채널 활용하고자 한다.

일차적인 목표는 석탄 비산재를 활용해 고급스럽고 차별화된 울산지역 관광상품을 개발하는 것이다. 더 나아가 부가가치가 높은 고급 건축자재를 개발하는데 석탄 비산재를 활용할 계획이다. 지역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그린환경 실천, 지역 자원 연계로 사회적경제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고도화해 경쟁력 높은 사회적경제의 가능성을 보이며, 지역 일자리를 창출하게 될 것이란 기대다.

취재 내내 이 대표의 옆자리를 지키고 있던 인아트 사무팀 김선아 팀장은 “대표님의 뚝심과 사업에 대한 진정성이 없었으면 오늘의 인아트는 없었을 것”이라며 이 대표에 대한 굳은 신뢰를 전했다.

[미니 인터뷰] 인아트 이순영 대표

인아트 이순영 대표. 
인아트 이순영 대표. 

Q. 코로나19도 그렇고, 그동안 사업에 어려움이 컸을텐데요.

- 사업을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많았어요, 주요 매출이 교육사업인데, 모임 자체를 금하는 상황이다 보니. 올해는 그야말로 매출이 반 토막 났어요. 직원들 월급 걱정에 밤잠을 설치기도 했죠. 그래도 최선을 다하면서 견뎌냈어요(이 대표는 이 대목에서 잠시 눈물을 보였다).

그래도 두드리는 방향에서 길이 열리더라고요. 아무래도 사회적기업은 사업을 수행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것 같아요. 사업 자체가 사회적 가치를 품고 있어서 사업을 통해서 변하는 사람들을 보는 것, 그게 어려움을 이기고 유지할 수 있는 동력이 됩니다. 매년 회차를 함께 넘어가는 직원들을 통해 회사가 단단해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Q. 기업을 하면서 바람이 있다면요.

인아트는 (사람을) 예술 안에 담는다는 의미입니다. 거창하죠? 근데 우리 구성원들은 모두 소박하거든요.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살 수 있는 세상, 그런 세상에 나름의 역할을 하는 기업을 만들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우리를 알아봐 줬으면 좋겠습니다.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