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진 이후 슬픔을 묵묵히 견디는 사람들네팔 지진 1년, 삶은 계속 된다


일본, 에콰도르 지진으로 많은 이들이 주저앉았다. 그리고 4월 25일은 네팔에서 80년 만에 대지진이 발생한지 1년째 되는 날이다. 지진의 상흔이 곳곳에 남아있지만 네팔은 비교적 차분한 분위기에서 애도를 준비하고 있다. 지난해 9월 네팔에서 재건복구 코디네이터이자 네팔센터장으로서 신두팔촉 커피 마을 중 가장 큰 피해를 입었다는 ‘이촉’에 처음 방문했을 때, 무너진 집과 커피 시설을 뒤로 하고도 활짝 웃어주는 마을 사람들의 모습에 적잖게 당황했다.

그 후 어떤 마을에 가든지 농부들은 어김없이 ‘고맙다’는 말과 함께 시종일관 밝은 모습을 보여줬다. 그 때마다 ‘어떻게 이 사람들은 이렇게 웃을 수 있나, 살던 집도 모두 무너지고 마을 전체가 박살이 났는데’라는 질문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깊은 슬픔을 감추기 위해 애써 웃었던 게 아닐까 하는 생각에 마음이 아프고 아팠다.

[긴급생활비지원]


지난해 말, 커피 농부와 가족들의 슬픔을 가늠해 볼 수 있었다. “성거이(네팔어로 함께 라는 뜻) 프로젝트”의 심리지원 덕분이다. 성거이 프로젝트는 아름다운커피가 지난해 5월부터 지진으로 피해 입은 커피마을에 물자 지원을 비롯해 정서지원을 진행하는 등 신두팔촉 커피마을을 되살리는 사업이다.

물자 지원이 긴급생활 자금 및 커피 묘목, 가공 인프라 지원, 채소 씨앗과 태양광 랜턴, 담요 지원 등 커피 농부들의 긴급한 필요를 충족하는 데 초점을 맞춘다면, 정서지원은 커피 농부와 그 가족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새로운 삶을 위한 의지를 제고하는데 주력하는 프로그램이다.

[씨앗 배분 지원]

[커피묘목지원]

[이불나눔 지원]


커피 농부의 아이들이 먼저였다. 아이들이 공부하는 임시학교를 찾았다. 예체능 교과가 없는 네팔에서 네팔 예술가 그룹인 ‘Get Well Soon Project’과 함께 전교생 대상 미술치료 프로그램 ‘아트힐링 워크숍(Art Healing Workshop)’을 진행했다. 아이들은 “그림을 그릴 때는 지진의 무서움이 느껴지지 않아 행복하다” “불안하지 않아 좋다”며 지진 이후 느꼈을 심리적 불안을 표했다.

‘Get Well Soon Project’ 대표 마니쉬 랄 시레스타 씨는 “시골에 거주하는 아이들은 지진 후 제대로 된 돌봄을 받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했다. 또 “아이들이 자신의 스트레스를 표출하고, 자기의 생각을 색깔과 그림을 통해 나타냄으로써 가슴 깊이 담아 놓은 두려움을 없애는 시간이 됐다”고 말해 정서 지원의 중요성을 다시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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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LC 정서지원현장]


어른들을 위한 정서 지원도 진행했다. 네팔은 슬픔을 바깥으로 잘 내색하지 않는 문화다. 마을 대표들을 대상으로 ‘트라우마 트레이닝’과 ‘마을 축제’를 진행하면서 농부들은 속으로 삭여온 분노, 언제 다시 땅이 흔들려 나의 사랑하는 사람과 공간이 사라질지 모른다는 불안을 지진 발생 7개월 만에 처음으로 타인 앞에서 드러냈다. 매주 농부들을 만나면서도 들어본 적 없는 이야기들, 두려움을 마주하면서 농부의 웃는 얼굴의 이면을 본 것 같았다.

‘트라우마 트레이닝’이 불안의 고백이었다면, ‘마을축제’는 공동체의 집단적인 치유 경험이었다. 지진 이후 한번도 마음껏 웃을 기회가 없던 마을 사람들에게 오랜만에 둘러 앉아 먹고, 마시고, 춤추고 노래하는 시간은 그 자체가 치유였다. 목소리로 노래로 스트레스를 분출하는 장면에서 그 간 이 들을 짓눌렀던 기억과 공포, 스트레스가 얼마나 컸는지 느낄 수 있었다.

지진이 발생한지 1년. 어느 영화의 제목처럼 ‘그래도 삶은 계속되고’ 있다. 무너진 집을 다시 올리고, 죽어간 커피 나무를 다시 심으며, 땅 속으로부터 희망을 건져 올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이어지는 자연 재해, 그들을 향한 격려와 위로와 함께 그들의 슬픔에 공감하려는 ‘관심’도 필요하다.

기고: 아름다운커피 네팔센터장 권유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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