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년 전 74살의 할머니 한 분이 모델을 하고 싶다고 찾아오셨어요. 허리를 바로 세우지 못하고 지팡이를 짚은 모습으로요. 15년 전 교통사고 후 4번의 대수술 끝에 이제 겨우 걷게 됐다더군요. 처음 시작할 때는 모두가 불가능할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지금 당당히 모델로 활동하고 계십니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는 4년차 모델인 박윤수(78) 어르신을 그렇게 소개했습니다. 박씨는 TV에서 시니어모델이 나와 자세와 걸음걸이 교정을 통해 당당히 걷는 모습을 보고 ‘나도 저곳에 가면 다시 걸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시니어 모델 교실을 찾았다고 합니다.

그리고 4개월 후 박씨는 지팡이 없이 패션쇼 무대에 섰습니다. 이 모습을 지켜 본 그의 가족은 눈물을 흘렸다고 합니다.

시니어 모델들이 시니어 모델 교실에서 워킹 교육을 받고 있는 모습.
‘뉴시니어라이프’는 시니어의 삶을 ‘노을빛 아름다운 세상’으로 변화시키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회적기업입니다. 현재 시니어모델, 시니어이벤트, 시니어패션제품 제작·판매 사업을 하고 있으며, 강남, 서초, 성북구 세 지역에 시니어 모델 교실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뉴시니어라이프의 회원인 120여 명의 시니어 모델들에게는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한 번도 힘겹다는 고관절 수술을 세 번이나 하고도 무대에 서는 사람이 있으며, 시한부 선고를 받고 가족들과 추억을 남기기 위해 시니어모델을 시작한 사람도 있습니다. 올해 아흔 살로 뉴시니어라이프의 최고령 시니어 모델인 박양자 씨는 올해도 어김없이 무대에 오르고 있습니다.

구하주(70) 뉴시니어라이프 대표는 시니어들이 삶의 무게를 딛고 무대에 서는 이유는 “그곳에 ‘열정’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구하주 뉴시니어라이프 대표가 시니어 모델 교실에 설치된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시니어 모델 10년간 1400여 명 양성


지금 뉴시니어라이프의 대표 상품이 된 시니어 패션쇼는 사실 실버용품을 홍보하기 위한 단발성 이벤트였습니다. 실버용품 전문기업인 ‘웰프’를 운영하던 2005년 제품 판촉을 위해 시니어 패션쇼를 기획해 진행했습니다. 그런데 행사가 끝나고 여기저기서 시니어 패션쇼를 열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습니다.

“일산 킨텍스에서 여는 시니어 패션쇼를 위해 50세 이상의 지역 어르신을 모집했어요. 30명을 모집하는데 10배 이상의 사람이 모였습니다. 그런데 어르신들이 하나같이 무대에서 주눅 들지 않고 신나게 면접을 보는 겁니다. 그때 어르신들의 힘을 느꼈죠.”

단발성 패션쇼를 위해 모집한 시니어 모델 30명은 행사가 끝난 뒤에도 만남을 이어가며 지속적으로 무대에 대한 열정을 드러냈다고 합니다.

“저에게 자신들을 책임지라고 하더라고요. 그렇게 말하는 그분들을 차마 저버릴 수 없어 단체를 만들게 됐습니다. 그리고 1년 뒤 뉴시니어라이프를 설립했습니다.”

시니어 패션쇼가 사업으로 자리 잡기 위해서는 전문성이 필요해 ‘시니어 모델 교실’도 함께 시작했습니다. 전문 모델 강사를 채용해 하나부터 열까지 교육했습니다. 그렇게 10여 년 동안 양성한 시니어 모델만 1400여 명에 이릅니다.

“어르신들의 몸에는 살아온 세월이 배어 있습니다. 자세가 좋은 분들이 없죠. 빨리 교정되는 분들은 교육을 시작한 지 3~4주 만에 자세가 달라집니다. 물론 4개월이 지나도 나아지지 않는 분도 있습니다(웃음).

한쪽에서는 강사의 지도 아래 워킹 연습을 하고 있으며, 그 뒤쪽으로는 거울에 등을 기대고 자세를 교정하고 있다.
‘시니어 모델 교실’은 회원을 상시 모집해 언제든 신청할 수 있는데요, 4개월의 기초 과정을 밟는 동안 한 달에 약 10~15만원의 비용이 든다고 합니다. 교육이 끝나고 나면 뉴시니어라이프의 회원으로서 모델 활동을 할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현재 회원으로 활동 중인 모델은 120여 명이라고 합니다.

현재 뉴시니어라이프의 정직원은 10명. 이중 모델은 없습니다. 구 대표는 “마음 같아서는 현재 회원으로 활동 중인 120여 명의 모델을 모두 직원으로 채용해 월급을 주고 싶지만, 10명도 버거운 현실에서 꿈같은 이야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경영이 안정화되면 꼭 이루고 싶은 꿈이라고 덧붙였습니다.

모델들은 소정의 모델료와 뉴시니어라이프로 의뢰가 들어오는 모델 일을 함으로써 수입이 발생합니다.

음악·패션에 춤을 더한 ‘페스티벌 패션쇼’


시니어 패션쇼 이외에는 뚜렷한 사업 모델이 없었던 뉴시니어라이프는 설립 초부터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모델이라는 직업의 겉으로 보이는 화려함 때문에 정부에서조차 ‘돈 많은 노인들의 취미생활을 왜 도와줘야 하느냐’는 반응을 보였습니다. 지원받을 곳이 없어 겨우 시니어 모델 교실에서 발생하는 교육비로 이어가다 파산 직전에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2010년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2011년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습니다. 이후 다양한 매체에 소개되면서 시니어 패션쇼는 널리 알려졌습니다. 시니어 패션쇼 개최 횟수는 2014년 23회에서 2015년 26회로 매년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지난 5월 14일 서울 청계천에서 수상 패션쇼가 열렸다.

뉴시니어라이프의 시니어 패션쇼에는 두 가지 특별함이 있습니다. 하나는 패션쇼에 춤을 더한 것입니다. “저는 패션쇼를 축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음악, 패션에 춤을 더해 ‘페스티벌 패션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무대에 추는 춤 역시 모두 시니어 모델 교실에서 가르친다고 합니다.


또 다른 하나는 시니어 모델들이 입는 의상을 뉴시니어라이프에서 직접 제작한다는 점입니다. 한때 디자이너로 활동한 구 대표 역시 디자이너로 의류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데요, 이 의류들은 모두 오프라인에서 판매되고 있습니다.

지난 5월 14일 서울 청계천에서 수상 패션쇼가 열렸다.

?관광 산업에 패션쇼를 접목한 ‘궁중의상 체험관광’


뉴시니어라이프가 의류사업을 하게 된 것은 패션쇼로는 큰 수익이 발생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시니어 패션쇼를 재능기부로 여기는 경우가 많아 경비 정도만 지원받고 진행하는 경우가 많다”고 구 대표는 설명했습니다. 2013년 매출이 4억원을 넘어선 이후 3년째 정체된 이유죠.

“뉴시니어라이프가 정부의 지원 없이 자급자족을 통해 원활하게 경영이 되려면 적어도 1년에 6억원의 매출이 발생해야 합니다. 그런데 지금처럼 시니어 모델 교실과 의류 제작·판매에 의존해서는 매출 신장을 기대하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지난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새로운 수익 모델 찾기의 일환으로 궁중의상 체험관광 사업을 시작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지난해 경영 안정화를 위한 새로운 수익 모델 찾기의 일환으로 궁중의상 체험관광 사업을 시작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지난해 수익 모델 찾기의 일환으로 궁중의상 체험관광을 시작했습니다. 한국의 전통의상인 궁중의상을 차려입고 직접 패션쇼에 참가하는 것입니다. 관광산업에 패션쇼를 접목한 것입니다.

구 대표는 “궁중의상 체험관광은 한국 전통문화를 직접 체험해 볼 수 있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라며, “외국인 관광객이 꾸준히 증가하고 있는 만큼 뉴시니어라이프의 핵심 산업이 되길 기대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세계로 뻗어 나가는 ‘꽃중년 모델들’


이제 뉴시니어라이프는 활동 영역을 해외로 넓혀나가고 있습니다. 2013년 독일에 초청돼 4개 도시를 순회하며 시니어 패션쇼를 진행한 이후 지금까지 일본, 중국, 네덜란드 등에서 패션쇼를 가졌습니다.

지난해에는 시니어 패션쇼 100회를 맞이해 인천에서 출발해 오키나와, 가고시마, 나가사키를 둘러오는 서태평양 크루즈 선상에서 패션쇼를 열었습니다.

뉴시니어라이프는 지난 6월 19일 중국 선양에서 열린 노년문화예술축제에 초청돼 시니어 패션쇼를 가졌다.
지난 6월 19일에는 중국 선양에서 열린 노년문화예술축제에 초청돼 패션쇼를 진행했는데요, 내년에는 4년마다 열리는 세계노년학회의 초청을 받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시니어 패션쇼를 가질 계획입니다.

세계에서 조금씩 인정을 받고 있지만 구 대표는 내실을 더 탄탄히 할 생각입니다. 시니어 패션쇼가 시니어들에게 ‘나’를 되찾아 주는 데 가치가 있는 만큼 서울에만 있는 ‘시니어 모델 교실’을 전국적으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그리고 제 2의 박윤주 씨가 문을 열고 들어오기를 기다릴 겁니다.


글?정혜선 이로운넷 리포터
사진?뉴시니어라이프(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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