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청년 기업이 주목받고 있다. 정부에서는 지역 (예비)창업자를 지원하는 ‘로컬크리에이터 육성 정책’, 지역연계형 창업을 희망하는 서울시 거주 청년을 지원 ‘넥스트로컬’ 사업 등을 통해 지역 청년 기업을 지원한다. 민간에서는 ‘로컬라이즈 군산’ 프로젝트와 강원도 지역 창업 기업을 위한 ‘로컬 펀드’를 조성하는 등 지역에 관심을 보이고 있다. 

청년은 새로운 시각으로 지역을 바라보고 기존의 자원을 활용해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든다. 이를 통해 지역은 활기를 되찾고 있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지역 청년 기업을 이로운넷이 만났다.

정선에서 나고 자라 대학으로 향했던 쌍둥이 자매가 지속가능한 산촌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고향으로 돌아왔다. 김정하, 김인하 씨의 이야기다. 

자매는 정선 안에서도 외진 곳에 있는 산촌에서 자랐다. 집에서 마을, 학교까지 거리는 3~4km에 달했다. 별다른 교통수단이 없어 이곳으로 가기 위해서는 걷거나, 트럭을 타고 가야 했다. 자매는 집에 돌아가기 전에는 친구 집을 꼭 들렀다. TV가 있었기 때문이다. 학원은 꿈도 꾸기 힘들었다. 대신 집에서 책을 읽거나 마당이나 뒷산, 숲에서 시간을 보냈다.

김정하, 김인하 쌍둥이 자매 모습./사진=숲자매숲생활

집은 산촌에 있었지만, 자매는 다양한 세상을 경험했다. 뉴질랜드로 어학연수를 다녀오기도 하고, 전국의 학생들이 모여 히말라야를 등반하는 ‘로체원정대’로 활동하기도 했다. 지역 안에서는 세상으로 나아가자는 의미의 동아리 ‘누리GO’를 결성해 지역을 탐방하고 문제를 발견 해결하는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이런 활동을 통해 자매는 도전 정신과 지역과 세상에 대한 관심을 키워나갔다.

유년 시절을 정선에서 보내고 난 뒤에는 대학교로 향했다. 정하 씨는 철학과 산림경영학을, 인하 씨는 독어독문학과 경영학을 전공했다. 전공은 다르지만, 둘 다 여행을 좋아했다. 정하 씨는 지역 문화에 관심이 많아 청소년·청년들과 국내외 여행을 다녔고, 인하 씨는 독일문화와 역사를 배우기 위해 해외봉사 겸 여행을 다녀왔다. 

숲을 느끼고 지역을 체험하도록

이런 경험은 지난해 12월 시작한 숲자매숲생활의 사업에 영향을 줬다. 대부분 취업을 준비할 시기에 지역에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는 건 불안한 일이었지만, 그간 해왔던 도전과 경험이 있어 흔들리지 않을 수 있었다.

자매가 설립하고 공동대표로서 운영 중인 숲자매숲생활은 정선의 산촌 생활을 기반으로 여행·교육·콘텐츠(문화) 서비스를 제공한다. 주로 2030 청년 세대와 가족 여행객이 찾아온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두 가지다. ‘숲숲트립’은 자매와 함께 숲을 체험하는 프로그램이다. 숲의 꽃과 풀, 나무를 비롯한 자원을 활용하고, 계절마다 변화하는 숲을 특성에 맞춰 프로그램을 구성한다. ‘로컬트립’은 자매의 안내에 맞춰 쇠락한 탄광촌에서 변화를 만든 ‘마을호텔 18번가’, 국내 최대 규모 야생화 군락지 만항재, 전시관 삼탄아트마인 등 지역의 특색있는 장소를 1박 2일~2박 3일 동안 방문하는 프로그램이다.

숲자매숲생활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모습./사진=숲자매숲생활
숲자매숲생활의 프로그램에 참여한 아이들의 모습./사진=숲자매숲생활

떠나는 청년, 파괴되는 자연 

자매가 처음부터 숲자매숲생활을 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건 아니었다. 시작은 안타까움이었다.지역 청년 대부분이 지역을 떠나고 싶은 곳, 가능성이 없는 곳으로 인식하고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하는 모습을 보며 씁쓸함을 느꼈다. 친구들 대부분이 정선을 떠났고, 돌아온다고 해도 은퇴 후에나 올 계획이었다.

“산촌에서 태어난 우리도, 이곳에서 미래를 보지 못하는데, 누가 여기서 살고 싶어 할까요. 이대로라면 산촌은 30년 뒤에 사라진다. 우리 세대들이 자연에서 살고, 놀고, 일하는 법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숲과 지역에 대한 이야기와 경험을 기반으로 사업을 시작했다”

자매는 산촌에서도 청년이 머물 수 있다는 걸 증명함과 동시에 환경문제를 해결에 기여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25년간 자연이 파괴되는 모습을 지켜봤다. 강과 계곡의 물은 말랐고, 자연은 회복되지 않았다. 지역의 누구도 자연을 보전하거나 재생하는 데 관심이 없었다. 김정하 숲자매숲생활 공동대표는 변화를 위해서는 인식 개선이 선행 돼야 한다고 봤다.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니 환경변화를 아는 이가 많지 않다. 바깥에서는 더욱 그렇다. 적어도 숲자매숲생활을 찾는 분들에게는 이런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환경문제 있으니 보러 오라고 하면 누구도 오지 않는다. 여기서 나고 자란 우리의 안내를 받으면 산촌을 느끼고, 친밀해지면서 환경 문제에도 관심이 높아지면 좋겠다”

김정하, 김인하 대표는 부모님의 직업 특성상 어릴적부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산촌에서 자라면서도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사진=숲자매숲생활
김정하, 김인하 대표는 부모님의 직업 특성상 어릴적부터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었고, 덕분에 산촌에서 자라면서도 넓은 시각을 가질 수 있었다./사진=숲자매숲생활

숲자매숲생활의 기반은 정선의 자원

문제의식이 있다고 해서, 모두 사업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원이 필요하다. 다행히 정선은 사업에 도전할 수 있을 만큼 자원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산과 숲이 많고 관광업이 발달해 있는 특징은 산촌생활을 기반으로 숲자매숲생활의 사업과 상승효과를 내고 있다. 또한 정선 내에 위치한 9개의 읍면마다 자연, 역사, 문화, 예술과 관련된 이야기가 있고 폐광, 정선아리랑 등이 있어 이를 활용한 콘텐츠 개발도 가능하다. 폐광촌 경제를 살리기 위해 만들어졌던 강원랜드에서 창업 기업을 대상으로 한 지원도 받을 수 있다. 자매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 정선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도 도움이 됐다.

지역과의 협업도 강점이다. 지역 내에서는 정선교육청과 와우디랩과 함께 ‘라이프 디자인 워크숍’, 지역 20대 청년들과 만드는 ‘청춘일지’ 출판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 내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한 남부권 지역 청년 크리에이터들과는 정기적인 모임을 통해 지역에서 창업하면 겪는 다양한 고민과 생각을 나누고 있다.

아직 지역에서 숲자매숲생활의 영향력은 크지 않다. 규모나 파급력 등 유의미한 변화를 이끌기에 부족한 점도 있다. 다만 사북시장 청년몰, 마을호텔 18번가가 생기는 등 많은 변화가 일어나고 있어 지역 변화의 움직임은 분명하다. 숲자매숲생활의 사업이 조금 더 체계를 갖추고, 규모가 커진다면 이런 흐름에 도움을 줄 수 있다. 

다른 지역으로의 확장 가능성도 있다. 김정하 공동대표는 “다른 지역도 고령화, 저출산 등 저희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고, 산이 많고 인구가 적은 환경을 가지고 있다”면서 “우리의 모델은 정선뿐 아니라 다른 지역으로 확장할 수 있고, 그 지역에서 나고 자란 청년이 주체적으로 사업을 만들어 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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