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해주로 가는 여행길은 여느 외국에 가는 기분과 달랐다. 우리의 옛 땅에 간다는 사실이 가벼운 흥분을 가져다주는 것 같았다.

한반도 바로 위 동해연안에 자리 잡은 연해주는 지리적으로나 역사적으로 한민족의 오랜 활동지역이다. 연해주가 다른 나라의 영토가 된 것은 오래 전의 일이지만 국가의 경계가 엄중해진 근대까지 비교적 자유롭게 이 지역을 오가며 활동할 수 있었다.

중국 영토에서 러시아 영토로 귀속된 것은 북경조약이 체결된 1860년의 일이다.
고분질(주로 함경도지역 사람들이 농기에 연해주로 건너가 작물을 재배하여 내다 파는 일종의 계절사업)을 하다가 눌러 앉거나 조선말기 팍팍한 생활고를 피해 새로운 삶을 찾아 나서면서 연해주 이민자는 특히 일제기 독립운동의 거점이 되면서 크게 증가하여 1930년대 그 수가 거의 20여만 명에 이르게 된다.

러시아말로 ‘까레이스키’.
이렇게 연해주에는 코리안이지만 코리안과 구별되는 ‘고려인’이라는 또 하나의 한민족이 형성된다. 고려인이 주목 받는 이유는 역사상 유래가 드문 기구한 운명 때문이다.

1937년 이들에게 예기치 않은 비운이 들이닥친다.


스탈린의 강제이주정책으로 밑도 끝도 없이 아무 연고도 없는 중앙아시아로 떨궈지게 되는 것이다. 강제이주 과정에서 2만 여명이 사망했다고 하니 얼마나 혹독하고 고통스런 과정이었을까.?하지만 수많은 역경을 이겨낸 한민족답게 이들은 강인하고 끈덕지게 새로운 삶의 터전을 일구었고 안정을 찾아 나갔다.
그럭저럭 자리를 잡았을까. 또 하나의 비운이 기다리고 있었다.

1991년 소비에트의 해체는 이들의 삶을 위기로 몰아넣는다.
분리 독립된 신생국가는 이민족이 살아가기에 어려운 환경으로 바뀌었다.
일예로 러시아어에서 해당 민족의 언어로 나라의 말이 바뀌면서 공무원 시험은 물론 모든 행정문서와 소통수단이 바뀌게 되었다. 그곳에 살고 있었지만 하루아침에 이민자와 같은 처지가 된 것이다. 경제가 어려워지면서 민족주의 분위기는 더욱 커져갔다.
이들은 점점 극단적인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으로 몰리게 된다.
그곳에서 외부인으로 남아 있거나 새로운 삶터를 찾아 또 다시 나서거나.

조선말기와 일제강점기 조국과 생이별을 하고 미처 생활의 뿌리를 내리기도 전에 척박한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어 숱한 생존의 고비를 넘어야 했던 이들은 1990년대 소비에트가 해체되면서 민족주의에 외면당하고 그 먼 외지에서 오갈 데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기구한 운명이란 말인가.

그러나 이들에게 작은 희망이 생겼다.
1990년대 후반 고려인들의 사정이 알려지면서 우리민족 간에 돕기 운동이 시작된다.
연해주 우스리스크 시에 우정마을이 조성되고 그 옆에 고향마을이 새로 만들어 지면서 이제 이들에게는 돌아갈 곳이 생긴 것이다.
이글이 작성되는 지금도 중앙아시아에서 고려인들은 하나 둘씩 연해주로 이주하고 있다.
젊은이들과 후손들의 미래를 찾아주고자 강제이주 2세, 3세인 부모들이 자신이 태어난 곳을 등지고 동쪽 끝 선대의 고향에서 다시 시작하는 어려운 결정을 마다하지 않고 있다.
현재까지 이주한 고려인은 약 4만 여명, 이주 수요가 줄잡아 20만에 이른다고 하니 고려인의 역사적인 대이동은 아직 시작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고려인들의 귀향과 정착을 돕는 동북아평화기금이라는 단체는 귀향한 고려인들의 일자리를 마련하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콩 농장을 2005년부터 운영하기 시작했다.


콩 농장을 선택한 이유는 원래 이지역이 콩이 원산지이며 광활한 자연을 유지하고 있는 청정지역이기 때문이다. 두만강이 ‘콩이 가득 차 흐르는 강’이라는 의미라는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콩을 원료로 현지에 작은 공장을 만들고 메주며 된장이며 만들어서 국내에 들여와 팔기 시작한지 근 8년에 이른다.
앞으로 이주해올 고려인들을 생각하면 더 많은 일거리와 일자리가 필요한데 사업의 진전은 더디기만 하다.


블라디보스톡에서 보는 하늘과 주변 풍광은 내가 사는 곳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다만 7월 초의 날씨 치고는 무덥지 않아 위도의 차이를 다소나마 느끼게 했다.
기다리고 있던 차량에 올라탔다.?6인승 화물차량인데 꽤나 오래된 낡은 트럭이었다. 농장의 형편을 웅변해 주는 듯 했다.

50대 중반으로 보이는 기사 분은 농장에서 일하시는 고려인으로 운송 업무를 맡고 계신다고 한다. 이 나라에서는 차를 아무나 운전할 수 없고 지정 운전자만 운전할 수 있다는 말에 다소 생소함을 느끼며 사회주의 시대의 유산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하는 사이 차량은 벌써 공항을 나와 우스리스크 시로 향하는 도로에 올랐다.

이튿날 일찍 고려인 마을로 향했다.

시골 도시라 할 만한 우스리스크 시 중심에서 30여분 떨어진 외곽의 고려인 마을은 들이 넓은 것을 빼고는 우리의 시골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우정마을은 30~40채의 깨끗하게 차려진 집들이 계획된 전원주택 단지처럼 단정하게 자리하고 있었고 그 초입에 게스트하우스가 있었다.
4명의 작은 방문단을 맞이해 준 사람은 의외로 현지 자원봉사를 하고 있던 한국 대학생 김영석군과 이진희양 두 명이었다.
경희대 러시아과에 재학 중인 학생들은 벌써 2달 가까운 기간을 이곳동안 한국어학당에서 이곳 아이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치고 방문객들은 안내하는 일을 한다고 했다.


수년간 경희대는 학생들의 단체 해외봉사를 이곳에서 하고 있기에 작년에 이곳에 올 기회가 있었고 올해는 개인자격으로 장기 봉사활동을 한다고 했다.
전공이 러시아어라 도움도 되고 앞으로 하고자 하는 꿈이 국제NGO 활동이어서 자신들에게는 더없이 좋은 곳이라고 했다.
이런 청년들이 있어 우리 사회의 미래는 밝겠구나 하는 생각을 갖고 학생들과 함께 고향마을로 이동했다.

고향마을은 우정마을에 이어 두 번째로 조성되는 고려인 마을이다.
우정마을에 비해서는 20여 가구로 아직 수가 적고 마을 정비도 들 되어 있었다. 집의 외관도 크게 차이가 났다. 외부지원이 줄어들면서 계획단지는 고사하고 새집을 지어주기는커녕 급한 대로 빈 양계장이나 창고를 손봐서 거주하다가 개별적으로 형편에 맞춰 집을 새로 지어 거처를 옮긴다고 했다. 그 말을 듣고서야 임시거처와 새로 건축한 집의 차이가 눈에 들어왔다.
새집이라고 해도 관심과 지원이 활발할 당시에 조성된 우정마을의 집과는 비교가 안 되는 회벽돌 집이었다.


마을회장님의 집에서 조촐한 간담회를 가졌다.
대여섯 명의 마을 분들과 차를 마시며 그 분들의 경험을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자리에 오신 분들이 대부분 60대임에도 불구하고 의외로 우리말 잘하지 못했다.
중앙아시아로 이주한 이후 녹녹하지 못한 생활 탓에 가정에서도 고려인 사회에서도 의식적인 우리말 교육이 전무했다고 한다. 부모님들의 대화중에 간간히 들은 것이 전부여서 이곳에 이주한 이후 학습을 통해 우리말 실력을 늘리고 있다고 한다. 그나마 우리말을 듣고 자란 2세대에 해당하는 얘기다. 젊은이들은 거의 우리말을 하지 못한다. 소비에트의 소수민족 정책은 중국과 달리 고려인 학교나 소수민족 정체성을 살리는 문화적 배려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한지역의 민족을 연고도 없는 수만리 외지에 옮겨 놓는 발상을 할 만큼 문명적인 감각이 결여된 시대 아니었던가.

대다수 귀향을 하는 고려인들은 아이들의 미래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하지만 고려인 마을이 농촌이고 전망 있는 일자리가 부족한 만큼 젊은이들은 가깝게는 우수리스크나 블라디보스톡에서 또는 한국으로 일자리를 찾아 가는 것이 불가피하다고 한다.

도시로 일자리가 편중돼 가는 것은 한국이나 러시아나 산업화의 추세겠지만 하루 빨리 어느 정도의 지역경제가 형성되어야 가족이 함께 살아갈 조건과 환경이 만들어 지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도움이 필요한 일은 없냐고 여쭸다.
다른 건 됐으니까 콩이나 많이 팔아달라고들 하신다.
우리 방문단 일행이 연해주 고려인 농장의 유기농콩을 국내로 들여와 유기농두유를 만든다는 소식이 벌써 전해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만큼 농장이 활발해 지는 것은 지역경제 형성을 위해서 절박한 문제이기 때문이리라. 아쉬운 간담회를 마치고 콩 농장을 보러 갔다.


고작 싹이 트는 단계여서 아쉬웠지만 농장은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넓었다. 지금은 다소 위축되어 생산량을 줄였지만 여의도 면적의 수배에 달하는 재배면적에서 콩을 생산할 수 있다고 하니 자급률이 저조한 두류의 조달을 이곳을 통해 많이 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나라 곡물의 자급률이 낮은 것인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 두류는 6% 남짓으로 거의 최악으로 낮은 편이다. 아마도 쌀 일변도의 증산정책으로 인해 소외당한 탓도 있겠지만 대부분 가공을 통해 섭취하는 콩의 가공업이 대규모 기업화 되고 생활소비 물가를 안정시키기위한 정부의 정책과 맞물려 싼 가격의 수입 산으로 수요가 만들어진 이유로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된 탓도 클 것이다.
국내생산을 권장하고 국내산을 선호하는 것이 우선하는 바람이지만 여러 가지 원인이 중첩되어 한 번 꺾인 산업구조를 웬만해서 역전시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오히려 교역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출발로 전략적인 곡물 조달방안을 찾아본다고 할 때 광활한 연해주의 자연과 고려인은 어쩌면 좋은 대안이 될 수 있겠다 싶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온 우리에게는 작은 연회가 기다리고 있었다.
숯불에 익힌 샤슬락이라는 러시아식 양고기 꼬치구이와 보드카 몇 병을 가운데 두고 간담회에 참석하신 분들과 일을 마치고 귀가하신 몇몇 분을 추가하여 대략 20여분이 함께였다.
연회를 통해 그분들이 영락없이 한민족이라는 사실을 나는 다시금 확실히 깨달았다.
노래와 춤이 오고 간 연회는 모처럼 나를 과음하게 했고 즐거운 추억을 얻었다. 보다 정확히 말하면 우리를 환대해준 고려인들이 선사한 감동적인 추억과 의미 있는 체험이었다.

다음날. 방문단끼리 자리 한 마지막 귀국전야는 두유의 성공적 론칭을 다짐하는 흡사 결의대회장 같았다. 발해 역사의 한 가운데서 고려인의 귀환 현장을 보고 환대를 받은 모두는 저마다의 감동을 바탕으로 적지 않게 고무된 상태였다. 그날의 분위기로만 본다면 연해주 유기농두유의 대박은 기정사실일 것만 같았다.

이번 연해주 방문은 내가 동북아 한가운데 서 있는 역사적 존재임을 인식시켰다. 또한 나의 유대의 범위를 동북아 한민족 전체로 확장시켰다. 여행 전 뭔가 모를 흥분을 느꼈던 것은 나의 인식의 커다란 변화를 예고한 것은 아니었는지. 그렇게 고려인과의 인연은 나를 한 뼘 성장시켰다.

그래도 올해는 농장을 활성화 시키는데 대한 기대와 걱정이 부쩍 늘었다.

올해부터는 몇 년 전 농수식품부로부터 유기농 생산인증을 받은 유기농콩을 국내로 들여와 더욱 다양하고 품질 좋은 가공제품을 국내 생산시설에서 만들어 판매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제품이 잘 팔리면 농장이 활성화되어 일자리가 늘어나는 직접적 효과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하나의 성공모델이 만들어 짊으로써 더 많은 영역의 활발한 교역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가능성과 희망을 얻는 것이다.

올해 10월 고려인 정착을 지원하는 사회적기업 바리의꿈과 사회적기업 유통을 지원하는 소셜비즈니스 플랫폼 이로운넷이 손잡고 연해주 유기농두유를 만들어 시판에 들어간다.
유기농콩을 원물상태로 만드는 두유는 국내 최초이기도 하거니와 저렴하게 유기농두유를 만들 수 있어 모두가 부담 없이 건강한 식품을 이용하는 페어푸드 정신에 부합하기도 한다.
더욱이 자급률이 저조한 곡물을 동포들과 해외영농사업 방식으로 조달하는 것은 식량자원이 전략화 되어가는 이 시대에 의미 있는 시사점을 준다고 여겨진다.


두유 시장은 약 4,000억 원 이상이라 한다. 그 만큼 국민들이 애용하는 음료중 하나이다.
연해주 유기농두유가 많이 판매되어 농장이 활성화 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많은 국민들에게 고려인 상황을 알리고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기회를 만들 수 있다면 연해주 유기농두유의 탄생은 제품 그 이상의 의의를 가지는 것이리라.



유기농두유를 필두로 된장과 간장 물론 다양한 유기농 콩가공품을 국민들의 식탁에 올릴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 또한 가능한 한 국내산 콩의 증산과 친환경화를 촉진하는데 기여함으로써 GMO가 우려되는 저가 수입 콩의 무분별한 사용에 많은 산업관계자들의 협력과 지혜를 모아 대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상품이상의 상품. 사회적 문제해결을 바라고 사회적기업에 참여하는 많은 이들의 소망이 연해주 유기농두유를 통해 한껏 펼쳐져 보였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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