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금융’이란 말의 이미지는 차갑다. 종종 '약탈적'이란 수식어가 붙기도 한다. 그러나 금융에 인간의 체온을 불어 넣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다. 사회적 금융기관들이다. 특히 미국의 대형재단 등 비영리단체들은 기부에 투자, 융자 등 금융 기법을 활용해 사회적 가치 창출에 레버리지를 일으키고 있다. 사회적기업 이로운넷의 에디터들이 다녀온 미국 사회적 금융 현장을 머니투데이가 3편에 거쳐 소개한다.

#1. 목축지대로 유명한 남아메리카 콜롬비아 남서부에 위치한 작은 마을 포파얀. 이곳의 23살 여성 농부 네스터는 얼마 전 생애 처음으로 대출을 받았다. 깊은 계곡에 둘러싸인 마을에서 평생을 살아온 네스터는 금융거래 기록이 없기 때문에 원래는 소액이라도 대출 받을 수 없는 처지였다. 그런 그가 받은 대출자금의 출처를 거슬러 올라가면 캘버트 재단(Calvert Foundation)이있다. 캘버트 재단은 지난해 윈윈 포트폴리오(Win-Win women investing in women initiative)라는 채권 발행으로 자금을 조달해 이를 네스터와 같은 빈곤국 여성들에게 대출하는 마이크로크레디트 즉 무담보 소액대출 프로그램에 공급했다.

#2. 최근 미국 뉴욕의 한 교도소가 발칵 뒤집어졌다. 수감생들에게 ‘교도소를 탈출하는 방법(how to escape your prison)’이라는 제목의 작은 책자가 배포된 것이다. 마치 ‘탈옥법’을 가르쳐주는 듯한 이 책의 정체는 ‘교도소에 다시 돌아오지 않는 법’을 가르쳐주는 수감자 교육용 교재. 이 책자의 제작에 든 자금은 사회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를 발행해 조달됐다. 아울러 교도소 수감자들의 사회적응력을 높여 재범률을 낮추는 데에 기여하는 비영리기구인 오스본 협회(osborne association)는 3년 간 안정적인 프로그램 운영자금을 확보할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 '보릿고개' 메우는, 금융의 진화

사회 복지, 사회 사업으로 흘러 들어가는 돈이 진화하고 있다. 한번 들어가면 소진되는 ‘기부금’의 차원을 넘어서서, 들어간 돈을 돌려 더 큰 가치를 창출하게 만드는 ‘금융’ 혹은 ‘투자’의 형태가 발전하고 있다. 채권이나 펀드 형태의 금융 상품까지 나오고 있다.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지속성을 동시에 추구하는 이러한 금융 행위는 ‘사회적 금융(Social Finance)’, 그중 투자 행위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라 불리면서 최근 약탈적 금융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렇다면 차갑기만 하던 금융 시장이 ‘더 높은 수익률’ 보다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는 데 눈을 돌리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미국 캘버트 재단의 이송배 대출사업팀장는 “지원사업의 지속성을 높이고 지원기간을 더 장기화할 수 있다”고 답했다. 한인 2세인 이 팀장은 “윈윈 프로젝트의 경우 일회성에 생색내기 이벤트에 그치기 쉬운 기부와 달리 자본금 유출입 등 정확한 평가지표를 바탕으로 투자가 이뤄지기 때문에 투자자와 투자대상 모두 안정적인 거래를 지속할 수 있다”며 “이를 통해 더 많은 투자자를 임팩트투자로 이끌어내는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전했다.

<사진설명>캘버트 재단의 WIN-WIN 포트폴리오 출처=캘버트 재단 홈페이지

금융시장에서 임팩트 투자 상품의 진화를 이끌고 있는 진영은 금융회사 같은 영리회사가 아니라 재단 등 비영리법인들이다. 특히 록펠러재단 등 미국 대형재단들은 사회적 금융을 위한 종잣돈뿐 아니라, SIB 등 임팩트 투자의 기반을 조성하는 연구프로젝트나 평가도구를 개발하는 데에도 자금을 대고 있다.

미국 캘버트자산운용이 주도해 설립한 캘버트 재단 등 금융 전문 비영리단체들은 지역투자채권(CIN, Community Investment Note) 등 기부와 투자를 결합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발행하는 데에 앞장서고 있다. 미국 비영리기금펀드(NFF. Nonprofit Finance Fund)는 민간 은행의 자금을 투자 받아 공공서비스제공기관들에 자금을 대출해주는 방식으로 사회적기업과 비영리단체에 기부자금이 아닌 융자자금을 조달해주고 있다.

◆임팩트투자, 복지로 손을 뻗다

사회적 금융은 최근 세계 금융위기 후 만성적인 재정 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각국 정부와 재원 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사회복지 진영의 이목을 끌고 있다. 정부에서 채워주지 못하는 사회적 기업들의 틈새를 임팩트투자를 통한 민간자본이 메워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영국 피터버러 시에서 발행해 교도소 수감률을 50%??이상 낮추는 놀라운 성과를 나타내며 주목 받기 시작한 사회성과연계채권(SIB, Social Impact Bond)이다. 유럽뿐 아니라 미국에서만 하더라도 지난 9월 새롭게 SIB를 도입한 미시건 주를 포함해 모두 8개 지역에서 적용하고 있을 만큼 관심이 높다.

<사진설명> 오스본협회에서 수감생들을 대상으로 교육을 진행 중이다. 뉴욕=이형기 에디터

?지난해 9월 론칭한 뉴욕 SIB 프로그램에 중간기관으로 참여하고 있는 MDRC의 데이비드 버틀러 부사장은 SIB의 구조에 대해 “투자자들은 특정 사회서비스 프로그램에 자금을 공급하고, 비영리단체는 그 자금을 바탕으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정부당국은 프로그램이 목표치에 달성할 경우 투자자들에게 보상을 약속하는 방식”이라고 소개했다. 뉴욕 SIB의 경우, 1년 뒤 재수감률 측정 결과 10%를 기준으로 그보다 재수감률의?감소폭이 늘어날수록 (최대 20%까지) 투자자가 수익금을 많이 받아가는 구조로 설계돼 있다.


그렇다면 뉴욕시와 같은 정부당국은 높은 수익금을 보장하면서까지 민간자본을 복지재원 투자에 끌어들이는 데 이토록 적극적인 이유는 무엇일까. 이는 최근 급증하고 있는 복지비용과 관련이 깊다. 데이비드 콘들리프 오스본협회 부사장 역시 “SIB는 최근 급증하는 복지비용에 기존 정부주도의 사회서비스정책이 더 이상 불가능할 수도 있다는 불안감에서 탄생한 모델”이라며 “작고 효율적인 정부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은가”라고 반문했다.

뉴욕에서 해마다 구치소에서 출소하는 뉴욕의 청소년 수감자는 대략 5만명 이상. 그런데 문제는 구치소 생활을 통해 또 다른 범죄를 학습하고 출소 후 다시 범죄를 저지르는 청소년이 늘어나면서, 정부가 부담하는 관리 비용 또한 늘고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오스본처럼 재범률을 낮추는 사회 서비스 기관을 통해 청소년의 재수감률을 낮추면 장기적으로 뉴욕시는 교도소 관리 비용을 절감할 수 있다.

버틀러 부사장은 “뉴욕 SIB의 경우 수감자 한 사람당 연간 8만5000달러(약 9000만원)가량의 비용 절감 효과가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며 “뉴욕뿐 아니라 미국과 유럽 등 다양한 지역에서 활발하게 SIB모델이 시도되고 있는 만큼 향후 점점 더 넓은 복지 분야에 SIB모델이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망했다.

SIB 등 새로운 사회적 금융 기법은 건강 등 다른 복지 분야에서도 새로운 자금 조달의 길을 트는 대안으로 주목 받고 있다. 컬럼비아 경영대 초빙 교수겸 비영리기금펀드의 안토니 레빈?대표는 “최근 미국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정부가 건강복지 부문에 많은 예산을 편성하고, 상대적으로 관련이 없는 사회서비스 제공기관들은 지원금이 급격히 줄어든 상황”이라며 “미국 내 많은 비영리단체들이 정부로부터 지원을 받아 서비스를 제공하는데, 그러다보니 정부의 예산 정책에 따라 지원금을 안정적으로 확보하지 못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라고 말했다.

사회적 금융은 이러한 비영리단체들이 독자적으로 자금을 확보해 사업의 지속성을 높이는 데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메모>

CDFI(Community Development Finance Institute)= 낙후된 지역의 개발을 위해 저리로 자금을 대출해주거나 투자하는 지역금융서비스. 지역개발은행, 신협, 사회적벤처캐피털, 비영리단체 등 다양한 기관이 미국 정부의 인증을 받아 활동하고 있다.

PRI(Program-Related Investment)= 교육, 빈곤퇴치 등 당장의 수익률 보다는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잠재력에 투자하는 펀드. 펀드를 설정하는 방식은 다양하며, 투자는 크게 대출(Debt)과 증권(Equity) 두 가지로 형태로 나뉘어진다.

SIB(Social Impact Bond)= 정부예산과 민간자본간의 1:1 매칭을 통해 사회서비스에 투자하는 채권. 사회적 기업의 성과에 연계해 수익금을 지불하는 방식이다. pay for success(성과급지불방식)라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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