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전화기를 다시 발명했다."
애플은 아이폰을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그 말은 어느 정도 사실이다. 아이폰은, 조금 과장해서 말하면, 모든 것을 바꿨다. 단순히 새로운 물건만으로 세상이 바뀔 수 있을까. 아이폰을 콘텐츠의 보물섬으로 만든 건 기계 자체가 아니라 다양한 앱들이었다.

애플의 아이폰 광고는 특이했다. 아이폰 자체를 소비자에게 알리는 건 별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애플은 아이폰 자체의 기능과 스펙이 아니라 앱을 광고했다. 그리고 애플이 스마트폰 초기 시장에서 시장을 장악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안드로이드폰과는 비교도 안 되는 다양하고, 매력적인 앱들 때문이었다. 앱스토어. 애플은 앱 개발자들이 맘껏 자신의 재능을 뽐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었다. 그 플랫폼은 앱 개발자가 스스로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제공했다.

의류업계의 애플을 꿈꾼다

의류업체 이야기를 하면서 왜 뜬금없이 애플 이야기냐고? 옷 만드는 사회적기업 [오르그닷]는 마치 의류업계의 애플이 되고 싶은 것처럼 보였으니까. 오르그닷 김방호 대표는 디자이너를 위한 앱스토어가 되고 싶어하는 것 같다. 김 대표는 오르그닷 브랜드로 옷 만들고, 매장 운영하는 것으로는 한계를 예감했다고 한다.

[사진: 김방호 대표]
패션산업은 이중적이다. 화려하다. 동시에 전근대적이다. 디자이너는 해마다 학원과 대학에서 쏟아져 나오지만, 이들을 고용할 기업은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고용이 되더라도 절반이 넘는 인원이 불안한 임시고용직이다.(참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조성 사업의 고용영향평가, 한국고용정보원, 2012년).

그래서 김방호 대표는 이들을 마치 앱을 개발하는 젊은 개발자들의 처지와 비슷하다고 생각했다. 그들의 아이디어를 현실화할 수 있는 봉제공장을 연결하는 공간을 만들자. 알음알음 오프라인에서 돈과 시간을 써가면서 봉제공장을 찾는 대신에 온라인 공간에서 내 아이디어를 완성된 물건으로 만들어줄 봉제사가 디자이너들에겐 절실했다.

디자이너와 봉제사(메이커)를 연결하고, 매니지먼트하자. 그건 패션이라는 화려하지만, 여전히 전근대적인 방식이 여전히 잔존한 산업에서 새로운 연결과 관계를 마련하려는 IT업체 출신 패션업체 대표만이 생각할 수 있는 시도였다.

패션업계의 이중성

패션업은 일견 화려하다. 하지만 오래전 가내수공업 방식을 고수하는 봉제공장, 창업에 내몰리는 불안한 젊은 디자이너들이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 방식은 창업이라고 김 대표는 말했다. 이들 가내수공업식 봉제공장들은 아예 통계에 잡히지도 않고, 통계가 있더라도 현실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금천구청의 도움으로 봉제공장을 일일이 찾아 나섰을 때도 그 종이 속의 통계는 현실과 전혀 부합하지 않았다. 봉제공장은 통계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영세했다.

사회적 기업이라면 사회적 문제를 기업적 방법으로 푼다고 하는데. 환경과 노동, 지속가능성을 고민할 수밖에 없다. 의류업계는 환경 파괴가 가장 심하고. 대표적인 노동착취산업이다. 여기서 오히려 변화의 기회가 있겠다고 김 대표는 생각했단다. 다른 방식으로 의류를 제조하고, 생산해보자.


그래서 오르그닷은 친환경업체로 지금까지도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하지만 새로운 방식의 사회적 역할, 좀 더 본질적인 역할을 위해서 ‘플랫폼 사업’을 구상했다고 김 대표는 강조했다. 그것은 대안적인 패션산업의 대안적인 생태계였다. 하나의 브랜드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내기보다는 10명, 100명의 창업 디자이너들과 기존의 봉제공장을 성공시키면 패션 산업 안에서 더 자신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이 그에게는 있었다.

그 플랫폼은 아직 완성된 건 아니다.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designersnmakers.com)는 아직 전체 100%에서 10%만이 구현된 상태라고 했다. 하지만 작년 10월부터 본격적으로 준비하고, 올해 6월 오픈을 준비하는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의 모습은 벌써부터 궁금하다.

[사진: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 사이트 화면]
새로운 대안 패션 생태계 ‘디자이너스앤메이커스’

혹시라도 롤모델은 없었는지 물었다. 없었다고 했다. 국내에는 비슷한 시도들이 전혀 없었고, 해외에도 봉제공장의 생산 관리 데이터베이스화를 추진한 시도들은 있었지만, 이를 디자이너의 온라인 플랫폼, 그리고 이 둘을 유기적으로 연결하는 ‘종합 솔루션’을 구체화한 곳은 아직은 발견하지 못했다고 했다. 여기에 결제 시스템까지 마련해야 그 솔루션을 완성할 수 있다. 함께일하는재단은 기획 초기부터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특히 데이터베이스화 작업에 큰 도움을 줬다.

그래서 현재까지 ‘알음알음’ 찾아낸 디자이너와 봉제공장은 각각 약 20여 곳들. 디자이너들과의 대화를 통해 이들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고 있는 상태다. 그리고 오르그닷의 사이트 기획팀 3명이 플랫폼의 구체적이 기획을 진화시키고 있다. 효율성을 고려해 ‘아주 긴밀하게 소통’할 수 있는 개발팀은 외주를 맡긴 상태다.

현재 우리나라 의류 산업의 규모는 연간 40조 원이라고 한다. 그 중에서 캐주얼이 차지하는 비중은 11조 원 정도. 여기에서 1%만을 성공적으로 공략해도 그 규모는 결코 작지 않다. 그리고 그 1%가 만들어내는 변화는 훨씬 더 강력할 수 있다고 김방호 대표는 생각하고 있다.
봉제공장의 노동환경은 여전히 80년대 말에 머물러 있다. 2,30대 젊은이들은 찾아볼 수 없고, 4,50대가 주력이다. 20년 이상의 숙련된 봉제사가 월 200만 원이 채 못되는 저임금에 시달린다. 디자이너들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해마다 만 명 단위로 쏟아지는 공급 과잉 속에서 소위 대기업이 안정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인원은 수십, 수백 명에 불과하다. 이들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의 공간이 절실한 이유다.

오르그닷의 모험, 그들은 보물섬을 만날 수 있을까

디자이너 3명. 기획팀 2명. 영업 1명 마케팅 2명. 경영지원 1명 생산관리 4명. 2009년 설립한 오그르닷은 여전히 작은 회사다. 지난 해 매출은 14억 원으로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하지만 도전적인 아이디어와 치밀한 기획력으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가능성은 충분해 보였다.

[사진:오그르닷 사무실]
오르그닷이 김방호 대표의 기대처럼 패션업계의 ‘앱스토어’가 될 수 있을까. 아직 그 결론은 아무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 하나는 분명하다. 우리는 전 세계에서 다양한 디자인의 옷을 쉽게 구할 수 있는 패션강국이다. 더불어 전 세계에서 손꼽히는 IT 인프라를 갖춘 IT 강국이기도 하다. 그 실질이 앞서 살핀 것처럼 깊고 어두운 그림자를 동시에 갖고 있는 점은 부정할 수 없지만, 디자이너와 봉제공장, 이 둘을 결합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오르그닷의 시도는 우리나라 썩 괜찮은 시도로 보인다.

그저 의식있는 친환경 사회적기업이 아니라 도전정신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고,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 대안적인 생태계를 꿈꾸는 오르그닷의 모험이 어떤 모습으로 어떤 ‘보물섬’을 만날 수 있을지 지켜보는 것은 흥미진진한 일이다.



취재:?"민노 슬로우뉴스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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