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융'이란 말의 이미지는 차갑다. 종종 '약탈적'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에 인간의 체온을 불어 넣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금융기관들이다. 특히 미국의 대형재단 등 비영리단체들은 기부에 투자, 융자 등 금융 기법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 창출에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있다. 사회적기업 이로운넷의 에디터들이 다녀온 미국 사회적 금융 현장을 머니투데이가 3편에 거쳐 소개한다.

#1.? 4명의 자녀를 둔 케냐의 농부 제임스 마스히다는 5년여 전 주후디 킬리모(Juhudi Kilimo)라는 사회적단체를 통해 ‘소 한 마리’를 살 수 있는 자금을 대출 받았다. 그러나 제임스가 사들인 소 한 마리는 조금 특별했다. 케냐의 보통 소들과 비교해 ‘5배 정도 높은 번식력을 지닌’ 품종이었던 것이다. 이 소를 키우며 더 많은 우유를 생산하고 더 많은 소를 키울 수 있게 된 제임스는 지난해인 2012년 키우는 소가 20마리를 넘어서며 가족들과 안정적이고 풍족한 삶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주후디 킬리모가 제임스와 같은 케냐 농부들에게 꾸준히 자금을 지원할 수 있는 데는 바로 록펠러재단의 ‘투자’가 지속적으로 뒷받침되기에 가능한 일이다.

#2. 록펠러재단은 최근에도 멕시코의 SME(The small and medium sized Enterperises)기업들에 투자를 진행했다. 실제로 멕시코는 SME 사업의 활성화를 통해 2011년까지 전체 GDP의 35%를 SME사업에서 창출할 정도로 경제적 효과를 증명했다. 이와 함께 일자리 창출에서도 큰 성과를 얻은 것으로 나타나며 멕시코 정부에서도 적극적으로 SME활성화 정책에 나서고 있는 중이다. 록펠러재단은 자기자본투자(Equity) 펀드를 판매해 투자금을 조달, 그 액수만 하더라도 모두 200만달러(우리돈 약21억원)에 달한다.

현재 록펠러 재단에서 진행하고 있는 사회적 투자의 대표적인 사례들이다. 록펠러재단은 1990년대 초반부터 프로그램연계투자(이하 PRI. Program related investment)를 시작하는 등 다양한 사회적 금융 투자 모델 개발하며 임팩트투자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

록펠러재단의 프로그램연계투자(PRI)를 통해 성장한 아프리카 케냐의 한 농가. 록펠러재단 제공

우리는 PRI투자를 통해 수익을 얻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비영리기구 자본조달 '촉매제' PRI 투자

록펠러재단에서 PRI팀을 이끌고 있는 브린다 간굴리?팀장이 인터뷰 중 가장 많이 강조한 말이다. 우리에게는 아직 생소하기만 한 PRI는 쉽게 말해 재단이나 비영리기관 본래의 목적사업, 즉 아동이나 빈곤, 성적소수자, 홈리스 등의 ‘사회적 활동’에 투자를 진행하는 것을 말한다. 수익률보다는 사회적 성과에 최우선 기준을 두는 투자인 셈이다.

PRI팀의 이갈 커젠하움 애널리스트는 “현재 록펠러재단은 미국의 여느 민간독립재단처럼 직접 사업을 진행하기보다는 주로 중간조직을 통해서 사업을 수행하고 있다”며 “중간조직은 증권(Equity)이나 대출(Debt) 또는 지급보증(Guarantee)의 형태로 사회적기업들에 자금을 조달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브린다 팀장은 “최근에도 미국 내 한 사회적 기업에 투자해 몸이 불편한 장애 학생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이들이 편리하게 활용할 수 있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한 사례가 있다”며 “PRI는 비영리 단체나 기구가 자본조달을 가능케 하는 촉매제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PRI투자는 미국 내뿐 아니라 해외에서도 글로벌하게 진행되고 있다.

록펠러재단이 PRI투자를 위해 펀드를 설정하는 방식은 다양하다. 프로젝트 당 평균 200만(우리돈 약21억원)에서 500만 달러(우리돈 약 53억원)를 투자하며, 연평균 총 3500만 달러(우리돈 약 375억원)의 투자금이 PRI에 쓰여지고 있다. 위의 사례처럼 미국 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투자가 이뤄지고 있다.

◆ ‘디딤돌’ 자처하는 록펠러 재단

록펠러 재단은 PRI뿐 아니라 최근 주목받고 있는 사회성과연계채권(이하 SIB. Social Impact Bond) 모델을 개발하는 데도 적극적으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SIB 업무를 맡고 있는 레하나 나투 애널리스트는 “록펠러재단의 경우 지난 2009년부터 SIB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는데 당시에 1000만 달러(우리돈 약 107억원)에 육박하는 예산을 따로 책정했다”며 “실제로 2012년까지 임팩트 투자 시장의 기반 조성을 위해서만 총 4000만 달러(우리돈 약 428억원)를 지출했다”고 밝혔다.

레하나 나투 애널리스트 뉴욕=이형기 에디터
그는 이어 “특히 록펠러 재단은 SIB와 같은 프로그램을 통해 임팩트 투자를 수행하는 것뿐 아니라 투자 대상을 발굴하고 개발하는 데도 매우 중요한 비중을 두고 있다”고 말한다. 그간의 경험에 비추어 봤을 때 재단이 직접 관여해 투자할 프로젝트를 일일이 찾아나서는 것보다, 임팩트 투자 거래가 일어날 수 있는 중간거래를 확보하는 것이 보다 효율적일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이 지점에 록펠러 재단이 최근 PRI나 SIB와 같은 임팩트 투자 모델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서는 궁극적인 목표가 숨어있다. PRI팀의 이갈 애널리스트는 “우리는 민간자본 보다는 더 낮은 시장 수익률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골드먼삭스나 바클레이스와 같은 민간투자기관들과는 조금 다른 투자 포지션을 취할 수 있다”며 “임팩트 투자 시장에서 이들 민간투자자들과 경쟁적인 관계를 형성하기 보다는 이들을 임팩트 투자 시장으로 끌어내기 위한 디딤돌 역할을 하고자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말하자면 록펠러 재단은 임팩트 투자 시장의 기반을 조성할 수 있는 중간조직에게 투자함으로써 상대적으로 높은 위험부담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다른 민간기관들이 임팩트 투자에 보다 쉽게 참여하도록 한다는 것이다. 재단이 일종의 보험 역할을 수행하는 셈이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중요한 투자 원칙이 있다. PRI와 같은 임팩트 투자가 재무 수익률을 추구하는 것이 아닌 만큼 수익률 기준을 따로 세워놓고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소한의 원금 회수는 이뤄져야 하는 것이 기본적인 원칙이라는 얘기다.

레하나 애널리스트는 “실제로도 록펠러 재단에서 수행한 대부분의 PRI 투자의 경우에 원금 회수 이상의 수익률을 가져온 경우가 많았다”며 “그래야만 PRI와 같은 투자가 지속할 수 있고 우리가 궁극적으로 바라는 것처럼 임팩트 시장이 커지는 것 역시 가능하다”고 거듭 강조하며 말을 맺었다.

<메모>

PRI(Program-Related Investment)= 교육, 빈곤퇴치 등 당장의 수익률 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잠재력에 투자하는 펀드. 펀드를 설정하는 방식은 다양하며, 투자는 크게 대출(Debt)과 증권(Equity) 두 가지로 형태로 나뉘어진다.

SIB(Social Impact Bond)= 정부예산과 민간자본간의 1:1 매칭을 통해 사회서비스에 투자하는 채권. 사회적 기업의 성과에 연계해 수익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pay for success(성과급지불방식)라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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