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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은평구를 상징하는 캐릭터 ‘파발이’는 말을 형상화했다. 파발은 1597년 선조 30년부터 시행된 제도로, 말을 이용해 공문을 주고받은 국가통신 네트워크였다. 봉화를 대체해 당시로서는 가장 빠른 통신수단이었다. 의주길의 관문이었던 은평구는 파발의 주요 거점이었다. 관내 구파발, 역촌동의 지명은 여기에서 유래했다. 은평구 사회적경제 통합 브랜드 ‘말이랑’은 이런 은평구의 역사적 배경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단순히 기능만을 담은 제품이 아니라 좋은 소식을 전한다는 뜻을 담아 은평구의 상징 캐릭터인 말을 모티브로 해서 만든 브랜드입니다.”(이선미 고은빛협동조합이사장)

말이랑 브랜드 로고(아래)와 인형 (사진제공: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말이랑(malerang)’은 바늘한땀협동조합,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 고은빛협동조합 등 은평구의 공예협동조합 3곳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가 든든하게 뒤를 받쳐주었다. 박치득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장(예비사회적기업 좋은이웃 대표)은 “은평구뿐 아니라 사회적경제 분야 전체적으로 중요한 화두가 협업 비즈니스인데, 말이랑은 모범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이하 은평허브)는 소규모 사회적경제 기업의 협업을 독려하기 위해 관내 협업가능 업종으로 먹거리, 교육, 공예를 꼽았다. 이중 공예를 첫 협업화 사업분야로 설정하고 참가기업을 모집했다. 때마침 구파발역 은평롯데몰의 사회적경제 상품 코너에 입점한 3개 공예협동조합이 참여했고, 5월부터 본격적으로 사업을 추진했다.

“공동 브랜드와 캐릭터를 개발하는 것까지 기대하지 않았는데,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공동 브랜드의 필요성을 공감하고 말이랑을 개발하게 되었습니다. 말이랑이 은평구 사회적경제를 아우르는 브랜드로 발전하길 기대합니다.” (박치득 센터장)
 

박치득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장

이번 공예협동조합 공동사업은 마케팅커뮤니케이션협동조합 살림(이하 살림)이 수행기관으로 참여했다. 경영난을 겪고 있거나 새로운 수익모델이 필요한 공예협동조합들을 중심으로 개별기업의 상황과 동종업종의 특성에 따라 새로운 성공모델 개발을 위한 컨설팅, 브랜딩을 수행했다.

이무열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살림 이사장

이무열 마케팅커뮤니케이션 살림 이사장은 “당사자 중심의 문제해결에 초점을 맞춰 스스로의 장단점을 분석하고, 목표를 설정해 실행에 옮기도록 했다”고 말했다. 즉 다이어그램(Diagram) 방식으로, 당사자가 프로젝트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논의된 내용을 바탕으로 지도를 그리듯 사업 방향과 내용을 찾아가도록 했다.

“전문가에 의해 기획된 사업을 진행하는 프로그램 방식이었다면 이런 성과를 내기 힘들었을 겁니다. 이번 프로젝트의 큰 성과는 바로 당사자 스스로 문제해결 능력을 키웠다는 점입니다. 스스로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얻은 거죠.”

프로젝트는 4단계로 진행되었고, 5차례의 워크숍을 거쳤다. 첫단계로 1개월 동안 기업현장의 욕구조사를 통해 욕구와 기대치를 수렴했고, 1차 워크숍에서 참여기업의 상황을 공유하고 공예교육과 공동제품 등 2가지 과제를 도출했다.
이후 잇따른 워크숍을 통해 참여기업들은 공동제품을 사업아이템으로 결정하고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브랜드와 캐릭터를 개발하자는 데 의견을 모았다. 제품 콘셉트는 ‘아름다운 쓰임, 쓸모 있는 행운’으로 정했다. 캐릭터 소재로 말이 선택되었고, 9월 21일 브랜드명은 말이랑으로 결정되었다. 이날은 말이랑의 생일인 셈이다.

 

바늘한땀협동조합,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 고은빛협동조합 등 3개 기업은 저마다 판로, 수익사업 모델 문제로 의기소침해있었지만 6개월여의 프로젝트 과정을 통해 스스로 성장한 모습을 확인하곤 한다.

전통의류공예품을 만드는 바늘한땀협동조합의 곽경희 이사장은 “저희는 비교적 언론에 많이 노출되었어도 판로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혼자로는 힘들다는 걸 절감했고, 이번 프로젝트를 통해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소감을 전했다.

바늘한땀협동조합 곽경희 이사장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은 공예교육 전문가들이 직접 공예품을 만들어 수익을 창출해보자며 2014년 설립한 곳이다. 이곳 역시 판로 확대가 큰 어려움이었다. 조은예 이사장은 “처음엔 꿈이 컸으나 사업을 계속해야 할지 갈등하고 있었는데, 이 프로젝트를 계기로 새로운 꿈을 찾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같은 고민을 하고 있던 협동조합과 함께 절실했던 것을 찾은 것.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 조은예 이사장

한지공예, 종이 미니어처, 매듭 제품을 만드는 고은빛협동조합은 공예품 제조로는 지속가능한 수익을 창출하기 힘들어 교육사업으로 수익모델을 만들어보려던 곳이었다. 그러나 공예교육을 하는 곳도 많아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이선미 이사장은 제조도 교육사업도 힘든 상황에서 난감해하던 차였다.
“1년 동안 ‘멘붕’ 상태였어요. 그러던 중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의 협업화 사업이 활로를 열어주었습니다. 함께 한 바늘한땀, 한국아트공예는 이미 은평롯데몰 입점을 계기로 알게 된 사이여서 더욱 힘을 얻을 수 있었어요.”

고은빛협동조합 이선미 이사장

프로젝트는 브랜드 커뮤니케이션 활동으로 이어졌다. 말이랑 캐릭터를 활용한 홍보용 시제품을 만들고 이미지 사진을 촬영했다. 뱃지, 태그도 만들었고, 소셜미디어(인스타그램)를 통해 브랜드를 알렸다. ‘말이랑’이 있으면 ‘기다리는 좋은 소식이 올 거야!’라는 메시지를 전했다.
 

지난 2017년 12월 서울시 주최로 여의도에서 열린 크리스마스마켓은 소비자 반응을 살필 수 있는 기회였다.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의 조순예 이사는 “말이랑은 다양한 연령층에 어필하는 캐릭터라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며 “공예 요소가 가미된 생활용품을 개발하면 좋은 성과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올해 3개 협동조합은 저마다 1~2개의 말이랑 시제품을 출시할 계획이다. 바늘한땀은 생활한복 소품으로 말이랑 복주머니를, 한국아트공예는 캘리그라피를 활용한 나무 등(燈)과 도예 제품을, 고은빛협동조합은 매듭팔찌와 지함을 고려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열린 서울시 크리스마켓마켓에서 말이랑을 홍보하는 모습.(사진제공: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이무열 살림 이사장은 “브랜드는 만드는 것보다 관리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를 위해 브랜드위원회가 반드시 필요하다. 위원회는 기업 대표, 은평허브, 전문가 등이 참여해서 지속적으로 시장과 고객을 분석하고 상품과 유통 채널을 개발하는 플랫폼을 운영하며 브랜드 이미지와 평판을 관리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 당사자(민간)는 소비자 반응에 부합해 상품기획, 제조 능력을 키우고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를 비롯한 공공기관은 브랜드를 주민에게 홍보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말이랑은 은평구 사회적경제의 브랜드 플랫폼입니다. 관내에서 품질을 갖추고, 가이드라인을 따르면 말이랑 브랜드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박치득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장은 협업화 사업이 일회성으로 끝나선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런 사업은 연속사업이 되어야 합니다. 또한 정형화된 틀에 맞추는 지원이 아닌, 당사자의 욕구를 수렴해 지원하는 방향으로 말이랑 브랜드를 육성할 계획입니다.”

말이랑 프로젝트는 2018년 1월 22일 ‘협동조합연합회 친구사이 창립’으로 이어졌다. 연합회라는 틀로 협력을 지속하기 위해서다. 특히 중소기업벤처부의 소상공인협동조합연합회 설립분야 육성지원사업에 선정되어 연합회를 설립한 첫 사례라 더욱 뜻 깊다. 말이랑 프로젝트 참여사 3곳을 비롯해 2곳이 조합원으로 참여했다. 연합회 이사장은 조은예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 이사장이 맡았다. 정관에는 ‘개별 협동조합 경영환경을 개선하고 협력체계를 통한 권익 증진과 경제활동을 개선함과 동시에 공동브랜드를 활용하여 전문화, 세계화를 추진한다’는 내용이 명시돼 있다.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 조순예 이사

올해 선보일 말이랑 제품과 관련해 이야기를 나누던 중 한국아트 조순예 이사가 “나무가 아니라 지함을 접목해 등을 만들어도 좋겠다”고 운을 떼자 고은빛협동조합 이선미 이사장이 “서로 잘 하는 부분을 결합하면 괜찮은 제품이 만들어질 것”이라며 맞장구를 친다. 바늘한땀 곽경희 이사장도 거든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시간 가는 줄 모르겠어요.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와 살림도 우리 곁에 있으니 든든해요. 말이랑을 은평구를 대표하는 캐릭터 상품으로 성장시킬 겁니다.”
 

'말이랑'을 함께 만든 사람들

말이랑 인스타그램: instagram.com/_malerang
은평구사회적경제허브센터: ephub.net
바늘한땀협동조합: blog.naver.com/bn_handdam
한국아트공예협동조합: kartc.co.kr

글. 손인수(벼리커뮤니케이션 책임에디터)
사진. 이우기(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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