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지가 좋은데 허름하지 않고, 월세 부담은 적은 집이 있을까? 그런 집에서 쫓겨날 걱정 없이 오래 살 수는 없을까? 최근 집을 사지 않고도 입지 좋은 곳에서 장기간 저렴한 임대료로 살 수 있는 '사회주택'이 주목받고 있다.

사회적경제 미디어 <이로운넷> 취재팀은 국내 사회주택을 들여다보고, OECD 사회주택 비율 상위 3개국인 네덜란드·오스트리아·덴마크의 사회주택 전문가들과 나눈 이야기를 차례로 연재한다.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함께주택협동조합(이하 함께주택)’ 3호의 전경./사진=박성빈 인턴기자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함께주택협동조합(이하 함께주택)’ 3호의 전경./사진=박성빈 인턴기자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위치한 ‘함께주택협동조합(이하 함께주택)’ 3호는 토지는 서울시가 임대하고 건물은 조합원이 소유해 이용하는 토지임대부 사회주택이다. 함께주택은 집값 걱정 없이 원하는 기간 동안 거주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여 만든 이용자협동조합으로, 토지와 건물 비용을 공공과 민간이 함께 부담해 시민의 주거비용 부담을 낮춘다.

현재 함께주택 1~3호는 입주를 완료했고, 4호는 입주자를 모집한 뒤 2021년 2월 입주를 목표로 착공 준비 단계다. 이곳에 입주하는 사람들은 조합원으로 가입해 협동조합 방식으로 주택을 설계·시공·운영에 참여한다. 조합원이 부담하는 임대보증금은 건축 비용에 쓰이고, 월 사용료는 토지임대료와 관리·운영비로 충당된다. 협동조합 내부에서 조합원 각자가 맡은 역할에 따라 월 사용료 부담도 달라진다.

함께주택 3호는 약 2년간 공사를 마치고, 지난 6월 준공식을 통해 입주자를 맞이했다. 이곳에는 1~3인 가구 총 11세대가 원룸 또는 투룸 형태로 거주한다. 최초 입주 시 2년 계약 후 최대 4회까지 재계약해 8년까지 살 수 있다. 이곳 원룸에 입주한 40대 직장인 김보라 씨와 룸메이트와 투룸에 들어온 20대 직장인 송슬기 씨를 만나 사회주택에 사는 생생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함께주택 3호에 입주한 김보라 씨(왼쪽)와 송슬기 씨. 사회주택 입주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김보라씨는 “무조건 싼 집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어느 정도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사회주택도 워낙 형태가 다양하다 보니, 자신의 성향과 필요에 맞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박성빈 인턴기자
함께주택 3호에 입주한 김보라 씨(왼쪽)와 송슬기 씨. 사회주택 입주를 고민하는 이들에게 김보라씨는 “무조건 싼 집이라는 개념을 버리고, 어느 정도 책임감과 연대의식을 가져야 한다”며 “사회주택도 워낙 형태가 다양하다 보니, 자신의 성향과 필요에 맞는 곳을 찾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사진=박성빈 인턴기자

-먼저 사회주택에 입주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어떻게 함께주택을 알게 됐나요?

송슬기: 저는 시민사회 활동에 관심이 많은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들여다보다가 사회주택을 처음 알게 됐어요. 앞서 서울시에 운영하는 사회주택 형태의 셰어하우스에서도 6개월 정도 살아봤는데, 각자 문 닫고 개인적으로 살다 보니 만나서 소통할 기회는 많지 않더라고요. 2018년 겨울 페이스북을 통해 함께주택 3호가 지어진다는 소식을 들었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에 지원해 입주하게 됐습니다.

김보라: 사회주택에 대한 개념은 알고 있었어요. 사실 ‘꼭 가야겠다’라고 마음을 먹었다기보다는 나에게 가장 합리적인 주거 형태를 찾다 보니 사회주택에 정착하게 됐어요. 이전에 살던 곳도 서울주택도시공사(SH)가 운영하는 주택이어서 홈페이지를 자주 들락날락하다 보니 여러 사회주택을 알게 됐고 실제 신청도 여러 곳 해봤어요. 가장 잘 맞는 곳이 함께주택이라고 생각했는데, 기존 입주자가 들어오지 않으면서 공실이 생겼고 운 좋게 제가 추가로 선정됐죠. 

-이전에는 어떤 형태의 집에서 거주했고, 어떤 필요를 느꼈나요?

송슬기: 저는 대구에서 20년간 살다가 대학교를 강원도 춘천에서 다니고, 직장 때문에 서울에 온 지 3년 정도 됐어요. 직장 근처인 성산동에 주로 살았는데, 처음에 구한 원룸은 햇빛이 한 줌도 들지 않은 좁은 원룸이었어요. 임대료도 비싸고 환경도 좋지 않아 분위기가 너무 삭막하더라고요. 어릴 땐 이웃끼리 교류하고 얼굴도 알고 지냈는데, 점점 옆집에 누가 사는지조차 모르게 되잖아요. 서울에 살면서 사람들이 너무 바쁘게 살고 표정도 어둡다고 느꼈는데, 집까지 그러니까 가슴이 답답해져서 뭔가 해결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김보라: 저는 부모님 집에서 독립해 친구, 동생과 각각 살다가 혼자 산 지는 10년 정도 됐어요. 이곳 직전에 살던 곳은 SH에서 운영하는 원룸형 다세대주택이었어요. 대부분 그렇듯 이웃과 교류가 전혀 없어서 서로 얼굴 마주치는 일이 좀 불편했어요. 내가 나가려고 하는데 옆집에서 나오는 문소리가 나면 문고리를 잡고 서 있는 일이 빈번했죠. 엘리베이터든 복도든 만나면 서로 인사할 수 있는 그런 ‘편안함’이 필요했어요. 함께주택은 입주자 모두가 연대감을 가지고 공동 문제를 해결해간다는 점에서 제 필요에 딱 맞는 곳인 것 같아요. 

함께주택 3호에 입주자들이 직접 쓴 상량판(왼쪽 위)과 쓰지 않는 물건을 공유하는 상자(왼쪽 아래),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동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사진=박성빈 인턴기자
함께주택 3호에 입주자들이 직접 쓴 상량판(왼쪽 위)과 쓰지 않는 물건을 공유하는 상자(왼쪽 아래), 커뮤니티 활동을 할 수 있는 공동공간 등이 마련돼 있다./사진=박성빈 인턴기자

-직접 살아보니 함께주택의 좋은 점은 무엇이던가요?

김보라: ‘함께 해치워야 할 일’이 많다는 게 최대 장점이에요. 사회주택은 청년‧친환경‧셰어하우스‧1인가구 등 콘셉트가 많은데, 함께주택은 ‘주거안정’을 목표로 만든 협동조합이라 입주자들이 어떻게 사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여기 사람들이 서로 연대감을 느끼려면 형식적 모임을 할 게 아니라, 공동문제를 함께 해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거든요. 예를 들어 쓰레기 문제의 경우 다른 집에서는 집주인이나 한두 사람만 신경을 썼다면, 함께주택에서는 모두 모여서 해결책을 논의해요.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든 다같이 해결해보려는 게 가장 좋아요.

송슬기: 입주 전부터 설명회부터 워크숍 등 행사를 10차례 넘게 진행했어요. 이 자리에 허름한 주택이 있을 때부터 입주자들과 만나 그곳이 철거되고 새 건물이 지어지는 과정을 전부 지켜봤거든요. 워크숍에서 내가 원하는 집 도면을 직접 그려보기도 하고, 주택 상량식(집을 지을 때 최상부인 마룻대를 올리는 의식)도 다함께 열었어요. 커뮤니티 활동을 통해 입주민들과 친해지고 집을 짓고 운영하는 과정 전반에 참여하니, 아무래도 애정이 남다른 것 같아요.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조금 불편하다 싶은 점도 있나요?

김보라: 입주자들과 같이할 일이 너무 많아서 때론 힘들기도 하죠. 보통 누가 관리해주는 집에 살다가 여기에 오면, 생각하지도 못했던 것까지 신경을 쓰게 되거든요. 하다못해 공동공간에 놓은 화분이 죽었네 살았네까지 회의를 하니까요.(웃음) 그래도 조금만 귀찮으면 나머지 힘듦은 상쇄가 돼요. 함께주택 사람들은 평소엔 개인적으로 살다가 필요할 때 모이는 ‘느슨한 연대’를 추구해요. 다들 남에게 피해를 주는 걸 극도로 싫어해서 민감할 정도로 배려해요. 내가 어떤 문제로 피해를 받기도 주기도 싫다면, 아이러니하게 ‘관계’를 맺어야 하더라고요. 

송슬기: 아무래도 할 일이 많은 편이에요. 예를 들어 건물 소방안전 관리자나 엘리베이터 안전교육 담당자 등이 필요한데, 외부 업체에 대행을 맡겨도 되지만 비용이 비싸니까 조합원들이 역할을 맡았어요. 이외에도 한 달에 한 번 조합원 총회, 거주자 회의 등이 열리는데 저희 가구에는 2명이 사니까 나눠서 가기도 해요. 회의에서는 주차 문제가 심각하면 ‘주차위원회’를 만들어서 해결책을 논의해요. 사실 여러 회의에 참석하는 일이 조금 귀찮을 수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가치’에 공감하신다면 커뮤니티 활동이 어렵지 않을 거라고 생각해요.  

송슬기 씨(오른쪽)는 “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협 등 사회적경제 전반에 관심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김보라 씨는 “여기에 살면서 다른 입주자들이 태양광이나 반려동물 같은 이슈를 던지면 이전에는 관심없던 분야라도 한번씩 생각해보고 들여다보게 된다”고 덧붙였다./사진=박성빈 인턴기자
송슬기 씨(오른쪽)는 “협동조합 조합원이 되면서 자연스럽게 생협 등 사회적경제 전반에 관심이 넓어졌다”고 말했다. 김보라 씨는 “여기에 살면서 다른 입주자들이 태양광이나 반려동물 같은 이슈를 던지면 이전에는 관심없던 분야라도 한번씩 생각해보고 들여다보게 된다”고 덧붙였다./사진=박성빈 인턴기자

-마지막으로 현재 사회주택에 사는 것의 의미와 향후 집에 대한 계획 등을 말씀해주세요.

송슬기: 예전에는 뭐랄까 ‘아스팔트 한복 판에 혼자 서있는 것’ 같았는데, 함께주택에 입주한 이후에는 한 평 정도는 내 땅이 생긴 느낌이 들어요. 처음 여기에 당첨됐을 때 너무 기뻐서 이후에 저처럼 혈혈단신 서울로 올라온 친구들에게 사회주택 관련 링크를 계속 보내주고 있거든요.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만약 서울을 벗어나게 되더라도 부동산 구매에 대한 생각은 사실 없어요. 집에 너무 얽매이지 않고, ‘노마드(유목민)’처럼 자유롭게 살고 싶어요.

김보라: 함께주택에 산다는 건 제게 ‘안정감’이에요. 모르는 사람들이 모여 안정감을 나눈다는 게 참 희한해요. 앞서 원룸에 혼자 살 때는 밖에서 소리가 조금만 나도 깜짝 놀라고 잠도 깊이 못 잤거든요. 그런데 여기는 입주자들 모두 아는 사람이니까 거기서 오는 안정감이 정말로 커요. 일단 이곳에선 사용료만 낼 수 있으면 최대 8년까지 살 수 있으니, 별다른 신상의 변화가 없다면 오래 살 것 같아요. 지금 원룸에 사니까 좀 더 넓은 곳으로 이사 가고 싶은 마음도 있는데, 만약 다른 지역에 가더라도 사회주택을 알아보지 않을까요?

*이 기획물은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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