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하고 싶었다." 이야기는 이 명쾌한 문장으로 시작한다. 해외유학을 가고 유명 금융회사에 취업까지 했던 사람이 인력거를 타기까지, 저 한 문장이면 충분했다. 그저 하고 싶고, 하면 즐거운 일에 도전한 사람. 단 2대로 시작했던 인력거 사업을 창업 2년 만에 20대의 인력거와 25명의 라이더로 늘린 이 사람은 ‘아띠 인력거’의 이인재 대표이다.

그의 창업기가 <즐거워야 내 일이다>라는 책으로 나왔다. 명쾌하다 못해 명랑한 그의 인력거 사업 시작에 주변반응은 시큰둥 혹은 무시였다. "그게 한국에서 될 것 같아?" "유학까지 해서는 왜 몸 쓰는 일을 하려고 해?" 등 만류의 목소리들이 높았다. 그래서일까. 중국에 직접 가서 꼼꼼히 살펴보고 계약을 한 인력거도 예정보다 7주나 늦게 도착하고, 그 인력거를 둘 공간 마련에도 어려움을 겪는 등 그의 시작이 순탄치 않았다.

하지만 그는 확고했다. 미국 유학시절 친구와 일했던 '패디캡(Pedicab)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동남아의 대중교통으로 우리의 고정관념 속 인력거가 아닌 인력거를 통해 도시를 소개하고, ‘천천히 그리고 따뜻한 문화’를 만드는 인력거 사업을 한국에서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끈기 있게 노력하고 일을 즐겼다.

그 모습에 작가, 식당 주인, 마을 어르신들 등 다양한 사람들의 도움이 이어져 차츰 사업이 안정화되어 갔다. 책에는 그런 그들에게 고마웠던 일들과 마음도 듬뿍 담겨 있어 함께 뿌듯해지는 기분이 든다. 또한 영국과 프랑스 등 유럽의 인력거 회사를 탐방하러 간 모습에선 인력거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책 뒷부분에는 라이더들의 인터뷰도 담겨 있어 인력거를 운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도 재밌게 접할 수 있다. “YOLO (You Only Live Once) 한 번뿐인 인생, 즐겁게 살아보자!”라는 모토로 오늘도 즐겁게 살아가는 사람. 이 사람의 이야기로 추운 겨울 따뜻한 열정을 맛보길 추천한다.



지은이

이인재

국내에 인력거를 들여와 도심에서 골목 여행의 재미를 불러온 아띠인력거 대표. 중학교 때 미국으로 유학, 대학을 졸업하고 서울의 한 외국계 금융회사에 다니던 그는 안정적이지만 변화 없는 일에 회의를 느끼고 창업을 생각했다. 다른 사람의 가르침에 기대기보다는 몸으로 부딪쳐 느끼고 배운 바를 실천하며 살고 싶었다. 문득 유학시절 세 발 달린 자전거 인력거(PEDICAB)가 세상과 개인에게 주는 여러 긍정적인 효과와 매력에 빠졌던 경험을 떠올리고, 함께 했던 미국인 친구와 서울 북촌에서 인력거를 몰기 시작했다.

아띠인력거의 슬로건(행복을 달리다)대로 인력거를 통해서 라이더와 손님들, 스치는 사람들과도 행복을 나누고 싶다는 그의 운영 철학은 책(『김난도의 내일』)과 방송에 소개되어 잔잔한 반향을 일으켰다. 아띠인력거는 실행력과 지속 가능성을 인정받아 ‘2013 창조관광사업 공모전’(한국관광공사 주최)에서 대상을 받았다. 2대로 시작한 인력거는 20대로, 인력거 라이더는 25명으로 늘었다. 그는 지금도 처음 모습 그대로 인력거와 함께 골목을 누비고 있다.



본문발췌

p7, 소로가 말한 대로 인생은 저마다의 실험이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아무리 선배들이 자신의 경험으로 내 선택의 순간마다 적절한 도움을 준다 해도, 그들의 경험과 내 경험이 완전히 일치할 수는 없다. 결국, 그리 길지 않지만 그동안 내가 체득한 경험들을 믿고, 선택한 결과를 스스로 책임지는 게 자신의 인생을 온전히 살아내는 길이 아닐까.

p17, 인력거를 끌면서 나는 점점 확신이 든다. 세상이 빨라질수록 사람들은 더욱 느림의 정서를 그리워할 거라고, 천천히 소통하는 인력거를 찾는 사람이 많아질 거라고.

p22,‘인력거가 뭔가 역할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인력거가 있으면 서울에 부족한 놀이 문화를 채워줄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인력거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잘 알고, 맘만 먹으면 당장 시작하기에도 크게 무리 없어보였다. 인력거를 두고 이런저런 생각이 뻗어나갔다. 우연히 친구와 추억을 나누다가 어느새 창업으로 구상하게 된 것이다. 내 머릿속은 온통 인력거 생각으로 가득 차서 하루라도 빨리 일을 하고 싶었다. 내 나이 스물일곱, 스티브 잡스는 20대 초반에 사업에 성공했고, 이상과 윤동주는 내 나이 때 주옥같은 작품을 남기고 떠났다. 이때를 놓치면 젊은 시절의 그 에너지는 없어질 것 같았다.

p53, 미국의 인력거는 인력거의 이미지(아시아 몇몇 나라에서 고단한 삶이 연상되었던)를 단번에 바꾸어놓았다. 친환경 교통수단 내지는 신개념 관광 상품으로, 기존에 있었던 인력거라는 도구에 의미와 재미를 더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경험해 보니 그게 다가 아니었다. 보스턴에는 다양한 배경을 가진 라이더들이 있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각양각색의 라이더들은 인력거라는 도구를 통해 하나가 된다.

p85, 2012년 6월, 인력거 2대를 주문해놓고 차고 한 편을 사람이 살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다. 돈을 아끼려고 공사를 직접 하느라 적잖이 애를 먹었다. 방산시장에서 사온 장판을 깔고 콘크리트 바닥에 샤워장도 만들었다. 바닥에서 찬 기운이 올라와 3단 매트리스를 깔고, 초여름인데도 모기가 들끓어 모기장을 설치했다. “와우! 비니, 이제 제법 살만해 보이는데?” “그러게. 이제 인력거만 있으면 돼.” 우리만의 그럴듯한 사업 공간을 마련하니 가슴이 벅차올랐다. 벌써 차고 안에 인력거가 들어찬 듯, 마음이 둥실둥실 부풀었다. 이제 중국에서 인력거만 도착하면 완벽한 시작이다!

p108, 아띠 인력거는 단순함을 지향한다. 두 발의 힘만으로도 웬만한 건 다 할 수 있다. 약간의 편리함을 위해 복잡함을 자초할 필요는 없다.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두 발로 페달을 밟기 시작했다.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인데 여러 사람을 만나면서 우리가 하는 일의 사회적·생태적 가치를 깨닫게 되었다. 그건 더 열심히 일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고 지속성에 대한 희망을 주었다.

p176, “내일 한국어 강의 시간에 특강을 해보는 게 어때? 학생들이 무척 좋아할 것 같아서 말이야.” 프랑스 국립 동양어문화대 한국어과 학생들에게 특강을 해달라는 요청이었다. 나로선 무척 기쁘고 들뜨는 일이었다. 아델의 도움을 받아 프랑스어로 자기소개 문장을 연습했다. 출국 6시간을 앞두고 강의실에 들어서자, 40~50명 정도의 학생들이 꽉 차 있었다. 모두 프랑스인들이라고 했다. 프랑스에 와서 한국을 사랑하는 프랑스인들 앞에서 강연을 하다니… 세상은 재밌고도 신기한 곳이다.

p194, 이 일을 하며 참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다양한 경험을 했다. 한 가지는 확실히 말할 수 있다. 삶에 대한 성취감이 학교나 회사에 다니며 반수동적인 환경에 있을 때 맛보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르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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