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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 3만 원 투자로 내 집을 갤러리로 꾸미는 방법

미술시장의 대중화를 이끄는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

 

7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정은혜 씨의 꿈은 화가입니다. 뒤늦었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좇아 지난해 ‘그림책 학교’를 졸업했지요.

 

 

과연 그림만 그리며 먹고 살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을 떨쳐내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지난해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https://www.acompany.asia/)가 기획한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의 하나인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에 참여했습니다. 젊은 예술가와 소상공인을 1대1로 매칭해 주는 사업이죠. 예술가들은 ‘일’을 경험하고 소상공인은 저렴한 비용으로 매장을 매력적으로 변신시켜 경쟁력을 키워보자는 프로젝트입니다. 19명의 예술가들이 31명의 소상공인 점포주와 8개월 동안 호흡을 맞췄습니다.

정씨는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반짝반짝 사진방 최영교 대표랑 파트너가 됐습니다. 최 대표는 당시 사진활동가 30여명과 함께 한 달에 한번 그 일대 보육원 3곳을 돌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개인 앨범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어요.  정 씨는 그 앨범에 아이들의 손과 발 도장을 찍고 앨범의 주인이 될 53명의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습니다.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으로 인연을 맺어 보육원 아이들의 성장앨범을 함께 제작한 최영교 반짝반짝사진방대표(우측)와 정은혜작가(좌측)

이 작업은 뜻밖의 성과를 올렸습니다. 화가로서 경력이 전무했던 그가  에이컴퍼니로부터 개인전을 열자는 제안을 받은거에요.

“ 요즘 열심히 그림만 그리면서 삽니다.  내 안에 자신감과 용기가 꿈틀대기 시작했어요."

 

 

 

 

 

 

 

 

에이컴퍼니는 정 씨처럼 신진 작가들을 발굴해 키우거나 창작 환경을 개선해 예술가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입니다. 국내 미술 시장의 규모는 약 3249억 원. 하지만 화랑 4곳 중 1곳은 1년 간 단 한 작품도 팔 지 못합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4년에 집계한 미술시장 실태조사 결과입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 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어요. 아르바이트는 기본이고 졸업 후 관련 없는 분야로 가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에이컴퍼니가 신진 작가들을 위한 판로 개척에 나선 이유입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에이컴퍼니가 운영하는 카페겸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가 그 전초 기지입니다.  이 곳에 들어서면 한 켠에 미나리하우스 멤버십 작가 50여명의 작품을  정리한 포토폴리오 파일이 빽빽하게 꽂혀있습니다. 고객들은 포토폴리오를 통해 작가에 관한  상세한 정보를 얻고 원하는 그림을 구매할 수 있습니다.

 

 

 

 

 

 

 

카페에는 회원작가들의 포토폴리오가 비치돼 작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 일반 갤러리는 전시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작품을 팔 수 있는데 비해 포토폴리오 덕분에 연중 어느 때라도 판매의 길이 열려 좋아요." (미술가 박노을 씨)

이 곳에는 최저 8만 원에서 최고 수백만 원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대의 그림을 만나 볼 수 있습니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는 집 안을 갤러리 처럼 꾸미는 것이 엄청난 비용이 드는 것은 아니라고 설명합니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

“보통 영화나 책을 사는데 한 달에 3만 원 정도는 쓰잖아요.  그만큼만 미술에 꾸준히 투자하면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어요.  미나리하우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작품의 가격대는 50만 원~100만 원 선입니다. 일반인들이 보다 작품을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신용카드 무이자 10개월 할부 서비스를 제공합니다."

에이컴퍼니는 매년 미나리하우스 멤버 작가로 활동할 신진 작가를 모집하는 데  기준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경력이나 학벌은 따지지 않고 철저한 작가주의 정신과 그림의 완성도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할 의지를  중요하게 봅니다.

 

 

 

 

 

 

 

 

미나리하우스 멤버 작가레지던지실. 에이컴퍼니는 작업실이 필요한 예술가들에게 6개월동안 무상으로 작업공간을 빌려준다.

 

 

 

 

 

 

작가와 관객과의 소통의 결정체는 에이컴퍼니가 2012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브리즈아트페어입니다. 이 행사장에서는 맥주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파티같은 분위기속에 작가들이 내내 전시장을 지키며 관람객들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질문에 응해줍니다. 작가들도 관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다음 작품에 영감을 얻기도 하지요.

 

2016년 브리즈 아트페어

이런 자유분방함과 친절함 때문일까요.  4회째를 맞은 브리즈아트페어는 지난해만 총 2800여명의 관객이 찾아왔습니다. 작품 공모경쟁률도 4대1이 넘었고, 출품작의 30%가 넘는 124개의 작품이 8000만 원에 판매됐습니다. 지난 5년간 이 박람회를 통해 함께 활동한 작가 수는 450여명에 이르고 3억5000만 원의 작품이 팔렸습니다.

사람들은 거창한 이유로 그림을 선택한 건 아닙니다. ‘그냥 좋아서’ 라든지 ‘우리 집 거실에 잘 어울린 것 같다’는 식이에요. 생애 처음으로 작품을 파는 작가들도 많고 처음으로 그림을 구매하는 관객들도 많습니다. 거래가 성사되면 ‘팔렸다’ ‘축하한다’며 서로 박수를 쳐주는 흐믓한 광경도 볼거리 중 하나입니다.

에이컴퍼니는 작가와 관객 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 신경을  씁니다. 예술가들은 모래알처럼 흩여져 지내는 작가들 사이에 진한 동료애를 느끼게 해줘 고맙다는 반응입니다.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와 달리 창사 이래 에이컴퍼니가 반드시 지키는 깐깐한 수칙이 있는 데  바로 공정미술입니다. 미술품 가격을 공개하고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합니다. 작품보증서도 발행하고요. 미나리하우스 멤버십 작가 박노을씨도 최고의 좋은 점으로 투명성으로 꼽았습니다.

“ 모든 거래는 계약서를 근거로 이뤄져요. 많은 갤러리들이 구두 계약을 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따질 때 작가들이 애로사항이 많아요.”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 내부. 평균적으로 100만원 이하대의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리며 무이자 10개월 할부 구매도 가능하다.

모든 작품에 가격표가 붙어있습니다. 일반 갤러리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지요.  정 대표는 "가격표시제는 합리적인 가격임을 입증하는 고객과의 약속”이라고 말합니다. 작품 가격은 1년 단위로 재 조정됩니다. 그는  "작품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들이 미술 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린다"며 " 가격 공개만으로도  작품 구매에 대한 대중들의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에이컴퍼니는 작가들이 그림 판매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점차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습니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IT 업체 휴맥스 아트룸 전시공간을 2년째 위탁운영하며 신진작가들의 판로를 넓히고, 대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미술을 접목시키는 활동을 하고 있어요.

작품이 기업의 상업 광고와 제품 디자인 등에 이용되도록 매개하는 역할도 하고 있습니다. 이미지를 패턴화해 쿠션이나 다이어리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기도 하지요.  에이컴퍼니는 회원 작가들과 정식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고 상업 계약을 대행하고 있어요. 정 대표의 꿈은 앞으로 아트매니지먼트 분야에서 YG같은 회사가 되는 것입니다.

 

 

 

 

 

 

 

서울시 이화동에 위치한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 전경

에이컴퍼니가 발굴해 첫 전시회를 작가는 지금까지 5~6명입니다. 우리가게전담미술가 프로젝트로 오는 7월 생애 첫 전시회를 여는 정은혜 작가는 요즘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 제게도 희망이 생겼어요.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 보면  행복의 문이 열릴 것이라구요”

 

 

 

 

 

글. 백선기 이로운넷 에디터

 

사진제공. 에이컴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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