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커피 한잔”
“회사에 출근해 커피 한잔”
“점심 먹고 동료들과 커피 한잔”

일주일에 평균 12잔의 커피를 마신다는 한국인에게 커피는 일상이 됐다.
원두를 갈 때 나는 구수한 향에 쉽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이렇게 사람의 후각과 미각을 자극하는 커피를 만들어내는 원두의 본래 모습은 생두(Green Bean)다. 생두는 아무 맛도, 향기도 없는 그저 딱딱한 씨앗에 불과하다. 그런 생두는 로스팅(Roasting)을 거쳐 비로소 커피의 재료인 원두가 된다. 이때 로스터(Roaster, 커피 볶는 사람)가 어떻게 로스팅하느냐에 따라 원두의 맛이 달라진다.

커피가 좋아 25살 이른 나이에 커피지아를 설립한 김희수 대표는 처음부터 커피를 만드는 바리스타가 아닌 원두를 로스팅하는 일에 더 관심이 많았다고 한다. 원두의 품질이 좋아야 커피가 맛있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커피전문 로스팅기업 커피지아가 탄생했다.

로스팅에 탁월한 재능이 있는 김 대표의 능력은 다른 곳에서도 빛을 발했다. 발달장애인에게서 능력을 찾아내 ‘초능력 콩 감별사’(이하 초·콩·사)로 만들어낸 것이다.

발달장애인은 원두가 되기 전의 생두와 같다. 무엇을 잘 하는지, 어떤 능력이 있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김 대표는 좋은 원두를 만들기 위해 결점두를 찾아내듯 발달장애인의 특성에서 재능을 발견해 그 능력에 ‘초능력’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제 ‘초·콩·사’는 커피지아의 또 다른 브랜드이자 커피지아 원두가 다른 기업의 원두와 다른 이유이며, 맛있는 원두를 제조하기 위해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가 됐다.

한 달간의 관찰 끝에 찾아낸 능력 ‘집중력’

지난 5월 3일 김희수 커피지아 대표를 만나기 위해 서울 개포동에 있는 사무실을 찾았다. 커피지아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구수한 원두향이 먼저 반겼다.

김 대표는 최근 이화여자대학교와 공동 연구해 야심차게 내놓은 귤 커피와 율무 커피 드립백의 팔로 개척을 위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귤, 율무 커피 드립백은 콜롬비아와 인도네시아 블랜딩에 우리 농산물인 율무와 귤껍질을 혼합해 만든 제품이다. 이 드립백 봉투에 맨 위에 새겨진 ‘초능력 콩 감별사’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저는 발달장애인이 한 가지 일에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할 수 있는 점을 초능력이라고 봤어요. 그리고 그들이 원두를 ‘콩’이라고 부르는데서 착안해 ‘초능력 콩 감별사’라는 이름을 붙이게 됐습니다.”


김 대표와 ‘초·콩·사’의 인연은 2012년 6월 시작됐다. 특수학교 교사인 한 친구가 졸업을 앞둔 자폐성 발달장애인 학생 두 명을 실습생으로 채용해 달라는 부탁을 해왔다. “발달장애인 학생이 취업을 못해 졸업 후 갈 곳이 없어지는 게 안타까워 저에게 부탁을 해온 겁니다.”

며칠 후 커피지아에 앳된 여학생 두 명이 찾아왔다. 업무가 배정되기 전이라 단순 업무부터 처리하도록 했다. 처음에는 일을 하면서 노래 한곡을 반복해 부르고, 같은 말을 반복하는 두 학생을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뚜렷한 업무 배정 없이 한 달여의 시간이 지났다.

“시간을 들여 관찰하자 발달장애인의 특성을 알게 됐습니다. 그게 그들의 재능일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 핸드픽 작업을 시켜보게 됐어요. 그런데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습니다.”

커피원두는 수입돼 들어오는 과정에서 벌레 먹은 콩이나 덜 익은 콩, 썩은 콩이 섞여 있을 수밖에 없다. 이런 결점두를 걸러내지 않고 로스팅 할 경우 원두의 질이 급격히 떨어지게 된다.

커피지아는 원두의 질을 높이기 위해 생두에서 한 번, 로스팅 한 원두에서 한 번, 총 두 번에 걸쳐 결점 콩을 골라내는 데, 이 작업을 ‘핸드픽’이라고 한다. 품질 좋고 무결점 원두를 만들어내는 데 이 핸드픽 작업이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핸드픽은 단순작업이지만 고도의 집중력을 필요해 일반인들도 힘들어하는 작업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일을 반복적으로 하는 특성이 있는 발달장애인 학생들은 큰 어려움 없이 이 일을 해냈다.

김 대표는 실습생이었던 이 학생들을 정직원으로 채용해 ‘초·콩·사’가 되도록 교육시켰다. 이후 발달장애인의 채용을 늘려 현재 직원 16명 중 10명이 발달장애인이다. 이들 대부분의 ‘초콩사’로 활동하고 있다.

커피를 사랑하는 사람들과 발달장애인에게 ‘집’이 되자

김 대표가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게 된 것도 발달장애인의 채용을 늘리면서다. “주변에서 제가 하고 있는 사회적기업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려주면서 사회적기업에 대해 알게 됐습니다.”


그는 장애인에게 맞는 작업환경을 만들어 주려면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는 게 도움이 된다고 판단했다. 2013년 5월 예비사회적기업을 거쳐 2014년 11월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같은 해 12월에는 장애인 표준사업장 인증도 획득했다. 지난 4월에는 장애인 인식개선과 자립을 도운 공을 인정받아 박원순 서울시장으로부터 표창장을 받았다.

김 대표는 발달장애인을 직원으로 채용해 함께 생활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고 한다. 따라서 발달장애인과 관련된 콘텐츠 개발과 리크루팅(Recruiting)을 앞으로 커피지아가 나아갈 사업 방향으로 삼고 추진할 예정이다.

“커피지아라는 사명에서 ‘지아’는 중국어로 집을 뜻합니다. 집에서 어머니가 만들어준 음식처럼 믿고 먹을 수 있는 원두를 정직하게 만들자는 뜻에서 지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사회적기업으로서 발달장애인들에게 집처럼 안정적인 직장이 되자는 뜻으로 그 의미가 더 확대됐습니다.”

주문과 함께 로스팅 시작…재고는 폐기


커피지아는 설립하자마자 프랜차이즈 햄버거와 커피 매장에 원두를 납품하게 되면서 수익을 내기 시작했다. 그렇게 큰 어려움 없이 자리를 잡는 듯했지만, 납품하던 커피 매장이 파산하면서 대금을 받지 못한 커피지아 역시 영향을 받게 됐다. 김 대표는 창업 후 처음 겪은 어려움에 힘든 시기를 보냈지만 좌절하지는 않았다고 했다.

“당시에는 브랜드가 없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맛으로 승부해 따낸 납품이었습니다. 저희 원두를 인정받았다는 데서는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김 대표는 완벽한 커피 맛을 내는 원두를 만드는 것만이 경쟁력이라는 생각을 갖고 윤리적 소비, 철저한 위생, 고퀄리티 무결점두, 최적의 로스팅, 매일매일 신선함 등 다섯 가지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원두의 신선함을 위해서는 ‘선(先)주문 후(後)로스팅’ 시스템을 활용하고 있다. 소비자로부터 주문이 들어와야 로스팅을 시작하고 재고는 바로 폐기한다. 커피업체로서는 드물게 식품의약품 안전처에서 지정한 HACCP(해썹)인증도 받았다.

김 대표는 올해 커피지아가 원두 맛으로 승부하는 커피전문점으로서 입지를 다지는 한해로 만들 계획이다. 그리고 내년부터는 발달장애인 관련 콘텐츠 개발에 본격적으로 뛰어들 생각이다.

정혜선 이로운넷 리포터

키워드
#slider
저작권자 © 이로운넷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