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의 자본주의 경제 시스템은 '전도된 경제' 다. 실제 일을 하는 '만드는 자'(makers, 메이커스)가 '거저 먹는 자'(takers, 테이커스)에게 예속된 경제 체제다.

저자는 금융이 어떻게 실물경제를 추락하게 만들었는지 파헤친다. 실물경제를 잡아먹은 '괴물'은 다름 아닌 '금융화'라고 지적한다. 금융화는 금융과 금융적 사고방식이 기업과 경제의 모든 것을 지배하게 된 현상이다. 금융은 경제가 원활히 돌아가는 데 없어서는 안 될 요소지만 지나치게 비대해진 금융은 오히려 경제 성장을 돕기 보단 방해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저자는 스티브 잡스가 떠난 애플을 대표 사례로 꼬집는다. 2013년 애플의 새 CEO(최고경영자)가 된 팀 쿡은 170억달러(약 18조원)를 차입했다. 쌓아놓은 현금 1450억 달러(약 154조원). 매달 이자만 30억 달러(약 3조원)가 들어온다. 팀 쿡은 왜 돈을 빌리는 것일까. 간단하다. 차입에 드는 비용이 적게 들어서다. 저자는 세계에 흩어져 있는 애플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 미국에 들여오려면 미국 세법에 따라 상당한 세금을 내야 하는데 그보다는 차입이 훨씬 효율적이라고 분석한다.

빌린 돈은 신제품 개발에 들어가는 게 아니다. 자사주 매입, 거액의 배당 등 주가를 높이고 주주들의 배를 불리는 데 쓰인다. 저자는 “애플의 주가가 올라도 명성이 떨어진 건 스티브 잡스의 단순한 부재가 아닌 팀 쿡 식 돈놀이 때문”이라고 실란하게 비판한다.

제너럴일렉트릭(GE), 휴렛-팩커드(HP), 소니, 인텔, 코닥, 마이크로소프트, 제너럴모터스(GM), 시스코, AT&T, 화이자 등도 다를 바 없다.

책 제목 메이커스는 실질적인 경제 성장을 창출하는 일군의 사람, 기업, 아이디어를 의미한다. 이에 반대 지점에 있는 테이커스는 고장난 시장 시스템을 이용해 사회 전체보다는 자기 배만 불리는 이들을 지칭한다. 다수의 금융업자와 금융기관, 금융화가 경제 성장과 사회 안정, 심지어 민주주의도 좀먹고 있음을 인지하지 못하는 경영자, 정치인, 규제 당국 모두다.

책은 워싱턴과 월가의 정경 유착의 실체를 신랄하게 파헤치면서 세계 자본주의 중심이자 우리가 경제의 표본으로 삼았던 미국 경제에 대한 환상을 깨트린다.

◇메이커스 앤드 테이커스=라나 포루하 지음. 이유영 옮김. 부키 펴냄. 532쪽/1만8000원.

글. 백선기 이로운넷 책임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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