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 시대의 경제란, 굶어죽지 않게 하는 것이다. 잘먹고 잘사는 건 다음 문제다.”
‘88만원 세대’, ‘사회적 경제는 좌우를 넘는다’의 저자로 유명한 우석훈 성결대 교수가 ‘위기 시대의 경제학, 사회적경제’를 주제로 강연에 나섰다. 지난 16일 방송된 EBS ‘CLASS e’에서 우 교수는 인류의 역사에서 위기의 순간마다 대안으로 등장한 사회적경제에 관한 이야기를 펼쳤다.
이날 방송된 제1강 ‘혼돈 시대의 경제’에서는 우 교수는 “온 인류가 코로나19라는 최강 바이러스를 겪고 있는 현 상황이 몇 년간 더 지속될지 모른다”라며 “위기의 순간에는 사회구조와 살아가는 방식, 문화 등이 많은 것이 바뀌어 경제에도 영향을 미칠 것이다. 아직 우리에게 익숙하지 않은 사회적경제라는 범주에서 어떤 일이 생길지 고민해보자”라고 제안했다.
경제학자인 우 교수는 “내가 생각하는 경제의 의미는 굶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이라며 “한국에서 태어났으면 누구든 세끼 밥 먹는 것을 걱정하지 않는 나라를 만들면 된다”라고 밝혔다. 그는 “흔히 자본주의란 이긴 사람이 다 갖는 승자독식을 떠올리지만, 사실 자본주의를 가장 꽃피운 선진국들은 ‘누구든 이 땅에 태어나면 굶지 않는다’는 정신을 가졌다”라고 말했다
먼저 조선시대 유명한 부자들의 사례가 소개됐다. 곡식 만석을 거둬들이는 ‘경주 최부자’는 “사방 100리 안에 굶어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는 원칙을 갖고 살았다. 구례에서 99칸 고택에 사는 한 부자는 보릿고개 위기가 찾아왔을 때, 뒷문에 쌀독을 놓고 ‘타인능해(他人能解: 다른 사람이 퍼가도 됩니다)’라고 써두었다. 누구나 배가 고프면 남의 눈치를 보지 말고 뒷문으로 들어와 쌀을 퍼가라는 뜻이었다. 공동체가 이웃이 굶어죽지 않도록 함께 힘쓴 것이다.
해외 대표적 사례로는 스위스의 대표적 유통기업 ‘미그로(Migros)’를 꼽았다. 1925년 작은 트럭 5대로 출발한 미그로는 유통 단계를 줄여 쌀·파스타·설탕·커피 등을 소매상보다 싼값에 판매하며 인기를 끌었다. 제2차 세계대전이 시작되자 창립자인 고틀리프 두트바일러는 1941년 미그로를 주식회사에서 협동조합으로 전환해 위기를 극복한다. 여러 협동조합이 발달한 스위스는 현재 1인당 국민소득 7만 달러로,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로 성장했다.
제1~2차 세계대전을 겪으며 ‘파시즘’이 성행한 이탈리아에서는 정치권에서 협동조합을 적극 육성했다. 자본가도 노동자도 싫어했던 통치자 무솔리니가 협동조합을 그 중간 지점으로 봤기 때문이다. 이탈리아에서 오랜 시간 협동조합 운동을 진행해온 사람들은 ‘관제’가 되길 거부했고, 자신들만의 전통을 이어온다. 그렇게 이탈리아는 현재 7만개 협동조합, 1300만명 조합원을 보유한 사회적경제 강국이 된다.
일본 역시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직후, 지역별로 ‘생활협동조합’이 생겨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을 돌본다. 특히 1995년 고베 대지진 당시 지역 주민들을 보살핀 ‘고베생협’은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고 있다.
우 교수는 “이처럼 많은 나라에서 격동의 시기가 오면 사회적경제라는 축을 세우고, 먹고사는 문제를 해결하려는 경향을 보여왔다”면서 “국가가 통치하고 조율하고, 시장이 이윤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국가와 시장이 해결할 수 없는 또 다른 영역을 위해 사회적경제라는 3번째 다리를 만들며 21세기로 넘어온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EBS와 한국사회적기업진흥원이 함께 준비한 강연 프로그램 ‘위기 시대의 경제학, 사회적경제’는 이달 16일부터 27일까지 총 10회 연달아 방송된다. 매주 월~금요일 오전 5시 30분 EBS 1TV, 오후 10시 20분 EBS 2TV에서 전파를 탄다. 온라인 ‘CLASS e’ 홈페이지에서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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