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사회적경제 개념은 새로운 담론을 형성하고 확장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우리 일상에서도 많이 익숙해지고 있다. ‘담론’이라고 하면 자칫 말뿐이라는 인상을 주기 쉽지만, 하나의 담론을 형성하고 실천한다는 것은 그 의미를 실체화할 수 있는 실천까지를 포함하게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사회적경제와 사회적 가치를 담론 차원에서 이해하려고 하지만, 사실 사회적경제는 일상의 실천을 근간으로 한다는 점에서 더욱 담론과 실천을 함께 들여다봐야 하는 영역이다.

하이데거는 “언어는 생각의 집”이라고 했다던가. 사회적경제라는 말이 하나의 담론으로 자리 잡는 과정 역시, 특히 ‘사회적’이라는 말의 의미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들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왔다. 사회적경제는 삶의 다양한 의제를 중심으로 활동의 반경을 넓혀왔고, 그 과정에서 한국 사회에서 시민권을 얻은 개념으로 볼 수 있다. 이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결국 활동가, 사회적 기업가, 주민, 참여자, 주체 등 다양한 명칭으로 서로를 부르며 사회 경제를 일궈온 사람들이 다듬어 온 사회적 가치와 의미들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경제는 '사회적인 경제'라는 뜻의 명사로 읽기 쉽지만, 사실상 "거듭되는 재의미화를 통해 구성되는 유동적 과정(깁슨-그레엄, 2016: 19)"으로서 동사형으로 바라보아야 할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 속에서 사회에 대한 고민은 개인을 넘어서는 사회적 가치에 대한 지향과 삶을 지탱하는 사회 구조와 맥락에 대한 고민, 시민으로서의 참여와 사회권력을 강화하려는 열망으로 나타난다.

아쉬운 점은 이러한 의미들이 많은 경우 충분히 담론화되고 표현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렇다 보니 사회적경제가 무엇인지 정의하고 설명하는 것이 많은 경우 경제나 국가 정책의 언어와 담론에 기대어 이루어진다. 경제와 다른 것, 개인이 아닌 것,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것 하는 식으로 외부와의 비교 속에서 사회적경제를 설명하는 방식은 사회적경제의 내재적인 특성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성찰할 인식적 기반을 만들지 못한다는 점에서 문제가 있다.

사회적경제 영역이 ‘정책의 동원 대상’ 또는 ‘시장의 새로운 착취 대상’ 정도로 저평가되는 것도 사회적경제를 자립적으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문제와 무관하지 않아 보인다.

사회적경제에 대한 저평가와 비판은 보통 세 갈래로 나타난다. 사회적경제 역시 서구 사회에서 수입한 개념 정도라고 보는 시각, 사회적경제를 정부 주도로 동원된 정책적 수사로 바라보는 시각, 현재의 경제 및 사회 질서에 대안을 자임하지만 실질적으로 극적인 변화나 차이를 드러내지 않는다고 보는 시각이 그것이다. 한국은 상대적으로 사회적경제의 역사가 짧다, 사회적경제의 기반이 얕다, 아직 역량이 약하다 하는 등의 이야기들이 이러한 비판의 맥락을 드러낸다.

어떤 관점에서 보느냐에 따라 이러한 말에 동의할 수도, 아닐 수도 있겠다. 다만, 누군가는 여전히 사회적경제는 결국 사회주의, 더 나아가 공산주의로 갈 것이라고 말하고, 또 누군가는 많은 활동이 정책이나 기업의 사회공헌활동과 연계된 '사업'으로 전락하는 것은 아닌지 고민하는 상황 속에서도, 사회적경제가 꾸준히 이어져 오면서 계속해서 지금의 경제가 '사회의 경제'인지 질문을 던져 왔다는 점은 간과할 수 없다.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쌓아온 역사는 어떤 의미에서는 결코 짧지 않다. 사회적경제 역사에 있어 중요한 분기점으로 여겨지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와 자활사업이 시작되던 1999년을 기점으로만 봐도 20년의 시간이 쌓였다. 이 시간과 경험에 대해 여러 가지 평가가 공존하는 것도 사실이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러한 실천들이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것’에 대한 믿음이 모였을 때 나타날 수 있는 사회 변화의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사회적경제를 규정하는 데 있어서 담론이 어떻게 형성되는가 만큼이나 중요한 부분은 그 가치와 의미가 충분히 언어화되었든 그렇지 않았든 이 활동들이 현실에서 생산-소비-교환-분배를 민주적으로 변화시키면서 가치를 실현해 온 실천들로 구성되어 있다는 점이다.

일례로 생산 영역에서는 노동자 협동조합, 신용 협동조합, 보다 최근에는 다양한 형태의 생산과 일을 실험하는 사회적 기업과 소셜 벤처들이 그간 익숙하지만 개인을 옥죄어 왔던, 그럼에도 개인의 힘으로는 해결할 수 없던 생산과 일의 방식을 바꾸고 있다. 공정무역, 생활협동조합은 생산과 소비의 개념을 바꾸고 분절된 것으로 여겨지던 두 영역을 적극적으로 연결한다. 자원을 소비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 교환, 공유하는 방식들을 모색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커먼즈와 시민 자산화 등 사회적 소유에 대한 고민도 진전되고 있다.

사회적경제 영역을 중심으로 사회 공헌, 사회혁신, 사회적 가치 등 '사회'가 들어간 말들이 늘어나고 사회 각 분야의 의제로 등장하면서 한국 사회에서 "사회적인 것(the social)"에 대한 관심 역시 어느 때보다 높아졌다. 사회적경제 활동을 지탱하는 공통의 논리에는 제도 논리를 구성하는 사회적 요소가 있으며, 더불어 현장에서 주로 쓰는 '사회'와 '사회적 가치'와 결부된 삶의 사회성과 연결성에 대한 인식 및 자본주의 기업 활동의 경제 가치와는 구분되는 의미에서의 다원화된 가치가 포함된다.

사회적경제를 개인들이 경험하고 발견하는 (구조로서의)사회문제에 대응하여 사람들이 연대하고, 결사하면서 새로운 (공통의)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활동들로 정의하는 것도 이러한 맥락이다. 여기에서 ‘사회적인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확정지어 단정하는 것은 불가능하기도 하고, 별로 바람직한 접근은 아니라고 본다. 사회적경제를 구성하는 활동이나 행위자 자체가 워낙 다양하기 때문이다. 개별 활동의 성격에 따라서는 사회를 위한 목적성(for the social)에 방점을 더 두는 경우도 있고, 결사체 조직과 참여(by the social)를 더 강조할 수도 있다. 오히려 사회와 경제의 관계를 둘러싼 이러한 다차원적인 접근들과 상상이 펼쳐내는 다양성을 정책 담론이나 기업 담론 속에서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사회적인 것을 정의내릴 수 있는 방식이 무엇일지 찾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사회적경제 현장은 사람들이 삶의 다양한 가치들을 일궈가는 곳이기도 하지만, 먹고 사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고 그만큼 바쁘게 돌아간다. 연구자로서는 그렇기 때문에 현장에서 생성되는 많은 가치의 기록과 암묵지들이 휘발되는 것 같은 안타까움이 있다. 이 사회에서 사회적경제가 어떻게 뿌리내려 왔고 그 잠재적 가치가 무엇인지를 드러내려면 한국의 사회적경제가 얼마나 많은 대안을 만들어 왔는지, 그것이 어떤 실천들로 연결되어 왔는지를 계속해서 추적하고 기록하는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사회적경제가 무엇인가, 사회적 가치가 무엇인가를 정의하여 명문화하려는 작업은 그간 비공식적인 방식, 또는 기존 주류 자본주의 경제에 맞춰진 정책 틀 안에서 활동해 온 사회적경제 조직들의 오랜 숙원이기도 하다. 다만 사회적경제와 그 가치를 정의하는 과정에서 사회적경제의 실천성과 역동성을 제거한 채 구획을 나누는 또 다른 틀을 만들어내는 방식은 아니었으면 좋겠다. 누구에게나 열려 있는 개방성은 혼자가 아니라 더불어 살아가는 실천으로서 사회적경제에서 빠질 수 없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또한 사회적 가치가 사회적경제의 핵심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서라도, 사회적경제가 만들어내는 사회적 가치를 경제나 정책 측면에서의 효용 담론에 기대어 규정하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아직 충분히 생각하고 언어화하지 않았을 뿐 누구나 알고 공감하는 가치를 언어화하는 작업이 더 활발히 이루어져야 할 시점이 아닌가 생각한다.

※이 글은 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시민경제연구유닛에서 발행하는 '이슈브릿지(Issue Bridge)'에 게재되는 글입니다. 자세한 이야기가 궁금하다면 여기를 클릭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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