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세계 보건·의료계 종사자 중 70%를 차지하는 여성이 코로나19 최전선에서 활약 중이다. # 한국에서 3~7월 사이 코로나19로 일자리를 잃은 사람 가운데 3명 중 2명은 여성이며, 임시직 취업자 감소의 60%를 차지했다. # 코로나19로 인한 봉쇄 조치로 가정 내 벌어지는 여성에 대한 폭력이 세계적으로 30~60%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
올해 세계에 닥친 코로나19를 계기로 여성들이 위기 극복의 주체가 되어 역량을 발휘하는 중이다. 한편으로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일상 속에서 여성들이 겪는 불평등·차별·소외·폭력 등 문제는 더욱 심화하고 가속하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여성가족부가 이달 3~4일 주최한 ‘대한민국 성평등 포럼(Korea Gender Equality Forum·KGEF)’에서는 ‘여성과 팬데믹’을 주제로 코로나19가 여성의 삶에 미치는 영향과 문제점을 살펴보고 해결을 위한 논의를 펼쳤다. KGEF는 성평등과 여성·평화·안보 의제를 국제사회와 함께 논의하기 위해 올해 처음 개최한 행사로, 양일간 비대면·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지난 3일 열린 세션3 ‘팬데믹과 여성의 삶’에서는 코로나 확산으로 어려움을 겪는 여성들의 현실을 들여다봤다. 좌장을 맡은 나윤경 한국양성평등교육진흥원 원장은 책 ‘보이지 않는 여자들’의 작가 캐럴라인 크리아도의 말 “여성은 재난이 아니라 젠더 때문에 죽는다”를 인용하며 “재난이 모든 이에게 공평하게 닥쳐오는 것 같지만, 사실 여성에게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하게 한다”고 지적했다.
앤 마리 괴츠 뉴욕대 국제학센터 교수는 “코로나로 인한 경제위기로 수많은 여성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세계 공식 근로자의 39% 여성인데, 이 중 54%가 실업 상태에 이르렀으며, 비공식 부분에 더 많은 여성이 종사자가 있음을 고려하면 수치는 더 커진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독재 국가에서 정치인들이 코로나를 무기화해 여성운동 등 시민사회의 목소리를 억누르면서 여성혐오를 키우고, 가부장적 제도의 영향력을 더 키우려 한다”고 우려를 드러냈다.
배은경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한국적 맥락에 특화해 코로나19가 여성에게 미친 영향을 발표했다. 특히 국가의 1차 관심사가 방역과 경제회복에 집중되면서 여성들의 소외가 곳곳에서 발생했다. 배 교수는 “사회적 거리두기로 자연스럽게 ‘가정’이 가장 안전한 곳이자 교육·돌봄을 제공하는 곳으로 전제되면서 여성들의 부담은 더 늘어났다”고 분석했다.
정부가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는 과정에서 행정 편의성을 위해 ‘세대주’에게 지급하는 방식을 택한 사례를 꼬집었다. 배 교수는 “남성 가장 중심의 세대주라는 개념을 다시 한번 국민들이 당연하게 받아들이게 만드는 등 제도가 주는 이념적 효과는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으로는 정은경 질병관리본부장 등 전문 분야에서 최고로 활약하는 여성의 모습을 통해 젊은 세대가 새로운 꿈과 희망을 품은 측면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임윤옥 한국여성노동자회 자문위원은 “한국 여성노동의 가장 큰 문제는 주변부화”라며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사태와 2008년 금융위기 당시 여성들은 가장 빨리 해고되고 가장 나중에 제일 나쁜 일자리로 복귀된다. 이번 코로나 위기 극복은 달라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로벌 비영리 네트워크 ‘BSR’의 안네리스 씸 여성역량강화 매니저는 “기업에게 이윤보다 사회적가치가 더 중요해지고 있는 만큼, 능력 있는 여성들이 유연·탄력근무, 유급휴가·돌봄쿠폰 등을 활용해 경제활동을 이어갈 수 있도록 성평등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서승희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대표는 “코로나로부터 안전한 집에 머무르라는 정부의 안내로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위험에 더 노출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파 다트 위민 인 글로벌 헬스 대표는 “보건·의료계 종사자 70%는 여성이지만, CEO 등 고위급으로 올라가면 20% 밑인 피라미드 구조다. 지금의 불평등을 평등한 구조로 만드는 게 우리 일이다”라고 소개했다.
4일 오전 열린 세션4 ‘팬데믹 이후의 변화’에서는 포스트 코로나 시대, 사회변화 속 지속가능한 성평등 실현을 위한 방안을 모색했다. 좌장을 맡은 유종일 한국개발연구원(KDI) 국제정책대학원 원장은 “코로나가 언제 종식될지 모르지만, 이전과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게 되는 것만큼은 분명하다”며 “더 안전하고 평등하며 정의로운 변화를 만들어내기 위한 주체로서 여성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라고 강조했다.
가브리엘라 라모스 유네스코 인문사회과학 사무총장보는 “사회 곳곳의 성차별 문제 원인은 의사결정자 중에 여성이 충분히 포함되지 않아 대표성이 적기 때문”이라며 “전 세계 의회 여성 성 비율만 봐도 25%가 되지 않는다. 차별은 법률, 규제에서부터 나오므로 어떤 제도가 차별적인지 분석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독일·뉴질랜드·덴마크·대만 등 여성 지도자가 이끄는 국가의 방역 성과가 긍정적인 것을 눈여겨봐야 한다”고도 덧붙였다.
안혜연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소장은 ‘디지털뉴딜과 여성’을 주제로 사회진출의 장애 및 기회 요인을 설명했다. 안 소장은 “현장직무·육체노동 기피로 제한적 분야에 진출했던 것에서 디지털 중심의 새로운 분야로 나아갈 수 있고, 돌봄에 대한 책임으로 경력단절 위기를 겪던 것에서 기술 기반의 교육·직무를 통해 경력 다변화 등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유진 녹색전환연구소 연구원은 ‘그린뉴딜과 여성’을 주제로 “그린뉴딜의 방향은 기후위기에 대응하면서 불평등 해소, 녹색일자리 창출로 나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 연구원은 “여성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보다 진취적 인식을 가졌고, 여성 리더들이 기후변화에 보다 탁월한 대응을 하는 만큼, 대안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여성의 역할과 비전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진 토론에서 이주희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는 “향후 돌봄·언택트·플랫폼 산업에서 임금이나 조건 등 여성 노동의 질을 개선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마틴 힐버트 데이비스 캘리포니아대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여성들이 SNS 등 디지털 플랫폼 사용률이 더 높다는 연구가 있는데, 중독이나 감시 등 문제가 발생한다”며 “기술은 인간 생각과 마음의 연장선이기 때문에 여성들이 디지털 문제를 해결하는 데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장이정수 여성환경연대 상임대표는 “코로나19가 어디에서 비롯됐는지 고민하고 근본적 변화를 이뤄야 한다. ‘원 헬스(One Health)’라는 개념이 있는데, 사람-동물-자연이 연결돼 다 같이 건강해야만 최적의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환경-경제-여성, 이 모든 것이 연결됐다는 하나의 인식으로 기존 이윤 중심의 가치관에서 탈피해 새로운 변화를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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