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과대학으로 유명한 미국 WPI대학의 1학년 학생이 듣는 인기 수업, ?'중대한 문제 세미나'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프로젝트 중심 수업
세계 기아나 물부족, 환경오염 등 인류에게 중대한 문제 다뤄
지구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도 결국 그 해결책은 ‘거창하고 위대한 기술’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작은 행동’
레이첼의 테이블은 매년 30만 파운드의 음식을 모아 40여곳의 그룹홈과 무상급식센터에 지원한다. 사진 : 레이첼의 테이블 사이트 (http://www.rachelstable.org/)
#1. 레이첼의 테이블(Rachel's Table)은 미국 매사추세츠주 우스터 지역에 위치한 레스토랑이다. 그러나 평범한 레스토랑은 아니다. 레이첼의 테이블은 1992년부터 매사추세츠와 우스터 지역의 그룹홈과 무상급식 센터를 비롯해 40곳이 넘는 기관을 통해 배고픈 사람들에게 식량을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최근 들어 고민이 생겼다. 매사추세츠 지역에서 식품 기부를 필요로 하는 기관과 사람들이 너무나 급속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이다. 슈퍼마켓 등으로부터 받은 식료품 기부를 최대로 끌어내는 것이 필요했지만, 해결책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이같은 레이첼의 테이블에 구원투수가 되어 준 이들이 있었으니, 다름아닌 WPI(우스터폴리테크닉)대학의 1학년 학생 5명이었다.

GPS(Great problems seminar) 과정을 수강 중인 이 5명의 학생은 세계 기아 문제에 관심을 갖던 중 레이첼의 테이블 프로젝트에 뛰어들게 됐다. 레이첼의 테이블과 함께 문제점을 파악하고 더 많은 기부를 유도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한 끝에 이들이 내놓은 해결책은 이랬다. 먼저, 기부에 참여한 슈퍼마켓에 ‘레이첼의 테이블’을 상징하는 홍보 스티커를 전시할 수 있도록 했다. 고객들이 자연스레 홍보물을 보고 ‘레이첼의 테이블에 참여하는 슈퍼마켓’임을 알 수 있도록 함으로써 슈퍼마켓의 이미지를 제고하는 효과를 얻도록 한 것이다.

이와 함께 고객들이 원할 경우 슈퍼마켓을 거치지 않더라도 1:1로 레이첼의 테이블에 식품이나 기부금, 또는 자원봉사를 할 수 있도록 등록서를 가게 한 켠에 배치하는 것을 제안했다. 지난 2012년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5명의 학생들은 직접 슈퍼마켓을 돌아다니며 프리젠테이션을 하는 등 주체적으로 문제 해결을 위해 뛰어다녔다. 칼라 지만스키(Carla Szymanski) 레이첼의 테이블 대표 이사는 “아직은 초창기 단계여서 학생들과 함께 일한 효과를 말하긴 힘들지만 많은 슈퍼마켓 업체들이 관심을 표하고 있다”며 “무엇보다 학생들의 열정적이고 진지한 자세에 함께 일하는 것이 즐거웠다”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WPI의 중대한 문제 세미나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 사진 : WPI 홈페이지 (http://www.wpi.edu/news/20123/gpsrel.html)

#2. GPS(Great problems seminar). 이 5명의 학생이 수강한 과정은 현재 WPI대학이 1학년 학생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특별 수업 중 하나다. 굳이 한국말로 해석을 하자면 ‘중대한 문제 세미나’쯤 될 것이다. 문제를 탐구하는 과목이라. 그것도 사소한 문제가 아니라 ‘세계기아’나 ‘물 부족’ ‘전력 부족’과 같은 지구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을 탐구하는 수업이다. 이제 갓 대학생이 된 1학년 학생들에게 이 같은 수업을 마련한 이유가 무엇일까.


미국에서도 명문 사립대학으로 손꼽히는 WPI(우스터 폴리테크닉 대학)은 특히 공과대학 분야가 유명하다. 특히 학생들에게 이론적인 과학 기술을 익히는 데만 목적을 두는 것이 아니라 ‘이를 실생활과 연결시키고 접목시킬 수 있는 교육’ 과정으로 명성을 얻고 있다. 이를 위해 WPI에서 시행하는 차별화된 교육 방법이 바로 ‘프로젝트 중심’의 수업이다. 학년마다 1학기에서 2학기 동안 학생들이 하나의 프로젝트를 통해 다양한 학문을 탐구하고 이를 적용시킬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2007년 처음 도입된 GPS과정은 1학년 학생들이 대학 과정 내내 프로젝트를 수행하기 위한 ‘기본기’를 닦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그런 만큼 문제점을 찾고 해결책을 찾아나가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기간인 셈이다. 초창기 단 2개의 클래스로 시작한 이 GPS과정은 지난 2012년 이미 8개 수업을 넘어설 만큼 많은 학생들의 성원을 얻고 있다. 첫해에는 ‘세계 기아’와 ‘물 부족’ 단 두 개의 이슈로 시작했던 이 수업은 현재 다루고 있는 주제만 하더라도 6개 정도로 폭이 넓어졌으며, 50개가 넘는 프로젝트팀이 이 과정을 통해 다양한 주제를 연구 중이다.

그렇다면 학생들은 GPS 과정을 수강하며 어떻게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연구하도록 하는 걸까. 핵심은 ‘끊임없는 토론’이다. 학생들은 1학기 내내 ‘단 하나의 프로젝트’에 집중하도록 돼 있기 때문에, 프로젝트를 시작하면서부터 마지막까지 ‘현재 어떤 어려움을 겪고 있으며’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자신들이 연구해 온 자료를 공유하며 수시로 토론을 진행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지도교수는 조력자의 역할에 충실하며, 문제를 찾아나가고 해결해가는 과정 모두를 학생들이 주체적으로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돕는다. 때로는 외부 강사를 초빙해 학생들이 미처 깨닫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습득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도 한다.

WPI의 중대한 문제 세미나 홈페이지. (http://www.wpi.edu/academics/firstyear/gps.html)
효과는 어떨까. 팀원들과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과정 중에서 학생들은 자연스럽게 자신의 의견을 조리있고 분명하게 표현하는 프리젠테이션 능력을 키울 수 있는 것은 물론, 한 팀으로서 동료들과 ‘함께 일하는 기술’을 익히게 된다. 테이블 팀에 참가했던 환경공학 전공의 카이자 로이(Kaija Roy) 씨는 “팀에서 일해 본 적이 없었기에 처음에는 팀원들 각자의 개성과 강점을 알아차리는 데 힘들었지만, 나중에는 정말 한 팀처럼 움직이기 시작했다”며 높은 만족감을 드러냈다.

실제 WPI는 5년여간 GPS에 참가했던 학생들을 분석한 결과 양적인 면에서 만큼은 의미있는 결과가 나왔다고 밝혔다. GPS 참가 학생들은 작업을 진행하고 의견을 조율하는 과정에서 각자의 의견을 훨씬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방어하는 경향을 나타낸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이 학생들의 경우 우리 시대의 사회적 문제와 과학 기술을 연결시키는 작업에 훨씬 더 참여도가 훨씬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현재 GPS 과정을 맡고 있는 크리스틴 웨버(Kristin Wobbe)주임 교수는 “졸업생들 대다수가 그들의 성공을 GPS의 덕으로 돌리는 경우도 적지 않다”며 “학문적 탐구가 아니라 실질적인 우리 일상생활의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여기 저기에 흩어져 있는 다양한 정보를 취합해 연결하고 의미를 분석해내는 능력이 앞서는 경우가 많았다”고 밝혔다.

GPS 과정에서 더욱 눈여겨 봐야 할 부분은 따로 있다. 1학기 동안 장기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끊임없이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문제를 찾게 되는 능력’을 키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가치는 따로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모든 과정을 통해 학생들이 얻게 되는 ‘성취감’이다. 우리가 위기 상황에서 ‘문제를 명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한 이유는 ‘해결책을 찾기 위한’ 과정 중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갓 대학에 입학한 1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수업임에도 GPS 과정이 굳이 ‘중대한 문제’ 즉, 세계 기아나 물부족, 환경오염 등을 다루는 것 또한 이와 같은 맥락이다. 이처럼 지구촌을 위협하는 심각한 문제들도, 결국 그 해결책은 ‘거창하고 위대한 기술’이 아니라 ‘사소하지만 작은 행동’이 더 필요하다는 것이다.

크리스틴 웨버(Kristin Wobbe) 교수는 “GPS는 학생들이 세계적으로 주요하고 심각한 문제의 근간을 이해하고, 동시에 매우 작은 발걸음이 큰 차이를 만들 수도 있다는 걸 알려주기 위한 과정으로 구성돼 있다”고 말한다. 아주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더라도, 프로젝트를 수행하며 이미 우리 학생들과 매우 가까운 곳에서 행해지고 있는 지역 공동체를 위한 작은 노력과 행동이 결과적으로 매우 의미있는 차이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체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세계 기아 문제를 연구하는 GPS 학생 5명이, 당장 가까운 우스터 지역의 단체인 ‘레이첼의 테이블’에서 직접 해결책을 찾아나선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작은 행동들이 모여 세계 기아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을 수 있는 경험. 이것이야말로 WPI가 GPS 과정을 수강하는 학생들에게 가르치고자 하는 ‘핵심’이라 할 수 있다.

크리스틴 웨버 교수는 “무엇보다 그들의 노력이 실제로 이 세상을 변화시켰다는 데 굉장한 만족감과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며 “그러한 경험이 학생들에게는 긍정적인 동력으로 작용하기 때문에 졸업 이후, 인생의 전반에 걸쳐서 더욱 적극적인 삶의 태도를 만들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강조했다.


Rachel's Table benefits from WPI Great Problems Semin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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