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TV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 행사를 지켜보던 나는 잠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교황의 꽃동네 방문 때문이었다. 수백만 평의 부동산 매입과 횡령, 거액의 국가보조금 및 후원금 관련 회계의 불투명성, 장애인에 대한 부당처우 등 각종 비리 의혹이 불거진 곳을 교황이 방문한 것이 언뜻 이해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황 방한 이후 KBS의 ‘추적60분’은 꽃동네의 비리 의혹이 ‘현재진행형’이라고 보도했다.
TV 화면을 통해 꽃동네의 대규모 시설을 목도한 나는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한국 가톨릭이 내가 속한 한국 개신교의 과오를 답습하는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한국 개신교는 중세 가톨릭 교회와 같은 처지로 전락했다. 세속적 부와 권력에 취한 한국의 대형교회들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과 같은 대수술이 필요한 상태다. 그런데 국내 최대 규모의 복지시설(현 수용인원 약 4000명)이라는 꽃동네에서 대형 개신교회의 어두운 그림자가 보였다. 그곳은 더 이상 ‘얻어먹을 힘만 있어도 주님의 은총’이라는 신앙으로 세워진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의 공동체가 아닌 것처럼 보였다. ‘얻어먹을’과 ‘주님의 은총’이 희미해지고 ‘힘만 있는’ 곳으로 변질된 것이 아닌가라는 우려가 들었다.
‘추적60분’의 보도에 따르면 선진국은 수십 년 전부터 복지시설의 대형화를 지양하고 있다. 대신 소규모 복지 공동체들이 중심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이는 대형 복지시설이 자칫 ‘수용소’로 전락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장애인과 노약자들을 단지 안전하게 보호(?)하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어쩌면 가장 안전하게 보호(?)되고 있는 자들은 수감자들이 아닐까? 사회와 단절된 채 기본 의식주만 제공받는 것이 수감자와 무엇이 다를 것인가?
교황은 꽃동네 방문에서 의미 있는 권고를 했다. 그는 “가난한 이들을 돕는 것은 반드시 필요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것으로 충분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여러분이 인간 증진이라는 분야에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시도록 격려합니다.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저마다 품위 있게 일용할 양식을 얻고 자기 가정을 돌보는 기쁨을 누리게 되기를 바랍니다”는 말씀으로 꽃동네의 방향성을 제시했다.
대기업화 대신 ‘연대’의 길을 택한 이탈리아 복지 소셜프랜차이징 ‘코뮤니타 솔리달리’
교황 가족의 고향이자 교황청이 있는 이탈리아의 사회적기업들은 대기업화 대신 연대를 통해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표적인 곳이 소셜프랜차이징인 ‘코뮤니타 솔리달리(Comunita Solidali, 이하 CS)’다. ‘공동체 연대’라는 의미의 CS는 이탈리아 1200개 사회적 협동조합의 컨소시엄인 CGM이 설립한 소셜프랜차이징이다. CGM은 전국적으로 84개의 지역 컨소시엄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직원 수는 3만5000명에 이른다. 연간 매출은 10억 유로(약 1조3000억 원)다.
지난 2003년 CGM은 아동과 정신질환자, 노인, 환경, 노동정책을 담당하는 몇 개의 업체들을 설립했다. 그리고 이들 기업들이 ‘웰페어 이탈리아(Welfare Italia)’라는 동일 상표( trademark)를 사용하도록 했다.
CS는 CGM의 이러한 업체들 중 정신질환자와 장애인, 노인 복지 사업을 맡고 있는 곳으로, 이탈리아 내 13개 지역에 산재한 800개 사회적 협동조합들이 소속돼 있다. CS 산하 41개 지역 컨소시엄은 개별 조합들을 지원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CS 복지사업의 핵심은 ‘가족’이다. 정신질환자와 장애인, 노인을 가정식 시설에 머물게 하고, 그들에게 가족 같은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을 주요 목표로 하고 있다. 따라서 수천 명이 단일 시설에 집단 거주하는 방식은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CS가 소셜프랜차이징으로서 일반 복지기관들과 다른 점은 통합 매뉴얼에 따라 운영된다는 것이다. 이 매뉴얼은 개별 조합과 전국 조합의 수 년 간의 노하우가 결집된 것이다. 또한 외부 기관인 카리타스(Caritas 국립보건원 National Health Institute)와 베로나 대학, 그라나다 파다노 컨소시엄(Grana Padano Consortium, 치즈 생산자조합)도 매뉴얼 작성 과정에 참여하고 있다.
CGM은 ‘혁신과 발전이란 연대를 강화하는 것’이란 기업 이념으로 운영되고 있다. 이에 따라 외부 조직과의 연대를 매우 중시하고 있다. CS의 주요 협력단체 중 안파스(Anfass)는 정신지체자 가족들의 전국연합체다. CS와 안파스는 ‘애프터 어스(after us, 장애인의 부모들이 사망한 후 발생하는 장애인 생존 문제)’라는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공동으로 신규 기업인 알파(Alfa)를 세웠다. 이 기업은 잔존 장애인들의 지역 주거 공동체를 꾸리는 사업을 담당하고 있다. 알파의 협력은행인 방카 인테사(Banca Intesa)는 ‘애프터 어스’ 사업에 우대 대출을 시행하고 있다.
탈렌티(Talenti)재단도 ‘애프터 어스’ 문제 해결에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비어 있는 성당 등 종교시설을 장애인 주거 공동체로 전환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CS와 CGM은 ‘연대’를 기업혁신과 발전의 핵심 동력으로 삼았지만 이를 위해 적지 않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네트워킹을 위해 많은 돈과 시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업계 전반에서 자본과 인적자원은 부족한 상태다. 이에 비해 고객이 지불하는 서비스료는 전체 비용의 일부에 불과한 실정이다. 운영비 대부분은 특별 프로젝트 수행이나 후원금을 통해 충당되고 있다. 그런데 이 경우 특정 지역 지원 등 조건이 붙은 경우가 많아 자금 운용이 경직되곤 한다. 가맹 조합이 증가할수록 이러한 문제는 커져 갔다.
CS의 가입비는 일반 조합의 경우 2500유로(약 335만 원), 펀딩 회원(funding member)의 경우 3만5000유로(약 4700만 원)다. 가맹 조합이 부담하는 연간 수수료는 2000유로(약 270만 원)다.
조합 운영에 대한 객관적 평가 시스템은 CS 성공의 일등 공신이다. 외부 협동조합이 CS 가입을 신청할 경우 이 조합에 대한 평가 작업을 거쳐 가입 여부를 결정한다. 평가는 서류심사와 현장실사를 통해 이뤄진다. 심사위원은 1명의 코디네이터와 2명의 정신과의사 등 8명의 내·외부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계량 평가와 종합평가의견, 경영개선을 위한 권고 등으로 이뤄진 보고서는 ‘웰페어 이탈리아’ 상표 관리자에게 제출되며, CS 이사회에 보고된다. 기존 조합을 대상으로도 매년 실시되는 이러한 평가 과정을 통해 개별 조합들은 ‘건강한 긴장 상태’에 놓이게 되며, 경영 개선을 위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기도 한다. 경영평가 결과 일정 수준에 미달한 것으로 드러날 경우 ‘웰페어 이탈리아’ 상표 사용이 제한되는 등 불이익을 받게 된다. 상표 관리위원회는 카리타스 및 국립 로마대학 등으로 이뤄진 윤리분과위원회와 카리타스 및 2명의 대학교수 등으로 이뤄진 과학분과위원회로 나눠진다.
?장애인이 주인공인 이탈리아 여행 소셜프랜차이징 ‘르마’
르마(Le Mat)는 이탈리아의 여행 소셜프랜차이징이다. 1980년대 말 젊은 정신질환자들과 마약중독자, 의사, 예술가, 기타 일반인들이 모여 작은 호텔을 운영하는 협동조합인 ‘일 포스토 델레 프라골레( Il posto delle fragole)’를 시작했다. 이들은 2004년 이탈리아 북동부의 항구도시인 트리에스테에서 르마를 출범시켰다. 르마가 운영하는 호텔인 트리토네(HOTEL TRITONE)는 중간소득층 여행자들을 위한 중급 숙박업소다. 그런데 특급호텔들도 갖추지 못한 이 호텔만의 특징은 호텔 운영진의 상당수가 장애인이나 사회부적응자 출신이라는 것이다. 이 호텔의 고객들 역시 많은 수가 장애인들이다. 그들은 사회로부터 격리되는 것이 아니라 여행의 주요 고객인 것이다.
르마의 호텔들은 주요 도시의 교통요지에 30개의 객실 규모로 설립됐다. 또 각 지역의 자연환경과 문화적 다양성을 살린 여행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와 함께 ‘제로 킬로미터(KM 0)’ 정책을 통해 호텔이 지역 생산품을 우선 구매하는 사업을 벌이고 있다.
르마의 가맹점들은 본사가 마련한 매뉴얼북(Quality Handbook)에 따라 고객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또 고객만족도 조사카드(Quality Assurance Card)를 통해 고객 불만사항을 개선하는 작업을 벌이고 있다.
르마의 우선순위는 ‘3P’다. People(고객과 지역주민), Planet(환경보호), Profit(수익성)이 그것이다. 고객만족과 환경보호를 실천하면서도 지속가능한 사업수익성을 도모하는 것이 목표다.
사회적기업이란 사명과 사업이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는 일이다. 소셜프랜차이징 역시 소명과 소득의 두 바퀴가 모두 잘 굴러가야 목적지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다. 르마 역시 개인이 부자가 되는 것이 아닌 사회를 부유하게 하는 것이 사업 목표라고 밝히고 있다.
프랜차이징의 원조는 맥도날드도 KFC도 아닌 기독교회가 아닐까 싶다. 프랜차이징과 교회는 닮은 점이 많다. 본사와 가맹점이 있듯 교단과 소속교회가 있다. 교단은 소속 목회자들을 훈련하고, 목회자들은 교단 간판을 내걸고 교회를 운영한다. 그러나 분명 교회는 프랜차이징이 아니다. 절대 아니다. 사업을 벌이는 곳이 아닌 사명을 실천하는 곳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칫 사업으로 전락하기 쉬운 곳도 교회가 아닐까 싶다. 중세의 가톨릭 교회가 그랬고, 현재의 한국 교회도 그렇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처음으로 프란치스코 성인의 이름을 채택한 교황이다. 1182년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사업가의 아들로 태어난 성 프란치스코는 막대한 유산 상속권을 포기하고 평생 빈자(貧者)의 사제로 살았다. 맨발에 낡은 옷을 입고 가난한 사람들을 돕던 그가 44살의 나이로 숨진 곳도 땅바닥이었다. 그는 또 새들과 늑대에게도 복음을 전한 ‘자연의 사제’였다.
성 프란치스코는 왜 거액의 유산을 포기했을까? 포목상이라는 아버지의 사업을 물려받아 더 큰 재산으로 불린 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는 것이 더 효과적으로 빈자들을 돕는 길이 아니었을까?
성 프란치스코는 부유한 사업가로 사는 탄탄대로 대신 그의 인생 전체를 신앙과 이웃에 바치는 좁은문을 선택했다. 그 결과 현재 세계 곳곳에서 프란치스코회 소속 수도자들과 신자들이 복음과 복지를 전파하는 열매를 맺게 되었다.
사회적기업이 사명에 올인하는 성 프란치스코가 될 수는 없을 것이다. 현실적으로 사업도 중시해야 지속가능하기 때문이다. 비둘기처럼 순결하게 사명을 수행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사업을 운영하는 것이 사회적기업과 소셜프랜차이징에게 주어진 숙제일 듯싶다.
10월4일은 성 프란치스코 축일이다. 한국 교회가 소명을 회복해 한국의 성 프란치스코로 거듭나기를 기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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