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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 한 번 해보실래요?" 

5년 전, 고시원에서 생활하던 한 청년이 굶주림 끝에 세상을 떠났다는 뉴스를 보고 너무 가슴이 아팠다는 한 수녀가 이문수 신부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노인이나 홀몸 어르신들을 위한 무료 식당이 있듯이 청년들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보면 어떨까요?"

좋은 제안이라는 생각에 이 신부는 자신이 속한 글라렛선교수도회의 형제들에게 이야기를 꺼냈다. ‘툭’ 한번 던져 봤는데 ‘해보자’라는 반응이 바로 나왔다. 

청년밥상 문간은 성북구 보국문로 11길 18-2 2층에 위치해있다.

식당 일엔 문외한이었던 이 신부는 2년 여 준비 끝에 2017년12월 ‘청년밥상 문간’을 열었다. 예상치 못했던 이야기 전개에 그는 ‘하나님한테 홀린 것’이라고 웃어넘겼다. 

 

문턱 없는 한 끼 식사 3000원

청년밥상 문간은 실개천이 흐르는 정릉 시장 입구에 자리 잡고 있다. 오래된 건물이라 2층 식당으로 오르는 계단은 좁고 가파르지만 벽면을 가득 채운 응원과 감사의 메시지들은 가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한 벽면을 장식한 액자.  액자 속 글귀는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명언들이 적혀있다.
식당으로 올라가는 계단의 한 벽면을 장식한 액자.  액자 속 글귀는 위로와 공감을 느낄 수 있는 명언들이 적혀있다.

그중 가장 눈에 들어온 글귀는 “ 저도 언젠가는 이런 따뜻한 식당을 차리고 싶습니다”라는 글이다. 맛집에서 흔히 보는 연예인이나 정치인들이 남긴 맛 평이나 덕담보다 훨씬 믿음이 가는 표현이다. 

손님이 남긴 고마움과 사랑의 표현이 담긴 메시지들.  "오늘도 3공기나 먹고 간다면서 신부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청년들의 글귀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손님이 남긴 고마움과 사랑의 표현이 담긴 메시지들.  "오늘도 3공기나 먹고 간다면서 신부님께 죄송하다"는 말을 남긴 청년들의 글귀도 여러 곳에서 눈에 띈다.

한 끼 식사로 손색없는 김치찌개 가격은 3000원. 이 동네에선 가성비 으뜸인 음식점으로 소문이 나있다. 직접 담근 김치에 국내산 돼지고기와 큼직하게 썬 두부가 들어간다. 내용물만 보면 도저히 그 가격으로는 만들 수 없는 고급스러운 김치찌개다. 

푸짐한 김치찌개(두부+돼지고기)에 공깃밥은 무한 리필이 기본 메뉴로 3000원
푸짐한 김치찌개(두부+돼지고기)에 공깃밥은 무한 리필이 기본 메뉴로 3000원

 

영리를 목적으로 한 식당이 아니니까요. 대한민국 청년들이 적어도 밥 걱정은 안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문을 연 식당입니다. 무료로 할 수도 있겠지만 저렴한 가격이라도 받는 이유는 낙인감 없는 한 끼를 위해서입니다. 청년들은 특성상 자신의 어려움을 잘 드러내려 하지 않아요. 무료로 하면 오히려 덜 찾아옵니다.

이문수 신부. 주방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이 신부는 홀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한다.
이문수 신부. 주방은 전문가에게 맡기고 이 신부는 홀에서 찾아온 손님을 맞이한다.

청년들을 위해 마련한 식당이지만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지난해 기준 하루 평균 문간에는 90명의 손님이 찾아왔다. 절반 이상이 청년이다. 경제적으로 어려운 아이들에게 국가가 제공하는 꿈나무카드(아동급식카드)를 소지한 아동들에겐 무료로 식사가 제공된다.

 

적자는 전방위적인 후원자들의 손길로 충당

작년 기준 매월 250만 원의 적자를 보고 있지만 알음알음 도와주는 후원자들 덕분에 2년 넘게 잘 버텨내고 있다. 

식당은 월~토요일 저녁까지 운영하며 일요일은 청년 자립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들에게 시설과 기자재를 무상으로 임대해 준다. 현재는 한 청년 셰프가 비빔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식당은 월~토요일 저녁까지 운영하며 일요일은 청년 자립지원 사업의 일환으로 청년들에게 시설과 기자재를 무상으로 임대해 준다. 현재는 한 청년 셰프가 비빔밥을 만들어 판매하고 있다.

"어느 날 쌀 포대가 택배로 왔어요. 경북 의성에서 농사를 짓는 분이 보내주셨는데 주소 란에 적힌 연락처로 감사 전화를 드렸더니 '아이고 아닙니다'를 연발하며 쑥스러워하시는데 정성과 따스한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2년째 쌀은 물론 파, 고구마 등 직접 농사진 제철 농산물을 보내주고 계세요."

한 번은 절에서 쌀 80kg을 보내준 적도 있다. 청년밥상 문간을 지지해 주는 불교 신자가 주지스님께 부탁해 이뤄진 후원이다.

이 신부는 "주변 이웃들이나 신자들이 쌀을 후원해 준 덕분에 거의 쌀을 사본 적이 없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이 신부는 "주변 이웃들이나 신자들이 쌀을 후원해 준 덕분에 거의 쌀을 사본 적이 없다"라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성북구에 본사가 있는 삼양식품에서는 김치찌개에 들어가는 라면 사리와 주전부리 과자를 후원해 주고 있고 동원수산에서는 고등어를 후원해 이웃과 나눔행사도 열었다.

"하루는 단골손님 중 한 명인 국민대학교 재학생이 찾아와 보답하고 싶다면서 봉사를 하겠다고 했어요. 그 청년은 지난해부터 올 6월까지 주 1회 3~4시간씩 짬을 내 식당일을 거들어 줬는데 얼마 전 인턴십이긴 하지만 취직을 했다는 소식을 듣고 얼마나 기뻤는지 모릅니다."

청년밥상 문간을 벤치마킹한 식당도 생겨났다. 서울 은평구 불광동과 경남 창원에는 청년밥상 문간의 정신을 이어간다면서 개신교 목사가 운영하는 ‘따뜻한 밥상’이 잇따라 문을 열었다.

 

나눔은 청년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이 신부와의 대화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말은 “청년들이 원하는 것을 힘닿는 데까지 도와주돼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나누고 싶다“라는 것이었다. 식당 옆 공간에 북 카페를 만든 것도 옥상이 있는 건물을 임대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청년카페문간은 청년들이 편하게 공부하고 책을 보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외부 음료 반입도 가능하다. 
청년카페문간은 청년들이 편하게 공부하고 책을 보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외부 음료 반입도 가능하다. 

북 카페에서는 커피 대신 꿈을 판다. 신선한 커피를 제공하고 비치된 3000여 권의 도서를 1인당 최대 3권 씩 14일간 대출해 준다. 문구류 나눔 행사도 전개된다. 

옥상에 올라가면 탁 트인 시야에 시장 골목을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 신부는 이 공간을 테라스형 카페로 꾸밀 계획이었지만 코로나19로 잠시 멈춤 상태이다. 

지난해에는 청년들에게 경험을 선물하고 싶어서 청년희망로드라는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첫 사업으로 스페인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 

2019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던 청년 8명과 함께 기념 촬영. 청년희망로드는 청년들 스스로 자아를 사랑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 사진 제공=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 
2019년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 나섰던 청년 8명과 함께 기념 촬영. 청년희망로드는 청년들 스스로 자아를 사랑하고 불투명한 미래를 개척해 나아가고자 하는 의지와 희망을 심어주기 위한 프로그램이다. / 사진 제공=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 

 

살다 보면 좌절과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데 그것을 극복하고 딛고 일어서게 하는 힘이 무엇일까 생각해봤어요. 우리가 살면서 겪었던 작은 성공들이나 어려움을 이겨낸 경험들이 축적돼 우리 안에서 자신감이란 게 생깁니다. 자기 자신에 대한 믿음인 거죠. 청년들이 매력을 느낄만한 고생스럽고 자기 성찰을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고민했는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이 산티아고 순례길이었습니다.

올해는 영화를 매개로 청년의 삶과 문화를 나누는 ‘달빛 영화제’와 청년 세대가 어르신의 추억을 그림책으로 만들며 서로를 이해하는 과정을 담는 ‘청년들 세대를 잇다’가 진행된다.

 

사회적협동조합으로 도약의 발판 마련

청년밥상 문간은 올해 4월 사회적협동조합으로 전환했다. 이 신부는 요즘 2주일에 한차례 협동조합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공부에 여념이 없다. 지정기부금단체 신청도 해놨다. 청년밥상 문간은 후원금으로 운영되고 있지만 현재 별도의 후원회 조직은 없는 상태다. 

"식당을 시작할 때 큰 도움을 주셨던 자매님이 제게 후원회는 나중에 만들면 좋겠다는 의견을 주셨어요. 그 분은 종교가 없는 분이었는데 제가 해석한 바로는 이렇습니다. 우리가 청년을 위한 식당을 만들어 놓고 '좋은 일 하니까 후원 좀 하세요'라는 모양새는 그리 좋지 않다는 뜻으로 이해했어요. 아무리 좋은 취지일지라도 이걸 앞세워 마치 세금 걷듯이 하는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지금껏 후원회를 따로 만들지 않았어요. 그러다보니 청년밥상 문간을 확장하는 데 한계가 있어요. 지정기부금 단체로 선정되면 후원회를 효율적으로 운영해 개인을 넘어 지역사회와 기업들의 동참을 이끌어내려고 합니다. '청년밥상 문간' 같은 식당이 필요없는 사회가 가장 바람직하지만 현실적으로 필요하다면 많을수록 좋으니까요."

 

“ 이때 아니면 할 수 없는 무모한 도전을 응원한다”

청년문간 사회적협동조합은 보다 많은 청년들을 만나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고 그들이 세상 밖으로 나가는 것을 지원해 주는 것을 미션으로 삼고 있다. ‘문간’이란 이름도 그래서 나왔다. 

최근에는 한 후원자가 버스 한 대를 기증하고 싶다는 뜻을 밝혀 이 버스로 어떤 가치를 만들어낼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가칭 청년희망로드카이다.

 

현재로는 그 차를 타고 거칠게 표현하면 놀러 다니려고 합니다. 캠핑이랄까요. 청년들은 ‘지금 아니면 못하는 경험을 이 자동차로 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고생스러워도 무모해도 도전해보고 싶다고요. 우리에게 버스라는 하드웨어가 있다면 그 안을 채우는 소프트웨어는 청년들이 메울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그들이 좋은 프로그램을 제시하면 무엇이든 해볼 겁니다.

달빛 영화제를 앞두고 준비에 한창인 청년밥상 문간 옥상. 
달빛 영화제를 앞두고 준비에 한창인 청년밥상 문간 옥상. 

이 신부에게 그간의 과정들이 너무 힘들지 않았느냐고 물으니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니 행복하다”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청년문화기획활동을 하는 후배를 통해 청년들을 많이 만났어요. 청년기엔 흔히 자신의 성공을 위해 시간을 보내잖아요. 좋은 대학, 좋은 직장을 얻으려고 힘쓰는데 다른 청년들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성장하게 하고 행복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일하는 청년들이 많다는 걸 알고 놀랐어요. 그런 좋은 사람들을 만나 일하니 행복해지더라고요. 전 청년들에게 손을 내밀면 잡아주는 곳이 있다는 걸 이야기하고 싶어요. 물론 거절당하는 경우도 있겠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잘 견뎌내면 회복할 수 있는 기회와 시간이 온다는 걸 꼭 이야기해주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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