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일로 꿈을 펼쳐라!"-- 진로레시피 '별별 진로콘서트' 현장--



여러분들이 (아침에) 눈을 떠야 그제야 세상도 존재할 수 있다는 사실. 내가 세상을 위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날 위해 존재한다는 점을 꼭 말해주고 싶어요.


천 만 관객이 선택한 영화, <베테랑>을 만든 류승완 감독이 청년들에게 해준 마지막 한 마디였다. 9월 5일 교육부와 한국직업능력개발원의 주관으로 진행된 ‘진로레시피 별별 진로콘서트’는 학부모와 아이들을 위한 소중한 말들로 가득한 자리였다. 예능프로그램 <진짜사나이>에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임원희 씨와 ‘천 만 감독’ 류승완 감독이 자리를 빛내주었다. 옷걸이를 예술로 탈바꿈 시키고 있는 염지홍 디자이너도 함께했다.

'진짜사나이'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배우 임원희씨가 콘서트의 문을 열었다. - 9월5일 동그라미재단 3층 -
이야기의 문을 연 사람은 배우 임원희 씨였다. 그는 시종일관 특유의 재치로 재밌는 시간을 선사해주었다. 진짜사나이에 출연중인 그는 “방송에 필요한 분량 만 찍고 연기하는 것 아니냐는 말들을 듣는다. 하지만 24시간 실제로 찍고, 그래서 너무 힘들다”고 너스레를 떨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육체적으로 힘든 직업, 배우

그가 생각하는 배우라는 직업은 어떤 모습일까? 사회를 맡은 백원경 CBS 아나운서가 배우로서의 삶은 어떤지 묻자, 그는 사뭇 진지한 대답을 내놓았다. 임원희 씨는 “배우를 선망하는 분들이 많다. 그만큼 영화나 드라마를 굉장히 멋지게 찍고 화려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많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잠을 못 자는 경우가 허다하고, 드라마의 경우 오늘 찍은 장면이 내일 나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배우라는 직업이 낭만적인 모습으로 비춰지기 쉽지만 육체적으로 굉장히 힘든 직업 중 하나라는 점을 꼭 말씀드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질문은 그의 학창시절로 이어졌다. 영화 <다찌마와리>와 수많은 예능에서 보여준 코믹한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임원희 씨는 “저는 정말 조용한 아이였다. 그렇다고 공부를 하진 않았지만 말이다.(웃음) 그래서 친구들이 제가 배우를 시작할 때 너무 안 어울린다는 생각해 많이 놀랐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연극부 경험이 그의 배우 인생을 만들었다
그는 “고등학교에 (재수를 하고) 어렵게 들어가서인지, 동아리를 정말 하고 싶었다. 그래서 처음엔 방송부를 지원했는데 떨어지고, 연극부가 마침 추가모집을 해서 찾아갔더니 덜컥 되어버렸다. 그 때부터 제 연기 인생이 시작됐다”고 이야기해주었다.

계속 연기를 하는 것, 영화를 찍는 삶이 꿈

그렇게 시작한 연기는 ‘극단 목화’의 배우생활로 이어지고, 학교 선배 장진 감독과의 인연으로 첫 영화를 찍는데 까지 이르렀다. 그로부터 20년이 흐른 지금, 그의 꿈은 여전히 계속 연기를 하는 것, 영화를 찍는 일이었다. 임원희 씨는 “저는 아직 갈 길이 멀었다고 생각한다. 다만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해서 행복하게 그 길을 간다는 점이 참 행복하다”며 지금의 인생에 만족감을 드러냈다.

연기만을 보고 20년 간 뛰어온 배우 임원희. 그의 마지막 말은 진솔하면서 담담했다. 그는 “제가 이야기 초반에 공부를 안 하고, 못 했다고 했지만 연기를 위한 공부는 늘 잊지 않고 했다. 공터에 가서 발성연습을 했고, 복식호흡을 매일같이 했다”며 “내가 하고 싶은 일에 필요한 연습들을 꾸준히 했으면 좋겠다.
"유재석 씨와 <나는 남자다>라는 예능을 했었는데 시청률이 잘 안 나왔다. 그 때 이런 말을 재석 씨가 하더라. ‘형, 너무 힘들어 마요. 최선을 다 했잖아요. 그 이상의 결과는 사람의 몫이 아니에요’ 라고. 나도 이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부모님들은 아이를, 아이 스스로는 자기 자신을 믿고 앞으로 나아갔으면 좋겠다. 그러면 결과는 따라올 것”이라고 당부의 말을 전했다.

임원희 씨의 재치 있는 입담으로 활짝 열린 이야기의 문은 류승완 감독으로 정점을 찍었다. 류승완 감독은 천 만 영화 베테랑의 뒷이야기부터 그가 생각하는 자녀교육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이야기를 전해주었다.

영화는 나의 유일한 탈출구였다

베테랑의 놀라운 흥행을 예상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류승완 감독은 “천 만이 넘는 사람들이 볼 줄은 몰랐다. 속 시원했다는 평이 많았는데, 기분이 좋은 한편 그 말이 숙제로도 다가온다. 베테랑과 함께 흥행에 성공한 암살 역시 제대로 정의가 실현되지 않은 현실, 그 현실의 답답함이 있었기 때문에 많은 분들이 찾았지 않나 싶다. 그래서 감독 이전에 한 명의 시민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리고 어떤 영화를 만들어야할지 고민이 든다”고 말했다.

흥행성공이 기쁘기도 하지만 숙제로 다가온다는 류승완 감독
<짝패>, <주먹이 운다> 등 인상 깊은 액션영화를 많이 찍어 ‘액션 키드’라는 애칭을 늘 듣던 류승완 감독, 그의 어린 시절은 어땠을까? 류 감독은 “어머니가 중학교 1학년 때 돌아가시고, 10개월이 안 돼서 아버지도 돌아가셨다. 그래서 동생과 저는 굉장히 조용하게 살았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그는 “그런 제게 영화는 단 하나의 탈출구였다. 요즘과 달리 한 테이프로 몇 십번씩 상영을 했던 동시상영관 세대인 저는 하도 많이 돌려 생채기가 난 영화 화면들을 보면서 컸다”고 설명했다. ‘스크린’과 ‘로드쇼’ 등 영화잡지들을 보면서 영화지식들을 배웠고, 독립영화협의회에 아무 것도 모른 채 찾아가 필름워크숍을 들으며 첫 영화를 만들었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그렇게 영화에 푹 빠져서 시작한 영화 현장 일이었지만 소년가장이었던 그에겐 턱없이 부족한 벌이를 가져다 줄 뿐이었다. 그래서 그는 1년에 6개월은 영화 현장에서, 남은 6개월은 1년을 생활할 생활비를 벌기 위해 쉼 없이 일 해왔다고 한다. 오롯이 영화가 좋아서 버텨온 세월이었다.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 때 영화를 찍어라

영화감독이 꿈인 친구들에게 진솔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는 류감독
그런 그에게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은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류승완 감독은 “제가 영화를 처음 시작할 때는 성공적으로 영화감독에 데뷔를 해도 은행대출을 받을 수 없는 신분이었다. 영화감독은 무직자와 동급으로 취급하는 게 사회분위기였기 때문이다. 지금도 힘든 건 마찬가지다. 지금 당장 좋아하는 감독을 스무 명 이야기해보라고 말씀드리면 못 말하실 거다. 영화감독조합에 가입한 감독만 300명이 넘는데 말이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선택한다면 무조건 패배자로 시작할 수밖에 없는 게임이라는 점을 인식하고 시작해야 한다”고 냉철하게 이야기를 시작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그는 “그렇기 때문에 직업적 선택보다도 내가 나누고 싶은, 표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지 먼저 생각해봐야 한다. 그렇게 사람들에게 꼭 들려주고 싶은 이야기를 생각하고, 그것을 영화로 만들면 설사 사람들이 몰라봐주더라도 계속할 힘이 생긴다.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을 갖은 사람으로서도 조금 더 행복한 삶을 만드는 데 토대가 되어줄 것”이라고 진심어린 조언도 잊지 않고 말해주었다.

류승완 감독은 조금 색다른 이야기도 들려주었다. 그는 “꿈이 꼭 직업이 될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직업의 가치와 꿈의 가치를 동일하게 하면 자신의 삶을 다채롭게 하는 걸 막는 결과가 만들어 질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꿈과 직업이 같을 필요는 없다

류 감독은 “뉴욕아시안영화제라는 내실 있는 영화제가 있다. 그 영화제 프로그래머 중 하나가 제 친구인데, 그 친구는 전기공이다. 아시아에 관심이 생겨서 공부했고 그러다 아시아 영화제를 찾아다니면서 아시아 영화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게 지금의 영화제를 만들기에 이른 것”이라고 설명했다.

꿈을 꼭 직업으로 성취할 필요는 없다고 설명하고 있다.
영화제를 이끌기 위해 자신의 휴가들을 모아서 아시아 국가들의 영화제를 찾아다닌다고 덧붙였다. 전기공이라는 직업을 하면서 자신의 꿈을 실현해나가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토크콘서트 자리에 온 학생들을 위해 한 마디 해달라는 사회자의 말에 류승완 감독은 영화 베테랑의 명대사를 넣어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는 “시야가 넓고 클수록 인생의 범위도 커진다고 말해주고 싶다. 서로의 삶을 존중하면서 모두가 똑같이 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가 돈이 없지 ‘가오’가 없는 건 아니지 않나.(웃음) 좋고 싫은 것을 확실하게 표현할 줄 알고, 자신의 선택을 책임지는 자세만 갖추면 된다”고 조언했다.

함께 온 부모님들에게도 잊지 않고 조언의 말을 건넸다. 그는 “우리 부부는 농담 삼아 ‘자식 이기는 부모가 되자’고 이야기 하곤 한다. 우리 아이들은 끝까지 자기가 생각하는 것을 굽히지 않고 대화하는 편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겐 보다 많은 의견권을 주고 심심할 수 있는 능력을 갖도록 시간을 주길 추천한다. 좋은 아이디어들을 심심할 때 나오기 때문”이라고 이야기했다.

재밌어서 시작한 일에서 ‘옷걸이 디자이너’로

류승완 감독의 이야기가 끝이 나고 모두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한 사람이 연단에 섰다. 그는 바로 옷걸이를 예술로 탈바꿈시키고 있는 염지홍 디자이너. 옷걸이로 만든 테이블과 스마트폰 거치대를 무대에 가져와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냈다.

염지홍 디저이너는 “사실 옷걸이 디자이너가 될 거라고 처음부터 생각하진 않았다. 집안에서 조그마한 피자가게를 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을 도우면서 피자가게를 확장할 생각을 하면서 살아왔다. 그러던 것이 청년창업센터에 지원을 하게 되고 이것저것 시도하다 지금에 이르렀다”고 간략하게 자신을 소개했다.

피자집 CEO를 꿈꾸다 옷걸이 디자이너라는 직업을 개척한 염지홍 디자이너

그런 그는 처음 옷걸이로 독서대를 만들었을 때부터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겠다고 예감했다고 한다. 염 디자이너는 “독서대를 옷걸이로 쉽게 만들 수 있고, 재밌어서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다. 물론 친구들이 좋아하지만 밖에 나가는 건 주저하기도 했다(웃음)”고 장난스레 과거를 회상하며 이야기해주었다.


그런 그에게 발전의 기회를 준 건 한 방송 프로그램 덕분이었다. 그는 “독서대를 만들고 셀카봉, 부채 등 한 손으로 들 수 있는 사이즈의 물건들을 만들어왔다. 그러다 <생활의 달인> 프로그램에서 연락이 왔고, 옷걸이로 크기가 큰 물건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이 들어왔다”고 설명했다.

독서대를 빨리 만들거나 눈 감고 만들기일 줄 알았던 그는 처음엔 당황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중요한 변곡점이었다고 덧붙였다. 테이블과 침대 만들기에 성공하며 옷걸이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것이다.

사소함에 ‘왜’를 묻자 창의력이 생겼다

신기한 옷걸이 디자인의 세계

이런 아이디어들은 어디에서 가져오느냐고 사회자가 물었다. 그러자 그는 아주 쉽다는 듯 대답을 시작했다. 염지홍 디자이너는 “제가 책을 읽지 않았다면 독서대는 필요하지도, 생각해내지도 못 했을 것이다. 다른 물건들도 마찬가지다. 생활 주변의 물건들을 유심히 본다. 또, 본 것들을 노트에 꼼꼼히 적어놓고 실제로 만들기를 반복한다”고 설명했다.


이런 그의 창의성은 방송 이전에 이미 영국왕립학교가 먼저 알아챘었다고 한다. 염지홍 디자이너는 “옷걸이 작품들을 만들면서 운 좋게 영국왕립학교에 입학을 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면접을 보는데 교수가 내게 ‘네 뇌가 궁금하다’고 하더라. 제가 생각하는 접근법들이 색다르게 느껴졌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의 인생철학도 물음표라고 한다. ‘왜’를 끊임없이 생각하면서 창조적 파괴와 결합을 만들어보라고 주문했다.

끝으로 사회자가 진로를 고민하는 학생들에게 해줄 말을 묻자, 그는 “제 사례는 일반화될 수 없다. 그래서 제가 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다. 인생을 경쟁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 자신의 시간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길 당부한다”고 조언해주었다.

토크콘서트가 끝나고 염지홍 디자이너는 청중들에게 옷걸이독서대 만들기를 시연하고 선물해줬다.

그렇게 염지홍 디자이너의 마지막 조언까지 듣고, 세 사람의 진솔한 이야기가 모두 끝이 났다. 세 사람 모두 좋아하는 일을 자신의 삶의 이유이자 가장 잘 하는 일로 만들어냈다. 또한 이들은 특별한 인맥이나 천부적인 재능이 아닌 평범한 시작을 거쳐 노력을 통해 결실을 일궈냈다. 그러니 만약 지금 좋아하는 일 앞에서 주저하고 있다면, 이들처럼 좋아하는 일을 꿈으로, 삶으로 만들어보자. 하나씩 천천히 나아가다보면 당신의 꿈에 닿아 있을 것이다.

우리 아이의 또 다른 진로, IT를 배우다!

‘별별 진로콘서트’가 있던 9월 5일, 동그라미재단에서는 아주 특별한 수업 하나가 더 있었다. 이제는 생활 깊숙이 자리 잡은 IT기술을 아이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였다. 코딩교육과 드론제작 과정을 볼 수 있었던 이 날 수업은 경력단절 여성들을 돕는 경력단절예방 플랫폼 ‘맙잡고’에서 준비했다.




초등학생들의 눈높이에 맞춘 소프트웨어 교육'언클러그드 액티비티' 수업

시작은 코딩교육이었다. 1시간 남짓 진행된 교육은 이름은 다소 낯설지만 아이들의 흥미를 끌기에 훌륭한 ‘언플러그드 액티비티(Unpluged Activity)’였다. 언플러그드 액티비티는 컴퓨터로 프로그래밍 언어를 공부하는 코딩교육이 아닌, 참여한 아이의 몸을 컴퓨터로 생각하고 코딩의 개념을 몸으로 쉽게 접하도록 만든 수업을 뜻한다.
이 날 선보인 프로그램은 ‘이진수 댄스’와 ‘그림을 문자와 숫자로 표현하기’였다. 이진수 댄스는 생활에서 기본적으로 쓰이는 십진수를 이진수로 몸으로 표현해 푸는 놀이였다. 어색해하던 아이들은 점점 같은 팀원인 아이와 눈을 맞추고 몸동작을 고쳐주며 긴장을 풀기 시작했다. '그림을 문자와 숫자로 표현하기'로는 컴퓨터의 기본단위인 ‘픽셀’을 익히고 몸으로 표현하는 방법을 익혔다.

직접 만들고 날려보는 ‘펀드론!’

이렇게 코딩의 기본원리를 몸으로 익힌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커지기 시작했다. 바로 드론 만들기 수업이 시작됐기 때문이다. 여기, 저기서 쿵쿵 대며 하늘 높이 날던 드론이 천장에 부딪히며 떨어지곤 했다. 그러나 아이들은 아랑곳하지 않고 연신 즐거운 표정을 지으며 떨어진 드론을 고치고, 다시 날리기를 반복했다.

드론을 직접 날리기에 앞서 드론의 여러 쓰임과 모양을 영상으로 보는 과정에서도 아이들의 눈은 빛났다. 수업을 진행한 한국전자통신교육원 김경식 대표의 질문에도 아이들은 척척 대답하며 의욕을 불태우기도 했다.

드론 만들어 날려보기

플라스틱 소재의 소형 드론 몸체에 날개를 달고 블루투스 장치를 휴대폰과 연결하는 과정에서도 아이들은 연신 눈을 끔뻑거렸다. 배터리를 넣고 전원을 켜는 순간 아이들의 환호소리도 터져 나왔다.


아이들의 열띤 참여 속에서 IT수업은 성공적으로 끝이 났다. 소프트웨어의 개념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마련된 이번 수업에서는 유익함과 재미를 모두 잡을 수 있었다. 내년부터 초등학교 5,6학년 실과수업에 연 17시간씩 모두 34시간을 소프트웨어 교육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아이들에게도 소중한 하루가 되었을 것이다.

학부모를 위한 진로레시피: http://www.podbbang.com/ch/7445

글. 조득신 이로운넷 리포터
사진. 이우기 사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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