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현 과장은 광주 서구지역자활센터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상대를 대했다. 
박승현 과장은 광주 서구지역자활센터에서 8년째 일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내내 웃는 얼굴로 상대를 대했다. 

 

만나면 즐겁고 유쾌한 사람이 있다. 그 사람이 있으면 주변의 분위기가 밝아지고, 웃음소리가 커지고, 속상했던 기억들이 어느새 사라지게 하는 묘한 능력을 가진 사람이 있다. 이번에 만난 서구지역자활센터의 박승현 과장이 그런 사람이다.

박승현 과장과의 인터뷰 내내 올라간 입꼬리가 내려갈 줄 몰랐다. 때로는 박장대소를 하며 웃기도 하고 어떤 대목에서는 힘들었을 것 같은 기억에 위로해주고 싶기도 했다. 박승현 과장과의 즐거운 대화를 소개한다.

 

Q. 자신에 대한 소개를 부탁합니다

- 직장인들이 꿈꾸는 또 하나의 ‘사’자 돌림~ 사회복지사로 11년, 서구지역자활센터에서는 8년째 일하고 있는 박승현 과장입니다. 현재 서구자활에서는 자활근로사업단과 몇 개의 자활기업을 책임지고 일하고 있습니다.

 

Q. 지역자활센터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있다면?

- 제가 필요한 곳에 올바르고 효과적으로 쓰여지고 싶었습니다. 사회복지 업무를 시작한 곳은 노인복지 분야로 3년 7개월 정도 근무했습니다. 그곳에서 일하면서 늘 같은 패턴의 업무가 반복되는 것과 큰 의미가 있어보이지 않은 단순업무들 속에 나의 젊음을 낭비하고 있다는 생각이 컸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저는 저에 대한 믿음이 있었고 특별하게 잘난 것은 없지만 마음 먹은 것에 대해 다른 사람들에 대해 뒤처지지 않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좀더 다양한 사람들과 다양한 영역의 일에 도전해 보고 싶었습니다. 때마침 결혼을 앞두고 있어서 경제적인 위기가 있었던 시기이기도 했지만 그래도 내 인생에 대해 신중하게 고민하고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3번의 도전 끝에 성공한 서구지역자활센터에서 자활사업을 하면서 저에게는 새로운 도전이 가능한 업무였고 다양한 사업과 시도를 해볼 수 있는 기회가 되었고 결과적으로 볼 때 제가 많이 성장할 수 있는 기회의 시간이었습니다.

 

Q. 자활센터에서 벌써 8년째 한길을 걸으며 일할 수 있는 비결은 무엇인가요?

생각해보니까 시간이 참 많이 지나갔네요. 오랫동안 서구자활센터에서 한결같이 일할수 있는 비결이라고 하면 아무래도 ‘사람’ 인 것 같습니다. 저의 단점 중 하나는 변화를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 역시 저에게는 불편한 부분입니다. 익숙한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 그리고 함께 하는 사람들과 같이 변화하는 것이 가장 큰 비결같습니다.

 

Q. 자활센터에서 일하면서 가장 보람있었고 기억나는 일이 있다면?

서구지역자활센터에 입사하고 한달 정도 되었을 때 ‘자활사업안내’만 공부하고 있다가 갑자기 아파트 상주 청소하는 자활 참여주민들의 여름철 반찬을 보관해줄 냉장고 후원이 들어와서 갖다드려야 했는데 그당시 수동(스틱) 탑차 차량을 운전할 실무자가 없어서 제가 지원하게 되었습니다.

아파트에 도착해서 지하주차장 입구에 ‘2.2m 제한’이라는 표지판을 보고 계속 진행을 했습니다. 탑차는 일반적으로 2m였기 때문에 무난히 통과할거라 예상을 했고, 동승자도 '오라이~' 를 연신 외치며 진행을 했더랬습니다. 하지만 입구에 과속방지턱(공사하고 난 후 페인트칠을 하지 않은 상태)을 보지 못했습니다. 힘있게 패달을 밟았는데 갑자기 “ 터턱턱턱... 트트” 거친 소리와 함께 말그대로 빼도박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지고 말았습니다. 그 이후에는 주차, 출차하는 입주민들의 경적과 관리소장의 내방.... 결국 119를 불렀습니다. 10분 뒤에 도착한 경찰과 함께 장정 8명이 탑차를 밀어보고, 들어보고... 갖가지 방법을 다 동원해서 해결책을 찾아보다 결국 타이어 4곳의 바람을 다 빼고나서야 무사히 차를 통과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뒤로 관리소장님의 요청으로 생전 처음으로 시말서라는 것을 써보고 30분 동안 안전사고 대응에 대한 지침서도 읽어보고... 1시간 동안 1년에 흘릴 땀을 다 흘린 것 같았습니다. 무사히 냉장고 배달을 완료하고 “너무너무 감사해요. 이젠 우리도 남들처럼 시원하게 지낼 수 있겠네요” 라는 말씀과 함께 일하시는 여사님께 받았던 식혜 한잔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Q. 그렇다면 일하시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은?

정부양곡배달 사업을 할 때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2011년에 준비하고 곧바로 인큐베이팅으로 출범하였습니다. 처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과중한 업무와 민원 등으로 인해 9명의 남성들이 1/3로 줄었습니다. 배송차량도 여의치 않은 상황이었는데 경로당은 6개월분이 한번에 쏟아지고 기초수급자와 차상위 대상의 배달물량이 3천포대가 넘었습니다.

자활센터와 양곡 사무실로 배송문의 전화가 빗발쳤습니다. 하필 그 당시에 신주소와 구주소가 혼용되고 있는 상황에서 행정에서는 신주소로 나오고 사용자는 구주소가 익숙해서 혼란스런 상황이었습니다. 종사자들 전부가 투입되서 서구지역 18개 동에 저녁 11시까지 양곡 분실, 지연배송 등 각종 민원에 시달리며 승용차, 승합차, 트럭 등 이용가능한 센터의 모든 차량을 동원해서 2주간 동안 배달을 완료했습니다. 늦은시각까지 퇴근도 하지 않으시고 기다리셨다가 직원들과 함께 국밥을 먹어주셨던 관장님과 힘든 몸을 끌고 함께 고생했던 센터 종사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이었습니다.

 

Q.  과장님이 입사했을 초창기 서구지역자활센터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개인적으로는 입사 당시에 자활사업에 대해서는 아는 것이 하나도 없는 백지상태여서 굳이 동물에 비유해보자면 분주하게 자기의 일에 열중하는 양떼들 사이에 홀로 멍때리고있는 흑염소랄까. 처음 시작한 낯선 분위기에 적응하기 위해 끊었던 담배를 다시 피우게 되었습니다. 자연스럽게 어울리고 싶었던 저만의 방법이었던 같습니다. 센터 내의 중요사안으로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사무실안에서 실내외 업무와 퇴근시간을 칼같이 알려주셨던 선임팀장님, 행정업무와 사업단 관련 총괄적인 지도를 해주셨던 실장님, 그리고 친절했던 팀장님들 속에서 그래도 빠르게 업무를 익힐 수 있었습니다.

 

Q.  자활센터에서 일하며 닮고 싶은 인생의 롤모델이나 기억나는 사람이 있다면?

아리스토텔레스의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는 말에 대해 저는 사람은 사람에 의해 변해가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됩니다. 특정한 한사람을 대상으로 닮아가고 싶었다라는 기억보다는 현재 함께 일하고 있는 주변의 실무자들의 모습과 그들의 장점들을 보면서 배우고 싶은 모습이 많습니다. 무슨일에든 답을 주는 명쾌한 해결사, 문제해결에 탁월한 총명한 진행자, 누구보다 앞장서는 발빠른 선구자로 저에게 롤모델이 되주는 분들이 저희 서구자활의 실무자들 중에 있다는 것이 저에게는 행운입니다. 어쩌면 가족보다 더 오랜 시간동안 한 공간에서 일하고 있다보니 저에게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Q.  현재 일하고 있는 서구지역자활센터를 자랑해주신다면?

‘우리는 원칙에 준하여 자립을 꿈꾸는 주민과 함께 도전합니다’ 라는 저희 기관의 슬로건이 우리 서구지역자활센터를 함축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종종 ‘서구는 일을 만들어서 한다’는 말을 들을 때도 있지만 저희는 누구보다 주민을 위해 언제나 함께해왔다고 자부합니다. 입사하고 여러 해를 거듭했지만 저는 여전히 청일점으로 남아있네요. 오늘 이시간까지 제가 한곳에 몸을 담고 있는 이유는 함께하는 동료들의 역할이 컸던 것 같습니다. 짧게는 6개월, 길게는 8년을 함께 동거동락하며 희로애락의 시간을 보내왔던 이들과 앞으로의 시간들도 기대가 됩니다.

분명 청일점인데 청일점 아닌 청일점 같은(?) 박승현 과장님의 즐거운 일터 생활을 응원합니다. 탑차사건과 같은 어려운 일 없이, 양곡배송과 같은 힘겨운 일 없이 변화무쌍한 자활사업의 현장에서 묵묵히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시길...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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